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의 결정론과 베르그송의 자유의지
“우리가 앞서 말했듯이 지각에서 나타나는 질서에서 과학에서 성취하는 질서로, 즉 우리의 감각이 서로 뒤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우연성에서 자연의 현상들을 연결하는 결정론으로 나아가는 것이 왜 실패하는가? 왜냐하면 관념론은 지각에 있어서 의식에게 사변적인 역할을 부여하기 때문이며, 그 결과 이 의식이 두 감각 사이에서, 즉 첫 번째 감각에서 두 번째 감각을 나오게 하는 매개들을 놓쳐버리는데 있어서 어떤 이익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르그송, 『물질과 기억』, 중에서=
과학의 승리는 결정론을 수립하는데 있으나, 이는 인간의 지각현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베르그송이 결정론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다소 추상적인 표현이어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지각현상을 ‘기계론적으로’ 혹은 ‘결정론적으로’ 해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지각현상도 마치 자연의 물리법칙처럼 일종의 필연적인 법칙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필연적인 법칙처럼 형성한 것이 과학이 성취한 질서이고, 이를 ‘결정론’이라고 부른다. 즉 결과가 이미 자연법칙 혹은 물리법칙에 의해 결정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이러한 결정론적인 이해가 결국 인간의 지각현상을 이해하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각이나 인식의 과정에서 다음 단계를 결정하는 매개체가 있다!
사실 여전히 베르그송의 관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 않다면 여전히 모호한 설명처럼 보일 것이다. 지각의 과정에 있어서 결정론자들은 의식의 역할이 다만 ‘사변적인 역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의식은 지각의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된 이후에 이를 이해하거나 해명하는 역할만을 하게 된다. 결정론자들은 감각들의 연계에 있어서 하나에게 다른 하나로 나아가게 하는 ‘매개체’가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과정은 오직 물리적인 법칙 혹은 자연법칙처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이렇게 매개체를 놓쳐버리는 것이 전체 지각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실패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 매개체는 무엇인가?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이 매개체는 의식 그 자체이며, 또한 ‘자유의지’이다. 왜냐하면 지각한다는 것은 ‘행동’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어떤 것을 지각한다는 것도 인간이 자유의지를 통해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방식으로 지각하는 것이지 필연적으로 지각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통속적으로 말해 '관심이 가는 부분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지각한다'는 것이다.
생명체의 행동은 결정론적으로 밝혀질 수가 없다!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에서 생명의 특징은 단순한 물리적 법칙을 넘어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 즉 자유의지의 능력을 꼽았고, 보다 자유의지가 완전할수록 보다 상위적인 생명체로 보았다. 베르그송은 곤충들이나 설치류 등에게도 최소한의 ‘자유의지’가 있다고 보고 있는데, 진화는 바로 이러한 ‘선택의 자유’를 통해서 스스로 창조된 것이기에 진화는 ‘자연선택’이 아닌, ‘장조적인 진화’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개구리가 임박한 미래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는 – 확률적으로 추정해 볼 수는 있겠지만 - 결코 ‘결정론적’으로 밝혀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개구리의 최소한의 자유 의지가 개입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인간의 행동에 있어서 ‘결정론적인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은 무엇보다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기에 항상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다” “피할 수 없다” “필연적이다” “달리 다른 방도가 없다”는 등의 말은 인간의 행위나 행동에 있어서는 사실상 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진술이다. 많은 경우 과학자들은 시뮬레이션이란 것을 통해 인간의 행위나 행동도 예측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인간을 마치 물질이나 기계처럼 고려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란 99%를 준비하고도 1%를 남기고 어떤 행위를 포기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이것이 자유를 가진 인간의 놀라운 능력이다. 그래서 항상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또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