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桃(소도)
조그마한 복사꽃
-許筠(허균)
二月長安未覺春(이월장안미각춘)
이월 장안엔 봄은 아직인데
墻頭忽有小桃顰(장두홀유소도빈)
담가에 핀 복사꽃 문득 눈짓하며
嫣然却向詩翁笑(언연각향시옹소)
미소짓는 모습, 늙은 시인에게 웃음 보내니
如在天涯見故人(여재천애견고인)
마치 먼 곳에 있는 오랜 벗을 보는 듯...
<註>
墻(장) : 담. 경계. 관 옆 널. 관을 덮는 옷.
墻頭(장두) : 담. 낮고 짧은 담. 벽. 울타리.
顰(빈) : 찡그리다. 여기서는 '눈짓하다'로 풀이함.
嫣(언) : 상긋 웃다. 아리땁다. 연하다(잇닿다).
嫣然(언연) : 미소짓는 모양.
天涯(천애) : 하늘의 끝. 아주 먼 곳. 온 세상.
<작가 소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이다. 1569년 초당 허엽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허균은 주자학(성리학)의 허구성을 비판하였고 예학이 중심이 된 왜곡된 학문을 개혁하고 민중을 위한 실용적 학문으로 조선사회의 변화를 추구했다. 문학적으로도 일정한 시문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불교에도 심취하였다.
선조 대에 붕당이 형성되었을 당시 대북에 속했으며 광해군이 즉위하자 당대 권신이었던 이이첨(李爾瞻)과 함께 조정의 집권세력을 형성하였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 폐모론을 주장하였다. 1617년 폐모론(廢母論)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등 대북파의 일원으로 광해군의 신임을 얻었으며 같은 해 좌참찬(左參贊)으로 승진하였다.
3년 뒤 조카 사위인 의창군(義昌君)을 왕으로 추대한다는 역모 혐의를 받았다. 하인준(河仁俊)·김개(金闓) ·김우성(金宇成) 등과 반란을 계획하다가 탄로되어 1618년 가산이 적몰(籍沒)되고 참형되었다. 당시 세자빈이 후사가 없자 허균의 딸이 세자 후궁으로 간택되었는데 후궁이 소생을 낳게 되면 허균이 실세로 등장할 우려가 있어 모함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측된다.
허균은 시문(詩文)에 뛰어난 천재로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동생이며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은 사회모순을 비판한 조선시대 대표적 걸작이다. 작품으로 《교산시화(蛟山詩話)》,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성수시화(惺叟詩話)》, 《학산초담(鶴山樵談)》, 《도문대작(屠門大爵)》, 《한년참기(旱年讖記)》, 《한정록(閑情錄)》, 《남궁선생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