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길 걷기여행
<1>엄광산(503.9m) 둘레길
트레킹(Trekking)이 등반과 다른 점은 산을 정복하거나 정상을 탐하는 법 없이 산길을 마냥 걸으며 산과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뚜렷한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을 타는 것도 아니며 평지를 걷는 것도 아닌, 이런 애매모호한 산행을 트레킹이라 합니다. 목표나 성취감보다는 여정에 중점을 두는 느긋한 도보여행입니다.
그래서 트레킹의 사전적 의미는 ‘산의 정상을 목표로 하는 등산이 아니라 산허리에서 풍광을 감상하거나 산의 문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등산과 산책 사이’ 정도의 트레킹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레포츠입니다. 무리 없는 목적지와 목표의식을 가지고 떠나면 됩니다.
등산이 고도를 높이는 걷기라면, 트레킹은 고도를 유지하며 거리를 늘리는 걷기입니다. 엄광산 둘레길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이 엄광산을 360도 한 바퀴 돌 수 있는 트레킹 코스입니다. 트레킹 하면 네팔이나 티베트 고원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 멀리까지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도심과 가까운 숲길을 찾아들면 됩니다.
엄광산 둘레길은 서구-중구-동구-부산진구-사상구 등 여러 행정구역을 거치는 동안 산길 주변의 자연과 교감하면서 또 사람 풍경을 즐기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가운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멋진 트레킹 코스입니다.
엄광산 기슭에 있는 학교의 학생들이 ‘승학산(구덕산) 정기 받아...’라는 교가를 부르는 등 엄광산을 승학산이나 구덕산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고, 아직도 1995년 우리 산 이름 바로찾기 운동 이전의 이름인 고원견산(高遠見山)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원견산은 한국전망대가 있는 대마도의 원견산(遠見山)과 마주 본다 하여 일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김정호(金正浩)의 ‘청구도 채색 사본’에서 옮긴 그림에도 ‘嚴光山’이라고 기록돼 있는데, 일제 때 일본인들에 의해 ‘高遠見山’으로 개명되어 최근까지 그렇게 불리어 왔던 것입니다. 고원견산은 일본 에도[江戶]막부시대 말기에 외교 사절의 일원으로 조선을 다녀간 雨森芳洲가 귀국 후 저술한 <문인제성(文隣提醒)>이라는 책에 ‘遠見嶽’이라고 기록한 것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遠見'이란 글자 그대로 멀리 보인다는 뜻으로, 이 산에 올라가면 멀리 대마도가 보인다며 遠見嶽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대마도의 한국 전망대 인근의 산 이름이 또한 '원견악'인데, 이 산에서 보면 부산의 엄광산이 멀리 바라보이기 때문에 작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일제는 이 산 이름을 ’높고 먼 곳에서 천황폐하를 배알한다‘는 의미의 고원견산(高遠見山)으로 다시 고쳤던 것입니다.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東萊府誌)에는 ‘엄광산(嚴光山)은 동래부의 남쪽 30리에 있으며, 위에 구봉이 있고 아래에 두모포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엔 봉수대가 있는 초량동 뒷산을 구봉(龜峯)이라 하지만 옛날엔 엄광산 정상을 구봉이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엄광산은 지금의 구봉산에서 엄궁동 뒷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 전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얼안(테두리의 안)이었는데, 구봉이 구봉산 단독의 산이 되고 구덕산, 시약산, 승학산(乘鶴山, 대동여지도에는 勝岳山)이 별도의 이름을 가지게 됨에 따라 한때는 엄궁동 뒷산(380m)만을 엄광산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엄궁(嚴弓)이란 지명은 마을 뒤의 그 엄광산 줄기가 낙동강에서 바라볼 때 활 모양 같아서 지어진 것입니다. ‘嚴光’의 순수한 우리말은 ‘엄비치’이므로 엄광산은 해가 떠서 햇빛이 ‘으뜸으로’(가장 먼저) 비치는 산이라는 뜻입니다.
*동아대학교 부속병원- 대청공원 충혼탑 뒤 능선(2.2km, 35분)
집결지인 동아대학교 부속병원 정문 앞에서 동아대학교 대신동 캠퍼스 교문을 향해 갑니다. 교문 왼쪽 바로 옆에 산책로가 열려 있습니다.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삼나무 숲길로 들어서서 3분 후 아치형 나무다리를 건너가면 동아대 교정에서 오는 길과 수원지 초입에서 만납니다. 수원지 주변은 편백나무와 벚꽃나무가 많습니다. 봄철 벚꽃이 필 때면 장관을 이룹니다.
엄광산 기슭 일대 전체 지역이 모두 대신공원입니다.(지금은 중앙공원으로 개명) 대신공원은 1900년 구덕수원지와 고원견수원지를 축조하면서 삼나무, 편백나무, 벚꽃나무 등 35만 그루의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고, 1910년 수원지 시설을 보강하고 죽관(竹管)으로 통수(通水)를 시작하면서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였습니다. 그 이후 수령 100년 이상의 나무들로 이뤄진 울창한 수림은 ‘생명의 숲’이 되었습니다.
