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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윤리, 철학을 가르치시는 양업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질문을 보고 무언가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질문 (ㅎㅎ) 이라고 했다. 어려운 질문을 드린 것 같아 바쁘신 세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그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연구자의 분석, 탐구하고자 하는 태도가 질문에 담겨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을 만드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에너지를 쏟고, 피드백을 반영하기 위해 고민을 했던 시간들은 힘겨운 만큼 보람찼다. 그리고 실제로 답변을 들으면서 내가 질문한 의도에 맞는 답을 얻어내게끔 추가 질문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어떠한 대답을 원하고 있으며 지금 현재 우리의 대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인지하는 것은 연구자인 나에게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했다. 또 답변을 듣고 내가 이해한 바 대로 정리해서 말한 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지금까지 다른 과목을 담당하시는 두 분과 대화를 나누니 확실히 비교해서 볼 부분들이 있었다. 두 분의 견해의 방향과 선택하시는 단어, 강조하시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질문의 이해도와 해석하시는 부분도 다르시다. 이렇게 같은 질문을 제시했지만, 답변과 생각은 각양각색이라는 점이 질적 연구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은, 민주시민교육의 '효과'를 보는 관점이었다. 어제 만난 분은 교육적 효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셨다. 하지만 오늘 면담한 분은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바, 방향성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셨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셨다. 그래서 하쌤께서 효과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시는지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해야한다고 하셨던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학생 주도성이 높은 수업일수록 교사의 유용성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이 나온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셨다는 점이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삭제한 질문인, 학생 주도성이 높은 방법일수록 민주시민교육에의 유용성에 대한 교사의 부정적 응답 비율이 높아지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답변을 하시다보니 그 부분까지 말씀해주신 것이었다.
또한 학생 활동에 있어서 교사의 중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계셨다. 어제 면담하신 분은 학생 스스로 자치회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자치회 활동을 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한계라고 생각하셨지만, 오늘 면담하신 분은 다른 견해셨다. 학생들 스스로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의견을 조율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한 경험이 적기 때문에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견해셨다. 그래서 학생에게 무조건 맡기기 보다는 교사가 개입해 중재하는 역할을 담당해야한다는 것이 이번 선생님의 견해셨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답변 중 교육학 언어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에듀까레와 에듀쩨레
그리고 어제 사회과 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의 소재들에 대한 견해를 묻기 위해 추가질문을 했다. 그래서 두 선생님의 다른(혹은 같은) 견해를 통해 여러 관점으로 폭 넓게 소재를 살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사회과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교육에서의 효과란 방향성에 더 가깝고 윤리,철학과 선생님의 경우 효율과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계시지만, 방향성에 대한 부분은 강조하시는 바이다.
또한 민주시민교육의 역량에 대한 질문에서 사회과 선생님께서 중요한 역량으로 메타인지를 선택하셨고, 윤리과 선생님은 자기 존엄성을 선택하셨다. 메타인지를 선택하진 않으셨지만, 추가 질문을 통해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메타인지가 역량으로 채택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학교에 계시다 보니 그 학교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경험을 중심으로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윤리, 철학과 양업고 선생님 인터뷰
시간 2시~ 3시 20분
방법: 면담
1.
복도에서 눈을 마주치고 웃는 것, 학생들의 오늘 상태에 반응하는 것=관심가지기, 잠깐의 수다 등 : 즉 학교 안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 혹은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호작용과 수업시간에서 학생들간의 소통과 같은 사례들은 학교와 교육에서의 소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교육에서의 소통은 무엇인가요?
교육에서의 소통, 소통이라면 서로 막힘없이 통한다. 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 사람과 무언가 통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함. 일상적인 대화 안에서 주고 받는 것들 내가 이야기 하고 그 사람도 받아쳐주고, 또 받아친걸 또 쳐주고.. 그런 대화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생각이나 인생의 가치관이나 철학적 방법에서의 차이가 있어도 소통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것을 주장하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 쌍방으로 이루어지는 것. 살아가는 방식, 견해, 철학이 달라도 소통은 가능하다.
2.
2022 교육과정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을 “학생이 자기 자신과 공동체적 삶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상호 연대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정의를 동의하시나요?
