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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떠돌이
역사에는 수많은 제국들이 존재하고 사라졌다.
로마제국 당나라 몽골제국 대영제국 등등
그 수많은 제국들은 어떻게 제국이 되었고 사라졌을까?
이에 대한 연구는 이미 수백년 전 부터 있어왔다.
그런데 대부분 결론은 "기집애 때문에 망친거야!" 요런 이상 야릇한 결론이 대부분이었다.
로마가 망할때 창/녀들이 많았다는 둥 하면서 기독교적 사고관으로 비판했고
당현종이 양귀비랑 놀아서 당나라가 망했다는 둥 하면서 유교사관이 비판했다.
몽골은 기황후 때문에 망했다고 또 그러고
대영제국은? 엘리자베스 여왕때문에 망한건가? 빅토리아 여왕때문에 망한 건가? 여왕들이 문란해서?
두분다 인간적으로 훌륭한데? 빅토리아 여왕은 한남자만을 사랑했으며 남편이 죽은 후에도 수절을 한 인물인데? 그 아들 왕자가 문란하긴 했는데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은 아들에게 정치 못하게 했는데? 그럼 수상들이 바람 피워서 그런건가?
헐 그럼 천하의 바람둥이 카이사르가 있을때 오히려 로마가 잘나간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게다가 쿠바 혁명의 아버지 체게바라가 프리/섹/스 주의자 였다는 것은 아나?
그는 그의 글에서 "인간이 한 배우자만을 사랑 해야 한 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며 의문을 제기 했고 실제로 굉장히 금욕적인 생활 방식(무려 14시간을 일하고 4시간 이하로 자면서 독서했다) 으로 살면서도 결혼을 두번 하고 애인도 꽤 되었다고 한다.
만날 북한 김정일 여자관계가 복잡해서 나라 망한다고 떠들어 대는 데 그럼 여자관계 복잡한 검찰을 가진 대한민국은 왜 안망하냐?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뽑히는 세종대왕은 무려 7명의 후궁을 거느리고 16명의 자식들을 낳았다.
그렇다고 정비인 소현왕후와 금슬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금슬 좋기로 조선 왕조 임금 중 톱10 안에 들었다.(세조가 최고였고)
여자관계 복잡한 거 물론 도덕적으로야 문제가 있을 지 모르지만 그게 국가 흥망과는 별 상관이 없다.
여자관계 복잡한 성군들도 역사에 넘치고 넘친다.
로마는 여자관계는 물론 남자관계도 복잡했던(동성연애도 제한이 없었다) 카이사르가 다스릴때는 흥하다가 뒤에 금욕적인 기독교 군주들이 다스릴때는 완전 폭삭 망해서 이민족의 치욕을 당한다.
그럼 진정한 흥망의 법칙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그 법칙성을 정치 경제적으로 설명한 것이 바로 마르크스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를 진정한 사회과학의 개조로 보는 것이다.
자 로마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로마는 자영농민 군대로 일어난 나라이다.
이당시 서유럽의 군대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서 자영농들이 무장을 하고 팔랑케스 라는 대열을 이루어서 적을 정면으로 밀고 들어가는 형태였다.
커다란 방패와 창을 앞세워서 직사각형으로 줄을 서서 밀고 들어가는 형태!
이런 식의 전쟁을 하면서 일진일퇴 하면서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성장하고 쇠퇴했다.
로마는 이런 도시국가들의 투쟁에서 점점 승리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를 통일해 갔다.
이런 와중에 참 재미있는 사건이 생겼다.
로마역사에서 '성산사건' 이라고 기록된 이사건은 처음 한 노예 노인이 로마시민광장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시작된다.
이 노인은 노예라고 하기에는 기품있어 보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동정하면서 그의 사연을 물어보았다.
그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자신은 자영농민이었으며 땅도 제법 가지고 있는 남부럽지않은 요새 말로 중산층이었다고 했다. 글도 배웠고 당시의 병역을 훌륭히 이루어서 당시 영예였던 '백인대장'이 되엇다고 했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왜 노예의 신세가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로마를 위해 전쟁에 나가는 통에 전쟁자금을 빚을 지었고(당시 전쟁은 자영농민들 스스로의 비용으로 치루는 형태였다. 전쟁에 나가는 것은 오히려 권리였다.전쟁에 나갈 수 있기에 선거권 피선권등의 권리를 가지는 것이었다. 노예는 전쟁에 나갈 권리가 없었다. 또한 전쟁에 나갈 만큼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계층은 아무런 정치적 권리도 누리지 못했다.) 돌아와 보니 농토는 귀족들이 고리대금으로 몰수되었고 가족들은 노예로 팔려갔으며 자신도 빚을 갑지못해서 노예가 되었다! "
라고 대답했다.
