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닝 자동소총

원래는 현대의 자동소총처럼 육군의 주력 소총으로 만들 계획도 세웠지만, 19세기말 기준의 강력한 볼트액션 소총용 총알을 쓰는 총이 자동 사격시의 반동과 열을 견디려면 총몸체와 총열이 상당히 묵직해야 했고, 그 덕분에 완성된 자동소총은 다른 나라의 경기관총이 부럽지 않은 육중한 무게(약 7kg)를 가지게 되자 이 무겁고 비싼 무기를 모든 병력에게 돌리기는 어려운지라 결국 분대지원화기로 낙점되고 말았다. 여담으로 이 총의 영향 덕분에 보병들이 죄다 자동소총을 들고 다니는 21세기에도 미군에서는 분대 내 M249 기관총 사수를 여전히 자동소총수(Automatic Rifleman)라고 부른다.
이후 1939년에는 생산성을 높인 개량형인 A1이 등장하고 1940년에는 M1918A2가 미군의 제식 분대지원화기로 채택된다. A2버전에서는 반자동, 즉 단발사격 기능이 제거되고 분당 300~450발의 저속 사격과 분당 500~650발의 고속 사격 기능만 있었다. 그 대신에 분대지원화기에 충실하도록 더 무거워졌다(약 9kg).
그밖에도 돌격중 화력을 제공하려던 초기 버전과 다르게 A1은 최소한의 조준사격을 위해 1각대를 단 버전도 있다. 그리고 A2에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체크무늬를 양각으로 썼던 핸드가드의 디자인이 단순해지고 양각대가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본격 분대지원화기화.
여러 나라에 팔리거나 뿌려지면서 각종 구경(7.92mm 마우저 등)으로 생산되었으며, 총열 교환이 가능한 개량형도 나와 소수지만 몇몇 나라에 팔렸다.
1차대전 말에 초기 모델이 미 육군에 소수 지급되었고, 이 극초기 모델은 돌격하면서 사격할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기에 양각대는 없었지만, 분대 지원화기로서의 용도가 확립된 이후에는 양각대가 달리게 된다.
M1 개런드와 동일한 탄을 장전하는 BAR은 20발들이 상자 모양 탄창을 사용했고, 당연히 자동사격도 가능했다. 2차 대전 중에는 6m 밖의 적군 2명을 연사를 퍼부어서 3초만에 모두 사살했다는 실전 사례도 있다.
문제는 저러다보니 안그래도 무거웠던 놈이 점점 더 무거워져서는 A2형이 되니 탄창을 끼운 전체 무게만 10kg에 육박하는 쇳덩이가 돼버렸다. 참고로 미군 BAR은 30-06탄이라는 M1 개런드, 30기관총(M1919 시리즈)와 동일한 탄을 사용하는데, 7.62mm NATO탄보다 더 큰 30-06탄 20발이 들어가는 BAR 탄창은 성인남자 손바닥 만하다. 이 무거운 것을 위 간지나는 BAR 사수는 최소한 전용 요대에 한주머니당 2개씩 6주머니 12탄창을 매고 이는 기관총 사수에겐 매우 부족한 240발뿐이므로 추가로 같은 주머니 3개가 박혀있는 주머니를 매게 된다. 그 외에도…. 따라서 BAR 사수는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20Kg정도의 군장을 져야한다. 지못미.
해병대의 한 자동소총 사수는 "난 B.A.R.에 자동소총 예비 탄창, 수류탄, 군장, 거기에 콜트 45에다 권총 예비 탄창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무게가 40Kg가까이 나갔다. 정말 무거웠다." 하고 불평할 정도. 서양인도 이러는 판이니 그 당시 체격도 안 좋은 한국인은…. 한국전쟁 당시 AR사수(국군의 BAR사수 명칭)로 참전한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이 총을 매고서 차렷자세로 서 있으니 넘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미군이 워낙에 많이 써서 미군만 사용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의외의 사용국 중에 독일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에서 이 총을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었는데, 독일군이 벨기에를 점령한 후 사용하게 되었다. 제식 총기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사용한 기간과 사용량이 꽤 많다. 전후 서독군(독일연방군)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때 그곳에서 소대장님도 선임하사관, 향도 분대장님들 모두가 전사했거나 부상되었기에 그러니 남은 건 맨 이등병, 일등병이더군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우리가 이 고지를 따야만 상관의 죽음에 보답할 것이고, 고지에는 별로 적이 없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올라갈 테니 너희들도 따라오라 하니 모두 그러겠다 하길래 먼저 뛰어 올라갔습니다.
