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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사爻辭>
上九 有孚于飮酒 无咎 濡其首 有孚 失是
(상구는 유부우음주면 무구어니와 유기수하니 유부하여 실시로다)
상구上九는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으나, 머리를 적시니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
[왕필王弼의 주注]
미제未濟가 지극하면 기제旣濟로 돌아오니, 기제旣濟의 도道는 맡긴 자가 합당한 것이다.
맡긴 자가 합당하면 믿고 의심하지 않아서 자기가 편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능히 남을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얻어서 일이 폐해짐을 근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만약 일이 폐해짐을 근심하지 않고 즐거움을 탐하기를 심하게 하면 절제함을 잃는 데에 이른다.
이는 믿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머리를 적시니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注]
未濟之極 則反於旣濟 旣濟之道 所任者當也
(미제지극이면 즉반어기제하나니 기제지도는 소임자당야라)
미제未濟가 지극하면 기제旣濟로 돌아오니, 기제旣濟의 도道는 맡긴 자가 합당한 것이다.
所任者當 則可信之无疑 而己逸焉 故 曰 有孚于飮酒 无咎也
(소임자당이면 즉가신지무의하여 이기일언이라 고로 왈 유부우음주하면 무구야라하니라)
맡긴 자가 합당하면 믿고 의심하지 않아서 자기가 편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以其能信於物故 得逸豫而不憂於事之廢 苟不憂於事之廢 而耽於樂之甚 則至于失節矣
(이기능신어물고로 득일예이불우어사지폐하니 구불우어사지폐하고 이침어락지심이면 즉지우실절의라)
능히 남을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얻어서 일이 폐해짐을 근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만약 일이 폐해짐을 근심하지 않고 즐거움을 탐하기를 심하게 하면 절제함을 잃는 데에 이른다.
由於有孚 失於是矣 故 曰 濡其首 有孚 失是也
(유어유부하여 실어시의라 고로 왈 유기수하니 유부하여 실시야라하니라)
이는 믿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머리를 적시니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
[유부우음주有孚于飮酒 무구无咎] 상구上九가 미제未濟의 극極에 거하였으니 기제旣濟로 돌아간다. 기제旣濟의 도道는 맡긴 자가 합당한 것이다.
맡긴 자가 합당하면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편안하여 술을 마실 뿐이다. 이 때문에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유기수濡其首] 이미 ‘스스로 편안하여 술을 마심’을 얻었으나 절제할 줄을 알지 못하면 머리를 적시는 환난患難이 또다시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머리를 적신다.”라고 한 것이다.
[유부有孚 실시失是] 머리를 적시는 환난이 미치게 된 이유는 진실로 사람을 얻음에 신임하여 일이 폐지됨을 근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
‘有孚于飮酒 无咎’者 上九居未濟之極 則反於旣濟. 旣濟之道 則所任者當也.
(‘유부우음주 무구’자 상구거미제지극 즉반어기제 기제지도 즉소임자당야)
[유부우음주有孚于飮酒 무구无咎] 상구上九가 미제未濟의 극極에 거하였으니 기제旣濟로 돌아간다. 기제旣濟의 도道는 맡긴 자가 합당한 것이다.
所任者當 則信之无疑 故得自逸飮酒而已 故曰“有孚于飮酒 无咎.”(注12)
(소임자당 즉신지무의 고득자일음주이이 고왈 “유부우음주 무구”)
맡긴 자가 합당하면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편안하여 술을 마실 뿐이다. 이 때문에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역주12 有孚于飮酒无咎者……无咎 : ‘유부우음주有孚于飮酒’를 왕필王弼과 공영달孔穎達은 ‘일을 남에게 맡기고서 그 사람을 믿으므로 자기는 편안함을 얻어 술을 마심’의 의미로 보았다.
