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세겜에 정착함
(33: 12~20)
* 본문요약
에서가 야곱에게 함께 세일로 가자고 말하지만, 야곱은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짐승 떼도 많으니 천천히 가겠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에서가 그의 부하 몇 명을 머물게 하겠다는 것도 거절합니다. 이렇게 하여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야곱은 숙곳에 자기 가족이 머물 집과 가축 우릿간을 짓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평안히 이르렀으나 그가 하나님께 서원한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성에 머무르기로 작정합니다. 야곱은 세겜 추장 하몰의 아들들에게 은 100개를 주고 밭을 사서 거기에 장막을 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습니다.
찬 양 : 360장 (새 324) 예수 나를 오라 하네
351장 (새 321) 날 대속하신 예수께
* 본문해설
1. 에서가 세일로 떠나감(12~17절)
12) 에서가 말했습니다. “자, 이제 함께 가자. 내가 앞장서마.”
13) 야곱이 에서에게 말했습니다. “형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연약합니다.
또 내게는 새끼 딸린 양 떼와 소 떼가 있습니다. 하루라도 무리하여 지나치게 몰고 가면 모든 가축들이 다 죽을 것입니다.
14) 그러니 형님께서 이 아우보다 먼저 가십시오. 나는 이 가축들과 아이들이 가는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세일로 가서 형님께 가겠습니다.”
15) 에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부하 몇 사람을 남겨서 너와 함께 가게 하겠다.”
야곱이 말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형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받아주신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16) 그리하고 그날 에서는 길을 떠나 세일로 돌아갔습니다.
17) 하지만 야곱은 숙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자기 식구들이 머물 집을 짓고,
가축 우릿간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 이름을 숙속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2. 야곱이 세겜에 정착함(18~20절)
18) 이와 같이 야곱이 밧단아람으로부터 돌아와서 평안히 이르렀습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 세겜성에 무사히 도착해 그 성 앞에 장막을 쳤습니다.
19) 야곱이 장막을 친 그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100개를 주고 샀습니다.
20) 야곱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습니다.
-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100개를 주고 밭을 샀다(19절) :
야곱이 세겜 땅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땅에 정착하고 살기로 작정한 것을 말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를 평안히 돌아오게 하시면 벧엘에 와서 그 돌기둥을 성전 삼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서원하였으나, 서원한 벧엘로 가기를 거부하고, 세겜 땅에 거주하기로 합니다(묵상포인트 참조).
- 엘엘로헤이스라엘(20절) :
‘엘-엘로헤-이스라엘’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 묵상 point
1. 에서와의 동행을 거절하는 야곱
야곱과 화해한 에서는 이제 동생 야곱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야곱에게 세일에 가서 함께 살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른 에서와 함께 살고 싶지 않습니다. 에서는 완전히 신앙을 떠난 사람입니다. 오직 이 세상의 것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어린 자녀와 가축들을 핑계 대며 천천히 따라가겠다고 하고는 전혀 다른 곳인 숙곳과 세겜 땅으로 갑니다.
누군가와 삶을 같이하는 것은 대단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처녀 때는 신앙생활을 잘했는데 결혼한 후 20~30년 동안 주일 예배 한 번 드리지 못했다고 하는 분들을 가끔 만납니다. 예배드릴 시간이 되면 그때 일어나 밥을 차려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밥을 차려주고 나면 예배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결국 예배드리지 못한 것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여자들과 결혼하지 말 것을 그렇게 무섭게 경고하며 말씀하셨고, 바울도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고후 6:14).
이것은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기느냐’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에서처럼 세상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보다 팥죽 한 그릇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사람 야곱은 세상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복이 더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에서를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 적용 :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십시오.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을 하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2. 세겜성에 머문 야곱 : 평안할 때 조심하십시오.
야곱은 20년 전 벧엘에서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창28:20~22) 라고 서원했었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으로부터 평안히 돌아왔습니다(18절). 그러므로 그의 서원대로 벧엘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히 돌아왔음에도 그 서원을 망각하고 가나안의 도시 숙곳과 세겜 땅에 머뭅니다. 그가 머문 숙곳은 본래 “오두막집들”이라는 뜻으로 잠시 거쳐만 가야할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땅을 사서 영구 거주할 집과 우릿간을 지어 세겜에 이르기까지 생활기반을 확대해 가며 그곳에서 약 10년~15년을 머물렀습니다. 본래 유목민들은 장막을 짓는데 야곱은 은 일백 개로 땅을 사서는 그곳에 집을 지었습니다.
야곱이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성에 머무르는 이유는 첫째 그 들판이 넉넉하고 목초가 많아 살기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입니다(창34:21). 목자에게 좋은 목초지는 욕심나는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이유는, 18절에 “평안히”라고 했듯 모든 시련이 다 사라지고 평안했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죽을 고생시키던 라반에게서 해방 되었고, 자기를 죽이려던 형의 원한도 풀었습니다. 거기에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대한 재산에 거기다 살기 좋은 곳까지 만났으니 야곱에게 무슨 괴로울 것이 있겠습니까? 야곱은 인생의 편안함을 누리려는 욕심을 품게 됩니다. 그러기에는 세겜성 만한 곳이 없습니다.
