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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與憂俱生(여우구생)
사람은 근심과 더불어 살아간다.
우리 집 이웃에 꽃집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 꽃집이 몇 개 더 있다. 수입이 신통치 않은지 꽃집 옆에 딸린 건물을 빌려 새로 단장을 하여 음식점을 내었다.
지나가면서 보면 처음에는 손님이 제법 있는 것 같더니, 얼마 지나자 손님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손님이 한두 팀 있거나 어떤 날은 저녁 때 한 팀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저래서 어쩌겠나! 신장개업한다고 들어간 돈도 못 건지는 것 아닌가?”하고 도와주지는 못해도 걱정이 된다.
오랜 만에 아는 사람을 만났더니, 자기 아들이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놀고 있는데 혹 일자리 없는지 알아봐 달라고 한다. 가끔 학교 동기들이 직장에서 퇴직하여 어디에서 음식점을 냈다고 연락이 온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간부도 회사 형편이 어려워 언제 잘릴지 모른다고 걱정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대학 교수들이야 무슨 걱정이겠는가?”라고 하지만, 지금은 대학 입학정원보다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가 적어 괜찮은 대학을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대학에서 학생 유치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어떤 사립대학 같은 곳에서는, 교수가 연구한다는 것은 이미 사치이고, 강의만 끝나면 각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생 보내달라고 사정을 하고 다닌다. 요즈음은 사람 위치 파악하는 전자장치가 되어 있어, 안 나가고 갔다 왔다고 할 수도 없고, 또 매일 방문한 고등학교와 만난 담임교사 이름까지 다 적어내야 한다고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보통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와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걱정이 없을 줄 알지만, 이러한 목적을 달성해도 역시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재산 운용의 어려움과 도난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고, 관직이 높은 사람은 누구에게 무슨 자리를 맡기느냐?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일로 골치를 썩인다. 이름이 난 사람은 이름난 만큼 또 헐뜯는 사람도 많다.
시인이자 교수인 어떤 분이 텔레비전에서 영화제 시상식 하는 장면을 보면서, “저런 여자하고 살아봤으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라고 농담을 했더니, 옆에 있던 부인이 “저 여배우가 살아준다고 해도 당신 월급으로 저 배우 의상 비용, 화장품 비용 댈 수 있겠어요? 또 저 여배우 성깔 다 맞추며 살 것 같아요”라고 핀잔을 주었다 한다. 좋은 점이 있으면, 거기에 따르는 안 좋은 점도 있게 마련이다.
지금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어렵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환율(換率)이 치솟아 국제수지가 말이 아니다. 중소기업 가운데 도산(倒産)하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대통령이 가락농산물 시장을 방문했을 때, 시래기 파는 할머니가 장사가 안 되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지금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는 몇몇 양반만 빼고는 거의 전 국민이 끼니를 잇지 못하여, 흉년이 들면 굶어죽는 사람이 길에 널렸다. 일본 강점기에는 학대와 착취 속에서 온 동포가 신음했다. 6·25 이후에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원조물자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경제개발이 어느 정도 된 70년대에도, 지금 보면 풍요로운 것 같아도, 그 당시는 “경제가 어렵다”, “경제가 이래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80년도에도 “나라 형편이 이런데 올림픽이 뭐냐?”고 올림픽 유치를 나무라는 사람도 있었다.
현실은 언제나 어렵다. 어려운 데서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데 인생의 가치가 있다. 배가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암초도 만나고 풍랑도 만나 심한 경우에는 침몰도 된다. 그러나 풍랑이 겁이 나서 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지 않으면, 배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장자’(莊子)에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걱정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人之生也, 與憂俱生]”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살아 있는 한 걱정이 없을 수 없다. 걱정에 짓눌려 자신의 의지마저 꺾여서는 안 되겠다.
*與 : 더불 여. *憂 : 근심 우. *俱 : 함께 구. * 生 : 날 생.
출처:경남신문 글 허권수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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