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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자급 자족법
Ⅰ. 거지와 젖먹이, 왕자와 공주
이 기괴한 제목은 희곡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에 따른 내 나름대로의 분류이다. 희한하게 생각하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영적 상태 또는 영적 성숙도를 진단하기 바란다. 진단에는 처방이 따르는데 이 처방은 성경적인 처방이니까 꼭 실천하면 영적 건강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 은혜 거지 - 그는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 성숙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깡통을 차고 시장을 방황한다. 그가 다니는 시장은 이름난 기도원, 신령한 은사자, 유명한 부흥회 등이다. 물론 기도원이나 부흥회를 도매금으로 몰아부쳐 악평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런 현상이 심각함을 부인할 수 없다. 한 숟갈, 두 숟갈 밥을 얻어먹고 분위기에 심취한다. 그럴 때는 천국의 정상에 있다가 잠시 후에 세상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린다. 세상이라는 파도가 신앙과 삶이라는 그의 배를 한 번 몰아치면 난파당하거나 심한 요동을 친다. 생산적이지 않고 소비성이 강한 그리고 의존도가 심한 영적 거지의 삶을 살아간다.
▶ 젖먹이 - 그는 태어나자마자 성장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물론 때로는 영적 부모를 만나지 못한 불행 때문에 젖먹이로 남아 있기도 한다. 한국교회에 방치되고 팽개쳐져서 예수 생명이 자라지 못하고 말라붙은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머리만 커진 인간들!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고, 인격도 성숙되지 않는다. 그들의 나이는 조금 특수하다. 20-2, 40-5, 30-3, 10-1. 앞의 것은 교회 다닌 시간이고(거듭나서 지금까지) 뒤의 숫자는 영적 성숙의 나이이다. 이런 비참함이 얼마나 많은가? 젖먹이들이 우글우글 설치는 교회를 생각해 보라. 전도가 이뤄지지 않는 죽은 교회, 아무런 교회의 능력이나 영향력이 나타나지 않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교회를 생각할 수 있는가? 한국교회의 교육이 하나님 백성의 성숙을 위한 양육이 없음은 비극적 사실이다.
▶ 왕자와 공주 - 그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답게 당당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성도라는 신분만 가지고 실제의 상태나 삶은 엉망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때론 실수를 하고 넘어지며 불완전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성장을 향한 꾸준함과 성숙을 위한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왕이신 하나님의 명예를 찬란히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왕의 모든 특권과 기업을 소유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Ⅱ. 무엇이 문제인가?
▣ 몇 가지의 미성숙 이유들
1. 교회에서 성숙의 기본적 도움을 받지 못했다.
2. 신앙 성숙보다 율법, 규범의 준수에 얽매여 있다.
3. 훈련을 받지 못하고 신앙이 지식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다.
4. 신앙 성숙의 의미와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5. 성숙의 동기 유발이 없고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이런 것들이 영적 미성숙의 이유이다. 우리가 언뜻 생각할 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이나 자료만 있으면 영적 성숙이 이뤄질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영적 성숙이란 과정(process)이며 한 사람의 전인격(whole-person)과 전체 삶(whole life)에 관련된 것이다. 자료, 방법에 의해서 획기적이고 단순히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자발적 헌신에 영적 성숙의 핵심이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어떤 그리스도인이 성숙을 위한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義)를 사모하여 자기를 기꺼이 드림에 영적 성숙의 열쇠가 있다.
▶ 확인 - 형제(자매)는 영적 성숙을 위한 은혜의 생활에 뜨거운 열망이 있는가? (예,아니오) 만일 ‘아니오’라는 것이 형제(자매)의 대답이라면 당신은 원점에서부터 점검하고 출발해야 한다. 우리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십자가이며 갈보리 언덕이다. 구원의 사건이 내 안에서 확실히 있었는지를 말씀과 성령님에 의해 되돌아 봐야 한다.
* 출생하지 않으면 성장이 없는 것처럼 구원, 중생(Born Again)이 없으면 영적 성장(Spiritual Growth)도 없다. 한국 성도의 치명적 약점 중 하나가 복음 중의 복음인 구원 사건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원시적 복음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구원과 부활 - 이 선포되지 않고 있다. 형제(자매)는 구원받았는가?
우리는 앞에서 한 사람의 영적 성숙도에 따른 희한한 분류를 했고 영적 미성숙의 문제들을 살펴보기도 했다. 혼돈을 피하기 위해 성장(Growth)과 성숙(Maturity)의 차이점을 간단히 생각해 보자.