상호 연대성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중요.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서 인간에게 상호 연대성이라는 것이 왜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같다. 늘 핵심적으로 삼는 질문은 왜라는 질문인데,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것을 왜 해야하는지 부터 파악을 한다고 보면, 사람마다 민주시민교육의 정의는 다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교육과정에서의 민주시민교육도 누군가가 정의를 내린 것인데, 정의를 내렸을 때도 이 시대에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런 정의를 내렸을 것이다.
인간의 삶을 단순히 틀안에서 바라볼 수는 없고, 더 폭넓게, 더 관심사들이 다르고 삶을 살아가는 키워드가 다른 것처럼. 어떤 사람은 공동체 주의, 또 어떤 사람은 개인주의, 자유주의를 갖고 있기도 하다. 사람마다 키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이렇다 저렇다 하기 보다는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안에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경우에는 공동체를 중시여기고 있다. 교육안에서도 공동체라는 단어를 많이 꺼내는 편이다. 공동체에 이어 공동선... 공동선을 떠올리다보면 희생을 떠올리게 되고 상호 연대와 같은 단어가 떠오르게 된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고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고 있고, 인간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시민교육을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데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교육을 시킬까라고 민주시민교육을 정의를 내린다면, 그 초점은 공동체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상호 연대성이라는 부분에는 분명히 동의를 한다.
우리가 늘 좋을 수는 없고, 그래서 비판적 사고는 늘 필요하다. 비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닌, 삶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윤리와 철학에서 그리고 사회학에서는 비판적사고를 강조하고 있고... 비판적 사고력을 펼치려면 바라보는 시각과 안목을 상당히 키워야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야하는 것이고 그를 위해서는 맹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닌 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도와줘야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소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현실만족이라는 단어를 꺼내지만, 인간은 욕망,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현실을 만족하지 못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인간이다.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을 만들어가려면 현실의 삶에서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 시각은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다르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밖으로 꺼내줄 수 있느냐... 교육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머리속에 넣는 것도 교육이지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꺼내주는 것도 교육이다.
교육의 개념을 소개해보자면, 에듀카레 무언가를 넣어주는 것.
에듀쩨레 밖으로 꺼내주는 것
그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민주시민교육에서 연대성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한다.
에듀카레와 에듀쩨레에 대해 좀 더 찾아보고 싶었음
교육은 라틴어의 에듀카레(educare)와 에듀제레(eduacere)에서 유래했다.
교육 철학에서는 두 가지 어원을 둘러싸고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의 의견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에듀카레는 교수자가 원하는 형태로 학습자를 틀에 맞춰 찍어내는 주형으로서 교육이다. 주형의 비유는 교육이 학습자를 후천적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설명해준다. 주형으로서, 교육은 장인이 쇳물을 틀에 부어 모양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결국 아이들을 틀에 넣고 교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아이들을 틀에 넣고 교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에듀제레는 에듀카레와 반대의 개념이다. 에듀제레의 어원은 “안내”“끌어냄”“생산”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이미 가지고 태어난 잠재력을 밖으로 끌어내서 잘 자라도록 조력하도록 한다. 무지에서 지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동굴 속의 무지”에서 “지식의 빛으로” 이끄는 일이다! 배우는 과정에서 교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관점을 학습자가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동의하신다면 어떠한 부분을 특히 동의하시고,---> 상호연대성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어떤 부분에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상호 연대성이라는 부분에서 보완할 점이라고 하면, 민주시민교육이란 뭘까에 대한 what의 답변이지만, 더 근본적으로 why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같다고 생각한다.
3.
민주시민교육의 가치에는 인간 존엄, 자유, 평등, 관용, 정의, 평화, 공정성, 책임, 다양성, 참여, 진실, 애국심, 신뢰, 정직, 행복, 공동선, 복지, 연대, 존중, 자율같은 것이 있습니다.
가치들 중 하나인 '존중'에 대해서 상대방을 존중해야하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 학교 현장에서 경험하는 존중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수업 자료를 위해 휴대폰을 사용해서 검색하는 것과 수업내용 이외의 것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존중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요. 이처럼 무조건적인 존중의 한계가 있거나 혹은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본인 간의 이견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고요.
