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가 차디찬 바닥에 느닷없이 무릎을 꿇었다.
"무슨 짓이냐! 일어나!"
"대통령 각하, 딸로서 드리는 얘기가 아니라 각하의 참모로서 드리는 충언 입니다."
"그얘기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미 끝난 일이다."
"아닙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있습니다.
당장 당에 전화를 걸어 주십시요.
김영삼 의원 제명만은 막아야 합니다.
각하께서 그 사람을 제거하는 것은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입니다."
중략
"김영삼 의원을 제명하는 일은 아무런 실익이 없습니다
(중략)
이것은 민주주의를 죽이는 일입니다."
딸아이는 다부지게 말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목소리에는 울음이 배어 있었다.
그 아이의 눈빛이 몹시 간절했다.
(중략)
"네가 무얼 걱정하는지 이 아비는 잘 안다.
지금은 이미 주사위가 던져졌다.
내게 소원이 있다면 이 나라가 겪은 굴종의 역사에 내가 마침표를 찍고 싶은 것 뿐이다.
근혜야, 네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지 않겠니?"
바닥에 꿇은 앉은 딸아이의 어깨를 일으켜 세우자, 딸아이가 왈칵 눈눌을 쏟으며
앙상한 늙은 가슴에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
<소설 나, 박정희 가운데 '마지막 시월의 여정'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