♤성장(Growth) - 갓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초보적 단계로 신앙이 자람을 의미하며, 단순하고 제한된 영역의 성장에 대한 기본 생활의 확립을 통해서, 마귀의 공격을 물리치고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됨을 그 목적으로 한다.
♤성숙(Maturity) - 성장의 단계를 넘어서 보다 깊고 포괄적인 신앙의 성장을 뜻한다. 단순한 말씀공부나 기본진리, 생활의 확립을 지나서 균형 잡히고 통합된 인격의 성숙이 나타난다.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도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앙과 삶이 형성된다. 성숙은 성장의 확장이다.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는 그 근본이 되는 영적 생명이 있어야 한다. 영적 생명을 소유함을 구원 또는 중생이라고 하며, 구원 이후의 삶과 성장이 정지된 상태를 영적 미성숙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비유적으로 영적 유아(Spiritual Baby)로 부른다. 성경은 영적 유아(젖먹이)를 육에 속한 사람으로 말한다. 성장(성숙)은 반드시 출생(구원)으로부터 시작되므로 구원의 확신은 매우 중요하다.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영적 성숙에 대한 열망을 갖는다. 영적 성숙을 향한 뜨거운 열망조차도 없는 사람은 대부분 구원의 사건 또는 확신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
Ⅲ. 왜 자급자족이 필요한가?
영적 성숙과 은혜의 자급자족 방법을 말하기에 앞서 그 필요성 또는 그 이유를 생각하자. 다음 통계에 주의해 보자! 20%는 기도하지 않는다. 25%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 30%는 교회출석을 하지 않는다. 50%는 교회학교에 출석하지 않는다. 60%는 저녁예배에 출석하지 않는다. 70%는 선교헌금을 하지 않는다. 80%는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90%는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95%는 그리스도에게 사람을 인도하지 않는다. 99%는 주님께로 인도한 영혼들을 양육하지 않는다.
이것은 「복음주의의 낭만」이란 책에서 미국의 롤랑 Q.레아벨이란 사람이 주장한 내용이다. 지역교회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그 결과를 분석한 수치이다. 얼마나 심각한 그리스도인의 현실인가?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이 결코 원하시지 않으므로 반드시 은혜의 자급자족을 통한 영적 성숙이 필요하다.
1. 은혜의 자급자족을 통한 영적 성숙은 하나님의 당위적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스스로 성숙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기를 원하신다. 간접 경험이나 다른 방편을 통한 영적 성숙은 부수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代理 人生이 없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인격 對 인격의 철저한 결단과 헌신이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2. 은혜의 자급자족은 정상적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능케 한다.
은혜의 자급자족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매우 일그러진 불균형의 모습이 된다.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이 불가능하다. 아울러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Life what the bible says)과 현재 우리가 사는 삶(Life what we live now)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생긴다. 이 간격과 不一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無力하게 만들고 갈등과 자기 위선의 위기에 빠트린다. 나는 누구냐? 하는 질문에 우리가 대답할 수 없음은 몰라서가 아니라 그대로 살지 못하는 데서 起因한 자기 정체의 위기 - 自己 正體의 위기란 자기의 바른 모습(자아 성찰, 자기 인식)에 대해 혼돈과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말함 - 에 근거한다. 절대적 완전(The absolute Perfection)이란 현세에서 우리에게 불가능하지만 완전이라는 목표를 향한 성숙한 삶은 가능하다. 이것은 은혜의 자급자족이 이뤄질 때만 가능한 것이다.
Ⅳ. 자급자족의 목적
은혜의 자급자족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계획하신 인격(being)과 사역(doing = ministry)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함이다”. 즉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요10:10).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인격 (being=character)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계획하시고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1:28)”라고 말한다.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3:10)”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이며 인격적인 경험을 통해서 알고 그 분을 표대로 삼아 계속 신앙이 자람을 뜻한다.
2. 사역 (doing=ministry)
사역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는 사람이, 삶7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들을 뜻한다. 성경은 우리의 삶에 대한 이런 목적을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고 말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소원하시는 인격과 사역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구원으로 부름 받았다. 구원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이지 종결이 아니다. 구원에서 시작되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격과 사역이 반드시 우리의 삶에 계속되고 가득해야 한다. 이런 목적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기력, 좌절, 실패, 허무 등으로 계속 얼룩질 수밖에 없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로 부름 받은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지만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게 하시고 영광 받으시길 원하시는 위대하신 섭리를 더욱 감사하고 찬양한다. 이 목적이 우리 삶의 근거와 능력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 목적을 위해서 주어진 삶을 살고 있으며, 인생을 세우고 있는가? 마음을 다해서 진지하게 성찰하자. “오직 한 번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니,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Ⅴ. 자급자족의 방법
우리는 어떻게 은혜의 자급자족을 이루며,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런 삶을 살 수 있을까?
