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인터넷에서 임의로 퍼 왔다.
지적소유권에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조심스럽고. 문제가 되면 사과드리면서 즉시 삭제 예정.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빌려온 것일 뿐.
두 사진은 똑같은 섬.
오늘은 2018. 1. 9. 화요일.
음력 동짓달 스물사흘.
달력으로 보아서는 바닷가 물이 그다지 쓰지 않겠다.
위 사진은 서해바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질 무렵 하늘과 바닷물이 노을 지는 모습을 잘도 표현했다.
아래 사진은 7월 백중사리 때, 갯물이 바다 저 안쪽으로 빠져나간 때일까?
갯물이 다 쓴 갯바닥에서 외지사람이 몰려서 갯것을 잡으려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오늘은 고층아파트가 밀집한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안에 있다.
그런데도 마음은 충남 보령시와 서천군으로 내려가 있다.
보령시 무창포 갯바다. 석대로를 배경으로 저녁해가 진다. 석대도 앞 갯바다에서 바지락 캐고, 자연산 굴을 딴다.
갯물이 빠질 때일까 아니면 갯물이 들어올 때일까? 바닷물이 좌우 양편에 잔뜩 있는데도 관광객들은 바다체험을 즐기고 있다.
나도 한 때에는 그랬다.
저런 노을을 바라보고, 석유등잔(남포등)을 켜서 갯바닥을 비치면서 갯것을 잡았다. 소라고동도 잡고, 박하지(민꽃게 : 꽃게보다 작음)한테 손가락 물려서 아파서 오만상을 다 찡그렸는데도 마냥 신났던 때가 있었다.
바닷물이 쭉 빠져나간 모래장불에 축구하며, 배구하며 뛰놀던 청년도 생각이 난다.
수영팬티 하나만 달랑 입고는 윗통 벗어 내던지고는 신나게 백사장 위를 달리며 뛰던 젊은이도 떠오른다.
지금은 가고 없는 청년, 젊은이가 생각이 난다.
무챙이 앞바다에는 독살이 있었다. 묵직한 돌덩어리를 높게 쌓아올려서 만든 자연석 돌그물이다.
돌로 담을 쌓았고, 밀물 따라 왔던 물고기는 썰물 때 어리버리하다가는 돌살(돌팍) 안에 갇혀서 작은 그물로 채 뜨는 어부한테 잡혔다.
무챙이 돌살. 지금은 없어졌다. 돌살을 무너뜨려서 남쪽 아래로 이전시켰다. 형식적으로, 눈가림으로...
무챙이 바로 아래 독산리에는 돌살이 흔적이 남아 있다.
돌살은 충남 서천군 비인만이 발달하였다. 장포리.
서천군 동백장 해수욕장을 폐쇄하여 갯바다를 메꿔서 서천화력발소을 지었기에 해수욕장은 사라지고 대신 북편 쪽에 춘장대해수욕장을 개설했다. 동백정에는 천연기념물 동백꽃이 붉게도 많이 피려고 한겨울인 지금에는 꽃몽오리를 올리겠다.
주꾸미.
봄철, 바닷가가 열리는 곳으로 알려진 무창포해수욕장 안 음식점에서는 주꾸미 축제를 연다.
젊은날 나도 주꾸미를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1974년 이른 봄. 마을 들판에는 외지에서 온 측량기사가 측량하고 있었다.
산골마을에 전기가 들어온다며 전봇대를 세울 위치를 측량하고 있었다.
나는 장화를 신고는 논에 들어가 측량기사가 가리키는 곳마다 깃대를 꽂았다. 수렁논도 들어가고... 추운 겨울날.
자진해서 공짜로 그들을 보조했다. 마을에 전기불이 들어온다잖여!
그날 저녁 그들을 따라서 무챙이로 나갔고, 어항 음식점에서 쭈꾸미를 얻어먹었다. 쫄깃쫄깃한 생선다리를 씹었다.
주꾸미, 쭈꾸미 : 둘 다 표준어.
2017년 지난해.
서해안고속도로을 타다가 무창포나들목으로 빠져나왔다. 지방도로 606와 연결된 길밖에는 '주꾸미 축제'라는 간판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그런데도 나는 무챙이 갯바다로 차를 돌리지 않았디.
그런 것은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 외지사람만 득실벅실거리기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두꺼운 양말 신고, 헌 운동화를 신고는 갯돌이 무진하게 많은 갯바다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날카로운 굴껍질이 널려 있는 갯돌을 뒤집어서 주꾸미, 소라, 낙지 등을 잡지 않는다. 호미로 갯모래를 박박 긁어서 바지락 등도 캐지 않는다. 바닷 안쪽으로 빠져나간 갯물이 멀리서 웅얼거리는 소리도 듣지 않는다.