*선생님께서는 학교 수업에서의 존중의 한계와 이견차이를 어떻게 중재하고 계신가요?
교육하면 개인적, 사회적 차원이있다. 개인적인 차원은 자아실현이다. 특히나 올바름 속에서의 자아실현을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그 사람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무조건 적인 존중을 보여라. 는 올바른 존중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배워왔다. 자신이 늘 이야기하는 것은 존중받고 싶으면, 너가 존중받을 행동을 해! 이다. 상황에 맞는 행동들이 있다. 장소에 맞는 행동들.... 그 행동에서 벗어나있다면 지적을 해주고 가르쳐야한다. 그것이 교육이며, 올바르지 않는 것을 그냥 두는 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다.
올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아야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있다. 몰라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 알지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지적은 해줘야하는 것이다. 틀렸다라는 것을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존중해주는 것이다. 제일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며, 그것은 그 사람을 망치는 길이다. 그 사람을 존중하기에 그 사람의 잘못한 것을 바로잡아주는 것이다..
나는 늘 맞고 학생들은 틀린것은 아니다. 나도 틀릴 수 있고, 학생들이 지적을 해준다라고 하면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는 수직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인간과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수평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단순히 교사,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서로 가르치면서도 배울 수 있는 자세 그것이 바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 너는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가르치면서도 배울 수 있다는 자세.
물론 앞에서 자고 있으면 화가 날 때가 많다. 그사람은 나에 대한 존중을 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면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존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존중의 자세를 갖추어야한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요구되는 자세인 것이다.
+내가 경험한 수업시간에서의 상대방과 이견차이 사례를 들어서 설명함, 선생님께서는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존중하려고 하실까?? 가 궁금합니다.
수업시간에 크게 3가지 질문을 던진다. what, how, why.
what,why 에서는 이견차이가 거의 없다.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것에서 그 누가 태클을 걸겠는가. 태클을 거는 순간, 그 사람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 이미 상실한 사람이니까...
그러나 how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대전제에서, 소중하게 다루는 방법은 다다르다. 누구의 생명을 더 귀히 여길 것인가 사람의 생명은 모두 똑같은가, 문화에서 오는 차이는? 등처럼 방법의 다름을 존중하는 접근은 맞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다름과 틀림은 다르다. 대하는 방식이 대전제를 훼손하는 방식이라면 존중할 필요는 없다. 지적을 해줘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방식과 다른 사람의 방식이 다르고 대전제가 같다면 존중해주어야한다.
+예를 들어주세요
생윤 수업, 사형제도로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대전제를 다룬다면.
반대와 찬성에서 누구의 생각이 옳은가? 라고 말할 수 없다.
찬성쪽은 저 범죄자는 이미 사람의 생명을 해친 사람이야 여기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 것이고
반대는 그래도 범죄자의 생명도 소중히여겨주어야해 라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생명 존중의 방법이 다를 뿐 지향점은 같다.
이렇게 교육은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러나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 올바른 인간의 양성, 지향하는 것은 같다.
+선생님의 수업에는 어떤 가치를 두고 계시나요?
시대마다 그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긴하나. 공동체를 가치로 두고 있다
개인주의화를 경험하게 된다. 나만 잘먹고 잘살면되지, 앞에서 떠들어 나는 내 할일 할래 등... 공동체가 많이 훼손되고 있구나를 느끼고 있고, 공동체의 가치를 주입시키려고 하고 있다.
*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내가 추구하는 방법과 그 사람이 추구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내것을 포기하고 그 사람의 방법을 따라주는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린다는 것이 쉽진 않다.
예를 들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희생을 한 순간, "어헛 거봐 내 것이 맞잖아!"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는 너가 맞다고 해서 들어준게 아닌데! 라고 생각하며 그럼 또 교육이 들어가야지하며 이렇게 말한다.
맞고 틀리고의 관점이 아니라 갈등이 생기지 않기 위해 너의 것을 존중한 것 뿐이야.
+아이들이 실제로 잘 이해를 하나요?
잘 못한다. 자신의 것을 버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토론이 어려운 것이고.
실제로 양업고등학교에서는 토론을 한뒤 소감문을 받는다. 토론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바뀐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본다.
