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에 든 지 열흘이 지나는 칠월 말이다. 수도권은 장마가 끝났음에서도 엊그제 많은 비가 내려 인명과 재산에 큰 상처를 남겼다. 안정된 주거지라던 강남에서도 산사태가 일어나고 물이 넘쳤단다.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망연자실해 할 유가족이나 이재민들이 마음을 추슬러 일어서길 기원한다. 나는 아직 나서질 못한다만 수해지역으로 선뜻 달려가 땀 흘리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보충수업이 진행 중이라 닷새를 나갔고 주말은 쉬었다가 이레를 더 나가야 한다. 무더운 날씨에 학생들이나 교사 모두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교육환경은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음이 분명하다. 교실마다 에어컨이 가동되기에 실내온도는 섭씨 25도 정도다. 바깥 기온이 30도 웃도는 날씨에 비하면 쾌적한 여건인 셈이다. 소중한 에너지가 아깝지 않도록 더 힘내어 분발할 때다.
이틀간 휴식이 기다리는 주말을 앞두었다. 금요일 아침나절 수업을 끝낸 오후였다. 더운 날씨였다만 시원한 바람이 간간이 지나갔다. 나는 집에 가만있질 못하고 배낭을 메고 나섰다. 창원대학 앞으로 가서 진해로 넘나드는 150번 버스를 탔다. 공단배후도로를 따라간 버스는 신촌으로 들었다. 봉암교 근처 신촌은 마산과 진해와 창원을 잇는 삼각지다. 장복터널은 넘으면 진해와도 바로 연결된다.
웅남동주민자치센터 뒤에 등구산이 있다. 그리 높지 않다만 산정에 오르면 합포만이 발아래고 마산시가지가 훤히 건너다보이는 곳이다. 무학산 산세도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창원 공단과 주택지 일부도 시야에 들어온다. 양곡 사람들이 아침저녁 산책 삼아 오르기 좋은 산이었다. 산기슭 어디쯤 서늘한 약수터도 있었다. 언젠가 등구산을 올랐다가 두산중공업 제3부두 방향으로 하산한 적 있었다.
이후에도 나는 등구산은 몇 차례 오른 적 있었다. 근래 등구산 곁으로 마창대교 접속도로가 생겨났다. 창원 쪽은 양곡이 기점이고 마산 쪽은 현동이 기점이다. 등구산에서 삼귀해안으로 가는 등산로는 아직 뚫리질 않았다. 창원시에서 설계 시공 중인 숲속 나들이 길의 종점은 삼귀해안 정도 되지 싶다. 시내버스 자동 안내방송에선 이번 정류소가 양곡중학교라면서 다음이 오봉사 입구라고 전했다.
나는 오봉사 입구에서 내렸다. 시내버스 기사는 사람들이 잘 내리지 않는 정류소에서 중년의 한 승객이 내리니 의아했을 것이다. 평소 일반인들의 내왕이 아무도 없는 곳이다. 나는 찻길에서 개울가로 내려섰다. 장복산 북사면과 목장마을에서 흘러오는 개울에는 비가 온 뒤라 그런지 맑은 물이 넉넉히 흘렀다. 마창대교 접속도로는 높은 교각으로 건너편 산자락으로 이어져 터널을 뚫고 지났다.
나는 들길도 산길도 없는 곳을 치올랐다. 교각 아래는 터널을 뚫으면서 파낸 파쇄석이 쌓여 있었다. 교각 옆 산자락으로 드니 편백나무 조림지였다. 숲 속에 드니 길이 없어도 넝쿨이나 잡풀이 적어 헤쳐가기가 수월했다. 제법 가파른 비탈이긴 했으나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갔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참나무가 소나무와 어울려 자랐다. 싸리나무와 청미래 덩굴을 빠져나가려니 땀을 제법 흘렸다.
인적이 없는 산마루였기에 등산로나 이정표가 있을 리 없는 숲속이었다. 산등선 따라 멧돼지 덩치 정도 될 짐승이 지나다닌 흐릿한 길은 보였다. 조금 더 나아가니 장복산 너머로 산기슭 진해시가지가 비켜보였다. 숲 사이로 두산중공업공장과 마산 앞바다가 드러났다. 건너편 무학산은 너른 산자락을 펼쳐 마산시가지를 품고 있었다. 숲 가꾸기 팀이 잘라 놓은 간벌목이 쓰러진 채 시들어 있었다.
나는 길도 없는 능선을 가다가 되돌아왔다. 아까 올라왔던 산비탈 삼각점을 지나니 송전탑이 나왔다. 그곳에서 능선을 하나 더 오르니 길은 외가닥으로 비탈을 내려섰다. 오래 전 송전탑을 세우느라 장비가 다녔던 길은 묵어 있었다. 비탈면을 갈지자로 내려서 텃밭을 지나니 볼보공장 입구였다. 산정가든을 드나드는 길섶에 풀들이 무성했다. 그 가운데 개똥쑥이 있기에 나는 눈여겨 보아두었다. 11.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