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오락, 알고 보면 과학
文 熙 鳳
화투는 도박에 가까운 ‘큰 판’이 아니라면 오랜만에 만난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먹했던 감정을 녹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되는 오락이다. 화투패는 음력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과학적 원리로 만들어져 있어 흥미를 갖게 한다. 화투 48장은 4장씩 12달을 상징하는 등 절기와 계절을 나타낸다. 화투에는 동양 전통의 천문학이 녹아 있다.
화투패 가운데 흑싸리(4)가 들어오면 ‘안 좋은 패’라고 실망한다. 이는 곧 사그라질 ‘그믐달’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 오(5)가 난초인 것은 춘란이 5월에 피기 때문이다. 7월 홍싸리에 멧돼지가 그려진 것은 이때 멧돼지가 홍싸리를 많이 찾는다는 이유에서다. 10월 단풍에 사슴이 있는 것은 이때에 녹용을 복용하면 몸에 좋기 때문이다.
나는 화투놀이하고는 아주 손을 뗐다. 청년기에는 어지간히도 좋아했다. 할 줄도 모르면서 화투 그림의 신비에 깊이 빠져들었던 것 같다. 밥은 굶어도 좋을 정도였다. 그때는 지금같이 ‘고 스톱’ 같은 건 없었다. 속칭 ‘섰다’라든가 ‘도리짓고땡’ 같은 것이 유행했다.
토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그 놀이(?)에 빠져들면 귀가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때 몇 달치 봉급에 해당하는 거액을 탕진하고는 창피를 당했다. 그 탕진한 금액을 보충하기 위해 친구의 적금을 해약하여 빌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난 손을 씻었다. 깨끗이 씻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난 너무나 큰 불륜을 저질렀다. 내가 즐긴 화투는 오락이 아니고 노름이었다. 나와 같이 그 게임을 즐긴 동료들은 노름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화투는 숨은 동양 전통의 천문학의 원리 같은 것은 사라지고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고 스톱’에서 쓰는 용어들도 가족 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있어 듣기에 좀 불편한 말들이 있는데 요즘은 그런 불편쯤은 감수하고 가족모임에서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서도 즐긴다는 얘기도 자주 듣곤 한다.
그래도 고스톱에서 배울 점들도 없지 않다. ‘낙장불입’이라는 것은 인생에서 한 번 실수가 얼마나 큰 결과를 초래하는지, 인과응보에 대해 깨우치게 한다. ‘쇼당’이라는 것은 인생사에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을 때 현명한 판단을 증진시킬 수 있다. ‘고’는 인생은 결국 승부라는 걸 가르쳐 도전정신을 배가시키고, 배짱을 가르치며, ‘스톱’은 안정된 투자정신과 신중한 판단력을 기르게 하며, 미래의 위험을 내다볼 수 있는 예측력을 길러준다.
일년에 몇 차례 가족들이 모이면 윷놀이를 즐긴다. 편을 갈라 윷놀이를 즐기다 보면 화목에 크게 도움이 된다. 말판을 써가는 데도 과학과 수학이 존재한다. 두뇌싸움이다.
큰 것을 많이 만들어 내고도 정작 윷판을 잘못 써서 패하게 되는 것이 그를 입증한다. 한 번에 모 네 번에 걸로, 네 동을 묶어 결승점 바로 세 발 앞에 놓았는데, 상대편이 모와 걸로 한 번에 잡아버린다. 잡은 편은 ‘얼씨구나 좋다.’지만 잡힌 편은 초상집이다. 과욕이 부른 결과이리라. 세 개만 볶아서 결승점을 통과시켰다면 그런 결과는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행해 오던 전통 민속놀이인 윷놀이는 고대 부여에서 다섯 종류의 가축을 다섯 부락에 나눠줘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키도록 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래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에 비유된다. 윷판에서 한번에 움직이는 거리도 이 동물들의 특성에 따라 정했다. 몸 크기의 차이를 보면 개보다 양, 양보다 소, 소보다 말이 더 크다. 돼지는 개보다 몸집이 크지만, 걸음의 속력이 제일 느리기 때문에 ‘도’에 해당한다. 돼지가 한 발자국의 거리를 뛰는 사이에 말은 돼지의 다섯 배 정도를 가는 셈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여자들은 널뛰기나 그네타기, 남자들은 윷놀이나 투호 등을 즐기는 것을 보면 마음에 평안이 온다. 명절날 고궁 같은 곳을 방문해 보면 이런 놀이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 좋다. 그런 놀이에는 반드시 웃음이 따른다. 웃음은 '비타민 에스(S)'라고 부른다. 비타민 에스(S)는 어떤 비타민보다도 건강에 좋다.
건전한 화투, 윷놀이 같은 것으로 가족 간, 친구 간의 건전한 오락문화가 발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