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나는 이러한 생각이 변했다. 혹은 들었지만 크게 변화된 것은 없다. 라고 말했다고 해서
무엇이 잘했다 못했다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길를 들었다라는 것.
그게 경청, 존중의 자세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내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4.
학교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인식 이라는 한국교육과정 평가원 자료를 참고해보면서 얻은 궁금증입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학교의 민주적 환경, 수업에서의 학생 참여, 창의적 체험활동에서의 민주시민교육, 학생의 민주적 태도 실천 수준’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인식은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 주도성이 높은 수업 참여 방식일수록 학생의 참여 정도가 낮아졌고, 학생 주도성이 높은 수업 방법일수록 '유용성'에 대한 교사의 부정적 응답 비율이 높았다고 합니다.
또한 아래와 같은 민주시민교육의 역량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기본 원리에 대한 신념
소속감과 정체성
연대와 실천
자유와 평등에의 의지
자존감
관용과 적응성
문화 간 대화와 이해
문화 교류와 창조성
인권존중
정치, 경제, 환경적 측면에서의 상호의존성 인식
환경 보호와 녹색 소비에의 감수성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
공감과 경청
사회언어학적 소통
민주적 절차와 심의에 의한 의사결정
메타 인지와 성찰적 사고
분석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
미디어 및 디지털 리터러시
제가 궁금한 것은
1)주로 하시는 수업방식은 무엇인가요? 왜 그러한 수업방식을 하고 계시나요?
+선생님께서는 학생주도형 수업의 유용성에 대한 교사의 부정적인평가에 대해서 왜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지 에 대한 답을 해주셨다.
어디까지가 학생주도형 수업이냐는 다르다. 전적으로 학생주도적이어야하느냐 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단순히 수업을 흥미로만 느낀다는 것은 조심해야할 부분들이 있다. 참여하게 끔 유도는 좋지만 단순히 흥미로만 느끼는 것은 경계해야하는 것이다.
학습목표는 왜? 라는 것에서 설정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자살방지 포스터를 그리는 것은 전형적인 학생참여형 수업이다. 수업 후 무엇을 느꼈니? 라고 물었을 때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었는데라고 한다면, 궁극의 목표인 '자살을 방지해서 생명의 존중심을 키우자는 것'이 상실되고 흥미위주로 진행되는 것이다.
왜 이 포스터를 만드는냐에 대해 제대로된 인식을 심어주지 않으면 학생주도형 수업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
이론 수업은 분명히 해야한다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오개념을 가지면 안되고 이것을 원리로 삼아서 무언가를 도출하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원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도출 할까? 방법적인 차원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은 학생들의 몫이다.
기초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리고 만다. 방향성을 잃는 것이다. 학생주도형 목적은 상실한채 흥미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시간이 아닌 즐기는 시간으로 인식된다. 배움과 흥미가 같이가면 제일 좋긴 하다!
그런 유용성에 대한 고민들이 나왔다는 것은 학생주도성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학생주도형 수업이 중요한지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으면 방향성이 상실된다.
교육에서 효율성이 지배하면 교육이 깨지고 만다. (이건 어제 인터뷰한 선생님과는 다른 부분이다!!!)
교육이 무언가의 수단이 되어버리고 만다. 교육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깨지는 것이다.
입시위주의 교육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철저히 효율을 따지는 교육인 것이다.
교육이 왜 입시를 위해 있는것인가 교육이 있으니 입시가 있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수업이 재밌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수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건 없는, 시간을 낭비한 꼴이 되는 것이다. 알맹이는 없는 빈껍데기가 되는 것.
학생주도형 수업의 가장 큰 문제: 학생의 지식의 부족 때문에 유용성이 없다고 아마 교사들은 판단했을 것이다. 학생주도수업을 할수록 지식을 얻기 어려워지니까
+왜 참여형 수업을 진행하시는가?
학생들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생각을 나누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학생주도형 수업이라고 생각함.
교탁에서 이론 수업을 하면, 학생들은 말할기회는 없다. 내것으로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것은 확실히 적어진다.
그래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학생참여형 수업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 생각을 표출하고, 내 생활과 대입해보고 내가 본것을 대입해보고.. 점점 내 안에서 가치화가 되는 것이다.
