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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속한 사람들
(출 19: 1-6)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당연히 하나님께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다면 누가 우리를 지켜주고, 인도해주고, 보호해주고, 이끌어 주실까요? 당연히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보호하고, 인도하실까요?
1.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였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아멘.
어린이가 태어나면 대부분 그 아이를 업어서 키웁니다. 업어서 키운 이유는 아이가 평안하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업어 인도하였다는 것은 어떤 뜻이 있을까요? 독수리의 새끼 훈련의 모습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등에 업고 상공으로 올라가 떨어뜨립니다. 위기를 느낀 새끼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날개 짓을 합니다. 바위나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날 찰나가 되면 어미가 쏜살처럼 날아와 새끼를 받아 다시 상공으로 올라갑니다. 이런 동작을 반복하는 동안 새끼의 날개는 힘을 얻고, 나도 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새 중의 왕으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떨어뜨렸다가 다시 업고, 그렇게 훈련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런 방식으로 훈련하셨습니다. 40년간 이스라엘을 광야 훈련소에 입소시킨 후 강훈련을 실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하십니다. 주기적으로, 때로는 가혹하리만큼 실패, 고통, 아픔 등으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그 훈련에 합격하면 정예 병사가 될 수 있지만, 실격하면 낙오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뎌야 합니다.
욥기 23:10절을 보면 욥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금의 순도를 14K. 18K, 24K로 구분합니다. 24K가 가장 순도 높은 금입니다. 다시 말하면 연단받는 도수가 가장 높은 금일수루고 값이 비싸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 역시 금강석으로 있을 때보다 깎고, 닦고, 갈아서 영롱한 빛을 발하게 될 때, 그 값이 올라갑니다. 사람도 연단받고, 훈련받고, 고난과 실패의 관문을 통과해야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요셉도, 다니엘도, 바울도 연단받고 훈련받아 하나님의 쓰임받는 큰 그릇이 될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5:3-4절을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환난, 인내, 연단을 거쳐 소망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소유를 삼아 주셨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아멘.
왜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이스라엘이나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3:1절은 보다 더 명확하게 소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조성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시편 139:13절도 그 사실을 증언합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이러한 정통적 진실에 반기를 들고 “사람이 만들었다. 아메바가 진화해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주인이다”라고 말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이며, 유물론자들이며, 인본주의자들입니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소유”이거나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의 소유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일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 집이 있고, 월세가 있고, 전세가 있습니다. 내 집은 소유권이 내 것이기 때문에, 10년이든, 100년이든 내 맘대로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짐을 옮겨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월세는 매달 일정액을 집주인에게 줘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면 옮겨가야 합니다. 전세는 일정액을 일시불로 지불하고 일정 기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전세 역시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옮겨 다녀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소유권이 바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도, 내가 가진 것도,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권력도, 영광도, 재물도 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고 챙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다가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하지만 다윗왕은 권력도, 영광도, 부귀도, 재물도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고 고백했습니다. 결과는 늙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귀를 누렸고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다 내 것이라”고 믿으면 그 시간부터 불안하고 초조해집니다. 이유는 내가 지켜야 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일찍이 깨달은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이 관리하십니다.
집 이야기를 다시 해보겠습니다. 아파트에 세 들어 살면 모든 관리, 수리, 책임을 집 주인이 맡게 됩니다. 수도가 터져도, 가스라인이 막혀도, 지붕에서 비가 새도 집 주인의 책임입니다. 따라서 세든 사람 마음대로 주방을 뜯어고치고, 집안에 칸막이를 하고, 창문을 새로 내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세 들었을 때 그대로 살다가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야 합니다.
내 인생, 내 삶,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남의 집이라고 해서 때려 부순다든지 기둥을 뽑는다든지 하는 행위는 절대 금물입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청지기”라고 합니다. 집을 관리하며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를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권력 잡은 자들은 권력을, 부자들은 재물을, 지식인들은 지식을, 예술가들은 재능을,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올곧게 관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주인이 주고 간 달란트를 제대로 관리한 사람들에게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땅을 파고 달란트를 묻어 둔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하고 “가진 것은 빼앗고 밖으로 내쫓아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이 관리하신다고 해서 함부로 취급해도 안되고 모른 척 해도 안됩니다.
