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체험
김미순
점심을 먹고 우리는 와온해변을 거쳐 여자만으로 갔다. 언니부부, 남동생, 조카와 손주, 우리 부부였다. 오랫만에 시원한 바람 쐬고 커피 마시면서 가을 볕에 온 몸을 맡겼다.
하루내 집에서 지내다가 밖에 나오니 살 것 같았다. 게다가 나에게 기쁨만 주는 언니와 동생이 함께 하니 입이 안 다물어졌다.
해안 도로에는 억새와 가을 꽃이 나를 반겼고 따사로운 빛이 창밖을 번져들었다. 꽤 멀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여자만 꼬막 체취하는 작업장이었다. 꼬막을 파쇗한 것이 산이 되어 쌓여있었고 해안 가에는 배들, 부두에는 나무와 알루미늄 공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상당히 너른 부두였고 바다로 내려가는 비스듬한 언덕이 있었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구경했다. 먼 바다부터 가까이 펼쳐진 여자만을 보니 가슴이 뻥 뚫렸다. 다만 세찬 바람이 불어 휠체어를 꼭 잡았다. 모자도 꾹 눌러쓰느라 애를 먹었다.
우리가 이 먼 곳지 온 이유는 게를 잡기 위해서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돌들 뜸에 다양한 생물들이 나온다고 한다. 반장게, 소라, 고둥, 새우가 지천이라고 한다.
나는 잡아 온 걸 먹어만 봤지 실제로 잡아본 적은 없다. 나와 남편은 구경만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물이 빠지려면 아직도 두 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춥기도 하여 차에 숨었다.
동생이 이 근방에 카페가 하나 있다고 하였다. 언니와 함께 그곳으로 기ㅣㅆ다. 리도였다. 커피와 경양식이 가능하다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앞에 잔디밭이 펼쳐졌고 멀리 바다가 일렁이며 잔잔하게 오후를 즐겼다.
우리는 잔디밭에 내려가서 바다를 보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남편이 커피를 주문하여서 사장이 직접 의자까지 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사모님이 아프시네요?"
"네"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 사장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 기억하시나요? 저 띠엠뽀 경영했어요."
아! 세상에~~ 우리가 결혼 전부터 단골이었던 카페였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커피나무를 보았고, 남편이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입술에 크림을 잔뜩 묻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 때는 오빠네 식구랑 우리 아들이랑 같이 팥빙수, 커피, 오빠와 남편은 맥주를 마시면서 즐겁게 보내기도 했다. 거리가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서 가득찬 꽃들을 보며 신나했다.
커피를 마시고 다시 부두로 왔다. 아직 물이 덜 빠져 차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이 서서히 밖에 나왔다. 언니도 바다로 진출하려고 일어섰다. 조카와 손주도 장화를 신었다. 나는 세찬 바람을 뚫고 휠체어를 타고 구경에 들어갔다. 우리 식구들 말고 다른 사람들도 호미와 집, 플라스틱 양동이를 들고 바위를 뒤집기 시작했다. 남편이 가까이 에서 본다고 나만 차에 들어왔다. 나는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날아갈 것 같은 바람을 뚫고 가까운 부둣가로 접근했다. 배가 부두에 있어서 그 가에 삥 둘러쳐진 스티로플을 손에 잡고 밑을 보려고 애를 썼으나 도무지 고개를 숙여도 그들이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올라와서야 그들의 소식을 들었다. 다시 휠체어를 타고 형부와 조카를 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이 잡었다. 게가 많았고 언니와 손주는 고둥만 조금 잡았다. 손주를 케어하느라 언니는 온몸에 갯벌만 잔뜩 묻혔다. 동생은 고둥과 소라만 잡았다.
나와 남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갯것> 이라는 체험을 했다. 직접 잡지는 못했으나 보는 것 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본 것이 제일 기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