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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Καὶ μετὰ τὰς τρεῖς ἡμέρας καὶ ἥμισυ πνεῦμα ζωῆς ἐκ τοῦ θεοῦ εἰσῆλθεν ἐν αὐτοῖς, καὶ ἔστησαν ἐπὶ τοὺς πόδας αὐτῶν, καὶ φόβος μέγας ἐπέπεσεν ἐπὶ τοὺς θεωροῦντας αὐτούς.καὶ ἤκουσαν φωνῆς μεγάλης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λεγούσης αὐτοῖς· ἀνάβατε ὧδε. καὶ ἀνέβησαν εἰς τὸν οὐρανὸν ἐν τῇ νεφέλῃ, καὶ ἐθεώρησαν αὐτοὺς οἱ ἐχθροὶ αὐτῶν.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개역개정)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의 성령께서 그들 속에 들어가시므로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그들을 보던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그들이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 여기로 올라오라 말씀하시는 큰 음성을 듣고 구름 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바라보더라.』(헬라어 번역성경)
두 증인의 부활과 승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우라노스 τοῦ οὐρανοῦ) 구름(테 네페레 τῇ νεφέλῃ)은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문자적으로 보는 자들은 천체의 상황으로 이해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늘과 구름은 부활과 승천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하늘과 구름이 단수로 사용되었다. 하늘은 지성소를 상징한다. 구름은 여호와의 임재, 말씀, 성령을 상징한다. 그러나 복수로 사용되면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지칭하게 된다.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라고 번역된 것은 구름 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니 라고 되어야 한다. 속에서 또는 안에서 라는 것은 엔이라는 전치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승천의 개념이다. 아네베산(ἀνέβησαν 기본형은 아나바이노)은 올라가다 라는 의미다. 요한계시록 4장 1절에서『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아나바이노)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올라오라는 말은 승천의 개념이다. 승천은 육체가 올라가는 개념이 아니라 영적인 개념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두 증인의 승천이다.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이다. 즉 오늘날 성도를 의미한다. 성도 역시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 부활과 승천이 있음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의 대부분은 부활을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오해하고 있는데, 분명히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휴거라는 용어도 이와 연계해서 믿고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5-6절에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생명)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부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톤 우라논)에 앉히시니(승천)』하늘(복수)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13장은 전체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31-32절에서『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톤 우라논)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여기도 톤 우라논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환상의 개념이며, 그들의 삶을 통해서 부활과 승천을 인정하는 것이다.
13. Καὶ ἐν ἐκείνῃ τῇ ὥρᾳ ἐγένετο σεισμὸς μέγας καὶ τὸ δέκατον τῆς πόλεως ἔπεσεν καὶ ἀπεκτάνθησαν ἐν τῷ σεισμῷ ὀνόματα ἀνθρώπων χιλιάδες ἑπτὰ καὶ οἱ λοιποὶ ἔμφοβοι ἐγένοντο καὶ ἔδωκαν δόξαν τῷ θεῷ τοῦ οὐρανοῦ.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개역개정)
『바로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그 성의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으로 죽은 자들의 이름이 칠천이었더라. 그 남은 자들이 놀라며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지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마태복음 28장 2-3절에서『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예수님의 부활 때 지진이 난 것이다. 사도행전 16장 26절에서『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요한계시록 6장 12절『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마태복음 27장 51-54절에서『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예수님의 제자를 지칭)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로마 군인이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는 모습이다. 십자가 앞에서 도망갔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이 어둠(무덤)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을 말해준다.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성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며, 오늘날 성도에게는 옛사람의 성전을 의미한다. 십분의 일은 십일조와 관계된다. 