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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 리볼버
콜트 사에서 생산한 리볼버 계열 권총 목록. 콜트사는 현재 주로 AR-15계열 소총에 주력하며 권총은 거의 만들지 않지만, 1836년 설립한 목적이 리볼버를 생산하는 것이었고 원통형 탄창을 쓰는 현대적 리볼버를 최초로 생산했다. 그리고 다양한 양질의 리볼버를 생산하여 현대식 리볼버의 원조라 할 수 있으며, 한때는 리볼버의 역사가 곧 콜트의 역사며 콜트의 역사가 곧 리볼버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콜트의 정책 및 여러가지 내외적 사정으로 인해, 콜트는 리볼버는 커녕 권총을 비롯한 민수용 총기는 거의 만들고 있지 않으며, 오늘날엔 S&W과 스텀 루거를 미국산 리볼버의 명가로 쳐주는 실정이다. 콜트가 현재 생산하는 민수용 권총은 싱글액션 아미 단 하나뿐이며, 그나마도 장난감 수준의 퀄리티라는 평이다. S&W이 꾸준히 신제품을 내놓는것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굴욕.
콜트의 리볼버는 타사 제품에 비해 다소 보수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다. 애당초 창업주인 새뮤얼 콜트가 싱글 액션에 비해 더블 액션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더블 액션 리볼버를 제품화하길 거부하여 더블 액션으로의 전환이 상당히 늦었고, 총 프레임의 강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같은 구경의 타사 리볼버보다 다소 큰 프레임을 사용하는 편이며, 편리한 푸시포워드 실린더 릴리스 대신에 다소 불편한 풀백방식의 실린더 릴리스를 고수하였다. 이처럼 보수적인 설계를 고수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콜트사는 처음부터 군납 총기 제작에 그야말로 올인한 회사라는 점과 관계가 없지 않다. 신뢰도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최신 설계와 기술을 도입해 인기몰이를 하는 쪽이 유리한 민수용 총기와는 달리, 군납 총기의 제1덕목은 신뢰도이다. 군대는 편의성이나 성능이 약간 미흡하더라도 신뢰도가 높은 총기를 선호한다. 때문에 콜트의 리볼버 제품들은 상술한 대로 다소 보수적인 설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콜트 리볼버들을 시대별로 살펴보기로 하자.
3. 1830년 ~ 1860년대
본격 총잡이 시대. 서부 개척과 남북전쟁으로 인해 총기의 수요가 급증하였으며 보다 빠르게, 보다 강하게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새로운 병기 개발에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수요에 부합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다양한 아이디어와 접근법으로 총기를 활발히 개발하던 시기이다. 아직 대세는 화약과 탄자(총알)를 따로 장전하는 수발총과 뇌관총이었으며, 한발 발사하고 나면 재장전을 해야 하는 단발총이 대부분이던 시절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한번 장전해서 여러 발을 발사할 수 있는 연발총을 원하였으며, 선원으로 일하던 새뮤얼 콜트는 선박의 밧줄을 감는 장치인 캡스턴 메커니즘을 보고 회전식 약실관(실린더) 구조에 착안하여, 직접 총기 제작 사업에 투신하게 된다.
1846년 설계, 1847년 생산된 6연발 싱글액션 리볼버. 워커 콜트라고도 부른다.
새뮤얼 콜트가 만든 총이긴 하지만 콜트 제작사라는 회사가 아직 없었으므로 "M1847" 같은 정식 명칭은 없다.
당시 기준으로는 .44 구경으로(요즘 기준으로 측정할 경우 .457구경) 실린더와 챔버가 매우 커서, 탄자 한개당 60그레인(3.9그램)의 화약을 장전하도록 되어 있었다. 때문에 워커는 흑색 화약을 쓰는 구식 권총 중에서 가장 위력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의 파산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새뮤얼 콜트에게 재기의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은 텍사스 레인저였던 새뮤얼 해밀턴 워커 대위로, 그는 패터슨의 열악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연발 권총"의 잠재력에 주목하여, 콜트에게 레인저용 부무장으로 1000정의 강력 연발권총을 제작해 줄 것을 의뢰하였다.
발주자의 요청에 따라 강력한 6연발 권총으로 만들어졌기에, 콜트 워커는 총연장 40센티미터, 무게 2킬로그램의 거대한 권총으로 태어났다. 게다가 레인저들은 기본으로 라이플 1정 + 권총 2정 + 군도(사벨)를 표준 무장으로 장비하였기 때문에, 2킬로그램짜리 권총을 2정이나 갖고 다닌 셈이다.