낙동강물을 부산 상수도의 수원으로 이용하기 시작, 이곳 수원지들이 그 수명을 끝내게 된 1968년에야 비로소 공원으로 개장. 궁도장, 도서관, 구덕민속예술관 등이 건립되고 공원 전체가 삼림욕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갖추게 되자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약수터의 물을 마시고 숲길을 산책하거나 체육시설을 이용, 운동을 하는 등 시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집결지에서 출발 5분 후 옛 고원견저수지에 이르고 곧 약수터가 있는 체육공원에 이릅니다. 다시 2분 후 구덕민속예술관을 지나 삼나무 가로수가 우거진 임도로 올라서고 10분 뒤 임도 삼거리에 닿습니다. 체육공원에서 계곡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도 됩니다. 민속예술관에서 400m 거리인 이곳은 대신공원 산책로의 중요 기점이 되는 곳으로 매점과 체육시설, 화장실 등이 있습니다. 직진하는 길은 석탑약수터(900m)로 향하고, 가야할 길은 오른쪽 방향입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숲 사이의 넓은 임도를 걷기 시작합니다. 5분 후 경남고등학교 뒤편 돌담을 만나고 곧 희락정(喜樂亭) 정자가 있는 체육시설에 이릅니다. 이곳에서는 진행 방향에 두 길이 나 있는데, 윗길을 따라갑니다. 소나무숲 사이사이에 산벚나무가 꽃을 피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두 번째 갈림길에서도 윗길로 가야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길 오른쪽으로 구덕운동장 등 대신동 일대의 시가지가 내려다보입니다.
두 번째 갈림길에서 5분 후 콘크리트 수로(水路)와 돌탑지대가 연이어 나타납니다. 돌탑지대에서 3분 후 길 왼쪽 편백나무 조림지 사이의 산길로 2분쯤 오르면 대청공원 충혼탑 뒤 능선길 오거리 쉼터에 올라섭니다.
*대청공원 충혼탑 뒤 능선-코스모스 꽃길(3.9km, 60분)
오거리 쉼터에서는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버리고 그 오른쪽의 언저리길을 따라가야 한다. 5분 후 3초소 약수터의 체육공원에 이르고 쇠울타리를 쳐놓은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 가족묘역을 만납니다. 쇠울타리를 지나면 초량4동 체육공원-구봉약수터-편백나무숲-구봉산악회 체육장을 지나 장군암(庵)에 이릅니다. 옛날 ‘전설의 고향’ TV프로에 방영된 ‘장군발자국바위’에 금줄을 쳐놓았는데, 절 이름이 이 바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절 마당에서 부산항이 내려다보입니다.
5번, 8번, 11번 이정표를 차례로 지나 호젓한 숲길에서 통나무 평상을 만납니다. 땀을 식히면서 일행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낭만적인 휴식공간입니다. 12번, 13번 이정표를 지나 편백숲을 벗어나면 채소재배지역에 이르고 곧 17번 이정표가 있는 체육시설(수정산 가족체육공원)에서 엄광산 주능선상의 460m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납니다.
오른쪽 방향은 수정산을 거쳐 안창마을로 갑니다. 왼쪽 길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임도를 만나게 되고 그 길을 따르면 산의 북쪽 기슭을 돌아들게 되는데, 오른쪽 아래로는 동의대 캠퍼스가, 건너편 멀리로는 백양산이 바라보입니다. 동의대-동서대 뒤편의 임도 양쪽에는 코스모스 꽃밭이 조성되어 있어 가을이면 환상적인 꽃길이 됩니다.
*코스모스 꽃길-꽃마을(4.7km, 70분)
25분 후 ‘위험(이동금지)’ 표지판에서 임도를 벗어나 왼쪽 숲길로 들어서 편백나무 숲 속에 있는 체육시설을 지나면 다시 임도. 임도 3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3분이면 삼운정약수터로 향하는 숲길에 들어서고 30여 분이면 꽃마을에 도착합니다. 삼운정약수터로 가는 숲길로 가지 않고 계속 임도를 따라 25분쯤 더 가면 학운정 정자 쉼터에 이릅니다. 학운정에서 꽃마을까지는 40분여 더 소요됩니다.
<최종답사일: 2011년 1월 10일 10:00 동아대병원-10:35 대청공원 충혼탑 뒤 능선-10:40 김동조 장관 가족묘역-10:45 구봉약수터-10:53 장군암(화장실)-11:15 장수천약수터-11:17 평상 쉼터-11:25 채소재배지역-11:33 코스모스 꽃길(콘크리트 임도)-11:48 가야삼림공원 -12:00 체육공원-12:10 꽃마을 가는 길-12:18 삼운정 약수터-12:45 꽃마을(옛날집 257-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