깔끔한 운동화 신고, 깔끔한 옷을 걸치고는 그냥 먼 빛으로 바라볼 뿐이다.
늙은이 이방인이 되어.
어제는 보령시 청라면 소재지에 있는 일반산업단지조성사업 본부에서 우편물이 배달되었다.
무창포해수욕장으로 가는 지방도로 606을 확장한다면서 논이 조금 잘려나가니 토지보상금을 받아가라는 안내문이다. 재작년에도 산 논 밭을 수용당했는데도 아직도 미진했을까? 올해에는 70평 쯤 들어간단다. 논이 도로에 들어간다고. 보상금? 그게 엿 사 먹으면 딱 알맞겠다. 지대가 높은 산골마을이여서 벼농사를 지으려면 지하수 관정을 파서 물 뽑아서 벼농사를 졌다. 지하수 관정 보상비가 하도 적어서 답답하다. 논 임대해서 농사 짓는 김씨한테 보상비 전액 주어서 새로 관정을 파라고 해야 할 터.
나는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다.
산골마을의 텃밭농사, 갯바닥의 놀이(나한테는 놀이문화)을 자꾸만 잃어버리고 있었다.
내 귀에 들렸던 토박이말도, 촌사람들의 너털웃음도, 갯것을 잔뜩 든 함지박을 이고는 이웃마을로 팔러다니던 억척스러운 갯마을 아낙네도 이제는 다 사라졌다.
내 시골집에서 한 시간집 걸어가면 남포면 용머리갯바다 외가에 갈 수 있다.
외삼촌네 바로 뒷편 해송밭 너머는 용머리해수욕장. 불과 200m 뒷편에는 갯바다였다.
하얀모래가 정말로 고왔다. 잔잔한 모래가 한없이 바다 안쪽으로 이어졌다. 아무리 들어가도 아이들 배꼽까지 갯물이 차지 않았다. 큰외삼촌은 그물로 밀어서 빠각게(그물무늬금게)를 잡았다. 우리도 갯물 들어올 때 물속으로 손을 넣어서 얼른 집어냈다.
수십 년이 지난 뒤 지금은? 전혀 없을 게다.
이십여녀 전, 외지의 대형 모래채취 공장이 들어서서 갯모래를 대형통으로 빨아들였다.
모조리, 깡그리, 모래는 물론 갯돌도 깡그리 빨아들여서 육지로 퍼 날랐다. 지금은 황폐한 흔적만 남았다.
돈이면 그 어떤 짓을 해도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였고, 그 바다모래를 채취하도록 허가를 내 준 당시의 보령시장은 어떤 작자였을까? 바다를 망쳐버리는 데에 허가를 내 준 지방공무원의 어리석음을 탓해서 뭐하냐. 대자연은 한 번 훼손되면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다. 몇 천 년에 걸쳐서 형성되었던 갯벌 속의 생물들은 영원히 사라지기에...
이제는 그 외가에 가지 않는다. 큰외삼촌도 죽었고, 작은 초가집도 팔렸고, 큰외삼촌이 살았다는 근거로는 작은 비석 하나가 남았다. 외가 뒷편 해송밭으로 가는 텃밭을 마을에 기증해서 마을회관을 지었다고 한다.
나는 빠각게를 잊어버렸다. 그 예쁘던 바닷게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물무늬금게(빠각게).
첫댓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바닷가의 노을 !
환상적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다가 대천 아래 무창포나들목에서 빠져나온 뒤 서쪽으로 3km 가면 무창포해수욕장 제1주차장에 도착하겠지요.
수십년 전에는 제1주차장은 또랑이 있어서 망둥어가 정말로 많았지요. 모두 뒤엎고는 흙으로 채워서 땅을 만들었지요. 주차장이 6군데. 이른 봄철에는 주꾸미철. 무창포에서 남쪽으로 도 내려가면 독산해수욕장, 더 밑으로 내려가면 서천군 비인면 홍원항, 더 밑으로는 마량리포구 등이 줄줄이 이어져서 장항, 금강으로 내려가겠지요. 갯마을이 줄지어 이어지고...
@최윤환 문학카페라서 그럴까요? 관념적이고, 현학적이고, 알송달송한 시어가 많이 오르대요.
시골 정서를 지닌 나로서는 고개를 가우뚱. 짠맛이 하나도 없으니까, 비린내도 없으니까, 들꽃산꽃 냄새도 없으니까. 농사꾼의 땀냄새도 없으니까... 늙은이들만 사는 시골의 게으름이 없으니까.... 등의 이유로 조금은 답답해서 나를 달래려고 이런 사진과 글 올려봤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생물이 생동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