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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초(不肖)
닮지 않았다는 뜻으로, 매우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낮출 때 쓰는 말이다.
不 : 아니 불(一/3)
肖 : 닮을 초(月/3)
이 성어는 못나고 어리석은 그런 사람을 말하기도 하고 어버이의 덕행이나 사업을 이을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 또는 자기를 겸손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부모님 전상서’로 시작되는 전 시대의 편지투에는 으레 ‘불초 소자(不肖小子)’가 따라 다녔고, 대중가요 ‘불효자는 웁니다’ 에서 처럼 ‘불초(不肖)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식으로 쓰인다.
또 ‘불초 소생 인사드리옵니다’라고 쓰일 때에는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란 뜻으로 자기를 낮추는 말이 되기도 한다.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 상(上)에 나오는 말이다.
요(堯)임금의 아들 단주(丹朱)가 불초(不肖)했던 것처럼, 순(舜)의 아들도 또한 불초(不肖)했다. 순(舜)이 요(堯)임금을 도운 것과 우(禹)가 순(舜)임금을 도운 것은 해를 거듭한 것이 많아서 백성들에게 혜택(惠澤)을 베푼것이 오래되었고, 계(啓)는 착해서 공경(恭敬)스럽게 우왕(禹王)의 도(道)를 계승(繼承)할 수 있었으며, 익(益)이 우왕(禹王)을 도운 것은 해를 거듭한 것이 적어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푼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
순(舜)과 우(禹)와 익(益) 사이에 시간적(時間的) 거리의 길고 짧은 것과 그 자식(子息)들의 불초(不肖)함은 모두 하늘이 시킨 것이요, 사람의 힘으로는 할 바가 아니다. 특별히 하는 것이 없지만 저절로 되는 것은 하늘이요, 사람의 힘으로 달성하려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은 천명(天命)이다.
요(堯)임금은 아들 단주(丹朱)가 불초(不肖)해서 천하(天下)를 이어받기에는 부족(不足)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권력(權力)을 순(舜)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순(舜)에게 제위(帝位)를 넘겨주는 것은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이익(利益)을 얻고 단주(丹朱)만 손해(損害)를 보지만, 단주(丹朱)에게 제위(帝位)를 넘겨주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손해(損害)를 보고 단주(丹朱)만 이익(利益)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堯)가 붕어(崩御)하고 삼년상(三年喪)을 마쳤을 때, 순(舜)은 요(堯)임금의 뜻에 따라 천자(天子)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그래서 단주(丹朱)에게 천하(天下)를 양보(讓步)하고 자신은 남하(南下)의 남쪽으로 피했지만, 제후(諸侯)들이 봄과 가을에 천자(天子)를 알현(謁見)하는 조근(朝覲) 때마다 단주(丹朱)에게로 가지 않고 순(舜)에게 왔고, 소송(訴訟)을 거는 사람들도 단주(丹朱)가 아니라 순(舜)에게로 해결(解決)해 달라고 왔으며, 송덕(頌德)을 구가하는 자들은 단주(丹朱)가 아닌 순(舜)의 공덕(功德)을 구(求)하였다.
그러자 순(舜)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뜻이로다!” 그리고서 도성(都城)으로 가서 천자(天子)의 자리에 올랐다.
앞의 글에서 불초(不肖)는 부모(父母)를 닮지 않았다는 뜻인데,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각각 아들이 똑똑하지 못해 왕위(王位)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由來)한다.
요(堯)임금은 아들 단주(丹朱)가 현명(賢明)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에 단주(丹朱)에게 왕위(王位)를 물려주지 않고, 비록 단주(丹朱)는 억울할지 몰라도 백성들에게 이익(利益)이 되므로 순(舜)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는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단지 친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요(堯)와 순(舜)임금의 성군(聖君)다운 깊은 뜻이 담아 있는 고사성어이다.
부모(父母)를 닮지 않았다는 뜻의 불초(不肖)가 현재는 자기를 낮추는 또는 불효자(不孝子)라는 의미(意味)로 사용된다. 어리석은 자식(子息)에게 부모(父母)가 평생 땀으로 일구어 낸 재산(財産)을 물려주어 대대손손(代代孫孫)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단지 장자(壯者)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위(王位)를 물려받았다가 정사(政事)를 그르친 사례(事例)도 있다.