패터슨의 실패를 교훈삼아 만들어진 워커였으나,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첫번째 문제는 그 엄청난 파워인데, 화약을 워낙 많이 사용하는 총이라 약실관(실린더)이 폭발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특히 실전 상황에서 급히 장전하다가 화약을 흘릴 경우, 뇌관에서 발생한 불똥이 흘린 화약을 타고 번져 다른 실린더 내의 화약까지 전부 점화시켜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틀림없이 실린더가 폭발해버린다.
두번째 문제는 장전 레버가 자꾸 흘러내린다는 것. 워커에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 장전 레버를 고정하는 핀이 총열에 달려 있는데, 총을 발사하다 보면 그 충격으로 장전 레버가 핀에서 빠져나와 버린다. 이러면 장전봉이 챔버 안으로 들어오므로 실린더의 회전이 되질 않는다.
콜트 워커는 원래 달랑 1100정만 생산된데다, 이처럼 실린더가 폭발해버리는 등 파손이 많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초 레어 아이템이다. 2008년에 미-멕시코 전쟁 참전 베테랑의 가문에서 전수해온 한 자루가 92만 달러에 경매에 낙찰된 바 있다.
발주자였던 워커 대위는 안타깝게도 콜트 워커 피스톨이 나온 해(1847년)에 멕시코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하지만 콜트 워커는 새뮤얼 콜트가 재기할 기회를 주었다. 콜트는 텍사스 공화국으로부터 권총 1000정을 제작하라고 받은 제작비용을 가지고 권총 1100정을 제작하였으며, 남긴 100정을 민수 시장에 내다 팔았다. 이를 통해 챙긴 돈으로 콜트는 1847년 "콜트 특허 총기 제작사(Colt's Patent Fire-Arms Manufacturing Company)"를 설립하고 다시 한번 군납 총기사업에 뛰어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을 맡은 영화 무법자 조시 웰스에서 주인공 조시 웰스의 주무기인데, 그 크고 무거운 워커를 쌍권총으로 들고 싸우는것으로도 부족해 무려 4개씩이나 소지하고 있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워커의 총성이 일품이다.
라이트노벨 트리니티 블러드의 주인공 아벨 나이트로드가 주로 사용하는 권총의 모델로 보인다. 구식인데다 아벨의 덜렁거리는 성격상 운 좋게 맞추는듯 하지만 사실 사격솜씨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온갖 괴물들이 판을 치는 이 세계에서도 빛을 발한다.
모델명 M1848. 콜트 브랜드로 출시된 최초의 리볼버라 할 수 있다. 이름대로 1848년에 출시되었으며, 콜트 워커의 단점을 개량하고 경량화한 리볼버이다.
당연히 군납용으로 만들어진 권총이지만, 정작 만들고 보니 미-멕시코 전쟁이 끝나버려 전쟁 특수는 누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1850~1860년대의 인기 리볼버였으며, 남북전쟁 때까지도 쓰였다.
기병용 부무장이므로 드래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기병은 드래군(dragoon)이 아니라 캐벌리(cavalry)다!" 싶겠지만, 미국에 우리가 말하는 "캐벌리"가 생긴 것은 1856년으로 이 권총이 나온 때로부터 8년 뒤다. 1848년이면 미군의 기병 병과에는 용기병(1830년 창설)과 기마소총병(1840년 창설)밖에 없던 시절이다.
워커의 지나친 파워를 약간 디튠하여 화약의 양을 50그레인으로 줄이고, 장전봉 이탈을 막기 위해 잠금쇠를 다는 등 다양한 개량이 가해진 리볼버이다. 이렇게 신뢰성이 향상되었기에 콜트 드래군은 평이 좋아서, 미 육군이 기병용으로 2만정 가량을 납품받았고 민간인들도 많이 샀다. 특히 멕시코 전쟁을 겪은 미 남동쪽 주민들은 대부분이 이 권총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1860년 콜트 아미 모델 1860이 나오기까지 미 전역을 지배한 권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외에도 은하철도 999의 테츠로(철이)가 쓰는 코스모 드라군의 모티브가 이 리볼버.
신 암행어사에서는 주인공 문수가 사용하는 총기들중 하나로, 쌍권총으로 싸우나, 위력과 장전의 문제로 루거 P08 로 교체된다.
콜트 M1851을 후세 사람들이 부른 명칭이 콜트 네이비다. 워커나 드래군과는 달리 민간용 리볼버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6연발 .36구경(요새 기준으로는 .375구경) 리볼버이다.
