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살다가,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아홉수가 넘기기 전에 결혼하라는 전화였다.
세 명의 여자와 만났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자들이라는 기억 뿐이었다.
일본은 봄방학이 3월에서 4월초까지다.
식목일날 아내를 만났다.
세 명의 여자와 맞선을 본 후, 난 아내를 선택했다.
아내가 어떤 여자인지 무얼 하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집이 어딘지 전혀 몰랐다.
나의 선택이 옳바른건지도 관심도 없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내를 선택했다. 다만 느낌 하나로.
아내 이외의 여자 둘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내보다 이뻤던 같기도 하고, 아내보다 더 많이 말들을 잘 했던 것 같은 기억도 난다.
아내는 말이 없었다.
내 선택의 기준은 오로지 앤무스비(縁結び)였다.
‘무스비’ 라는 말의 뜻은 결합하다, 결혼하다 라는 의미가 있는데, 일본 초밥을 만드는 의미로도 쓰인다.
초밥은 活魚가 아닌 여러 가지 鮮魚를 주로 사용하는데, 때로는 생선이 아닌 채소 과일 고기 가공식품 등 그때 그때 다르다.
쌀로 만든 밥과 다른 반찬을 얹어져 같이 묶어서 먹는 것이 초밥의 기원이다.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지금의 동경 에도를 건설하고, 길거리 음식이 지금의 초밥의 시작이다.
초밥은 철저히 서민음식이었다.
초밥의 레시피가 무스비다.
그때 그때 어쩌다가 생겨난 반찬으로 김으로 때로는 김 없이 얹어서 주먹으로 쥐어서 같이 먹는 것이 초밥이다.
나는 그래서 초밥을 어쩌다가 같이 먹는 음식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정확히 불교의 因緣과 같다.
음식을 먹어서 앞으로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식자재만으로 적당히 만드는 것이다.
무스비, 즉 인연은 내가 살아오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내 삶의 인문학이다.
그렇게 아내를 만났다.
미래, 현재, 과거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더구나 결혼이라는 의미 남편이라는 의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내를 서너번 만나고 일본에 갔던 것 같다.
강릉 시내 포장마차만 돌아다녔다.
처음 만난 사이라 별로 할 이야기도 없었다. 나는 술만 먹었고 아내는 내 옆에서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일본 가기 전날이었던 것 같다.
강릉 시내만 돌아다니다가, 시내버스를 타고 소금강으로 갔다.
그때는 소금강 가는 길이 험난했다.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았다. 소금강에 가서도 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입구에서 도토리묵을 안주로 해서 술을 마셨다.
날이 어둑해져서 강릉 시내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시내 버스가 끊겼다.
그리고 아내와 같이 잘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민박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아내와 같이 잠을 자고, 그것이 내가 아내와 결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조건이었다.
그날 밤, 아내와 성행위의 여부는 밝힐 필요도 없었다.
단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앤부스비’가 된 것이다.
어쩌다가 젊은 남녀가 소금강 민박에서 야합을 하여 부부가 된 것이다.
내 삶의 불교적 철학관과 정확히 일치했다.
설악산으로 신혼여행 하루 갔다오고 일본에 왔다.
특별하게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잘 살았다. 싸우지도 않았고 돈 걱정도 없었다.
아내와의 잠자리도 불만이 없었다. 착한 아이들을 낳아서 잘 키웠다.
그리고 아내가 죽었다.
아내가 죽고 그렇게 괴로울 줄은 나도 몰랐다.
모든 삶을 내팽개쳤다. 겨우 살아나서 아내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내와의 앤무스비는 거기 까지였다.
그렇게 막연히 살다가 그렇게 헤어지는 것이다.
사랑 따위는 없어도 행복하게 살았다. 아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