2)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학생 주도성과 참여도가 높은 편인가요?
딜레마다. 하는 사람은 한다. 소그룹 4명씩이면 10명씩할 때 보다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선생님으로서 돌아다니면서 생각을 들어본다. 가장 첫번째로 하는 것은 "해봐"가 아닌 한명한명이 4명의 그룹 자신의 주장에 대해 발표시키는 것이다. 1분씩이라도 4명앞에서 주장을 이야기를 한뒤 토론을 한다. 그리고 서기를 정해서 다 적게 한다. 적으려면 이야기를 해야할 수 밖에 업서진다. 한 마디라도 하게 하려 한다.
+참여를 이끌기 위해서는 주제가 학생들이 다루기 쉬울 만한 주제여야겠네요?
그렇죠
3) 선생님께서 수업에 있어서 수업의 중심으로 채택하신 민주시민역량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왜 채택하신 것인가요?
자아존중, 자존감
민주시민교육이라는게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긴 하지만 말하는 존재에 대한 주체성이 있어야한다 교육은 수동적으로 만들어주는 경향성이 있다. 이거해! 외워~ 그러나 이것을 내것으로 만들어서 내 삶으로 펼쳐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거 외워 시험에 나와~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드려는 경향이 있다보니 나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주체성, 내가 선택하고 내가 주체가 되는 삶 자신에 대한 존중을 통해 참다운 나를 발견할 수 있게끔하는 것이 부족하다.
사람은 각각 다르다. 그러나 수동적인 교육은 그것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여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만들어버린다. 이 사회는 개성이 없는 사회가 되버리고 말 것이다. 요리를 잘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 그러면 끊임없이 밖으로 표출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그것들이 모두 자아존중에서 나오는 것
그러나 쟤는 저걸 잘하는데 나는 뭘까? 라고 생각하곤 한다. 근데 그게 아니라 너가 잘하는 걸 찾아봐라 그럴려면 나에 대한 존중은 꼭 필요한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 공부와 학습의 시작.
4) 학생의 민주시민역량을 함양하는데 유용한 수업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혹은 다른 선생님의 경험담도 좋습니다)
2)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학생 주도성과 참여도가 높은 편인가요? 부분에서 이 질문에 대한 말씀을 다하셨다...
5)유용한 수업에서의 학생의 참여도나 시민의식함양에 효과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에 대한 판단은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내가 갖고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것이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의 관점으로 적용할 수 없다. 이걸 통해 쟤는 이렇게 변해야해! 하는 순간 내 방식은 틀린게 되어버린다. 역시 내것을 상대에게 주입시키려는 것 뿐이니까 나는 이런 방법을 갖고 있어 이건 하나의 방법일 뿐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이지 상대에게 기대치 , 결과를 원하는 것에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해 라는 견해보단 너의 방법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방법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어. 라며 뭔가 특별한 결과를 도출하려하지 않는다.
+효율을 생각하면 교육의 방향성이나 학생들이 이 수업을 통해 이건 알았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있을 것같은데 이거랑 효율이랑은 다른 것인가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학습목표는 분명히 있지만, 수업내용을 아는 것과 내면화 하는 것은 다를 수 있으니까 중점으로 두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강요할 수 없는 것.
7) 그러한 수업의 한계가 존재했다면 어떠한 한계가 존재했나요?
사람은 다다른데 내가 제시하는 방법이 받아들이는 사람하고 다를 수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수업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은 늘 한계다.
5.
다수결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수결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수결의 원리는 정말 공정한 것일까요? 라는 의문이 듭니다. 독일 나치의 사례가 말해주듯, 다수의 의견이 담겼으면 항상 옳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이란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평등하게 발언권이 부여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교현장에서 느끼기에는 늘 말하는 사람만 말하고 하지 않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 것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학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고, 소수의 의견이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에 있어서 ‘모든 학생들’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죠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어떻게 마련하고 계신가요?
다수결을 좋아하진 않는다. 가장 편한 방법이라 다수결을 하게 되지만, 편함을 추구하다보면 생기는 문제는 늘 틀릴 가능성을 더 가지고 있다. 그 편함 때문에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명중 6명의 생각이 늘 맞진 않다 그중 한 명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잇는 것이고 밀이 자유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 한명의 생각도 존중해주어야한다고 말했듯이!
