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탄 이승소(李承召, 1422~1484)
삼탄집 제3권 / 시(詩) / 서강중이 화답시를 보냈기에 다시 전운을 써서 짓다〔剛中見和復用前韻〕
아궁이에 불 꺼져도 구들 아직 뜨뜻하고 / 土炕煙消火尙溫
갈옷 입고 화로 끼니 봄 햇볕과 비슷하네 / 圍爐擁褐似春暄
옛 친구가 있어 가끔 어소 보내주거니와 / 故人時有傳魚素
장자 어찌 석문 앞에 왔던 적이 있으리오 / 長者何曾到席門
금석 같은 교제의 정 예로부터 적었거니 / 金石交情從古少
임천 좋아하는 기벽 지금까지 간직했네 / 林泉舊癖至今存
내 그대와 향산 결사 맺으려고 하거니와 / 與君擬結香山社
달 뜬 저녁 꽃 핀 아침 함께 술을 마시리라 / 月夕花朝共置樽
맹모 북을 내던지고 짜던 베를 끊었으나 / 斷織曾投孟母梭
젊어 학문 안 했으니 늙어서야 어떠하랴 / 靑年棄學老如何
가을 오자 약한 버들 먼저 잎새 시드는데 / 秋回弱柳先彫葉
겨울 돼도 곧은 솔은 푸른 빛깔 그대로네 / 歲晩貞松不改柯
나는 못나 남이 기억 안 해주어 부끄런데 / 愧我疏慵人不記
그대같이 호탕한 이 이 세상에 안 많으리 / 如君佚宕世無多
평생토록 모든 일 다 예전같이 그대론데 / 生平事事渾依舊
시 즐기는 광태만은 열 배는 더 불어났네 / 但覺詩狂十倍加
술이 익은 그대 집에 몇 번 초대받아 갔나 / 酒熟君家幾見招
수심 생각 술 마시자 이미 전부 사라졌네 / 愁懷得酒已全消
백도에게 아들 없단 말은 부디 하지 마소 / 休言伯道無兒子
주랑 전에 소교 맞아들이었단 말 들었네 / 聽說周郞納小喬
웅비 먼저 꿈속으로 드는 것을 점칠 거고 / 喜占熊羆先入夢
원로 따라 아침 일찍 조회 가긴 게으르리 / 懶隨鵷鷺早趨朝
근년 들어 동산의 흥 있어 마음 흡족하니 / 年來恰有東山興
계자 허리 금 많은 걸 뭘 부러워하겠는가 / 肯羨金多季子腰
이 아래의 일곱 수는 잃어버렸다.
[주-D001] 어소(魚素) : 서신(書信)을 말한다. 옛날에 어떤 나그네가 잉어를 사서 배를 갈라보니 그 속에서 고향 편지가 나왔다고 한다. 《문선(文選)》 권27 〈고악부(古樂府)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 “나그네가 먼 곳으로부터 와서 내게 잉어 한 쌍을 주었네. 아이 불러 잉어를 삶게 했더니, 뱃속에서 한 통의 고향 편지가 나왔네.〔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 하였다. 후대에는 이를 인하여 물고기와 편지를 연관하여 쓴다.[주-D002] 석문(席門) : 거적을 매달아놓은 문으로, 청빈한 집이나 은자의 거처를 뜻한다. 《사기》 권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다 떨어진 거적으로 문을 매달아놓은 집에 장자의 수레가 많이도 찾아왔다.〔以弊席爲門 然門外多有長者車轍〕” 하였다.[주-D003] 금석(金石) …… 정 : 돌이나 쇠처럼 단단하여 변하지 않는 교분을 말한다.[주-D004] 향산(香山) 결사(結社) : 향화사(香火社)와 같은 말로, 본디는 불교도들의 결사를 말하는데, 전하여 같은 뜻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만년에 향산에서 시승(詩僧)인 여만 선사(如滿禪師)에게 법을 받은 뒤에 여만과 더불어 향화사를 결성하고 자호를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하였다.[주-D005] 맹모(孟母) …… 끊었으나 : 부모님이 학문을 하기를 독려하였다는 뜻이다. 옛날에 맹자가 공부를 중단하고 집에 돌아오자, 맹자의 어머니가 베틀에서 짜던 베를 끊어놓고 힐책하기를 “네가 공부를 중단한 것은, 마치 짜던 베를 필을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끊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는데, 맹자는 그 말에 감동하여 곧 다시 선생에게로 돌아가 크게 학문을 성취하였다. 《列女傳》[주-D006] 백도(伯道)에게 …… 마소 : 백도는 진(晉)나라 양릉(襄陵) 사람인 등유(鄧攸)의 자이다. 석륵(石勒)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올 적에 등유가 가족을 이끌고 피난하였는데, 그의 아우가 자식 하나만 남겨두고 일찍 죽은 것을 슬퍼하여 그 조카를 보전하고 자기 아들을 버리고 갔다. 그 뒤에 등유는 끝내 자식을 못 두고 죽으니, 당시 사람들이 슬퍼하여 “하늘도 무심하여 등백도로 하여금 아들을 두지 못하게 하였다.” 하였다. 서거정이 아들을 두지 못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晉書 卷90 良吏列傳 鄧攸》[주-D007] 주랑(周郞) …… 들었네 : 아내를 맞아들였다는 뜻이다. 주랑은 삼국 시대 오나라의 장수인 주유(周瑜)를 가리키며, 소교(小喬)는 그의 아내 이름이다. 서거정은 처음에 선산 김씨(善山金氏)와 결혼하였다가, 나중에 이영근(李寧根)의 딸을 다시 맞아들였는데, 여기서는 이영근의 딸을 맞아들인 것을 뜻한다.[주-D008] 웅비(熊羆) …… 거고 : 앞으로 아들을 둘 수 있을 것이란 뜻이다. 태몽(胎夢)에 곰이 보이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시경》 〈사간(斯干)〉에 이르기를 “길한 꿈이 무엇인가, 곰 꿈을 꾸었다네. 오직 곰 꿈이란, 남자를 낳을 상서라오.〔吉夢維何 維熊維羆 維熊維羆 男子之祥〕” 하였다. 서거정은 오랫동안 아들을 두지 못하다가 49세 때에 비로소 아들 복경(福慶)을 낳았는데, 이때의 기쁨을 시를 지어 표현하면서 “사십 년의 세월하고도 구 년이란 세월을, 세상일에 무심하여 마른 창자 외로웠네. 지난해에 장원한 것은 참으로 요행이요, 오늘날에 아들 얻음은 절로 길상이로다.〔四十光陰又九霜 無心世事兀枯腸 去年登甲眞僥倖 今日添丁自吉祥〕” 하였다.[주-D009] 원로(鵷鷺) …… 게으르리 : 젊은 부인과의 단꿈을 꾸느라 조회에 늦게 참석할 것이란 뜻이다. 원로는 조정 백관들의 행렬을 가리키는 말로, 원행(鵷行)이나 원반(鵷班)으로 쓰기도 한다.[주-D010] 동산(東山) : 절강성(浙江省) 상우현(上虞縣) 서남(西南)에 있는 산 이름인데,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이곳에 은거하였으며, 또한 기녀(妓女)를 데리고 유연(遊宴)하기도 하였다고 한다.[주-D011] 계자(季子) …… 부러워하겠는가 : 고관대작을 부러워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계자는 전국 시대 때의 유세가(遊說家)인 소진(蘇秦)을 가리킨다. 그는 동시에 6국의 정승이 되어 6국에서 봉급으로 받는 황금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선용 (역) |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