남해, 충무공의 마지막 숨결 어린 보물섬 해안도로 일주 드라이브
어제(5.1) 함평 나비축제 행사장을 다녀왔는데, 싸돌아 댕기는 버릇을 잠재울 수 없는지 또 집을 나섰다.
오늘은 제법 장거리 운전 코스라서 옆 좌석에 조수를 대동했다.
오늘(5.2.월)도 짙은 황사는 계속되어 온 천지가 뿌옇게 흐려 좋은 사진 찍기는 틀렸다.
사천을 지나 삼천포대교
휴게소에 주차한 후 유채 밭에 오르니 꽃은 다 지고, 씨앗이 가득 맺은 끝마디에 꽃 몇 송이가 매달려 있다. 간단하게
1장만 찍고 독일마을로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월요일은 원예 예술촌 모두 휴장이란다. 입구에서 돌아 나와 물건 방조제가 바라보이는 해오름
예술촌에 들렸다. 이곳은 폐교를 활용한 곳인데 아주 다양한 옛것부터 전시되어 제법 볼거리가 쏠쏠하여 몇 장 남긴 후
상주은모래비치를 지나 남해금산 보리암으로 올라갔다.
사월초파일이 다가오는지라 수많은 불도들이 월요일인데도 찾아와 불단에 기도드린다. 해수관음상 연등을 카메라에 담아
하산, 삼동면 멸치회 전문식당으로 찾아갔다. 여러 가지 봄채소를 넣어 무침으로 나오는데, 1접시에 3만원이란다.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추긴 후 튜립화원으로 갔더니 꽃은 모두 지고 꽃대만 앙상하다.
다랭이마을로 찾아가 할매가 부쳐주시는 해물전에 또 막걸리 한잔 하며 남해바다를 바라보니 고약한 중국산 황사가 한려수도
절경을 모두 집어 삼켰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자웅바위 앞에서 흔적을 남긴 후 다시 서포 김만중 유배전시관으로 향하다.
이곳 역시도 월요일 휴관이라 해설사의 설명은 듣지 못하고 전시관 내부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돌아본 후 성웅 이순신장군이
최후를 맞은 관음포를 찾아 “이락사(李落祠)에서 경배를 올린 후 남해대교에 걸린 석양을 바라보며 귀갓길에 오르니 하루가
후다닥 지나가 버렸네.
▶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보물섬 남해
남해는 섬이기 때문에 자연환경은 물론 주민들의 생활도 바다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바다는 남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선물해주었고, 사람들은 이 자연을 삶에 받아들이며 순응해왔다. 특히 설천면 문항마을과 창선면 지족마을을 비롯한
여러 바닷가 마을들은 어촌체험마을로서 바다와 인간이 공존하는 지혜를 보여주는 산교육장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를 이루는 남해의 바다와 자연은 그 자체로 혹은 인간에게 손길을 허용한 모습으로 더욱 아름다워
지기도 한다. 가천 다랭이 마을은 바닷가에서 산기슭까지 층층이 조성된 다랑논의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이 마을은 다랑논이 유명해지면서 아예 ‘다랭이마을’로 불리며 관광지가 되었는데, 농촌을 체험하려는 도시민들이 많이
찾는 것은 물론 국토대장정의 코스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
마치 예술작품 같은 가천마을의 다랑논은 관광객들의 눈에 아름답고 신기한 농촌풍경이리라. 하지만 바닷가 마을이면서도
바다를 포기하고 농사를 짓기 위해 비탈을 파 수십 층의 논배미들을 만들었던 이곳 사람들의 힘겨웠던 노동과 삶까지도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는지….
남해섬에 들어선 순간부터 논이건 밭이건 어디에서나 파릇하게 자란 작물을 볼 수 있다. 바로 남해의 대표 농산물 마늘이다.
해풍을 받으며 자란 남해 마늘은 특유의 향이 강하고 알이 굵으며 저장성도 좋다고 한다. 전국 마늘 생산량의 7%를 남해가
차지한다니 경지가 비좁은 것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비중이다. 남해 마늘의 명성을 드높이고 마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이동면 다정리에 문을 연 전시관 ‘보물섬 마늘나라’는 남해 마늘에 대한 자부심을 말해준다.