반면 정이천程伊川은 이를 ‘의義와 명命을 편안히 여기고 스스로 즐거워함’의 의미로 보았는데, 미제未濟는 극極이 되었다고 해서 구제할 이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전程傳≫은 다음과 같다. “상구上九는 강剛으로서 위에 있으니 강剛함이 지극하고, 밝음의 위에 거하였으니 밝음이 지극하다. 강剛함이 지극하면서도 밝으면 조급함이 되지 않고 결단함이 되니, 밝으면 사리를 밝힐 수 있고 강剛하면 의리義理로 결단할 수 있다. 미제未濟의 극極에 거하여 구제할 수 있는 지위를 얻지 않으면 구제할 수 있는 이치가 없으니, 마땅히 하늘을 즐거워하고 명命을 순히 할 뿐이다. 비否가 끝나면 기욺이 있는 것은 때가 변했기 때문이요, 미제未濟는 극極이 되었다고 하여 스스로 구제할 이치가 없다. 그러므로 다만 미제未濟의 극極이 될 뿐이니, 지성至誠으로 의義와 명命을 편안히 여기고 스스로 즐거워하면 허물이 없을 수 있다.”
한편 주자朱子는, 정이천程伊川과 다르게, 미제未濟의 극極에 이르면 이제 곧 훌륭한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므로 그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보았는바, ≪본의本義≫는 다음과 같다. “강명剛明으로 미제未濟의 극極에 거하여 때가 장차 일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 믿고 스스로 기르면서 명命을 기다리니, 무구无咎의 도道이다.”
‘濡其首’者 旣得自逸飮酒 而不知其節 則濡首之難 還復及之 故曰“濡其首”也.(注13)
(‘유기수’자 기득자일음주 이부지기절 즉유수지난 환부급지 고왈 “유기수”야)
[유기수濡其首] 이미 ‘스스로 편안하여 술을 마심’을 얻었으나 절제할 줄을 알지 못하면 머리를 적시는 환난患難이 또다시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머리를 적신다.”라고 한 것이다.
역주13 濡其首者……故曰濡其首也 : 왕필王弼과 공영달孔穎達은 기제괘旣濟卦 상육上六의 ‘유기수濡其首’와 미제괘未濟卦 초육初六의 ‘유기미濡其尾’, 상구上九의 ‘유기수濡其首’를 서로 연관시켜, 기제괘旣濟卦 상육上六의 ‘유기수濡其首’는 ‘머리만 적신 것’이고 미제괘未濟卦의 ‘뮤기미濡其尾’는 ‘꼬리까지 완전히 적신 것’이고 상구上九의 ‘유기수濡其首’는 ‘머리를 적시는 환난患難이 또다시 이르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정이천程伊川과 주자朱子는 이 셋을 서로 연관시키지 않았다.
‘有孚 失是’者 言所以濡首之難及之者 良由信任得人 不憂事廢 故失於是矣. 故曰“有孚 失是”也.(注14)
(‘유부 실시’자 언소이유수지난급지자 양유신임득인 불우사폐 고실어시의 고왈 “유부 실시”야)
[유부有孚 실시失是] 머리를 적시는 환난이 미치게 된 이유는 진실로 사람을 얻음에 신임하여 일이 폐지됨을 근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역주14 有孚失是者……失是也 : ‘실시失是’를 왕필王弼과 공영달孔穎達은 ‘실어시失於是’로 주석하여 ‘이것을 잃은 것’으로 보았으나, 정이천程伊川과 주자朱子는 모두 ‘시是’를 ‘옳음과 마땅함’으로 해석하였는바, ≪정전程傳≫은 다음과 같다. “유부有孚는 스스로 마음속에 믿는 것이요, 실시失是는 그 마땅함을 잃는 것이니, 이와 같으면 유부有孚에 잃음이 된다.”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
☞ 유부우음주有孚于飮酒……유부실시有孚失是: 언해諺解를 따라 위와 같이 해석하였으나, ‘유부우음주有孚于飮酒’를 퇴계退溪는 ‘술을 마심에 믿음을 두면’으로 해석하였으며, 아래의 ‘유부有孚’ 역시 ‘부孚를 둠에’로 해석하였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사계沙溪는 ‘유기수濡其首’에 대하여 “기제괘旣濟卦와 미제괘未濟卦의 유기미濡其尾, 유기수濡其首에 대하여 모두 ‘여우’로 말하였는데, 홀로 ‘유부우음주有孚于飮酒……유기수濡其首’에서만 글의 뜻을 바꿀 리가 있겠는가. 《정전程傳》에 이른바 ‘즐기고 방사하여 예禮를 지나쳐서 머리를 적심에 이른다.〔耽肆過禮 至濡其首〕’는 것도 상문上文에 여우가 물을 건너간다는 뜻을 이어받은 것인데 ‘여如’자字 하나를 더 넣지 않은 것이다.” 하였다.《경서석의經書釋義, 경서변의經書辨疑》 사계沙溪의 설說을 따라 ‘유기수濡其首’를 해석함에 있어 모두 ‘머리를 적시듯’으로 풀이하였다.
