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어 있던 성을 1731년(영조7년) 동래부사 정언섭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의 읍성을 쌓았으니 둘레가 17,219척(7.7km)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의 성곽 규모는 바로 이 때 쌓은 것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은 <내주축성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비는 원래 남문 밖 동래경찰서 일대인 농주산에 있었으나 지금은 동래읍성 북문 앞에 이전되어 있다.
동래읍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 人生門 및 전시에 적이 모르도록 비밀스럽게 물자를 이송할 수 있는 暗門이 있고 각 문에는 門樓가 있었는데,동문을 志喜樓, 서문을 心成樓, 남문을 無憂樓, 암문을 隱一樓라 하였다. 또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양 날개가 달린 듯 좌우로 뻗은 성벽인 翼城을 설치하였는데, 앞쪽의 洗兵門과 뒤쪽의 朱鳥門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서문·암문·북문에는 성문의 보호를 위해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앞에 반원형으로 쌓은 甕城을 부설하였고,
성 안의 지형이 높은 곳에 설치하여 성 밖의 적을 살피거나 전투를 지휘하는 곳인 將臺,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지은 望樓및 15개소의 마지막 방어선인 堡樓를 갖추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 때 도시 근대화를 빙자한 성벽 철거로 경관이 달라져 버렸고, 조선인의 저항 의식을 죽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동헌, 객사등 주요 관청을 공공기관으로 사용하고 , 독진대아문등의 금강공원 이전, 그 외 門과 樓閣의 소멸로
옛 읍성의 자취가 많이 훼손 되었다.
현재 동래 지역 도시 경관은 조선 시대 경관과 일제 강점기 때의 식민지 경관, 그리고 현대의 도시 경관이 중첩되어 형성되어 있다.
남아있는 조선시대 경관으로는 복원된 서장대-북문-북장대 일대와 동장대, 동헌, 장관청, 송공단 그리고 금강공원으로 옮겨진 일부 시설물들이다.
동래읍성의 복원을 위하여 동래구는 총 268억원의 예산으로 7만2860㎡의 부지를 매입한 뒤 길이 1962m의 동래읍성 성곽을 복원했다.1979~1999년 성벽(634m), 북문, 동장대, 서장대, 북장대 등을 복원ㆍ보수하고
2002~2003년에 서장대 해체ㆍ복원(41.82㎡), 體城 31m, 성곽에서 몸을 숨기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인 女牆 64m 복원했다.女牆에는 성 외부를 향해 총 등을 쏠 수 있게 '총안'이라는 구멍을 여장 하나마다 세 개를 뚫어 두었다.
동래읍성 人生門의 경우 동래구 칠산동 332-1 일대 2873㎡의 동래읍성 터에 8.91㎡의 문루 1개 동과 옹성 11.05m, 주변 성곽 49.7m를 옛 형태로 되살렸다.
인생문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전설이 있지만 임진왜란 때 이 문을 통해 성을 빠져나간 시민들이 모두 살아 돌아와 "사람을 살려낸 문이"이라는 의미가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는 설과 당시 성내에는 무덤터를 둘 수 없어 동래성내에서 지금의 명장동에 있었던 공동묘지로 나아가는 유일한 문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인생무상이란 말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부산지하철 4호선 수안역이 이용승객에 비해 규모가 쾌 큰 편인 이유는 수안 驛舍 건축을 위해 터파기 하다가 조선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동래읍성과 垓字 흔적이 2005년 부산 지하철 4호선2단계 충렬로 공사 구간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성벽과 함께 기와와 백자, 옹기조각 등 문화재가 출토된 것이다.
2000년 이후 동래읍성 내 각종 개발행위 때 실시하는 발굴 조사를 통해 , 조선전기 읍성과 임진왜란 당시의 성곽 흔적 , 임진왜란 이후 쌓은 평지 지역의 성곽 흔적, 그리고 조선말기에 修築한 성곽을 확인함 으로써 동래읍성 전체의 정확한 범위, 규모 등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동래읍성과 관련된 건축물로는
*북 문
마안산 기슭 명륜동과 복천동을 연결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1980년 복원, 정면 3칸, 측면 2칸의 1층 문루로서 동래읍성 북쪽을 통해 침입하는 외적을 감시하고 물리치기 위함.
*동 장 대
현재의 충렬사가 있는 망월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 1980년 복원, 정면 3칸, 측면 2칸의 1층 기와집으로 동래읍성의 동쪽을 관찰하던 전망대
*서 장 대
현재의 동래향교 뒷산 일명 伏虎山에 있는 전망대. 1980년 복원,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기와집으로 동래읍성의 서쪽을 관찰하던 전망대
*북 장 대
복천박물관 뒤의 마안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 1999년 복원, 정면 3칸, 측면 2칸의 1층 기와집으로 동래읍성의 북쪽을 관찰하던 전망대
동래읍성과 관련된 문화재로는
*동래 남문비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21호(높이 225cm, 폭 121cm).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지키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1670년 (현종 11) 동래부사 정석이 성 남문 부근 농주산에 세운 비로서 1979년 도로확장공사 때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옮겨 세움. 일명 동래충렬비라고 불리던 이 비석의 표면이 거의 대부분 한겹 벗겨져 나가 비문은 윗부분 일부만 남아 있으나 원본의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은 임진왜란 때의 전투상황과 그 결과를 여러 자료를 참조하여 기록
*내주축성비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6호 1731년(영조 7)에 동래부사 정언섭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성을 修築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
비문의 앞면에는 축성에 관한 사실을 20행으로 기록, 뒷면에는 축성에 종사한 임원의 명단을 새겨놓았다.동래성 연구의 정확한 자료가 되며, 조선 후기 축성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독진대아문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5호(정면 3칸, 옆면 1칸의 단층 기와문, 보호구역 10,902㎡).
동래부동헌 앞 바깥 대문으로 1636년(인조 14) 동래부사 정양필이 동래 부동헌 충신당과 같이 세운 것으로 추정.
우리고장에 있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관아의 대문으로 부산 지방의 대표적인 건물.
동래구는 독진아문의 옛 터인 현 농협중앙회 동래지점 앞에 표석을 세워 원 위치를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