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9. 화) 09:30분에 갈마역 3번 출구에서 만나 떠난다. 바퀴 하나 빠진 3륜구동차가 된 채로.
성지기 바퀴는 다른 긴한 약속으로 빠진 채.
걱정스럽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점점 좋아진다. 옛날 국도로 방향을 잡는다.
- 갈마역 3번 출구 밖 삐주리 감나무에는 아직도 까치밥 하나가 달려 있다. -
장용산으로 알고 떠났는데 나중에 보니' 장령산'이다. 진입로도 옥천읍내 들어가기 직전 서화천을 오른쪽으로 타고 들어서 서대산 쪽으로 달린다. 새로 생긴 국도로. 고속도로 못지 않은 국도, 추부 방향에서 장령산휴양림 표지석이 사람 두어 길 높이로 앞에 나타나는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들어간다. 처음 가는 길이다. 충남에서 제일 높다는 서대산과 장령산 사이로 난 계곡은 금천(金川)계곡. 금이 많이 난다 해서 금천이라는 이름이 생긴 사실은 철광산 안내판을 보고서야 알게 된다.
한 번 다녀 왔다는 보배는 익숙한 솜씨로 야외음악당 주차장에 차를 댄다.
아외 음악당을 벗어나자 왼편은 금천계곡 골짜기. 곧 바로 오른쪽 산 아래로 웬 굴 하나가 나타난다. 철광산 굴이다.
길 건너쪽에 있는 안내석을 읽어본다.
금천계곡 철광굴 유래 : 1965년 부터 철광석 채취하던 굴. 예로부터 금이 많이 나서 금천, 옛날에는 금천사 절도 있었다고...
서대산 줄기의 맑은 물이 흐르는 금천계곡이다.
흘깃 보고는 단풍잎 밟으며 낙엽길을 따라 올라간다. 위로는 상곡 가는 길이란다.
얼마쯤 올라가다 오른쪽 나무계단을 따라 방향을 틀어 올라간다.
정자가 나타난다. 쉼터다. 아래로 계곡을 내려다 보고. 맑은 가을 하늘, 기온이 알맞고... 간식에 차도 마시고.
다시 되돌아 내려와 왔던 길을 따라 올라간다.
(왼편 골짜기에서는 지난 홍수 때 떠내려온 쓰레기들을 청소하느라 바쁘다. 계곡 곳곳 나무에는 비니루 조각 등이 보기 흉하게 걸려있고, 바닥 구석에도 쓰레기들이 이따금씩 보인다.)
수고하는 그들을 멀리하고 다다른 곳은 소원바위이다.
위치 :옥천군 군서면 금천리 산 17번지.
1592년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7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장렬하게 순국한 의병장 중봉 조헌 선생이 의병을 이끌고 승군을 이끈 영규대사 (공주) 와 금산으로 향할 때 이곳에서 소원을 빌었다 해서 전해 내려오는 바위이란다.
그렇다면 이길로 금산전투하러 갔다는 말인데, 금산 자지성의 이야기와도 연결되고 금산 7백의총과도 인연이 닿는 셈이다
역사적인 곳임을 알게 된다.
( -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왜놈을 물리치고 평화를 찾기를...!
오른쪽 산책로 길이 끝나는 곳에 다리가 있고, 건너가니 또다른 계곡 모습이 나타난다.
장령산 정상으로 가는 안내판 등산로도 보이고, 우리는 그냥 휴양림 데크길로 돌아서 내려오기 시작한다.
옛사람들은 짚신 신고 걸었을 산길을 우리는 편한 등산화로 잘 닦여진 데크길을 따라 미음완보하면서 걷는다.
다 조상님들의 덕으로 (마음 속으로 감사합니다) 즐기면서 걷는다.
- 만보가 홀로 금천계곡을 감상한다. -
-하류 쪽의 모습이다. 건너편은 서대산 줄기 -
곳곳에서 만나는 정지용의 시비 , 한번 읽어본다.