이에 같은 처지에 있던 시민들이 분개하였고 이로 인해 시민 병들이 귀족들을 위해 전쟁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봉기가 일어났다.
이사건은 귀족들이 앞으로 자유민을 노예로 잡지 않겠으며 자유민의 그 어떤 빚에도 노예가 되지 않기로 한다는 법을 만들어서 진정은 되었으나 미봉책에 불과했다.
이후 로마는 끊임없이 정복전쟁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럴때 마다 그 목숨을 걸고 정복전쟁을 수행한 로마자영농들은 점점 몰락해 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비록 빚도 지지 않고 전쟁에서 잘 살아남은 자영농도 돌아와 보면 귀족들이 전쟁에서 획득한 토지를 전쟁에서 획득한 노예로 싼값에 경작해서 그 농산물을 싼값에 뿌려 버림으로서 독과점의 폐혜로 점점 몰락해 갔다.
이로 인해 로마의 사회불안은 점점 심해졌고 군은 불만 투성이가 되어갔다.
드디어 마리우스란 인물이 나타났는데 그는 평민 출신으로 밑바닥에서 평민출신의 군사들과 고락을 함께 하면서 장군이 된 인물로서 이런 사회모순에 공감을 하였다.
피흘려 병역의무를 수행한 평민 자식들은 가난해지고 뒤에서 놀고 있던 귀족 자식들은 그 평민들의 고혈을 빠는(어디서 많이 봤지? 이런 상황)
결국 그는 쿠데타를 일으키며 이를 무력으로 해결하려 한다.
쿠데타를 일으켜 귀족들을 죽이고 국가 재정을 장악해서 이를 평민군사들에게 일정한 돈을 나누어 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제도화 하거나 하는 어떤 정치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냥 이런 평민층군대의 불만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보복을 하거나 할 뿐이어서 로마는 혼란에 빠진다.
이에 마리우스의 부하였던 술라라는 자가 나와서 귀족들과 손을 잡고 평민군대에게 일정한 경제적 봉급을 주고 마리우스 당파를 숙청하면서 겨우 혼란을 잠재운다.
이런 혼란와중에 군인들은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자들을 따르고 이들에 사병화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드디어 술라가 죽고 천재적인 정치가 이자 문인이자 군인인 카이사르가 등장한다.
그는 군인들이 이미 사병화 되어있음을 깨닫고 또한 평민과 귀족의 경제적 불평등으로 오는 갈등이 정상적인 해결책이 없음을 깨닫고 이른바 황제의 길을 택한다.
군인들에게 매달 일정 봉급을 주는 직업군인을 만들고 이런 직업군인의 장이 곧 정치지도자가 되어 평민과 귀족의 중립적인 위치에서서 갈등을 들어주거나 진압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후 로마의 군대는 직업군인이 되었고 이러한 직업군인들은 오직 황제의 이득을 위해 봉사하는 군대가 된 것이다.
특히 이를 공고화 한 것이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 였다.
영어에서 황제 황실의 뜻인 '임페리얼' 이 라틴어 '임페라토르' 에서 나왔는 데
실제로 이것의 어원은 "군사지도자 장군' 이란 뜻이었다.
일본에서 막부정권이 들어서자 본래 군사지도자를 뜻하는 "장군(쇼군)"이 정치최고지도자로 쓰인 것과 같은 의미 이다.
사실 북한의 김정일도 본래 "국방위원장' 아니었나?
권력은 결국 총구에서 나옴을 입증한다 하겠다.
카이사르는 이런 군인들을 이끌고 정복전쟁을 더욱 확대해 간다.
그리고 그런 정복전쟁 도중의 전리품 들을 자기 부하들에게 분배함으로서 귀족들을 무력화 하고 군인들을 사병화 시켰다.
여태까지 전리품들은 물론 평민들이 몰래 적당히 챙기기는 했지만 보통 귀족들이 대부분 가져갔었다.
