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뉴스 283/1027]'전전전前前前 직장' 친구들의 내방
나를 기억하고, 나를, 나의 집을 보려고, 멀리 한양에서 예까지 오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참말로” 고마운 일이다. 어제가 그랬다. 전前직장도, 전전前前 직장도 아니고, 전전전前前前 직장인, 한때는 내로라하는 유수한 일간지 D일보의 동료친구 네 명이 우리집에 들이닥친 것이다. 한 친구는 진주에서, 세 친구는 서울에서 KTX를 타고 익산역에서 환승하여 도착한 게 오수역 13시 3분. ‘전전전 직장’이라고 하지만 스물여섯부터 마흔다섯까지 스무해의 성상星霜을 함께 했기에 더욱 끈끈한 사이. 55년부터 60년생까지 모두 어슷비슷 또래이다. 이제껏 인연을 이어온 것도 사실은 드물지 않겠는가. 귀한 인연이다.
생각해 보면, 그 직장시절은 좋았다. 지금이야 고유명사가 되어 ‘조중동’‘기레기’ 어쩌고 하며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빌어먹을’ 언론이 되었지만, 80년대를 관통하면서 제법 할 말은 하고 목소리도 높이며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얼마쯤 기여한 바도 있었다. 영화 ‘1987’을 보았으리라. 그때의 D일보 Y기자는 내 입사동기가 아니었던가. 흐흐. 한때는 김중배-최일남 양대 필봉筆鋒의 격주 칼럼이 ‘장안의 지가紙價’를 높이기도 했다.
아무튼, 접대가 문제이다. 단순히 우리집만 삐죽 보고 가게 할 수는 없는 일. 코스를 잡았다. 일단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의 ‘이대째 순대집’에서 순대국밥을 먹은 후(그 할머니가 최근 죽어 문을 닫았다하여 차선책으로 바로 옆집의 연다라순대국밥집으로 향했다), 근처 채계산釵笄山의 출렁다리가 올해 3월에 개통되었다는 데 거기를 가자. 국내에서 가장 길다는, 가운데 기둥이 하나도 없는 270m의 출렁다리는 장관이었다. 높이는 75m에서 90m. 몹시 무서웠다. 중국 장가계의 유리잔도가 생각나고, 왜 그런지 나이가 들수록 고소공포증으로 무섬을 타는 나로서는 앞장을 섰지만, 쉽게 발걸음이 떼지지 않았다. 결론은 별 게 아니었고 좋았다. 모두 만족하는 듯했다.
일행이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었으므로, 전주에 사는 깨복쟁이 친구에게 SOS를 쳤다. 오늘 내 전전전 직장 친구들이 오는데 네가 차로 안내 좀 해달라고. 친구가 왕년에 남원에서 공무원을 했기에 인근 지리나 역사를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맛집 순대국집도 친구의 소개였다. 이어서 남원의 명소 광한루廣寒樓를 찾았다. 그 유명한 이도령과 춘향이의 데이트장소인 광한루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으리라. ‘글’을 좋아하는 친구들이기에 안내판 하나도 건성으로 보지 않는다. 세상에나, 어제 처음 알았다. 조선조 태종-세종때의 명신名臣 황희 정승이 귀양을 왔을 때 ‘광통루’를 지었는데, 정인지가 ‘광한루’라고 이름을 바꿨다는 것이다.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을 1626년 인조때 새로 지었다는데, 그 역사를 전혀 몰랐다. 제법 웅장하다. 조선 최대의 러브스토리인 ‘춘향전’은 어느 임금시절의 이야기인가, 잘 모르겠다. 허나 월매집도 복원돼 있어 실제 있었던 이야기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얼마 전 춘향 영정을 친일파가 그렸다하여 수십 년만에 철거하여 춘향사당은 문이 닫혀 있다.
