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스카이>의 줄거리
<바닐라 스카이(Vanilla Sky ,2001)>는 (CAST - 톰 크루즈 : 데이빗, 페넬로페 크루즈 : 소피아, 카메론 디아즈 : 줄리, 제이슨 리 : 브라이언, 커트 러셀 : 맥케이브, 조니 갈레키 : 피터 / STAFF - 원작 : 마테오 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각색 : 카메론 크로우, 제작 : 폴라 와그너, 톰 크루즈, 촬영 : 존 톨, 편집 : 조 헛슁, 음악 : 낸시 윌슨, 미술: 캐더린 하드윅) 스페인의 천재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Abre Los Ojos-Open Your Eyes, 1997)>’의 미국 버전이다. <오픈 유어 아이즈>는 가상현실을 바탕으로 <매트릭스>와는 또 다른 단조 톤의 영상으로 호평을 받았다. 감독의 전작 <떼시스>에서 보였던 환상적 영상이 돋보이지는 않아도 <오픈 유어 아이즈>는 분명 <토탈 리콜>, <매트릭스>와는 다른 가상현실에 대한 해석의 방식을 보이고 있다. <바닐라 스카이>는 스토리 뿐만 아니라 카메라 shot 등 모든 것이 거의 원작 그대로이다. 데이빗 에임스는 타고난 외모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출판사까지 연일 베스트 셀러를 내고 있는 한마디로 많은 것을 갖고 있는 남자. 그의 삶은 완벽하지만 ‘일곱 난쟁이’로 불리는 이사회가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 혹은 망상에 괴롭고,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아버지의 초라한 아들로서의 자의식도 늘 자신을 괴롭힌다. 그의 생일에 친구이자 작가인 브라이언(제이슨 리)과 동행한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를 보는 순간, 데이빗은 그녀에게 깊이 빠져든다. 그러나 줄리는 데이빗이 자신을 ‘섹스 파트너’라고 여겼다는 데 격분하여, 동반자살을 감행하고 데이빗은 겨우 살아남지만 그는 얼굴에 흉측한 상처를 안게 된다. 영화는 소피아의 살인범으로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는 가면 쓴 데이빗의 진술을 따라 전개된다. 수술을 통해 예전의 얼굴로 돌아간 데이빗은 그러나 줄리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소피아를 줄리로 착각, 목을 졸라 죽이게 된다. 그러나 흉측한 몰골에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장면부터 데이빗의 꿈. 실연의 아픔에 괴로웠던 데이빗은 약을 먹고 냉동인간이 되는 길을 택했고, 그 ‘지루한’ 냉동인간의 시기를 보내기 위해 ‘백일몽’ 옵션 프로그램을 택했던 것이다.
2. <바닐라 스카이>의 메타포1)와 문화제국주의
<바닐라 스카이>의 감독 카메론 크로우는 오리지널을 존중하면서, 러브 스토리를 원작 보다 강조했고, 남자 주인공 데이비드(톰 크루즈)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렸다. 또한 이 영화는 원작 보다 훨씬 시각적인 영화다. 곳곳에 감독이 숨겨놓은 메타포들은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바닐라 스카이’는 카메론 크로우의 어떤 영화보다도 문화적 배경에 근거한 다양한 코드와 인용을 나열하고 있다. 오프닝 신에서 데이빗이 잠에서 깨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장면만 보더라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알람곡은 레디오헤드의 『키드 A』이며, TV에는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사브리나>가 틀어져 있고, 벽에는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와 트뤼포의 <쥘 앤 짐> 포스터가 붙어 있다. 거실엔 조니 미첼과 모네의 그림이 걸려 있고, 하우스파티에서는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존 콜트레인이 연주한다. 이러한 것들은 단순한 취향의 나열이 아니라 ‘어떤 것’을 상징하기 위한 메타포이다. 영화 속에서 반복 언급되듯, 이 모든 것은(백일몽 속에 있을 때) ‘데이빗 에임즈가 디자인한 것’이다. 즉, 그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온갖 것들을 재료 삼아 조립, 구성, 창조된 세계인 것이다. 그가 언제 어딘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의 재탕, 모방이 모여 이 세계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그의 사랑조차도. 사랑하는 여인의 이미지,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던 아름답던 순간이 그가 여태껏 즐겨온 문화적 취향의 짜집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쥘 앤 짐>의 잔느 모로와 흡사한 페넬로페 크루즈나, 밥 딜런의 1963년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의 재킷 사진대로 재연된 열애 장면, <알라바마 이야기>에서의 그레고리 펙으로 형상화된 아버지 등 이러한 문화적 메타포들은 배경 지식이 없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각 현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지식의 영향을 받는다. 반드시 배워야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시각 현상은 주로 학습과 관련되어 있다.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이러한 상황에 잘 적용된다.
정보 사회가 전 세계적 지식의 공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현실과는 다른 공허함을 안고 있다. <바닐라 스카이>의 감독이 신경 써서 입혀놓은 메타포를 미국 대중문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알아챌 수 없는 것처럼 보편적인 지식이나 정보란 불가능하다. 최소한의 지식과 정보가 뒷받침되어야 더 많은 문화적 교류가 일어날 수 있다. 현재의 정보사회는 속이 알찬 문화와 정보가 아니라 껍데기만 세계적인 것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기본 지식 없이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선진국의 것이면 흉내내보거나 이해하는 척 하는 것은 정보의 식민지화를 가속시킬 뿐이다. 정보의 식민지화는 마케팅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마케팅 산업에서 문화 노동자의 일차적 임무는 대중문화로부터 의미의 단편을 뽑아내고 음악, 영화, 디자인, 광고 같은 예술의 힘을 빌려 특정한 문화적 범주에 어울리는 정서적 반응을 소비자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포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전세계 대중문화에서 서구(주로 영국계 미국권)의 영향은 가장 가시적이며 빈번하게 지배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정보사회가 등장한 이후,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제3세계 국가들에게는 더 이상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free flow of information)’이 통하지 않는다.