특히 귀족들의 중심인 원로원이 이런 전리품에 가장 많은 권리를 행사했다.
그런데 그런 원로원의 전리품 권리를 거부하고 군사지도자가 마음껏 전리품에 대한 권리를 행사해 버리고 이른바 제정이 된 이후에는 드디어 이런 권리는 황제의 특권이 되어 버린다.
그 이후 이런 황제의 사병을 통한 정복전쟁과 그로 인한 황제의 전리품 분배는 황제들의 정통성 유지에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하게 된다.
자신의 근위병들의 충성을 유지하고 귀족들을 포섭하는데 쓰일 뿐 아니라
돈없는 민중들을 포섭하는 데에도 말이다.
무슨 말인가?
황제들은 돈없는 민중들 (프롤레타리아) 들이 봉기 한다면 결국 로마가 붕괴한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회재분배를 실시 한다는 것은 기득권층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 이역시 로마붕괴로 이어지는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불만을 풀어줘야겠지?
이른바 빵과 써커스 정책이 시행 된다.
황제들은 기금을 조성해서 가난한 자들에게 밀을 공급하고 웅대한 국립경기장을 지어서 그곳에서 노예와 포로들을 검투시합을 개최하여 날이면 날마다 공짜로 프롤레타리아들이 즐기도록 한다.
그 자리에 주최자인 황제가 나타나서 이 재미있는 시합을 황제가 주최했음을 만천하에 공개 한다.
그러면 황제에게 프롤레타리아 들의 박수갈체가 쏟아진다.
만족한 황제는 포도주와 돈을 관중들에게 돌린다.
피튀기는 시합을 보고 나면 어느새 프롤레타리아들의 가슴속에 가난에 한맺힌 응어리들이 사라진다.
또한 황제들은 여러가지 형태로 성의 즐거움을 마구 마구 선사한다.
각 도시마다 거대한 공창지대가 존재 했다.
각인종별로 백인 흑인 황인 골라서 즐길 수 있었다.
돈없는 프롤레타리아는 황제가 경기장에서 준 돈을 호기롭게 쓰면서 어느새 있는 자들에 대한 불만을 잊어버린다.
이른바 3s 정책이 로마시대에 시작되었음은 유명한 일이다.
그렇게 정복이 계속되던 로마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진짜 '로마시민'들은 군대를 싫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안가도 잘 살 방법 많은데 그 혹독하고 어려운 일을 뭐하러 하겠는가?
그래서 이른바 이민족들이 점점 유입되게 된다.
어쨋건 이런 로마의 팽창 때야 별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부터 로마의 팽창이 더이상 없어졌다는 데에 기인한다.
하드리아누스 시절 부터 로마군의 군사적 우위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예전 처럼 로마군이 가기만 하면 이기는 시절은 지났다.
결국 하드리아누스 시절부터 로마는 중국이 만리장성 처럼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쌓고서 로마국경을 지키는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렇게 되자 로마 재정에 서서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고대에는 현대처럼 특권층에게 세금을 걷는 개념이 없었다.
귀족이라는 것은 무조건 면제가 당연한 것이었다.
특권층이 세금을 내게 된것은 근대국가가 되고 나서 이후이다.
그것도 엄청난 진통을 격으면서 말이다.
조선은 망할때 까지 양반들에게 세금을 걷지 못했다.
대원군이 호포세라는 세금을 만들었다가 양반들의 반발로 권력을 잃어야 했다.
고대 부터 근대이전 까지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계층은 무조건 평민들이었다.
왕이나 황제의 입장에서 귀족이 적고 평민이 많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로인해 왕이나 황제들은 끊임없이 자영농 육성정책을 하거나 가끔 미친척 하고 귀족들을 죽여서 귀족숫자를 줄이곤 햇다(러시아 이반4세가 그런 짓을 잘 했다)
로마는 팽창하는 과정에서 자영농이 끊임없이 몰락하고 귀족들이 경제력을 독점하는 과정을 격었다.
황제는 군대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세금을 걷어서 군대를 유지해야 하는데 귀족이 많으면 세금을 못걷는 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해결해 왔을까?
뭘어떻게 해 약탈로 해결해 왔지! 특히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전임황제인 '트라야누스 황제는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의 루마니아 지방에 황금이 많다는 것을 알고서는 트집을 잡아서 처들어간 후 아예 싹 죽이고 노예로 만들어 금광산을 차지 하기도 했다.