구九는 강剛으로서 위에 있으니 강剛함이 지극하고, 밝음의 위에 거하였으니 밝음이 지극하다.
강剛함이 지극하면서도 밝으면 조급함이 되지 않고 결단함이 되니, 밝으면 사리를 밝힐 수 있고 강剛하면 의리義理로 결단할 수 있다.
미제未濟의 극極에 거하여 구제할 수 있는 지위를 얻지 않으면 구제할 수 있는 이치가 없으니, 마땅히 하늘을 즐거워하고 명命을 순히 할 뿐이다.
비否가 끝나면 기욺이 있는 것은 때가 변했기 때문이요, 미제未濟는 극極이 되었다고 하여 스스로 구제할 이치가 없다.
그러므로 다만 미제未濟의 극極이 되니, 지성至誠으로 의義와 명命을 편안히 여기고 스스로 즐거워하면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술을 마심은 스스로 즐거워함이니, 그 처함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분하고 조급하여 운확隕穫[곤궁]할 것이니, 흉함과 허물에 들어갈 것이요, 만약 방종하여 즐거움을 따라 즐기고 방사하여 예禮를 지나쳐서 머리를 적심에 이르듯 한다면 이 또한 처함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유부有孚’는 스스로 마음속에 믿는 것이요 ‘실시失是’는 그 마땅함을 잃는 것이니, 이와 같으면 유부有孚에 잃음이 된다.
사람이 환난患難에 처함에 어찌할 방도가 없음을 알고서 뜻을 방탕히 하고 돌아오지 않는 자는 어찌 의義와 명命을 편안히 여기는 자이겠는가.
【傳】
九以剛在上 剛之極也 居明之上 明之極也
(구이강재상하니 강지극야요 거명지상하니 명지극야라)
구九는 강剛으로서 위에 있으니 강剛함이 지극하고, 밝음의 위에 거하였으니 밝음이 지극하다.
剛極而能明 則不爲躁而爲決 明能燭理 剛能斷義
(강극이능명이면 즉불위조이위결이니 명능촉리요 강능단의라)
강剛함이 지극하면서도 밝으면 조급함이 되지 않고 결단함이 되니, 밝으면 사리를 밝힐 수 있고 강剛하면 의리義理로 결단할 수 있다.
居未濟之極 非得濟之位 无可濟之理 則當樂天順命而已
(거미제지극하여 비득제지위면 무가제지리니 즉당낙천순명이이라)
미제未濟의 극極에 거하여 구제할 수 있는 지위를 얻지 않으면 구제할 수 있는 이치가 없으니, 마땅히 하늘을 즐거워하고 명命을 순히 할 뿐이다.
若否終則有傾 時之變也 未濟則无極而自濟之理
(약비종즉유경은 시지변야요 미제즉무극이자제지리라)
비否가 끝나면 기욺이 있는 것은 때가 변했기 때문이요, 미제未濟는 극極이 되었다고 하여 스스로 구제할 이치가 없다.
故止爲未濟之極 至誠安於義命而自樂 則可无咎
(고지위미제지극이니 지성안어의명이자락이면 즉가무구라)
그러므로 다만 미제未濟의 극極이 되니, 지성至誠으로 의義와 명命을 편안히 여기고 스스로 즐거워하면 허물이 없을 수 있다.