본문 5절을 보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조건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하나님 말씀 순종하고 그 뜻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3. 제사장 나라를 삼아 주셨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아멘.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세계 만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그들에게 주신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계를 구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헬라는 철학과 예술로 세계에 기여했고, 로마는 정치와 법으로 기여했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로, 일본은 소니로, 한국은 최첨단 반도체로 기여했습니다.
주경가 킷텔은 “이스라엘의 공적은 종교였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세계에 전달했다. 그것은 위대한 역사적 공헌이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 이스라엘의 소산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효성선교교회가 내세울 것이 무엇일까요? 세계 최초, 최고의 자랑거리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관리하십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을 삼아 주셨습니다.
믿고, 감사하고, 전진합시다.
출처: 설교와 예화나라(효성선교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종민
하나님의 약속
출 19: 1-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감격적인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출애굽 사건입니다. 무려 430년간의 애굽 종살이를 청산하고 애굽을 탈출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석 달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따라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만간 가나안땅에 도착할 줄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지 석 달 후에 가나안 땅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겨우 시내광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3달 동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왜 40년씩이나 걸려서 통과하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하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곳입니다. 광야는 단순히 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가는 중간지점이 아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훈련과 연단을 받는 장소였습니다. 훈련과 연단을 위해서는 4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생활동안 애굽의 때를 벗어버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갖추게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40년간의 광야생활은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성경에 보면 광야는 훈련받는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40일동안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하시면서 광야생활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친 이후에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광야는 대단히 중요한 곳입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40년간 양을 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는 대역사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미리 40년동안 광야생활을 경험케 하시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서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생활을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광야생활을 거치게 함으로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내하면서 우리가 좋은 사역자로 준비되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한국사람들이 갖고 있는 나쁜 습관 중에 하나가 성격이 급하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빨리빨리 서둘른다는 것입니다. 한국사람이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하는 것도 이러한 성향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인은 사발면을 좋아합니다. 사발면을 먹기 위해서는 먼저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넣고 3분 정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3분을 못 참고, 1분이 지나면 혹시 익었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뚜껑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1분도 채 못되어서 또 뚜껑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 익지 않은 라면을 먹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급한 성격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이 당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도 어쩌면 이러한 한국인의 급한 성격이 빚어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이든지 정확하면서도 신용을 얻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한데, 빨리빨리주의로 가다보니까 적당하게 일을 하게 됩니다. 끝만 중요시하고 과정을 중요시하지 않다 보니까 일을 빨리 처리하기는 하는데, 품질을 높이기 힘들게 되고, 불량품도 많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뢰를 잃게되고, 인기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이러한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인들은 기도를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국교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여기에서도 한국인의 급한 성격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빨리 응답 달라고 떼를 쓰면서 기도합니다. 물론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든지 금식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 떼를 쓰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비상용 기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기도가 비상용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기도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문제만 생겼다하면 하나님께 빨리빨리 해결해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리고 응답이 늦어지게 되거나 응답이 안오면 낙심을 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위험한 기도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기고 나서 떼를 쓰며 기도하기 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인 기도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3가지의 축복을 받게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다(5절).
사람은 자기가 누구의 소유이냐에 따라서 자기의 가치가 달라지게 됩니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의 소유가 된다면 이것은 사람의 종이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위대하시고,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분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면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부동산을 사거나 집을 사면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합니다. 소유권 이전을 안하면 내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인화교회에 첫 목회를 나간 것이 1996년 12월 31일 이었습니다. 인화교회는 시골에 있는 교회치고는 잘 지어진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건축할 때 몇 가지 지켜지지 않은 것들로 인해 교회건축한지 6년이 지나도록 준공검사를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건물은 물론이거니와 교회를 건축할 때 매입한 땅에 대해서도 소유권 등기가 안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짬짬이 교회준공과 교회 주차장 부지에 대한 소유권 이전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2년 정도를 노력한 끝에 교회준공과 주차장소유권 이전을 끝마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교회건물과 토지에 대해 감리교유지재단에 소유권이전을 했습니다. 소유권을 이전하고 나니까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소유권이 하나님께로 이전될 때 하나님께서도 상당히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소유권을 하나님께로 등기이전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소유가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2.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6절).
제사장의 역할은 하나님과 사람을 중재하며 사람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서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사제의 도움 없이 성경을 읽을 수 있으며, 사제의 도움 없이도 기도함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사와 평신도간에 기능적인 구분은 가능하지만 신분상의 구별은 없다는 것이 바로 루터의 만인제사장주의요, 종교개혁 신앙인 것입니다.