지금 어느 나라랑 비슷하지?
그러나 트라야누스 말기 이런 해결 방식이 더이상 불가능 함이 드러났다.
트라야누스는 이런 재정을 더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서 사산조 페르시아로 쳐들어 갔는데 결과는 ? 이기긴 했는데 정복은 못한다. 바로 베트남 전 처럼 엄청난 게릴라 전에 휩싸이고 트라야누스의 뒤를 이은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런 게릴라 전이 가망이 없음을 인지하고 후퇴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로마의 국력이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더이상의 정복활동을 중지하게 된다.
최근 어떤 나라가 "우리의 국력도 한계가 있다!" 라고 선언한것과 웬지 비슷하지?
제국의 몰락은 항상 게랄라전으로 시작한 다는 것도 참 비슷하다.
그리고 이후 국경을 유지하면서 버티는 데 문제는 역시 뭐였을까?
세금!
당췌 돈이 없더라 이거야! 죄다 면세 면세!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에야 그동안 벌어논게 워낙 많아서 잘 넘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 안토니누스 황제는 검소한 양반인데다가 귀족시절 벌어놓은 자기 재산을 로마에 헌납하는 보기드문 '군자'양반 이더라 이거야!
요새 어떤 분이 헌납하신다고 재단 차리셨다지? 전두환 형님도 무슨 재단만들어서 국가에 헌납하신다고 말은 하시고는 헌납 일절 안하셨는데 ㅎㅎ
그런데 그 후계자 때부터 일이 터진 거야!
이른바 철인 황제라고 불리던 아우렐리우스 황제
이 양반 참 좋은 양반이다. 금욕적인 생활 태도에 공정하고 성실한 양반이었는데 비극이 이었던게
이양반이 군대를 갔다 온적이 없는 거야!
군사를 모른 거지!
그런데 이때 부터 훈족의 친입이 시작되어!
훈족이 게르만족들을 아작을 내기 시작 하는 거여!
사실 로마제국은 천년을 갈때 중국의 제국들은 왕창 망했다가 생기기를 반복했다.
이유는 바로 이민족의 침입 때문이었다.
천고마비란 말 들어봤지? 이 낭만적인 말이 사실은 무시무시한 말이거든
말이 살찌기 시작하면 몽골고원등에 위치한 유목민들은 식량이 떨어지지 그럼 중원으로 밀고 내려와서 약탈을 하는 거여!
아 가을은 단풍의 계절! 낭만적인 눈물이 흐르고 가 아니라
아 가을은 약탈의 계절! 피눈물이 흐르고 였던 거지
그양반들도 별수 없지 지금도 그렇지만 몽골고원은 고비사막등에서 날아오는 건조한 바람과 모래로 인해 그리고 수량부족으로 농경은 불가능 햇거든
그런데 서유럽은 사정이 좀 달랐어 로마제국의 변방의 이민족이었던 게르만족은 독일이나 체코지역에 위치했는 데 이곳은 지금도 그렇지만 풍성한 산림지대로 서 물이 풍부해서 얼마든지 농경이 가능 했거든!
그러니 목숨 걸고 로마를 칠 필요가 없었지 그냥 로마는 로마 우리는 우리 살면 되는 거였는데
갑자기 훈족이 이런 게르만족을 아작내면서 쳐들어 오지
이렇게 되니 살려면 "런 런 런 런!" 목숨걸고 로마국경선을 아작내기 시작하고
황제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친정을 시작하는데 ....
아까 말했지 군대 안갔다 왔다고
사실 하드리아누스 까지 황제들은 무조건 군대 다녀 와야 했어!
군대를 모르는 자가 어떻게 군대를 이끌겠나?
본래 아우렐우스 황제는 하드리아누스가 똑똑해서 후계자 삼으려는 아이였는데
하드리아 누스 황제가 죽게 생긴거야 그래서 '군자' 였던 안토니누스를 황제로 삼으면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교육을 당부하고 아우렐우스를 후계자로 삼으라고 약속 받았지
안토니누스는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켰지! 말했잖아! 군자셨다고
이양반 원래 자식도 없었거든! 이양반 마누라도 친자식 처럼 아우렐리우스 를 키워 주셨고 심지어 이양반 아우렐리우스를 위해 자기의 전 재산을 국가에 기탁했지! (아 참 군자시다!)