학급안에서 결정할 일. 이미 다수결로 하자 라고 한다면 선생님의 중재가 들어간다
예를 들어
어떻게 처음부터 다수결을 하냐! 너희들 서로 토론, 토의를 주고 받으면서 여러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는데~ 처음부터 다수결을 하지 말고 쭉 한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번한번 주고 받는 토론을 거쳐서 그 다음에 다수결을 해보는 것이지!
다수결 전까지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장 투표 손들어, 환경 미화 어떻게 할래 손들어 이것이 아닌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생각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수업안에서는 이야기 하는 사람만 당연히 이야기를 한다. 수업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흥미를 안갖고 있을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흥미가 없어도 아무도 발표를 하지 않는 분위기에 휩쓸려 발표하는 사람이 있다. 그걸 깨기 위해 노력을 한다. 발표수업을 시키는 것이다. 전제조건은 전체가 다 발표! 선생님은 큰것을 제시해주고 세부적인 것을 스스로 선택해서 발표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면 자신과 친한 사람과 발표를 하면 신기하게 그 때 질문을 많이하는 경우가 생긴다. 흥미가 없더라도.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발표수업에 잘 따라오는 편인가요?
어려워는 한다.
그리고 발표준비를 안해갖고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한마디라도 해봐라 그러면 내가 살을 붙여줄게 하면서 발표를 유도해나간다.
* 선생님의 경험 상, 소수의 의견이 독점하거나 배제되는 상황이 있으셨는지, 그리고 있으셨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다루셨는지 궁금합니다.
지적을 합니다. 힘있는 사람, 목소리가 큰사람이 이야기를 한다면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은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을 따르게 되거든요. 상당히 수동적이게 되죠. 그렇기에 제가 나서서 쉽게 결정될 일이 아니야 다앉아봐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라고 중재합니다. 반장에게 중재자 역할을 주는 편이지만 반장이 어려워할 때 중재자 역할을 제가 해줘요. 그래서 모든 학생의 이야기를 칠판에 적게끔하죠. 누가 이런 의견을 냈다.라고 꼼꼼히 적습니다. 이렇게 분명 내 이름이 적혀있는데 없으면 불안해지거든요.. 그러면 말을 하는 것이죠.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다음에 더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서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합의를 보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다. 채택되지 않을 땐 조심스럽게 도와주는 경향이 있다. 일부러 채택되지 않은 의견 쪽으로 몰고가는 경향도 있다.
방법의 차이라 무얼해도 맞다.
예를 들어 환경미화를 한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뒤에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서 전시하자, 혹은 다른 사람이 우리 손으로 그림을 직접 그리자 라고 한다면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무얼해도 맞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우리 시간이 오래걸리더라도 직접 만들어보자라는 의견도 좋지 않겠니? 라고 하며 도와준다.
+선생님께서는 학생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선생님의 중재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것 같아요 맞나요?
그렇죠. 학생들끼리 하는데는 한계가 늘 있기 때문에 나는 방향을 제시해주고 모든 사람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려고 노력하죠.
+듣다보니 제가 공부했었던 회복적 생활교육이 떠오르는데요! 회복적 생활교육은 갈등상황이 있을 때, 선생님이 중재자의 역할을 합니다. 또한 어느 한 의견만이 수용되는 것이 아닌 합의점을 찾고 방안을 마련하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여러 의견 중에서 채택되지 않은 의견이 있을 때 그것을 그냥 잊는 것이 아닌, 다음에 그 의견들을 적용해볼 것을 약속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의사결정 안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없도록 돕는 것이죠. 선생님은 그걸 하고 계시는군요!
어느 한 쪽으로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안 움지는 사람은 안움직이게 되기 때문이지요.
인원수가 적어야 가능합니다. 많으면 많을 수록 가능하기가 어려워지고요...