군용이 아니기에 위력도 대폭 낮춰져 있으며, 25그레인(1.62그램)의 화약을 사용하는데다 탄자는 80그레인으로 작다. 덕분에 총의 경량화와 소형화가 가능하여, 약 1.2킬로그램에 총연장 약 35센티미터의 아담한(당시 기준으로) 총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네이비는 당시 새로운 발명품이었던 "휴대용 총집(홀스터)"에 수납하도록 만들어진 총이기도 하다. 그 전에는 리볼버는 주로 기병의 부무장으로 말안장에 걸친 총집에 수납하여 휴대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권총이 점점 작아지며 이를 휴대할 수 있도록 사람이 허리춤에 벨트처럼 차는 홀스터가 등장하자 그에 맞춰서 만든 것이 콜트 네이비인 것.
여담으로, 군용이 아닌데도 별명이 네이비인 이유는 M1851의 실린더에 캄페체 해전 장면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래군에 이어 생산된 .44구경 6연발 권총. 말 그대로 미 육군에 납품하기 위해 생산되어, 남북전쟁때 엄청나게 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화약과 탄환을 따로 넣어야 했지만, 이 총기가 쓰일 무렵 일정량의 화약을 기름종이에 싼 형태의 페이퍼 카트리지가 쓰이기 시작했다.
1870년 ~ 1890년대
19세기 프랑스에서 발명된 금속제 탄약(카트리지)에 대한 특허를 가진 미국 회사는 스미스 앤 웨슨이었다. 금속제 탄약은 금속제 탄피로 탄자(총알)와 장약, 프라이머(뇌관)를 포장한 물건으로 그 편리함과 신뢰성에서 장약+뇌관+탄자 분리식이나 종이 카트리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물건이었는데, 이 특허를 스미스 앤 웨슨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콜트는 한동안 손가락만 쪽쪽 빨았다.
그러나 1872년 드디어 이 특허가 만료되고, 콜트도 마침내 금속제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후장식 총기의 생산 판매를 시작하게 된다. 이 콜트 최초의 후장식 금속 카트리지 권총이 명총으로 이름난 M1873 스트랩 피스톨, 일명 "싱글 액션 아미" 피스톨이다.
이와 더불어 M1860(콜트 아미) 같은 구형 피스톨의 약실관을 개조하여 금속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후장식 권총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컨버전 킷도 발매되었다.
휴대와 사용이 간편하고 신뢰성이 높은 금속제 탄피, 그리고 재장전 속도가 비약적으로 개선된 후장식 권총은 군대의 부무장(사이드암)으로 채용되어 빠르게 보급 전파되었고, 민간인들 역시 이 최신형 권총을 호신용으로 널리 구매하였다. 그 보급도는 이전 세대의 구식 리볼버를 아득히 상회하여, 이 시대를 리볼버의 황금기라 부르기도 한다.
1870년대는 콜트사가 드디어 더블 액션 리볼버를 제품화한 시대이기도 하다. 더블 액션이란 공이(해머)를 젖힐 필요 없이 방아쇠만 당기면 총이 발사되는 기술인데, 이것이 발명된 것은 1850년대였지만 창업자 새뮤얼 콜트는 더블 액션의 신뢰성을 의심하며 자사 총기에는 싱글 액션만을 고집하였기에 콜트사 제품 중에는 더블 액션 리볼버가 없었다. 그러나 새뮤얼 콜트 사후 콜트사도 더블 액션 리볼버의 제품화에 착수, 1877년에 드디어 M1877이라는 더블 액션 리볼버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또한 1889년에 등장한 M1889 피스톨은 최초의 스윙아웃 리볼버로, 재장전을 위해 프레임을 분해하거나 분리할 필요 없이 약실관(실린더)이 통째로 옆으로 튀어나오도록 할 수 있는 편리한 권총이었다. (이렇게 설명하니 복잡하지만 오늘날의 모든 리볼버는 스윙아웃 방식이므로 그냥 현대식 리볼버와 똑같아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시 말해 현대식 리볼버의 기초가 모두 완성된 시기가 바로 이 시대인 것이다.
이름대로 1889년에 생산된 콜트 리볼버.
더블 액션 리볼버로 다양한 구경 모델이 있으며 (.41 롱콜트, .38 롱콜트, .38 숏콜트), 미국 해군과 육군에 납품된 군납총이다. 생산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약 5000정).
최초의 스윙아웃 방식 리볼버로, 약실관(실린더)이 프레임 자체에 꽂혀있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에 꽂혀있는 스윙암(크레인이라고도 함)에 꽂혀있어서 약실관을 통째로 꺼내고 넣을 수 있는 권총이다.