3. 진짜와 가짜 : 모호성
<바닐라 스카이>가 <오픈 유어 아이즈>의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다. 그리고 원작을 보지 않았더라도 대강의 줄거리를 아는 관객이라면 ‘<바닐라 스카이>=<오픈 유어 아이즈>’라는 공식을 머리 속에 넣고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스릴러와 멜로가 잘 섞인 <오픈 유어 아이즈>는 인간의 뇌 속, 뼈 속까지 건드린 영화인 반면 <바닐라 스카이>는 인간의 표피만을 자극한다. 원작이 실존과 정신세계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면 <바닐라 스카이>는 할리우드의 전통대로 러브 스토리에 포커스를 두었다. 이러한 차이점만 제외하면 <바닐라 스카이>는 전체적으로 원작과 똑같은 촬영 기법과 스토리를 사용했다. 게다가 여배우조차 똑같은 배역을 연기한다. 다른 배역의 이름은 모두 미국식으로 바뀌었지만, ‘소피아’는 그대로다. 영화의 출발점도 똑같다. 두 영화 모두 “Abre los ojos..”(Open your eyes)라는 대사로 시작한다. <오픈 유어 아이즈>가 스페인 영화니까 스페인어로 시작한다고 해도 <바닐라 스카이>가 굳이 첫 대사까지 리메이크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닐라 스카이>는 처음부터 <오픈 유어 아이즈>의 가짜임을 전면에 내걸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바닐라 스카이>는 원작과 똑같은 또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원작의 해설판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원작보다 사건 구도가 훨씬 간결해지고 원작에서 관객들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소피아와의 러브 스토리가 추가되었다. 특히 결말 부분의 장례식 장면은 관객들이 원작을 보면서 궁금했을 부분을 알려주었다. 데이빗은 친구의 여자를 차지하려 했지만 친구는 그를 용서하고, 그의 장례를 주관한다. 소피아는 사랑하던 남자가 교통사고로 한쪽 팔과 얼굴이 망가졌다는 사실에 그를 피하였지만 사실 하룻밤의 사랑은 잊혀지지 않았고 그의 장례식에 찾아와 눈물을 흘린다. 데이빗도 몰랐고 <오픈 유어 아이즈>를 본 관객조차도 몰랐던 사실이 E.L.(Extension Life)사의 고객관리팀에 의해 친절하게 풀이되면서 영화는 반전을 이룬다. 이 반전은 원작과 신작이 갈리는 지점이고 이 영화의 장르가 갈리는 지점이다.
영화 속에서 가상과 현실이 뒤섞였다면 두 영화는 진짜와 가짜가 엇갈리는 모호성을 일부러 두었다 할 수 있겠다. <바닐라 스카이>는 <오픈 유어 아이즈>의 복제품이면서도 해설판을 자처하고 나서 관객들에게 ‘어느 것이 더 진짜 같은 가’라고 질문하고 있다. 정보사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가짜들이 난립하고 심지어 인간까지도 복제(가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어느 것이 진짜고 원조냐’라는 것은 쓸데없는 물음일지도 모른다. 복제품이 어느만큼 원조랑 똑같은 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복제품 나름의 생명력과 개성을 가졌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4. 섞어 짜기(intertextuality)
많은 작품은 의도적으로 다른 작품을 모방하며,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러한 현상을 섞어 짜기(intertextuality)라고 한다. ‘섞어 짜기’는 예술작품에서(기호학의 용어를 쓰자면 ‘텍스트’)에서 종종 다른 텍스트를 빌려오거나 그것과 다양한 방법으로 연관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패러디는 다른 작품을 흉내 내어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방법이다. 5) 따라서 분석을 통해 특정 작품이 다른 작품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바닐라 스카이>는 <오픈 유어 아이즈>를 미국식으로 각색하면서 많은 부분을 빠뜨리고 새로운 부분을 첨가했다. 그 중 데이빗과 소피아가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이야기 전체가 마치 할리우드식 ‘미녀와 야수’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또한 꿈 속의 꿈, 꿈과 현실의 혼동은 장자의 나비꿈(胡蝶夢)6)을 끌어왔고 <오픈 유어 아이즈>를 리메이크하면서 뼈대를 정당하게 사왔다. 이처럼 한 작품 속에서 다른 여러 텍스트를 발견할 수 있다. ‘섞어 짜기’는 정보화 시대에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며, 텍스트 사이의 상이성이 점점 사라지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원관념을 숨기고 보조관념으로 드러내어 그 성질을 설명하려하는 것.
5) 아서 아사 버거, 1997. 『Seeing is Believing』, 미진사.
6) “내가 장자의 꿈을 꾸고 있는 나비인가, 나비의 꿈을 꾼 장자인가?” 장자의 나비꿈은 여러 영화에서 많이 차용되고 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이러한 사상을 무리하게 영화의 이야기와 끼워맞추다 보니 관객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