고향에 돌아와도 옛 그리던 그런 고향이 아니라는 조금은 씁쓸한 여운을 풍기는 시 한 편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잠시 센치해지고.
홍시를 주제로 한 시도 보인다.
늦가을 단풍 나무 아래로 걷는 길.
우스개 소리로, 바삭 크, 바삭 리, 바삭 스, 바삭 피이, 하면서 웃어본다.
c -r i -s-py를 빗대서 잘도 웃긴다. 낙엽 밟는 소리..
천상의 소리인가, 금천계곡의 물소리 새소리와 바람소리와 함께 전원교향곡을 이룬다.
사진도 찍어 보고
보배가 찍어 보낸 단풍낙엽 사진
봄서부터 여름내 무성했던 이파리들. 이제는 제 갈길로 돌아간다.
낙엽귀근(落葉歸根)
: 제 소임을 다 하고는 미련없이 되돌아가는 낙엽의 숭고함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식후경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시각이다.
점심을 해결하러 들어간 흑염소식당 한켠에 옛날 미싱 ( < sewing machine) 이 보인다.
자봉틀, 재봉틀, 혼수품으로 준비해야 했던 시절이 엊그제만 같다.
영어가 일본어를 거쳐서 우리말 속에 남아있다. '미싱'으로..
들어갔던 길이 아닌 옛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옥천 척화비까지 덤으로 보게 된다.
옥천척화비 안내판도 들여다 본다.
대원군의 쇄국 정책, 혼란했던 조선 말기,
한 나라의 망해가는 시절의 흔적들에서 역사의 가르침을 배운다. 식민지 약육강식의 시절,
지금도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단군 할아버지의 높은 뜻을 기려본다.
척화비 곳곳에 탄흔이 보인다. 6.25 한국동란 때 상처이란다.
" 서양 오랑캐(양이)가 쳐들어왔는 데(침범) 싸우지 않고 화하는 것은 곧 나라 팔아먹는 행위(매국)이라는 글귀에서 서릿발 같은 옹고집을 느낀다. 대원군과 며느리 명성황후, 친일파 들의 알륵. 갈등. 고래등 싸움에 백성들만 고초를 겪고..
지도자(leader)의 중요성을 배운다.
머들령 고개를 넘어 (대전)세천으로 들어선다.
송중기네 집도 지나니 세천유원지, 단풍을 본다.
단풍나무 : 전국에 보호수로 지정된 것은 단 2그루 그중 한 그루가 여기 이 단풍나무란다.
단풍나무가 정자나무 노릇하고 있구나. 정자목이라는 이름에서..
찾아가서 자세히 들여다 본다. 단풍나무 정자목을.
신단수(神壇樹)로서 마을 제사를 받았을 텐데,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나온다.
사라져 가는 우리의 옛것들.......
세천 유원지 상류 저수지를 바라본다.
1934년에 만든 수원지라는데, 1932년에 충청남도 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옮기면서 만든 상수도 수원지임을 알게된다.
경부선이 개통되고, 물길은 도로따라 바뀌는 법, 백제의 왕도요 1598년 임진왜란 이후 충주에서 공주로 충청도 감영이 옮겨 온 후, 계속 되던 도청소재지가 한낱 빈 벌판 한밭벌에 신도시를 만들게 되는 곡절을 겪는다.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신도시들이 만들어지듯이. 내포 신도시며...
아는 지 모르는 지 오리떼들만이 물위를 떼지어 한가롭게 놀고 있다.
저수지 아래 수문 조절 장소로 보이는 곳에 한자가 특이하다..
이렇게 해서 장령산휴양림 걷기 세천유원지에서 추억을 묻고 오늘 일과를 끝낸다.
퇴근시간 전에 도심을 지내야 된다고, 서둘른다...
다음에는 (공주 ) 연미산을 찾아가기로 하고.
( 2024.11.27. 카페지기 자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