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명구>
◆변화시킬 수 있는 것
物于天地之間 未有不化者也
(물우천지지간 미유불화자야)
천지 사이에 있는 존재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 장유(張維, 1587~1638), 『계곡집(谿谷集)』 권4 「화당설(化堂說)」
• 해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잎이 피었다가 낙엽이 지는 것 등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태어나면 자라나서 늙어 죽는 것이 이치이며, 생명이 없는 것 또한 한결같은 것은 없다.
사람들은 보통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집착을 하거나, 아니면 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변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한 심리 때문에 변하지 않는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소지하고 싶어 하고, 그 때문에 영원한 실재라고 생각한 이데아를 설정해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곡 선생은 만물이 변화하는 것이나 사람의 생사(生死)와 장로(壯老) 같은 것은 천명(天命)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니, 이는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성정(性情)이 왜곡되는 것을 바로잡는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니 그야말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공자의 제자 자로가 “죽음이 무엇입니까”하고 공자에게 물었더니 “삶을 모르면 죽음을 어찌 알 것인가”라고 한 대목이 생각난다.
계곡 선생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삶과 죽음은 천명에 관련된 것이라 이미 사람이 어찌해 볼 수가 없는 것이므로, 변화를 시킬 수 있는 사람의 삶의 질이나 성정에 노력을 더하라는 뜻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도 지금이나 옛날이나 사람들은 대부분 어찌할 수 없는 천명에 매달려 부질없는 애를 쓰면서도, 노력해서 변화시켜야 할 성정은 도야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글쓴이: 유민철
제공처: 한국고전번원
지당하신 말씀 ㅡ 이럴 때 '공자님 말씀'이라고 하지요 ㅡ 입니다.
변화해 가는 삶은 늘 새롭지요. 삶과 죽음은 늘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둘은 하나요 하나는 둘인 이처네요
언제나
내려놓고
사는삶!
그리
행하지 못하는게
인간사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