또 장자(莊子) 인간세편(人間世篇)에도 보인다. '불초(不肖)란 닮지 않은 것이고, 재능이 없는 것이며, 어질지 못한 것이고, 바르지 못한 것이며,재주가 없는 것이다.'
중용(中庸) 제4장(章)에서는 이런 구절(句節)이 보인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가 밝혀지지 않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또 어진 사람은 지나치고, 모자라는 사람은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不肖者不反心).'
이 불초(不肖)란 말은 이 밖에 관자(菅子), 순자(筍子), 사기(史記), 한서(漢書) 등 많은 책에 나온다.
⏹ 불초(不肖)
닮지 않았다는 뜻으로, 매우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낮출 때 쓰는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 상(上)에 나오는 말이다.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丹朱)는 불초하고, 순(舜) 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 임금이 요(堯) 임금을 도운 것과 우(禹) 임금이 순 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되었으며, 요와 순 임금이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푸셨다.'
앞의 글에서 불초는 부모를 닮지 않았다는 뜻인데, 요 임금과 순 임금이 각각 아들이 똑똑하지 못해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요(堯) 임금은 아들 단주(丹朱)가 현명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에 단주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비록 단주는 억울할지 몰라도 백성들에게 이익이 되므로 순(舜)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는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단지 친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요와 순 임금의 성군다운 깊은 뜻이 담아 있는 고사성어이다.
부모를 닮지 않았다는 뜻의 불초가 현재는 자기를 낮추는 또는 불효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어리석은 자식에게 부모가 평생 땀으로 일구어 낸 재산을 물려주어 대대손손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단지 장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위를 물려받았다가 정사(政事)를 그르친 사례도 있다.
한자에서 肖(초)는 ‘닮다’ 는 뜻, 그래서 초상화(肖像畵)는 얼굴 모습에 닮게 그린 그림을 말한다. 물론 불초(不肖)라면 ‘닮지 않았다’ 는 뜻이다. 그런데 사전(辭典)을 찾아보면 ‘못난 자식(子息)’ 으로 되어 있다. 어찌하여 ‘닮지 않았다’ 고 ‘못난 자식’ 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정신적인 면이다.
오늘날에는 위인이 많기도 하다. 또 주위를 둘러보면 본받을 만한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옛날에는 평생을 두고 전범(典範)으로 삼아야 할 분으로 몇몇 성인이나 조상, 또는 아버지 정도가 있었다.
즉 자식으로 태어나 이들의 위인(爲人; 됨됨이)을 닮지 못할 때 그것은 불재지인(不材之人)이 된다. 한마디로 쓸모없는 인간인 셈이다. 특히 아들로서 아버지를 닮지 않았을 때 못난 아들, 심하면 불효 자식으로 매도되었다.
둘째, 육체적인 면이다.
죽음에 대한 초기 유가(儒家)의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는 내세(來世)라는 대안을 제시한 불교나 생사를 동일시했던 도가(道家), 또 부사약(不死藥)을 추구하면서 끈질기게 대항했던 도교(道敎)와는 많이 달랐다.
未知生, 焉知死.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랴.
제자가 죽음에 대해 묻자 대답한 말이다. 곧 그는 죽음보다는 삶에 더 애착(愛着)을 쏟았다. 하지만 죽음은 두렵고 피할 수 없는 것, 공자같은 성인이야 치지도외(置之度外) 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어림없는 법, 어쨌든 대안이 필요했다.
여기서 제시된 것이 불후관념(不朽觀念)이다. 육신은 죽되 이름을 남기면 영생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 방법이 셋이 있으니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으로 이른바 삼불후(三不朽)다.
그러나 이름 남기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삼불후(三不朽) 어느 하나 보통 사람들로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그래서 또 다른 대안이 필요했으니 후손을 통하여 육신의 연속을 꾀하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육신의 복제다. 마치 아메바나 박테리아가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시킴으로써 생명을 이어가는 것처럼. 곧 자식은 자신의 복제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처럼 자식을 복제품으로 여긴 이상 아무리 많은 자식을 낳았어도 자신과 닮지 않았다면 영생의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닮아야 했다. 자식이 부모를 닮지 않았을 때 그것은 곧 불효를 의미했던 것이다.