남해는 해안선의 길이가 302㎞나 된다. 그만큼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양식업과 연근해 어업도 발달했다는 이야기다.
7300여㏊의 넓은 양식장에서는 우럭·광어·전복·우렁쉥이·피조개·굴·미역·바지락·보리새우 등을 양식하고,
연안 바다에서는 감성돔·삼치·멸치·도다리 등을 많이 잡는다. 따라서 남해 여행에서는 싱싱한 회를 쉽게 맛볼 수 있는
재미가 더해진다.
지금으로부터 410년 전인 1598년 11월 19일(음력), 남해와 하동 사이의 좁은 바다 노량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철수하려는 왜 수군이 일전을 벌이고 있었다. 임진왜란부터 정유재란까지 무려 7년에 걸친 전쟁의 최후 결전인
이 노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크게 승리했지만, 이순신 장군은 관음포 해역에서 끝내 적의 총탄을 피하지 못하고 전사했다.
남해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던 나라를 목숨 바쳐 구했던 충무공의 마지막 숨결이 어린 고장인 것이다.
▶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그 바다
고현면 차면리에 있는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장군의 마지막 말씀 ‘戰方急愼勿言我死(지금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를 길쭉한 바윗돌에 새겨 세워놓은 이곳은 1598년 음력 11월 19일(올해 양력으로는 12월 16일) 노량해전
말미 관음포 해역 싸움에서 왜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영구를 맨 처음 내렸던 육지이다. 유허에는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大星隕海)’라는 뜻의 액자가 걸린 이락사(李落祠)에서 경배 올리다.
(유채꽃 져버린 언덕배기에서 바라본 창선-삼천포대교)
(휴게소 부근엔 모란이 벌써 피어나 나를 반겨 준다)
(어라?? 해당화도 피었구먼)
(엊그제 매화꽃 향기 휘날렸는데, 벌써 매실이 조랑조랑...)
(소나무 가지마다 새 순, 솔방울이 매달렸다)
(독일마을 입구)
(언덕위에 하얀집을 짓고 있는 펜션신축현장에도 잠시 들려 구경도 하고...)
(해오름 예술촌 마당에는 튜립이 반갑다고 인사한다)
(폐교를 이용한 해오름예술촌 전시장 전경)
(옛날 필수품이었던 요강을 그렇게 모아 놓으니 작품 ???
(추억의 교실)
(해오름예술촌 허브마을을 뒤로하고...)
(남해금산 보리암으로 오르다)
(남해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해수관음상 앞에는 수많은 불도들이 기도를 올린다)
(나무관세음보살....)
(부르기는 보리암, 현판은 菩提庵)
(보리암 연등)
(보리암 연등)
(보리암 왼쪽은 상주 은모래비치, 한려수도가 펼쳐져 있을텐데, 황사 때문에....)
(금산 아래 주차장에 있는 각종 건어물 판매장에는 해초류가 불티나게 팔리고 잇다)
(남해의 진미, 1접시에 3만원, 멸치무침회)
(서포 김만중 유배 문학관 옆에 있는 매장)
(서포 김만중이 세월을 낚고 있는 형상의 동상)
(일점선도남해/一点仙島南海)
(서포 김만중 유배 문학관 내부)
(가천 다랭이마을 입구)
(다랭이맛집에 들려 해물전에 막걸리 한사발하고...)
(숫바위, 암바위를 돌아보며...)
(요상하게 생긴 사연이 뭔지 물어 보았으나...)
(자손 귀한 분들이 이곳에 빌면 효험이...)
(다랭이마을에서 바라본 남해바다 한려수도... 황사 때문에...)
(이곳 할매들이 마늘쫑지를 뽑아 관광객에게 판매한다. 1단에 2천냥)
(해가 뉘였할 무렵, 이충무공의 혼이 서린 관음포 이락사를 찾다)
(이락사 양 옆의 소나무는 모두 다복솔인데, 역사의 증인처럼 오랜 세월을 보듬고 있다)
이순신장군,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大星隕海)'.
(남해대교 난간에 걸린 석양을 뒤로하며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