고지 꼭대기에 올라가 고지 너머를 보니 교통호 속에 방망이 수류탄을 들고 12-13명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거기다 대고 에이알을 두 탄창 쏘아 모조리 죽였습니다. 뒤돌아보니 아무도 날 따라온 사람이 없길래 다시 뒤를 보고 빨리 오라 했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그러는 동안 옆에 있는 고지에서 기관총알이 마구 날아오기에 좀 엎드렸다가 다시 일어나서 제지리에 돌아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에 있는 몇 사람이나마 나와 같이 가면 문제없이 고지를 딸 것 같아서 다시 똑같이 올라가자 하면서, 적이 나오면 내가 처치하겠다 하니 모두 또 그러라고 하기에 또 고지에 뛰어 올라가니 후사면 교통호에 또 어디서 기어나오는지 7-8명이 있기에 한 탄창을 가지고 모조리 사살해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앞과 똑같이 되어 버렸죠. 제자리에 돌아왔는데 조금 있으니 중대장의 철수라는 명령이 와서 모두 철수했습니다."
1952년 12월 한국 전쟁 당시 노리고지 전투에서 1사단 소속 박관욱 일병이 이 총 한 자루를 들고 고지를 점령해 낸 적이 있다. 이 일로 '노리 고지의 불사신'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국군은 물론 미 제1 군단장(John W. Kendall 중장)은 이 광경을 보고 '내 군생활 30년 동안 저런 병사는 처음본다'라고 놀라기도 했고, 이 병사에게 미국 은성훈장을 수여받도록 조치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도 한국군 병사가 브라우닝 자동소총을 현대 한국 밀덕이 읽는 '바'가 아니라 '에이알'이라고 읽는 점이다.
동양인한테는 무겁고 크다보니 한국 전쟁 당시 일선에서의 대한민국 국군과 북한군은 이 물건을 공적이든 비공적이든 그냥 경기관총 혹은 중기관총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북한군이 노획했을 때도 경, 중기관총으로 기록해서 전과 뻥튀기에 써먹기도 했다. 또한 국군은 자동소총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서 당기면 연발로 나간다 + 무겁다 라는 점 때문에 BAR로 기관총 진지를 구축해놓고는 경기관총으로 진지를 구축했다고 상부에 보고하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이런 관행은 중공군 참전과 함께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왜냐하면 지휘부에서 '아 여기는 경기관총 진지가 몇개소 구축되어 있다니까 괜찮겠네'라고 생각하면서 방어전술을 세웠기 때문이다. 몰려드는 인민 웨이브 앞에서 BAR을 경기관총 쓰듯 난사하면….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연사속도 때문에 총열이 쉽게 달아오르는 주제에 총열을 갈 수가 없다거나 장탄수에 비해 사격 속도가 빨라서 탄창을 자주 갈아줘야 한다는 단점은 보너스. 이건 BAR이 기관총의 경량이 아닌 소총의 확장인 태생적 한계다. 기관총과는 달리 소총에는 총열을 교체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 이건 기관단총이 소총을 대신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겨울 추위에 대비할 것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했는지는 몰라도 한국전쟁중 UN군이 겨울에 북한에서 중공군을 상대할 때 얼어붙어 자동사격을 못하고 한 발씩 쏴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반 육군 보병 분대에는 2정이 배치되었지만 해병대 보병 분대에는 3정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왜냐고? 해변에서 교두보를 점령할 때까지 화력이 모자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보면 얼핏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무기 같아 보이지만, 미군 입장에서는 이걸 MP38이나 PPSh-41처럼 빠르고 즉응성이 좋지만 화력은 기관단총과는 차원이 다른 분대지원화기로 썼으며, 기존 기관총 포지션은 브라우닝 M1917, 브라우닝 M1919에게 맡겼다. 즉 기관총처럼 쏠 수는 없지만 당시의 일반 소총들보다는 연사력과 탄창 용량이 우월했으므로 이동하면서 화력지원을 하기에는 충분했던 것. 이게 처음 나왔을 시절의 군용 소총이라는 게 5발을 수동을 재장전해가면서 쏘는 물건이 대다수였다는 걸 감안하면 20발을 연발로 긁는 건 무시 못할 위력이다. 그리고 2000년 이후 현대 분대지원화기들이 낮은 발사속도와 삼각대를 요구하지 않고 바로 화력지원 성능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앞서간 개념이기도 하다. 나중에 베트남 전쟁 즈음에 드디어 M60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M60도 나름대로 문제점 투성인지라 그냥 이 물건을 다시 꺼내다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물건이 완전히 퇴역된 것은 M249라는 막강한 라이벌이 등장하고 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