해마다 ‘미스 춘향’ 선발대회가 열리는 곳인 완월정. 명창 오정해가 ‘미스 춘향’으로 세상에 등장했다던가. 오작교를 걸어본다. 엄청 큰 잉어들과 색색깔 금붕어가 노니는 연못은 요천수가 곧바로 들어오기에 깨끗하다. 한번쯤 둘러볼 만은 한 곳이다. 나도 몇 수십 년만에 두 번째로 와본다. 친구들도 모두 기자인지라 전국 어디 안가본 곳이 없지만, 그냥 스쳐갔기에 광한루를 거닐어보기는 처음이란다. 잘됐다. 이쯤에서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 나 ‘옥중가’ 한 대목이 나와야 마땅하지만,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된다. 인근 상가에 ‘변사또 대장간’이 눈에 띈다. 대장간에서 쇠를 달굴 때 암행어사의 ‘매우 치렷다’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친구가 남원에 대해 약간의 브리핑을 했다. 만인의총萬人義塚의 역사적 진실, 복원되지 못하고 빈 터로 있는 만복사(김시습의 만복사 저포기라는 한문소설을 기억하시리라), 교룡산성 등의 문화재를 설명하는데, 우리나라 문화재 복원이나 관리의 문제점, 예산의 불평등한 배정 등으로 이야기는 결말이 난다. 역시 30여년을 공무원으로 일한 친구답다. 벌써 5시다. 서둘러야 한다. 상강霜降이 지난 이 계절, 낮이 짧아 6시만 돼도 캄캄하다.
이윽고 도착한 일행은 본채 툇마루에 앉아보더니 전망이 좋다며 극구 칭찬하여 은둔거사인 나를 부러워한다. 서둘러 그릴을 꺼내 목살 8인분을 굽다. 이럴 때 꼭 ‘선수’들이 자청하여 나오는 법이다. 사진부장 출신인 친구가 자기자 잘 구운다며 집게를 든다. 나야 간단히 상만 차리면 된다. 6명이 둘러앉아 이렇게 귀한 만찬을 들다니, 꿈만 같다. 그것도 내 고향집 사랑채에서 말이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면 속이 보이는 걸까? 그동안 밀린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누구는 어쩌고저쩌고, 누구는 어떻게 아프고, 누구는 끝내 잘못 풀리고, 누구는 아주 잘 나가고, 끝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는 친구들 앞에서 못부르는 노래이지만 열창을 하는 등 밤이 깊어간다.
내일(사실은 오늘)은 성수산의 상이암과 치즈테마파크 그리고 옥정호 국사봉 전망대로 안내하리라. 점심은 옥정호식당에서 민물새우탕을 대접하면 일행은 모두 깜빡 죽을 터. 그리고 나의 도반道伴이 기다리는 장성 축령산의 세심원과 귀틀집 그리고 발효타워를 구경시켜주리라. 오늘의 일정도 기대된다. 그보다 먼저, 이 글을 쓰고 난 뒤에 나는 아침밥과 국을 끓여, 이 인간들의 입을 만족시켜야 한다. 바쁘다. 허나 매우 즐거운 일이다. 이렇게 시월도 간다.
첫댓글 이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난다.
아니 우리 엄마 생각이난다.
우리엄마 막내인 나에게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너는 나 죽으면 젖 떨어진 강아지여!
형제지간도 아무소용없어.
니 힘으로 세상을 헤쳐가며 살아가야하는
젖 떨어진 강아지여!
그러니 나쁜 친구들 사귀지말고 평생을 같이가야할 친구를 사귀어야헌다.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세상살다보니 형제들은 가끔 소식이나 전하고 가까운 형제는 그나마 한번씩 만나지만 그렇지않은 형제는 일년에 한두번 만나는가?
큰형님 82세 나 64세 조카들도 환갑이 가깝고한가족이 다 모이기는 만난지 오래되어
부쩍 큰 손주들은 얼굴도 잘 모른다.
그러나 가까운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질 카톡질 희희낙낙 하루만 못봐도 죽을듯
떠들고 난리니 형제보다 가까운게 친구라는 울엄마 말씀이 사실인가보다.
같은 동네에서 보름사이로 같이 태어난 친구가 형제보다 더 가깝게느껴지는게 잘못 생각은 아니겠지?
좁은방에서 한 이불 덥고 방구냄새 맡아가며 장난치다 혼나던 그 시절 형제가 너무나 그립다.
이제 우리도 늙어가는 시절이니 친구가 더 그립다.
새벽부터 친구의 글에 답장을 꼬박 꼬박하는것도 친구가 너무 좋아서이다.
친구아
사랑혀~
따르릉님,친구론에 공감 만표드림. 냉천부락의 최부자집이 일파만파 뜨고 있군요. 기자친구들의 입과 눈도 호강하고,울 독자도 감성 호강이에요. 덕분에 따스한 하루를 보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