飮酒 自樂也 不樂其處 則忿躁隕穫 入于凶咎矣 若從樂而耽肆過禮 至濡其首 亦非能安其處也
(음주는 자락야니 불락기처면 즉분조운확이니입우흉구의요 약종락이침사과례하여 지유기수면 역비능안기처야라)
술을 마심은 스스로 즐거워함이니, 그 처함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분하고 조급하여 운확隕穫[곤궁]할 것이니, 흉함과 허물에 들어갈 것이요, 만약 방종하여 즐거움을 따라 즐기고 방사하여 예禮를 지나쳐서 머리를 적심에 이르듯 한다면 이 또한 처함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有孚 自信于中也 失是 失其宜也 如是則於有孚爲失也
(유부는 자신우중야요 실시는 실기의야니 여시즉어유부위실야라)
‘유부有孚’는 스스로 마음속에 믿는 것이요 ‘실시失是’는 그 마땅함을 잃는 것이니, 이와 같으면 유부有孚에 잃음이 된다.
人之處患難 知其无可奈何而放意不反者 豈安於義命者哉
(인지처환난에 지기무가내하이방의불반자는 기안어의명자재리오)
사람이 환난患難에 처함에 어찌할 방도가 없음을 알고서 뜻을 방탕히 하고 돌아오지 않는 자는 어찌 의義와 명命을 편안히 여기는 자이겠는가.
☞ 약부종즉유경若否終則有傾: 비괘否卦의 상구효上九爻 〈상전象傳〉에 “비종즉경否終則傾 하가장야何可長也”라 하였으므로 말한 것이다.
[주희朱熹의 주역본의周易本義]
강명剛明으로 미제未濟의 극極에 거하여 때가 장차 일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 믿고 스스로 기르면서 명命을 기다리니, 무구无咎의 도道이다.
만약 방종하고 돌아오지 아니하여 여우가 물을 건너다가 머리를 적시듯이 한다면 스스로 믿기를 지나치게 하여 의리義理를 잃을 것이다.
【本義】
以剛明 居未濟之極 時將可以有爲而自信自養以俟命 无咎之道也
(이강명으로 거미제지극하여 시장가이유위이자신자양이사명하니 무구지도야라)
강명剛明으로 미제未濟의 극極에 거하여 때가 장차 일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 믿고 스스로 기르면서 명命을 기다리니, 무구无咎의 도道이다.
若縱而不反 如狐之涉水而濡其首 則過於自信而失其義矣
(약종이불반하여 여호지섭수이유기수면 즉과어자신이실기의의라)
만약 방종하고 돌아오지 아니하여 여우가 물을 건너다가 머리를 적시듯이 한다면 스스로 믿기를 지나치게 하여 의리義理를 잃을 것이다.
<상전象傳>
象曰 飮酒濡首 亦不知節也
(상왈 음주유수는 역부지절야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술을 마셔서 머리를 적심은 또한 절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
[역부지절亦不知節] 술을 마심이 머리를 적시는 환난患難을 불러온 이유는 그치고 절제할 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다.
[疏]
‘亦不知節’者 釋飮酒所以致濡首之難 以其不知止節故也.
(‘역부지절’자 석음주소이치유수지난 이기부지지절고야)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
술을 마셔 머리를 적심에 이르는 것은 절제할 줄을 모름이 심한 것이다.
이와 같음에 이른 까닭은 의義와 명命을 편안히 여기지 못해서이니, 편안히 여긴다면 그 떳떳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傳】
飮酒至於濡首 不知節之甚也
(음주지어유수는 부지절지심야라)
술을 마셔 머리를 적심에 이르는 것은 절제할 줄을 모름이 심한 것이다.
所以至如是 不能安義命也 能安則不失其常矣
(소이지여시는 불능안의명야니 능안즉불실기상의리라)
이와 같음에 이른 까닭은 의義와 명命을 편안히 여기지 못해서이니, 편안히 여긴다면 그 떳떳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