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11. 등경 불)-호롱불 곽선희
아버지를 따라 산넘고 물건너 낯선 곳 맑으네로 이사를 갔다. 마을 언덕 사택에서 바라보는 마을 풍경은 참 평화롭고 정겨웠다.
시냇가에서 빨래를 했다. 지천에 있는 감나무와 고운마당엔 노란 감꽃이 빼곡히 떨어졌다. 실에 주렁주렁 꿰어 목걸이 했다. 떫어도 좋았고 갈색으로 되었을때 따 먹는 재미도 솔솔했다. 친구들과 바구니 꿰차고 좋은 흙냄새 맡았다. 보송보송 자란 쑥과 뿌리깊은 냉이 달랭이 캐는 낮의 즐거움도 빼놓을수 없는 시골 생활이다. 그때는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씀바퀴. 엄마 아버지가 무척 좋아했던 씀바퀴 나물을 이제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게 되었으니 세월의 흐름은 어쩔수 없나보다. 겨울이 되면 시냇가에서 빨래비누로 머리는 감을수 없지만 깨어진 살얼음 밑으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었다. 아기 볼저럼 통통 오르고 보슬보슬 보드라운 버들강아지 만나던 그곳을 못내 잊지 못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내이름을 왜 기억 못하느냐 하는 친구, 너의 아버지께서 장작을 패서 재워 놓았잖아 기억해 라고 묻는 친구, 눈싸움하며 남동생을 눈으로 때려 화가 나 눈뭉치를 꼭꼭 뭉쳐 눈이 반팅이가 되게 만들었던 그 남자 아이 이름은 기억이 났다. 어제도 꿈에서나 만나볼까 도저히 만날수 없을것 같던 그 친구들을 수달 횟집에서 만났다. 부모상을 당한 친구, 남편이 위암 3기로 위를 완전 절단했다는 친구, 심장을 박았다는 친구, 입이 합쭉하게 된 친구 등 두툼한 금을 끼고 나타난 친구도 좋게 보였다. 그 옛날 그때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클로즈 업 되었다. 밤에 풀숲에서 속눈썹 위에 반딧불(개똥벌레)를 올려놓고 눈을 깜빡깜빡 하며 신비로움을 보여주었던 그 여자애들은 멀리 시집을 가 못 오는지 만나질 못했다. 다음엔 서울과 대구의 중앙지점에서 약속을 잡기로 했다. 우리세대가 아마도 호롱불을 사용했던 끝지점인 것 같다. 그래서 은은하게 느껴진다.
그 옛날 밤이되면 아버지는 등경에 호롱불을 밝혔다. 우리 네 형제는 그래 고요한 밤이 좋았다. 오롯이 호롱불에 집중하며 어두움 속에 아름다운 불빛을 저 구석까지 비춰주는 빛에 감탄하며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불을 무서워 해 켤수 없는데 아버지는 그을음 처리부터 모든것을 척척 해내었다. 집에서 지켜야 사항을 1. 2. 3. 숫자를 매겨가며 정갈하게 써 한 쪽벽에 반듯하게 붙여 반짝 눈에 띄었다. 아버지는 우리 네 형제를 쪼롬히 앉혀놓고 얼굴 스케치를 하였다. 표정하며 특징까지 잡아 그리는데 우리는 감탄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학생들에게 풀피리로 황홀하게 연주한 노랫가락은 들려주지 않았지만, 벽에 손가락으로 모양내어 준 동물 그림자는 실물이 되어 컹컹 우리 가슴을 무서움과 호기심으로 가득차고 넘치게 울려주었다. 우리는 밤을 밝혀주는 호롱불을 기다렸다. 캄캄한 밤에 넓은 고무다라이에 오색찬란한 불빛을 내며 물을 가로지르던 통통배. 그 요란스럽게 움직이던 쾌속청 모형배를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나가면 잠을 청하기 몇 분 전 달걀귀신 무슨귀신 처녀귀신 하며 서로 무서운 얘기하며 잠자리 들기가 일쑤였다.
이제 자라 모두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다. 등경불처럼 아이들이 장성할때까지 버팀목이 되어줄 뿐이다. 아니다. 이제는 저들이 우리를 지켜주려 하고 있다.
그렇다. 아주 귀하고 귀한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이 땅에 사명감을 지니고 태어났다. 등경불을 능가하는 귀한 존재이다. 누군가에게 조용히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어두움 속에서도 은은하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따스한 호롱불이 되어가는 밤이다.
250303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