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구구 절절한 사연이 담긴 억수로 두꺼운 소장을 받은 할머니 고객이 헐레벌떡 나를 찾아왔다. 요즘 날도 더운데 숨넘어갈 듯 급하게 찾아와서 그런지 사무실 유리문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훤히 보이는 복도 계단에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예약 고객과 면담 중 직원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상담을 중단한 후 복도로 나가보니 할머니가 내 손을 붙잡고 하시는 말씀이 2011년에 나에게 사건을 맡겼던 고객이었다는 것이다.
이름을 들어보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억이 났다.
웬일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난데없이 이번에 소송을 당했는데 아는 변호사가 나밖에 없어 내 생각이 나서 찾아왔는데 아직도 같은 자리에서 변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안도감이 들어 다리에 힘이 풀려 계단에 주저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부축해서 사무실 안으로 모시고 가 소장을 읽어보니 2011년에 할머니 명의 부동산에 있던 가등기 관련 승소판결을 받아 가등기를 말소시켜 드린 부동산을 이번에 할머니가 매도한 것에 대해 사실은 그 부동산이 자기 것이고 1996년경 명의신탁해 두었는데 팔아 먹었으니 부당이득을 내 놓으라는 취지의 두꺼운 내용의 소장이었다.
파들파들 떠는 할머니에게 내가 이겨드리겠다고 안심시키고 일단 소송을 하기 전 아들에게 허락맡고 오라고 돌려보냈다. 아들이 있는데 할머니 재산이라도 아들하고 상의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일 뒤 아들과 함께 찾아 온 할머니 사건을 선임해서 한 장의 답변서를 냈다. 요지는 이렇다. "사실관계를 떠나서 원고 주장만으로도 결국 계약 명의신탁이므로 수탁자인 피고에게 부당이득을 구한다는 것인데 대법원 판례 및 명의신탁 법리 및 관련 법률상 매도인이 알았거나 몰랐거나 소유권의 귀속과는 무관하게 부당이득 시효가 소멸하였으므로 기각을 구함"
아마 우리가 승소할 듯 ~^^
많이 지급한 변호사 보수에 비해 제출한 답변서 장수를 보고 황당해하는 할머니와 아들 ㅎ
글자를 많이 쓰고 종이 수가 많아야 소송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다. 핵심을 정확히 집어서 정확하게 침을 놓으면 된다. 그것이 20년 부동산 소송을 한 나의 경험과 노하우인 것이다. 그 경험과 노하우에 보수가 지급되는 것이지 소송 서류 종이 쪽수가 대수인가. 원고쪽 변호사는 종이 쪽수를 기준으로 보수를 받았는지 두껍기는 하드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