십일조는 십분의 일이라는 의미지만 전체를 대표하는 표현이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칠천이라 ὀνόματα ἀνθρώπων χιλιάδες ἑπτὰ』개역개정의 번역은 마치 칠천명으로 되어있지만, 칠천명이 아니라 이름이 칠천이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바알에 무릎꿇지 않은 자가 칠천이었다고 한다. 열왕기상 19장 18절에서『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칠천은 하나님의 맹세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맹세가 이루어진 남은 자를 총칭해서 칠천이라고 한다. 죽었다는 말은 물리적으로 죽이는 것이고, 영적으로 죽이는 것은 에베소서 2장 14-16절에서『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십자가에서 원수된 것을 죽이는 것이다. 죽은 자는 성도의 옛사람이 죽은 것이고, 그래서 새사람으로 부활하여 승천한 진실한 성도(칠천)를 의미하는 것이다. 칠천이라는 성도의 옛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게 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라는 것을 회개의 개념으로 말을 한다. 회개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14-17. Ἡ οὐαὶ ἡ δευτέρα ἀπῆλθεν· ἰδοὺ ἡ οὐαὶ ἡ τρίτη ἔρχεται ταχύ.Καὶ ὁ ἕβδομος ἄγγελος ἐσάλπισεν· καὶ ἐγένοντο φωναὶ μεγάλαι ἐν τῷ οὐρανῷ λέγοντες· ἐγένετο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κόσμου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καὶ τοῦ χριστοῦ αὐτοῦ, καὶ βασιλεύσει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Καὶ οἱ εἴκοσι τέσσαρες πρεσβύτεροι [οἱ]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καθήμενοι ἐπὶ τοὺς θρόνους αὐτῶν ἔπεσαν ἐπὶ τὰ πρόσωπα αὐτῶν καὶ προσεκύνησαν τῷ θεῷ λέγοντες·εὐχαριστοῦμέν σοι, κύριε ὁ θεὸς ὁ παντοκράτωρ, ὁ ὢν καὶ ὁ ἦν, ὅτι εἴληφας τὴν δύναμίν σου τὴν μεγάλην καὶ ἐβασίλευσας.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개역개정)
『둘째 화는 지나갔으며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임하는도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스물네 장로가 엎드려 얼굴 위의 하나님께 경배하며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주 하나님 전능자이시여,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께서 친히 주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하심이니이다.』(헬라어 번역성경)
8장 13절『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첫째 화는 다섯번째 나팔과 연계된다. 다섯번째 나팔을 부니 무저갱으로부터 황충(거짓 선지자)이 올라오는데, 수가 많고 영혼들을 잡아 먹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신도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는 것이다. 두번째 화는 여섯번째 나팔이다. 이만만 군대의 내용이 등장한다. 이만만은 사탄의 군대이며, 거짓 영들(거짓 선지자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비진리가 나오므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머리는 뱀이고 뱀의 말을 하고 뱀의 도구로 사람을 해하는 것이다. 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기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다. 회개를 강조하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과 연합되는 것이다. 비진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생활을 하므로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다. 10장에서 11장 13절까지 작은 책과 두 증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작은 책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복음을 의미하고, 두 증인은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말한다.
첫째 나팔은 전쟁에 사용되었고, 두번째 나팔은 임박한 심판에 대하여 회개를 촉구할 때 사용되었다. 세번째 나팔은 하나님의 임재를, 네번째 나팔은 예배나 전쟁 등의 경우 회중을 모을 때 나팔을 불렀다.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과 연결된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왕노릇하기 때문에 화가 된다.
일곱 째 나팔은 왕이 새롭게 부임할 때 불었다. 이스라엘에서 나팔절은 새해가 되면 나팔을 분다. 이스라엘은 종교력으로 신년을 티쉬일 이라고 한다. 태양력으로는 9월말이나 10월 초쯤 된다. 새해에 나팔을 부는 것은 여호와께서 왕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이십사 장로는 구약의 성막에 배치된 열두 지파들을 의미한다. 가운데는 레위인이 성소를 둘러쌌다. 그래서 열두 지파와 열두명의 레위인을 합하여 이십사가 되는 것이다. 제사장 반열이 이십사 반열이고, 찬양대도 이십사 반열이다. 요한계시록 21장 에서는 열두 제자와 열두 지파로 변경된다. 이렇게 이십사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자들을 상징하는 숫자가 된다. 이 숫자는 신약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표현된다. 왕들 위에 왕이라는 것이다. 성도가 왕이고 예수님이 왕의 왕이라는 표현이다.
감사하다(유카리스투멘 εὐχαριστοῦμέν)에 대해서, 마태복음 26장 26-27절에서『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유카리스테사스)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고린도전서 11장 24절에서도『축사하시고(유카리스테사스)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그래서 감사하다 라고 표현된 것은 성찬의 축사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성찬은 천국 음료를 마시는 것이다. 말씀을 생명으로 먹고 마시면 그것이 성찬인 것이다.
