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70:1~5)
‘Yet I am poor and needy; come quickly to me,
O God. You are my help and my deliverer;
O LORD, do not delay.’(5절)
‘하오나, 저는 궁핍하고 힘듭니다. 어서 저에게 와 주십시오.
주님, 당신만이 저의 도움이시고 구원자이십니다.
주님, 지체하지 마소서.’ (5절)
오늘 본문.
짧은 5개 절이지만 눈물이 난다.
수미상관법처럼 1절의 ‘어서 나에게 와 주소서.’를
외치는 내용에 이어서
(조금 이성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벌을,
선을 행하는 이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지만
다시 위의 5절처럼 처절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
사실 궁핍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2~4절처럼 다른 사람을 볼 겨를조차 없다.
1, 5절처럼 그저 하나님께서 지금 바로 내게 오셔서
나의 이 고통을 덜어 주시기만을 간절히 소원하게 된다.
그런 심정을 느끼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유년 시절의 힘겨운 일상,
사관학교와 해병대 장교 생활도 녹록지 않고
특별한 삶이었지만
내 왼쪽 눈에 얽힌 고통을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궁핍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의 아픔을
지금보다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자아중심적인 자기연민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 타자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긍휼이 여기는 면이 분명 있다.
아무튼 내가 겪은 고통, 그리고 잠재적으로
그런 고통이 나에게 다시 밀려올 수 있다는 예지력이 꿈틀거림으로
눈물을 흘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고통과 타자에 대한 긍휼이 연결되어 있는
아이러니가 있다.
지금 묵상을 하는 동안
시즌도 시즌인 만큼, 멋진 성탄절 풍경을 시각으로 보여 주는
조용한 캐럴을 틀고 있다.
비쥬얼이 얼마나 예쁜지, 잠시 감상에 젖는다.
그러면서 약간의 아쉬움, 괴리 등을 느꼈다.
결코 현실에서는 100% 충족할 수 없는 저 모습,
또는 잠시 지나갈 뿐인 저 모습.
그렇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큰 감탄이 있는 아름다움이나 감동의 극치는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쉬워하지 말고, 대신 ‘소망’하자!
지난주 설교가 성도의 우직한 발걸음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세상에서 평가되거나 발생하는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우보만리’ 묵묵히 걸어갈 수 있다.
어차피 영원에 비해서 이 세상은 찰나의 순간일 뿐.
그러므로 인생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가치,
복음의 사랑을 채우고자 분투하는 삶이 될 것!
‘하나님, 감사합니다.
비뚤어진 제 마음을 궁극적으로 바로잡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제게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선량한 느낌과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니고서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저의 나쁜 습성을 고쳐나가며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적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실천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오늘 정환이의 보조적 항암 마지막 4차가 있는 날입니다.
항암치료가 오늘이 마지막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정환이의 고통을 주님께서 가져가 주십시오.
바라옵기는 정환이가 완전히 회복하여서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밝히 증거하는 삶이 되게 해 주소서.
무엇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화를 누리는 순간 순간이 되게 해 주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