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목요일 맑음. 풍우란馮友蘭의 《중국철학간사》 한영漢英 대역본
지금 한국에서 중국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가장 손쉽게 찾아 읽어볼 수 있는 책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풍우란馮友蘭의 《중국철학[소]사》 책 [번역본]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을 영남대에 있다가 서강대학으로 옮겨간 정인제 교수가 한국어로 번역하여 대구의 형설출판사에서 이미 여러 차례나 판을 거듭하여 내었고, 작년에는 “간명한 중국철학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서울의 마루비라는 출판사에서 내었다. 이 책의 출판사 서평을 다음에 좀 옮겨본다.
펑유란은 중국 철학사를 집필하면서 여러 번 관점을 바꾸었다. 1934년 최초로 출간된『중국철학사』(상, 하)는 중국 철학 전체를 자학子學과 경학經學으로 나누었다. 제자백가 시대를 자학시대로 한당 이후 청말의 시기를 모두 경학시대로 간주한 것이다. 따라서 이『중국철학사』는 전권에 일관된 관점이 없었다. 그의 자학시대 설정은 선진시대에서 끝난 후스(胡適의 《중국 고대 철학사》와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과학과 논리학을 중시하는 서양 철학사를 기준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중국 역사상 각종 학문 가운데 서양의 소위 ‘철학’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을 골라 서술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명백히 서양 철학의 틀에다 중국 철학 내용을 끼워 맞춘 격의(格義)인 것이다. 경학시대를 말하면 역시 서양 철학의 분기 방식에 따랐기 때문에 동중서에서 강유위에 이르는 유학은 모두 중고 철학이며 근대 철학은 아직 맹아 단계라고 보았다. 그는 중국에서 전개된 불교 철학[佛學]도 역시 불경[Buddhist Canon]을 해석한 경학이라고 본 것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암울한 시대에 그는 정원육서(貞元六書) 즉 『新原道』, 『新理學』, 『新知言』, 『新世訓』, 『新原人』, 『新士論』을 지어 중국인의 철학 정신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 저서들을 통하여 주자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새로운 이학[新理學]의 체계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심학(新心學)의 대표자인 슝스리[熊十力]과 함께 신리학을 대표하는 현대 중국철학자가 된 것이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1946~1947년 『A Shor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를 쓰면서 자기는 철학사가(哲學史家)로 남기보다는 철학자로 평가해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이 간명한 중국철학사』는 바로 위의 영문 저서를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간명한 중국철학사』는 그 자신의 뚜렷한 철학, 즉『신원도』, 『신리학』 등의 관점에 의하여 쓰여 졌기에 앞의 『중국철학사』(1934년)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간명한 중국철학사』 2장에서 그는 중국 철학의 특색을 세간적世間的이면서 출세간적出世間的이라고 하였는데…
위의 서평은 좀 전문적이기는 하여도 풍우란이라는 중국 최근세 철학자의 저술에 대하여서 매우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가 쓴 상·하 2권으로 된 매우 두터운 철학사 책도 이미 한국에서 완역된 적이 있으며, 그가 남긴 매우 방대한 자서전[三松堂自傳]도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고 들었다.
정교수의 이 책 한국어 처음 번역은 영어로 된 이 책의 원본을 보고 번역한 것이나, 그 뒤 1985년에 중국에서 이 책의 중국어 번역본이 나왔고, 또 2004년에는 이 책의 영한대역본이 나오기도 하였다. 중국어 번역본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영한 대역본은 조복삼趙復三역, 천진사회과학원출판사에서 상하 2권으로 낸 것이다. 이 조씨는 신학자로 성공회의 중국 대표를 지내기도 하고, 사회과학원의 종교연구소 부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기독교 교직자로서 어떻게 대륙에 남아서 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고, 또 그런 사람이 이런 책을 번역하였다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유학儒學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과 중국 조선족 대학원 학생이 어울려 이 영한 대역본과 정교수의 한국어 번역본을 상호 대조하여 가면서, 이 책을 윤독하는 모임이 하나 생겨서 참석하여 보았다. 원래 한문으로 된 자료를 바탕으로 된 말을 영어로 적어 놓은 책을 다시 한문 원문을 찾아내고 중국어로 옮긴다든가 한국어로 옮긴 것을 보니 매우 재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문이나 중국어 혹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경우에, 영어 문장이 훨씬 길어지기 마련인데, 그렇게 말이 길어지기 때문에 짤막짤막한 한자 단어, 또는 문장의 뜻을 영어로 알기 쉽게 풀어놓는 좋은 점이 있기도 하지만, 영어로만 된 책만 가지고는 한문의 원 출전을 자주 확인하여 보지 않고서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아낼 수 없다는 답답한 면도 있다.
앞으로 매주에 한번 씩 모여서 3시간씩 윤독을 하기로 하였으니 아마 많은 것을 상호 대조하여 보면서 확인하여 낼 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