바울도 제사장을 특권화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베드로전서 2:9에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다"라는 고백을 하면서 모든 사람을 제사장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날 수많은 민족과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택함받아 하나님께 속한 여러분들께서도 왕같은 제사장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에서 온전한 제사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온전한 제사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나라가 21세기의 제사장 나라가 될줄로 믿습니다.
3.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6절).
하나님의 세 번째 약속은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입니다(카도쉬). 왜냐하면 깨끗하지 않은 영과 육을 갖지 못하고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후6:14-18).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는 거룩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중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순된 삶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아직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백성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가 사회를 신앙적인 사회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바닷물 속에 11퍼센트의 소금기만 있으면 바닷물은 절대로 부패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바닷물의 원리를 사회와 기독교인과의 관계에 적용해볼 때 사회에 11퍼센트의 기독교인이 있다면 사회는 썩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11페센트가 훨씬 넘는 25퍼센트의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여전히 부패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25퍼센트의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실제로 기독교인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은 11퍼센트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어제 저녁에 미국에서 엄청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뉴욕에 있는 110층짜리 무역센타 건물 2동이 여객기 자살테러로 완파되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국방성 건물도 테러를 당했습니다. 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까지 없었던 엄청난 테러입니다. 저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왜 이런 테러가 일어났을까를 생각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경고"가 아닐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난 청교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미국은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기독교인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삶을 살지를 않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여 복을 주셨으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아서 이러한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백성은 교회 안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백성은 세상 속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교회에서 신앙으로 무장하고, 세상에 나아가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때 이것이 바로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너는 거룩한 백성이다"라고 인정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지킬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세 가지 약속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며, 셋째는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인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약속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해방
출애굽기 19: 1-6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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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광복절이 76돌을 맞고 있지만 1945년 8월 15일에 일어난 그 사건은 단지 시작에 불과한 것이지 해방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더욱이 해방은 되었지만, 그 해방은 우리들에게 남북이 분단되는 분단의 시작이기도 하였고, 아직도 우리는 남북의 분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들이 우리들에게 해방은 완성된 사건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에게 8.15 해방을 말하는 것은 마치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된 느낌이 있지만 우리의 오늘을 말할 때에 그 날을 빼놓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는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8.15는 여전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에게 있어서 8.15가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어떤 눈으로 그 날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 입장이 있겠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날이 가지는 의미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의 역사를 바라볼 때, 그 모델이 되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아직도 진행 중인 해방의 과정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어떤 것인가. 잘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되고 마침내 가나안에서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우게 되는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여 줍니다.
그것은 참 어리석고 무모한 선택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던 사람들인데 하나님은 왜 세상에 있는 많은 민족들 중에서 그들을 선택하셨던 것일까요?
우리는 그들을 히브리인들이라고 부르는데, 히브리라는 말 자체가 노예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당시 주변에는 이집트 말고도 강하고 장래성 있는 민족들이 많았는데... 유독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던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노예였을 뿐 아니라 고분고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을 가리키는 말이 있지를 않습니까?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서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하지요.
아주 건방지고 교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말인데, 하나님은 바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주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세상에 드러내도록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하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 민족들... 그러한 나라를 좋아 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도구로 불러 주시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과는 정 반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약한 사람들, 힘이 없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성격이 아주 못된 사람들... 급하고 참을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고 전혀 훈련 될 수 없는 사람들. 광야라는 학교에서 40년을 공부하였지만, 그들의 모습은 광야 생활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골치 아픈 사람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남의 밑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일까요?
그것을 하나님은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드러내십니다.
그들은 지금 시내산 기슭까지 왔습니다. 열 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바로를 굴복시키시고, 그들을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길로 인도해 내시고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자 이번에는 홍해바다는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광야로 접어들게 하셨고 이제 더 이상 바로의 군대는 없었습니다. 물론 간헐적으로 광야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위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이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내시고는 시내산 기슭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그들을 향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그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밝히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v.4)
물론 이것은 그 당시에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국한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거울삼아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삶의 여정이나 우리 민족이 걸어 온 길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런 공통적인 고백이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떤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곳에 살던 사람들에게만 국한 된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빠져 나오던 그 날을 기념하는 그들에게는 그 사건은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며, 나아가서 이미 자신들도 그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경험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유월절>을 기념하는 저녁식사를 중요한 풍습으로 지킵니다.