이전까지의 콜트 리볼버는 총의 오른쪽에 뚫려있는 작은 홈을 통해 탄을 장전하고 탄피를 제거하는 방식이었기에, 한 번에 한 발씩만 장전/제거가 가능했다. 하지만 스윙암의 도입으로 탄피를 단번에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장전은 아직도 한 번에 한 발. 스피드 로더라는 물건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굉장히 좋은 총이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완전한 시작품 수준의 물건이어서, 사용하다 보면 약실관의 회전이 조금씩 어긋나다가 결국 약실과 총열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비해 스미스 앤 웨슨이 7년 뒤에 발매한 모델 1896은 스윙아웃 리볼버이면서도 이런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을 뿐더러 탄피 제거봉이라는 신기능까지 도입되어 탄피 제거가 훨씬 용이하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때문에 M1889는 총 자체의 평가는 높지 않고, 단지 프레임의 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재장전의 용이성을 크게 향상시킨 스윙아웃 방식을 처음 도입한 총이라는 데 의의를 두는 정도이다.
여담으로, 위 사진을 보면 약실관을 꺼내기 위해 뒤로 당기는 레버인 풀백 래치가 이때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비스란 말이 붙은 만큼 군용이며, 캐나다군, 영국군의 정식 부무장으로 채용된다.
미군의 경우, 1909년에 .45 롱 콜트 버전을 채택하여, .38 S&W 탄환을 쓰는 스미스 & 웨슨 No. 3를 대체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 후 높은 펀치력으로 호평을 받았으나, 정작 도입하고 나서 2년만에 같은 회사의 M1911으로 갈아타서 묻혀버릴뻔 했다. 결국 .45 ACP 버전으로 실린더와 외부구조를 바꾸어 M1917이라는 이름으로 재채택되어 기사회생하나, 이번엔 최대의 라이벌 스미스 & 웨슨이랑 공동생산을 하게되는 안습함이 있었다.
5. 1900년 ~ 1950년대
리볼버의 황혼. 1890년대 말, 자동화기에 관한 연구가 가속화되었고, "총포왕" 존 브라우닝옹이 외계의 기술을 가져와자동화기의 초석을 깔아 자동권총의 시대가 열린다.
콜트 사 역시 시대에 뒤쳐지지 않게 브라우닝과 함께 콜트 M1900, 콜트 M1911 등 자동 권총을 선보였고, 총기 시장의 가장 큰 시장인 군대가 리볼버 대신 자동권총으로 죄다 갈아타면서 리볼버 시장이 크게 줄어들었다. 때문에 이 시기 동안 등장한 콜트 리볼버 모델은 대단히 적다. 이 시기동안 그나마 리볼버를 만든 곳이 콜트.
허나 리볼버 생산량이 줄었다 해도 새로 생산된 모델이 적을 뿐이지 그만큼 쓰이지 않은 건 아니다.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군 물자가 촉박해졌고, 자동권총도 전부 지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방 부대나 비전투 부대의 경우 리볼버를 지급받기도 했다.
비록 군대의 제식 장비의 위치는 내놓았지만, 공관서나 경찰에서는 여전히 리볼버의 수요가 높았다. 경찰 특성상 총은 사살하기 보다 범인을 무력화 하거나 저지하는데 쓰였으며, 따라서 자동권총의 장점인 대용량 탄창과 빠른 재장전이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리볼버는 특성상 고장이 잘 나지 않으며, 고장이 나도 싱글 액션으로 발사 가능하며 소형화가 쉽다. 덕분에 군대에서 밀려난 리볼버 시장이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었던 것.
대단히 컴팩트해 이름 그대로 형사들이 옷에 숨기기 쉬웠다. 사실 이 제품 말고도 주머니에 숨길 만한 크기의 리볼버는 존재했으나 작은 탄을 써 화력이 약하고 대부분 내구도가 약한 중절식이었다. 덕분에 옆으로 열리는 스윙아웃식에 .38 구경탄을 쓰는 이 권총이 타사의 동급 모델보다 훨씬 잘 팔렸다.
86년에 생산을 중단하였으나 93년부터 95년까지 2년 동안 재생산했다. 재생산 버전은 그립의 재질을 고무로 바꾸고 황금 로고가 박았으며, 이로써 콜트사의 철제 리볼버의 역사는 끝났다.
형사용으로 개발된 권총이지만 대한민국 육군의 장성에게 지급되는 권총이기도 하다. 육군의 장성용 권총은 이것이 주력이며 S&W M10 2인치 모델도 쓰인다. 해/공군 장성은 거의 M10 지급.
대한민국 국군 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섬나라인 일본 자위대도 사용하였다. 한국군 육군 장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그 쪽에서는 경무대가 사용하였다. 1980년대 들어 리볼버 상의 한계점 및 때마침 들어 온 P220(9mm 권총)으로 인해 순차적으로 퇴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