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열풍이 한풀 꺾이기 시작하면서 대형 SUV에도 가솔린 엔진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디젤 엔진 대비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과 조용한 실내, 승차감이 이 급 차량의 매력이다.
가솔린 대형 7인승 SUV로 소리 없이 조용히 인기를 끌고 있는 닛산 패스파인더를 시승했다.
이 차는 국내 대형 SUV 모하비와 비슷한 덩치를 자랑한다. 1986년 최초 개발돼 조금씩의 변화
를 거쳐 현재 모습인 4.5세대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32년간 이어진 패스파인더의 매력을 살펴보자.
엄청난 크기의 패스파인더
이 차의 최대 장점은 널찍한 실내공간과 의자 활용도가 좋다는 점이다. 2,3열 시트를 접으면 공간이 극대화된다. 스노우 보드를 간단히 실을 수 있다. 차체는 길이 5,040㎜, 너비 1,965㎜, 높이 1,765㎜, 휠베이스 2,900㎜다. 5m가 넘는 차체와 3m에 육박하는 휠베이스로 넉넉한 실내 공간을 뽑아냈다. 국내 대표 대형 SUV 모하비의 크기는 길이 4,930mm, 너비 1,915mm, 높이 1,810mm, 휠베이스 2,895mm로 높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더 크다.
특히 이 차량의 장점은 3열 시트에서 나온다. 3열 시트 탑승의 용이성을 고려해 탑재된 2열 슬라이딩 시트를 통해 쉽게 타고 내릴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2열 시트 위치 조절이 가능해 3열 공간을 더욱 넓게 할 수 있다. 3열 시트의 편의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무늬만 시트에 불과한 국내 SUV와의 차이를 보이는 장점 중 하나다.
외장은 조금 고치고, 실내는 그대로
이 차량의 디자인을 한마디로 말하면 날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투박한 느낌은 없다는 것이다. 크게 유행을 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유별난 디자인을 선호하지 않는 고객에겐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분 변경을 거친 얼굴은 4세대 모델과의 큰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디테일한 부분을 조금씩 손봤다. 새로운 V-모션 프런트 라디에이터 그릴과 부메랑 LED 시그니처 헤드램프 부분은 닛산 패밀리 룩을 계승했다. 새로운 디자인의 후미등과 리어 범퍼는 대담하고 날렵한 이미지를 구현한다.
실내는 기존과 같다. 경쟁 모델에 비하면 1세대 뒤처진 느낌이다. 센터패시아 재질은 모두 플라스틱을 사용했고 가죽에는 스티치 자국조차 심지 않았다. 기어 레버 주변의 우드 트림, 사이즈가 제법 큰 조작 버튼들은 구식 디자인이 느껴진다. 5천만 원대의 수입 대형 SUV라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지만 실내 디자인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다고 소재의 수준이나 마무리가 엉망인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편의사양
아쉬움을 남기는 실내 디자인이지만 편의사양은 막강하다. 기어 레버 옆에는 구동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다이얼과 통풍 시트 온도를 선택할 수 있다. 뒷좌석에도 개별 공조 장치와 히팅 시트를 적용했다. 각 도어에는 컵홀더와 수납공간이 넉넉하게 마련돼 실용성을 부각했다. 트렁크는 버튼식이다. 자동 개폐가 가능하다. 트렁크 하단에는 견인 고리를 부착해 보트와 캠핑 트레일러 등을 견인할 수 있다. 동급 차종 중 유일하게 트레일러 토잉 기능을 탑재해 2톤이 넘는 무게를 끌고 갈 수 있다.
또 대형 SUV의 단점으로 좁은 도로와 비좁은 주차장에서 거동이 불편하다는 점이 꼽힌다. 이러한 불편함을 360도 주변 확인이 가능한 어라운드 뷰 시스템을 통해 해소했다. 전·후면, 그리고 사이드미러에 달린 카메라로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차를 끌고 폭이 좁은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해 확인해본 결과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옵션으로 판명됐다. 대형급 SUV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능 중 하나다.
차체 대비 날렵한 몸놀림
파워트레인은 V6 3.5L 가솔린 엔진에 엑스트로닉 CVT로 구성했다. 성능은 최고 263마력, 최대 토크는 33.2㎏·m다. 이전과 같지만 닛산의 VQ 엔진은 미국에서 지난 1995년부터 10대 엔진에 최다 선정되는 등 우수성을 검증받았다. L 당 효율은 복합 기준 8.3㎞(도심:7.3㎞, 고속도로:9.9㎞)로 두 자릿수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가솔린 엔진의 장점은 디젤 대비 뛰어난 정숙성이다. 여타 대형급 디젤 SUV의 경우 배기량으로 인한 소음과 진동이 다소 거슬리는 편이지만 패스파인더의 경우 일반 가솔린 세단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한다.패밀리 SUV를 지향하는 만큼 이를 감안하면 주행 성능에서 단점을 찾기는 어렵다. 커다란 덩치를 이끄는데 3.5L 가솔린 엔진은 부족함이 없다. 차량의 디자인만 봤을 때는 둔한 주행 성능이 예상됐지만 가속 페달의 반응성은 굼뜨지 않다. 무리 없이 달려 나가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다. 페달에 힘을 줄수록 차체의 육중함이 몸으로 전달되지만 결코 가볍거나 불안하지 않다. 가속은 시속 100㎞까지 막힘이 없다. 시속 120㎞까지도 엔진 회전수는 2,000rpm 안팎을 유지할 정도로 힘이 넘친다.
대형 SUV에 민첩함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지만 패스파인더의 조향력은 무겁지 않게 세팅됐다. 이를 통해 덩치에 맞지 않는 몸놀림을 구현한다. 물론 곡선 구간에서는 덩치로 인한 부담감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편이다.
뉴 패스파인더는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단일 트림으로 운영된다. 가격은 5390만 원이다. 국산차 동급 경쟁 모델인 기아차 모하비(4110만~4915만 원)와 쌍용차 G4 렉스턴(3,350만~4,550만 원)과 비교해 경쟁력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