<유월절>이 시작되는 저녁이면 모든 가족들이 참여 한 가운데 가정에서 이루어지는데 가장은 이런 말을 하면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리라. 지금은 노예이지만 내년에는 자유인이어라!’
당연히 그들은 이집트를 빠져나오고 홍해를 건널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치 그 때 그 자리에 자기들이 있었던 것처럼. 더 나아가서 그 때 그 놀랍고 믿을 수없는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해방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그 일을 다시 행하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이 힘이 없어서 타향을 전전하고 있지만 출애굽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자기들에게도 임하고 있음을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이 우리들이 8.15 해방을 받아들이는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애굽 사건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허락한 놀라운 축복이라면 우리에게 있어서 8.15해방도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해방뿐이겠습니까?
물론 어둠의 시간도 많이 있었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밀어닥친 남북의 분단이라든지,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서 싸웠던 전쟁이며 극심한 혼란과 견디기 힘들었던 가난과 배고픔들, 우리가 짧은 시간 동안 겪어왔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올림픽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 주간에 한 신문에 서울에 있는 <장충체육관>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체육관이 이미 세워진지 50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체육관이 전쟁 후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에 <필리핀> 사람들이 원조를 해서 그것이 지어졌다는 이야기는 그 기사를 보고서는 처음 알았습니다.
때 마침 <필리핀> 의 수도 <마닐라>에 큰 홍수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200만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소식도 접하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엔 우리가 <필리핀> 사람들이 보기에도 불쌍해서 원조를 받았었는데 이제는 그런 모든 것들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함석헌 선생은 8.15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떡’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축복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오늘처럼 놀라운 발전과 성장을 누리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하는 것, 오늘 우리의 이러한 모습 가운데는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 밑바탕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우리가 맞이하는 <광복절>은 우리 모두가 이런 은혜를 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축제와 같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6.25의 어수선한 시절에 우리나라를 찾아서 평생을 바친 프랑스 출신의 드봉 신부라는 분이계십니다. 그분은 이번에 <만해 재단>에서 주는 상을 받기 위해서 다시 한국을 찾았는데 참 가슴 아픈 지적을 하였습니다.
자기가 만난 한국 사람들 중에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광복절> 절이 우리들에게는 감사와 행복을 다시 찾는 기회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시다.
이렇게 발전하고 대단한 성과를 거두는 나라나 민족이 요즘 별로 없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대중가수인 싸이가 발표한 뮤직 비디오 ‘강남스타일’마저도 온 세상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적으로 무려 2,000만 명 이상이 그것을 보았다고 하니까요.
이런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는지? 그 비결은 바로 여기에 담겨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어미독수리처럼 업어서 인도하였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시 찾을 때 우리나라는 정말 살맛나고 활력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민족을 사랑해주셔서 참 감사 합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생각이나 계획은 단지 그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셔서 자기들 마음대로 살라고 하는 것에는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어떤 특별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속마음을 시내산 기슭에서 이스라엘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것이지요.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v.5)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들을 아주 특별한 사람들로 삼고 싶다. 나는 너희들과 특별한 약속을 맺어서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께 요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에게 제안하시는 것이지요.
그러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은 이 세상에는 여호와 하나님 같으신 분이 없다는 것... 하나님은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이루어내시며,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을 수 있는 힘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하나님은 어떤 형편과 조건 속에서도 믿을만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은 얼마나 매력 있고, 멋진 분이십니까?
만일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약속을 하시는 것이지요.
“나는 너희들을 정말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고 잘 지켜 주겠다... 내가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모든 좋은 것들을 다 너희들에게 베풀어 주겠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요구하십니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v.5)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노예살이에 지쳐 있는 이스라엘... 그들을 불러내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지 먹고 입고 사는 문제에 얽매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를 하나님은 만들어 보고 싶으셨던 것이지요.