두 증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부활한 자(교회)를 상징한다. 두 증인 하늘로 올라갔는데, 하늘에서 보이는 모습이 바로 11장 14-17절의 모습인 것이다. 이 장면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경배(예배) 장면이다. 휘장이 찟어지면서 이루어지는 예배인 것이다. 성도가 드리는 예배가 바로 이런 모습인 것이다. 왕 같은 제사장인 성도가 휘장이 찟어지면서 지성소로 들어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성도가 그 현장에 있는 것이다. 이게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성도에 대해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골로새서 3장 10절에서『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라고 말을 한다. 일곱째 나팔을 불면 성도가 이렇게 새롭게 되는 것이다. 마치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 같이 성도의 심령 속에 옛사람이 무너지고 새사람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일곱번을 돌았는데, 이는 천지 창조 칠일을 연상한다. 가장 앞장 선 것이 언약궤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제사장이 나팔을 부는데, 이는 성도에게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잠잠하던 백성들이 칠일에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본인에게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다. 성도 본인이 말씀에 화답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령 속의 휘장이 찢어지는 모습이다.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은 찬양의 모습이다.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대관식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이십사 장로는 자기 보좌에서 내려와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다. “지금도 오시고 계시는” 미래 부분이 빠져있는 듯 하다. 왜냐하면 일곱 째 나팔이 불었으므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18. καὶ τὰ ἔθνη ὠργίσθησαν, καὶ ἦλθεν ἡ ὀργή σου καὶ ὁ καιρὸς τῶν νεκρῶν κριθῆναι καὶ δοῦναι τὸν μισθὸν τοῖς δούλοις σου τοῖς προφήταις καὶ τοῖς ἁγίοις καὶ τοῖς φοβουμένοις τὸ ὄνομά σου,τοὺς μικροὺς καὶ τοὺς μεγάλους, καὶ διαφθεῖραι τοὺς διαφθείροντας τὴν γῆν.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카이로스 καιρὸς)로소이다 하더라』(개역개정)
『나라들이 분노하매 당신의 진노가 이르렀고 죽은 자들의 때가 이르렀으니 이것은 그들이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요, 또 주께서 주의 종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주려 하심이며 또 땅을 파괴하는 자들을 멸하려 하심이니이다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심판과 구원의 때를 그리고 있다. 여리고 성이 함락될 때 기생 라합이 구원(복음)을 받았다. 그러나 그곳의 왕들은 재앙이었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저주가 된다. 그래서 성경은 복과 저주가 함께 하는 것이다. 성경을 율법(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으로 받아드리는 자는 저주가 되고, 생명 나무로 받아드린 자는 복음이 되는 것이다. 유대주의자들에게는 재앙으로 된다. 마태복음 23장 35-36절에서『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카이로스 καιρὸς)로소이다 하더라』크로노스는 인간의 때를 의미하지만,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때를 의미한다. 카이로스의 때에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시고, 죽은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이름(오노마)을 경외하는 것은 주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소중히 여기다 라는 의미다. 주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참 선지자, 성도라고 표현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에서 땅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다. 죽음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죽은 자가 네크로스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유대주의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로 복음을 변질하는 자들은 교회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이 이루어진다. 마태복음 21장 43절에서『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그러나 성도는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면 주님이 호 로고스로 임재하여(파루시안) 오시는 것이다. 성도의 옛성전이 무너지고 새성전이 세워지면 그것이 예수님의 재림인 것이다. 새성전이 새하늘과 새땅이며, 에덴동산이며, 천년왕국이며, 셋째 하늘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서『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말을 한다.
19. Καὶ ἠνοίγη ὁ ναὸς τοῦ θεοῦ ὁ ἐν τῷ οὐρανῷ καὶ ὤφθη ἡ κιβωτὸς τῆς διαθήκης αὐτοῦ ἐν τῷ ναῷ αὐτοῦ, καὶ ἐγένοντο ἀστραπαὶ καὶ φωναὶ καὶ βρονταὶ καὶ σεισμὸς καὶ χάλαζα μεγάλη.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개역개정)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는데 그분의 성전 안에 그분의 언약 궤가 보이며 또 번개들과 음성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호 데오스의 하늘이 열린 것이다. 지성소가 열리므로 언약궤가 보인다. 번개와 우레, 지진, 우박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몸은 예루살렘 돌 성전과 같은 개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돌로 만들어진 성전의 효력이 상실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40년이 지나서 예루살렘 성전이 A.D. 70년 경에 무너진 것(확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유예기간을 주신 것이다. 40년은 유예기간으로 불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성전이 무너짐)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이다. 마태복음 27장 51절에서『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휘장이 찟어진 것은 하늘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영안이 열리는 것이다. 27장 52-53절에서는『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일곱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이 알려진 것이다. 요한계시록 10장 7절『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하나님의 비밀은 골로새서 1장 26절에서『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비밀은 성도에게 나타난 그리스도이시다. 골로새서 2장 2-3절에서『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면 그리스도와 교회(성도)와의 관계를 알게 된다. 에베소서 5장 32절에서『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비밀에 대해서 첫사람 아담과 함께 온 영들이 마지막 사람 아담과 함께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비밀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영들은 여자이지만, 그리스도를 만나면 한 남편의 아내가 된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33절에서『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라고 말을 한다.
교회는 성전이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성전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지성소를 의미한다. 히브리서 10장 16-20절에서『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에베소서 2장 21-22절에서『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