근디 이양반 하드리아누스와의 약속을 단 한가지를 어겻어!
군대에 안보낸 거야!
하드리아누스는 본래 다른 후계자가 있었고 엄하게 교육시키고 있었거든!
그를 국경지대에 보내서 군대교육을 시키는 중이었는데 이젊은이가 죽어버린 거야!
그래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죽은자를 욕까지 하면서 막 화를 내고는 다시 후계자로 아우렐리우스를 찾은 건데 너무 어리더라!
그런데 죽을 날은 가까워지고 그래서 자식도 없고 약속잘 지키며 공정하고 욕심도 없는 원로원의원인 안토니누스를 황제로 지명하면서 약속에 꼭 군대 보낼 것을 약속받았는데
이양반 아우렐리우스 키워보니 친자식 같더라 이거지!
참 영리하고 똑똑하고 순한아이를 그 험한 국경지대 보내서 병걸려 죽이고 싶지 않더라!
그리고 일해보니까 자기는 군대 안다녀 왔어도 국가 운영하는데 지장 없더라!
해서 안보냈어 어긴거야 약속을
그런데 갑자기 이 군대 안갔다온 황제가 즉위하자 마자 게르만 대이동이 시작된 거야!
그래도 이양반 비겁하지 않은 양반 이었거든!
직접 친정을 하셨는데 우왕좌왕 시행착오를 격으신다.
"호랑이가 지휘하는 양떼는 양떼가 지휘하는 호랑이를 이긴다!" 라고 하지 왜?
로마군 막 전멸도 당하고 온갖추태는 다 당하고 그로 인해 전쟁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결국 이양반 죽을때 까지 게르만 토벌만 하다 끝나!
이양반 누구보다도 전쟁을 싫어하는 양반이었는데 말이시!
결국 한 10년 싸워 보고서야 그제서야 "아! 이렇게 전쟁하는 구나!" 하고 하시다가 돌아가시지!
게르만 토벌은 성공하긴 했는데 결국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지!
엄청난 국가가 낭비 되었는데 이걸 복구할 방법이 없는 거지
정복전쟁은 커녕 이제는 제국을 침입해 오는 이민족을 걱정해야 할 판이고
황실의 재정은 10년 전쟁으로 아작 났고
그럼 세금 중산층이 있어야 하는데 중산층은 진즉에 붕괴했고
그럼 방법은? 특권층 세금 걷어야지?
그럴라고 했는데 결론은 내분!
세금 걷을라고 하면 내분이지!
그렇게 되자 이른바 당장 군대의 질이 떨어지지
돈이 없어서 봉급도 못주는 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이렇게 되자 치안이 불안해 지고 귀족들은 사병을 양산하게 되고....
게다가 정규군의 대우가 떨어지니까 어쩔수 없이 이 돈에도 오는 가난한 지방 애들 데려다가 세우는 거지!
바로 게르만 용병등 가난한 지역 용병들이 군대를 체우는 거지!
지금도 영국특수부대들은 인도 네팔 산악지대에서 용병들을 체우는 거 아나?
그와 같은 맥락이지!
자 이렇게 되자 처음에야 돈 주는 쪽이 우세했지만 ....
말했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거라고~!
일본 사무라이들은 원래 먹고 살길이 없어서 귀족 보디가드를 하던 빈민의 자식들이었는데 나중에 그 귀족들을 타도하고 특권 계층이 되지!
이렇게 되자 결국 로마제국은 가난을 피하려고 로마군에 복무하던 게르만 용병들에 의해 망하고 말지!
그외에 생략해 놓은 이야기가 많지만
결국 제국의 붕괴를 정치 경제적으로 전망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단순화 시키자면 위와 같지!
단 이건 정말 단순한 기술일 뿐이고 사실은 제대로 쓸려면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를 100배로 늘려도 모자라지!
이외에 당나라는 또 로마와 조금 다르지 하여튼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붕괴와 그로인한 세수 부족 그리고 그로인한 정부의 재정악화 라고 볼 수 있지!
요거에 걸리면 제국아니라 제국 할배가 와도 망하는 거다!
결국 경제적 불평등이 국가를 망하게 한다고 정리할 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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