아버지를 이기려면 열정을 가져라
아버지가 47세 생신을 맞았다. 군에서 휴가받아 집에 온 다음 날이다. 아침 생신상을 받은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만큼 살았구나"며 탄식했다.
상을 물린 아버지가 처음으로 밝힌 가족사다. 내 고조부는 96세, 증조부는 79세로 장수했다. 두 분과 달리 조부는 47세로 단명했다. 내 조부는 고조부가 81세, 증조부가 41세 때 태어났다.
남들이 고손자를 얻을 나이에 손자를 본 고조부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젖 뗀 뒤부터는 방을 같이 쓰고 밥 먹을 땐 겸상했다. 고조부는 손자를 서당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쳤다. 친구를 사귀거나 바깥 출입도 막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케 했다. 그랬던 고조부는 내 조부가 14살 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한 훈육을 계속했다. 소학,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아니라 당신이 좋아하는 글자만 비판적으로 가르쳤다. '내 후손들은 벼슬길에 나서지 말라'는 집안 유훈 때문에 과거에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는 "그러니 네 조부는 동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만큼 할 줄 아는 게 오직 학문 뿐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네 조부가 형님과 내게 당신의 할아버지가 가르친 방법대로 살아가며 필요한 글자를 모두 직접 가르쳤다. 우물이 떠오르면 관련된 모든 문장을 일일이 써가며 가르쳤다. 당신이 싫어하는 글자는 가르치지 않았을 뿐더러 쓰지도 못하게 했다"고 술회했다.
아버지는 이어 "네 조부는 군에서 다리를 다친 나한테는 집을 떠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며 더 오래 사시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해준 그 말씀이 나를 살렸다. 내가 아버지 덕에 이만큼 살았다"며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만큼 살았다. 이제 아버지의 빚을 갚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아버지가 사시지 못한 날들이다. 아버지 몫까지 살아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47세 생신의 의미를 새겼다.
그날 아버지는 조부가 자주 인용한 말을 가르쳐줬다. 고사성어 '불초(不肖)'다. '닮지 않았다'는 뜻이다. '불초 소생'이라고 자주 썼지만, 의미는 그날 처음 알았다.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낮출 때 쓰는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 상(上)에 나온다.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丹舟)는 불초하고, 순(舜)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우 임금이 순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되었으며, 요와 순임금이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푸셨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두 분 아들이 똑똑하지 못해 왕위를 물려 주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현명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에 비록 자식이 억울해 할지라도 백성에게는 이익이 되므로 순에 물려준 것이다.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단지 친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요와 순임금의 성군(聖君)다운 깊은 뜻이 담긴 고사성어다.
아버지는 "네 조부는 네 증조부의 학문을 높이 샀다. 원래 싫어하셔서 비록 저작은 남기지 않았지만 따라가기 어려웠다고 하셨다. 얼굴이나 행동은 닮았을지 몰라도 학문은 불초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조부의 유언도 처음 말씀했다. 유언은 '열정(熱情)'이다. 아버지는 "네 조부가 불초하지 않으려면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열정은 오래지 않아 식는 게 흠이다'며 식지 않게 간직하라고 유언하셨다"고 했다.
불초를 '아버지를 이기는 일'이라고 해석한 아버지는 "네 할아버지 열정은 끓어올랐지만 끝내 펴보지는 못한 불행한 열정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아버지는 "열정은 자신에게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깊은 관심과 몰입을 뜻한다. 열정은 타고난 기질도 있어야지만, 애써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정을 식지 않게 하는 불씨는 동기다. 동기는 올바른 가치관이나 뚜렷한 신념에서 나온다. 꺼지지 않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걸 배우고, 그걸 스스로 조금씩 성취해 가는 것이다.
이루고 싶은 목표를 먼저 세우고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에 온통 집중해야 한다. 자칫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열정이 꺼지거나 식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성취감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런 요소들이 결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열정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지만, 열정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은 노력, 실력, 기회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해 성공을 만들어낸다. 성공하려면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다함 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손주가 제 아버지만 못하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려면 서둘러 일러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 열정이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