우리는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통해서 선포하신 말씀들 속에서도 본문으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한 메아리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태6:33)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세상에 오셨을 때 그는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 식민지 생활과 어려움 속에서 모두가 지쳐있었고 그들은 오로지 무엇을 먹고 입고 사나? 하는 현실 생활에 대한 염려와 걱정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처음에 하나님이 의도하시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어도 그들이 단지 먹고 입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살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마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착할 때에 벌어지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가치나 자존심을 우리는 서로에게서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단절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신 후에 가장 염려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현상이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등지고 오로지 자신의 욕심에만 집착할 때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일 수가 없고,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들이 종살이하던 이집트와 다를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지내는 것이 불쌍해서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이제는 이스라엘 안에서 같은 형제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은 노예가 되어서 비참한 생활로 전락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나라는 몰라도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용납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22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른바 계약법전으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키라고 명하신 말씀들입니다.
‘너희는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겠다.’(출22:22-23)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삶... 그것은 이웃들에게 베풀고 섬기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면 모든 삶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이지요.
그런 대표적인 계명이 추수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추수를 할 때에도 좀 남겨 놓도록 하셨습니다.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귀퉁이에서 자란 곡식이나, 추수의 과정에서 떨어진 이삭들... 이런 것은 그냥 밭에 두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그네들이 찾아 와서 그것을 줍게 된다는 것입니다.(레위기23:22)
저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해 동안 애써서 농사짓고, 그것을 거두게 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참 힘든 일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눈앞에 곡식을 두고서 그냥 돌아 설 수가 있고, 떨어진 이삭을 그냥 두고 돌아설 수가 있는 것인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삶도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인데... 사소한 것 같지만, 지키는 일은 쉽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먹을 것이 없어서 힘들어하다가.. 혹시나 하고 추수가 끝난 밭을 기웃 거리는 나그네들의 심정은 어떠한 것일까요?
구석에 남아 있는 곡식을 보았을 때, 바닥에 떨어져 있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이삭을 보았을 때... 거기서 그들은 단지 배만 부른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나처럼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해 주고 배려해 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래서 여전히 세상은 살만한 곳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마음까지 따뜻해지지 않았을까요?
해방의 감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집트를 빠져나오면서... 홍해바다를 건너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정말 감동하였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동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생생하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하여 줄 사명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처럼 그렇게 엄청난 사건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이지요.
하나님께서 권하시는 것처럼... 자기가 혼자서 독차지해도 모자를 것이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어려운 너를 생각하면서 내 것을 좀 포기하는 것... 나는 좀 더 가난해 지면서라도 너를 풍성하게 하고 너를 배려하려 하는 것...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엄청난 해방의 감동을 너와 더불어 나누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풍습은 일찍이 우리들에게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착하고 너그러운 농부들은 아예 씨앗을 심을 때부터 한 알은 하늘의 새를 위해서, 또 한 알은 땅속에 사는 벌레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머지 한 알을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 심었다고 하지요.
그런가 하면 <삼전(三田)>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들의 탄압을 견디다 못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 바로 만주 벌판이라고 하지요.
한국 사람들의 끈기와 열정은 참 대단해서 도저히 벼농사를 짓기가 어렵다는 그곳에서 그들은 벼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고생 끝에 거둔 곡식을 셋으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걸 <삼전(三田)>이라고 합니다.
그 중 하나는 독립 운동을 하는데 바칠 “군전(軍田)”이었고, 또 하나는 학교를 세우는 데 쓸 “학전(學田)”이었고, 나머지 삼분지 일을 “生田(생전)”이라 해서 자기들의 삶을 위하여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을 사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면서 가진 꿈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세상에서는 여전히 작은 나라라고 하여도 그들이 가진 문명이나 문화는 세상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여도, 그들만은 남다르게 아주 독특하게 살기를 바라셨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런 희망을 이렇게 피력하셨습니다.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v.6)
언제나 그들을 해방하여 주시고 , 오늘까지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와 감동이 넘치는 사람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떤 조건 가운데서도 이렇게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동을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든지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나라와 민족이 되기를 희망하셨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8.15 해방의 감동을 선물하신 목적도 여기에서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그 해방은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것인지... 우리는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해방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그런가하면 이제 우리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제사장으로서 그런 하나님이 주신 해방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굶주리고 헐벗는 나그네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애써 지은 농사이지만, 일부터 좀 떨어 뜨려 놓기도 하고, 그냥 남겨두기도 하는 아름다운 마음... 이것이 곧 하나님이 선물하신 해방의 감동을 전하여 주는 일입니다.
* 우리가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은 진정한 해방... 남과 북이 하나 되어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해방! 온 세상을 감동으로 몰아넣는 해방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