성경은 어려움을 겪을 때보다 평안을 누릴 때가 더 위험하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다윗 역시 그가 왕이 된 후 소란스러웠던 나라를 평안하게 한 후, 밧세바를 취하고 그의 남편을 죽이는 일을 범합니다. 야곱 역시 20년간 그를 짓눌렀던 괴로움에서 벗어나자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벧엘보다는 육신의 평안을 주는 세겜성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 적용 : 힘들고 어려운 중에 있을 때보다 내 기도제목이 이루어졌을 때가 더 위험하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3. 참으로 어이없는 세겜에서의 야곱의 예배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 개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33:19~20). 야곱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는 것만 보면 역시 하나님의 사람 야곱이구나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입니까? 이것이 왜 어이없는 일인지를 정리하여 봅시다.
1) 하나님을 향하여 꾀를 부리는 야곱
엘엘로헤이스라엘’, 번역하면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주 감동적인 고백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마음속에 하나님께 서원했던 믿음의 자리 벧엘은 없습니다. 오직 세겜성 주변의 아름다운 목초지와, 가나안의 도시 세겜성이 있을 뿐입니다. 야곱이 그곳에 제단을 만들었으니 성전도 있고, 예배도 있고, 아름다운 신앙고백도 있습니다. 적당히 제단도 쌓고, 아름다운 고백도 있고, 예배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다 갖추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겜에서 누리는 평안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벧엘로 가지 않은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행위에 불과합니다. 꾀쟁이 야곱이 이번에는 하나님을 향하여 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벧엘로는 가지 않으면서 적당히 예배 행위를 통해 무마시키려는 것입니다. 어린시절 공부하기는 싫고, 그러니 적당히 공부하는 척 했던 것처럼, 야곱은 그럴듯한 예배행위로 거룩한 사람인 척 한 것입니다.
2) 마음에 다른 것을 품고 있으면서 드리는 예배는 뇌물이다.
야곱의 마음속에는 세겜에서의 평안한 삶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 뇌물입니다. 겉으로는 아주 경건하고 거룩한 예배 행위를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으면 가짜 예배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성경에서는 ‘뇌물’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가 드리는 헌금도 뇌물이요, 이런 자가 드리는 예배도 뇌물인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 때에 바리새인들이 속에는 물질에 대한 탐욕을 갖고 있으면서, 거룩한 예배의식에 참여하여 거룩한 백성인척 했던 것처럼, 야곱은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신앙고백을 하면서 그의 마음속에 담긴 세겜성에 대한 마음을 달래려 하고 있습니다.
3)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예배도 뇌물입니다.
야곱이 숙곳과 세겜에서 집을 지은 것은 “자기를 위하여”(17절)였습니다. 그가 벧엘로 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도 자기를 위하여 한 것이었습니다. 세겜에서의 야곱의 신앙행위는 자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를 위해 예배드리는 것 역시 예배가 아니라 뇌물입니다.
4) 허물과 죄에 빠져 있으면서 드리는 예배는 뇌물이다.
본문의 말씀을 조금 더 확장시켜본다면, 허물과 죄에 빠져 있으면서 드리는 예배 역시 뇌물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허물과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편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다른 한편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죄를 짓고 기도하고, 죄를 짓고 예배를 드리는 상황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긴다면 이 또한 뇌물인 것입니다.
※ 하나님 앞에 순전한 예배를 드리십시오.
너무나도 오랫동안 죄가 습관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산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기도하는 순간만이라도 자신의 허물과 죄를 진정으로 아파해야 하고, 예배드리는 순간만이라도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떠난 삶을 살고 있으면서 아파하지 않습니다. 게으름과 나태함, 세상 즐거움에 빠져 있는 자신의 상태를 아파하지 않으면서 그저 예배 의식에만 참여합니다. 그리고는 거룩한 행위에 참여했으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적용 : 기도하는 순간만이라도 순전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나의 허물과 죄를 아파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러다가 또 죄를 짓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그 순간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정직한 마음을 갖고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아파하며 기도하면 그 순전한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십니다. 또 예배드리는 순간만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예배드리십시오. 자신의 걱정거리나 예배 후에 만날 사람에 대한 생각이나 그밖에 어떤 것이라도 다른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 기쁘시게 해드릴 생각만 하며 예배를 드리십시오.
4.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한 때 조심하십시오.
야곱처럼 내가 오랫동안 기도했던 일이 이루어지고, 근심거리가 사라져서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에 진정한 평안이 찾아왔을 때 조심하십시오. 야곱도, 다윗도 바로 이런 때에 미혹되었습니다. 마귀는 내가 마음을 느슨하게 하고 있는 틈을 타서 잠자고 있던 나의 본능을 건드립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마귀의 덫에 걸리고 맙니다.
* 기도제목
1. 힘들고 어려운 일이 끝나고 기도제목이 이루어졌을 때 더 위험하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2.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순전한 기도와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출처: 가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송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