6. 학교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발표한 학교 수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교육과정 개선 방안을 보면
교과별로 민주시민교육과 직접적으로 관련성 있는 성취기준 설정이 필요하고,
성취기준 설정 방안은 민주시민교육과 관련된 성취기준을 ‘신설하는’ 방안과 현재의 성취기준 내용을 민주시민교육의 차원에서 질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시로,
도덕과에서는
공동체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공정한 절차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의사결정 과정에 책임감 있게 참여하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라는 기존 방안에서
공동체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민주적인 절차 및 심의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하고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대화와 토론에 참여하며’ 절차와 결과가 ‘정의로운지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라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사회과에서는
생활 속의 환경 이슈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비교하고, 환경 이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라는 기존 방안에서
생활 속의 환경 이슈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비교하고, 환경 이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대응 방안을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한다’
라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질문입니다!
*이런 성취 기준을 설정하는 방안이 현재 본인 학교에서의 평가로써 실천 가능한 방안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활성화 방안은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이 있다는 것만 제시해주면 되는 거지. 그리고 학교 상황에 맞춰서 하는 것이고, 할수도 있고 안할 수 있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왜 가능한지
+양업고등학교의 사례가 궁금합니다~ 적용이 가능한 것인가요?
양업교육의 지향은 입시 중심이 아니라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양업고의 성취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인 것이고.
틀을 깨주는 것, 틀을 깨면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중심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것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대안 교육이기도 하고 특성화 교과목이 많다. 봉사활동, 지리산 산업등반, 해외 이동수업, 생명수업같은 노작 수업 등... 민주시민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가치를 알 수 있게 하는 활동이 마련되어있다.
시간을 내서 민주시민교육 팀을 불러서 하기도 한다. 학생들만이 참여하기 때문에 무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목표를 세운다고 해도 목표로 세운 10페이지를 다하는 것이 아닌 포인트를 잡아서 하는것이다.
근데 어느학교던지간에 다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와 입시를 조화시켜보면 입시와 지향적인교육이 별개가 아닌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한다라는 것에 더 강조를 하시는 것이군요?
그렇다
*이러한 민주시민교육과 연관있으며, 실천지향적, 의사소통중심, 비판적 성찰 중심적인 성취 기준이 학생에게 있어서 성장,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어떤 변화와 성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성장하고 변화하고 는 그사람의 몫일 뿐이니 그것의 정도에 대해서는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시진 않는 것이죠?
그렇다.
+양업고에서의 그러한 수업을 했을 때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1학년과 3학년이 있으면 생각하는 수준과 삶의 태도는 확실히 다르다.
생각하는 바가 확실히 있다. 말을 하나 하더라도 조리있게, 표현력이 풍부하고( 말의 무게를 생각하나요? 그렇다 )
+메타인지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인식하고 있는 것. 배운 것이 없다 라고 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성장했다는 것이 드러나죠.
+그렇다면 확실히 학년에 따라 자신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정도가 다 다른 것이네요
그렇다. 놀란 것이 행사 후 뒷정리를 하는데, 1학년은 다 가고 3학년이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하는 것이다. 책상을 닦고 바닥을 쓸고 하는 것을 보고 보고 놀랐다. 책임의식, 자율성 면에서 확실히 다르다.
다음날에 1학년에게 너희들은 뒷정리는 누군가 하겠지라며 떠났겠지만 3학년 선배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이런 것들은 너희들이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면, 모든 활동 후 소감문을 발표할 때 3학년과 1학년 발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3학년은 어떤 성장의 계기로 삼았고, 어떤 것을 느꼈고라는 소감이라면 1학년은 밥을 무엇을 먹었고 했던 것에 주목한다. 이런 성장의 차이가 존재하
소감문을 쓰면 항상 1학년에 있는 말, 자신의 행동과 선배의 삶을 모델로 삼아 스스로 느끼는 것 같더라 "아 나도 저런 선배가 되어야겠다." 라며 1년동안 선배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선후배가 어울려서 만들어가는 것이 잘 되어있다.
+1~3학년이 학년이 밟으면서 성장을 하는데, 아무래도 민주시민교육은 어느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해나가야하는 것일까요?
단계적으로 될 수도 있고, 어느 한 순간 될 수도 있다. 내가 꽂히는 단어들이 그 시간 들려오면 거기서부터 변화의 시작일 수도 있는 것처럼..
인생은 조금조금씩 바뀔 수도 있고 180도 확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1~3학년 에 차이가 있는 것은 쌓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