(1) 자기 공급 (self-support)
다른 사람에게서 일방적으로 늘 은혜의 주입을 받는 미성숙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채움 받는 자기 공급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예배를 통한 설교의 은혜나 각종 그리스도인의 집회(부흥회,수련회,세미나,기도회 등)의 중요성과 意義를 결코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에 의한 은혜의 공급은 자급자족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나 자신의 영적 성장에도 한계가 있다. 끊임없이 타인에게서 평생토록 은혜의 공급을 받을 수도 없다. 자기공급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① 경건의 시간(Quiet Time) :
한국교회에 일고 있는 Q.T운동은 참 바람직하고 신선한 것이다. 물론 시행과 보급의 과정에서 약간의 기술적 문제가 있지만 그것 때문에 Q.T의 전부를 나쁜 것으로 몰아치는 것은 매우 비성경적이다. Q.T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영적 생활을 위한 가장 소중하고 직접적인 은혜의 방편이다. Q.T는 찬송, 기도, 말씀을 통해서 매일의 삶을 위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일컫는다. Q.T를 통해서 영적 성숙, 영적 정결, 영적 능력, 영적 교제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알 수 있다. Q.T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삶(basic life)에서 가장 강조되고 우선적으로 취급된다. Q.T가 훈련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결코 은혜의 자급자족을 성취할 수 없다. 보편적으로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대리(代理)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성경에 대한 접근도 통독이 그 전부이다.
은혜의 자급자족을 위한 방법으로 자기 공급이 있어야 하며 자기 공급을 위한 경건의 시간(Q.T)에 대해 살펴보았다. 두 번째 자기 공급의 수단은 문학이다.
② 신앙 서적 읽기
문학의 일반적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문학은 문화 형성의 핵심을 이루며 문화 전달의 필수적인 수단이다.
<효과> - 서적을 통해서 사상, 가치를 전달받음으로 지적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정확> - 막연하거나 애매하던 사상이 정리되며 정확한 지식으로 소유된다.
<영향> - 지역, 인종, 정치 이념 등의 제한을 넘어 모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 왜 기독교인들은 책을 읽어야 하는가 ?
a. 적절한 전도 - 책을 통해서 신앙 지식을 확립하여 어떤 상황이나 대상에게라도 우리가 지닌 복음을 알맞고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다. 불신자에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문제와 필요점(궁핍점)을 기독교 신앙이 대답해야 한다면 서적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특별히 청년 시절에 책을 통한 지적 성숙과 사고(思考)의 변화는 놀라운 가능성을 계발시켜 준다.
b. 성숙한 신앙 - 신앙에 있어서도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경험이나 진리에 대한 탐구는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다. 책을 통해서 진리, 죽음, 고통, 인간 등에 대한 물음, 즉 인간의 도덕적, 지적, 철학적 분야에 대한 의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c. 경험을 깊어지게 함 - 책을 통해서 영적 교훈에 대한 무진장한 교훈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책을 통한 가르침을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책은 위대한 영적 스승들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좋은 책을 읽지 말라, 왜냐하면 인생은 그것을 읽는 데에는 너무 짧기 때문이다. 오직 가장 좋은(최선의) 책을 읽어라!”
(2) 개인적 접촉
은혜의 자급자족에는 자기 공급 외에 두 번째로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개인적 만남을 통한 방법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형제, 자매들과의 만남을 하나님의 뜻으로 수용해야 한다. 개인적 접촉에는 영적 성숙도에 따라 자기보다 성숙한 사람과의 교제가 있고 덜 성숙한 사람과의 교제도 있다. 자기보다 성숙한 사람(영적 바울)을 통해서는 영적 성숙을 위한 구체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천국은 자물쇠를 채우고 홀로 사는 독방으로 이뤄진 곳이 아니라 함께 모여 사는 하나의 가정이다. 성경은 영적 부모와 스승의 당위적 필요성에 대해 명확히 그리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영적 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부하는 것은 교만한 자아의 교묘한 합리화가 아닌가?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만남과 사귐, 그를 통한 도움이라는 축복을 경시하는 사람은 심산유곡이나 절해고도에 가서 도(道)를 닦는 것이 한결 좋을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세우시며 은사에 따라 여러 직분을 주신 것도 연합과 공동체를 통한 성숙을 위함이다. 공동체에서만 하나님 나라를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영적으로 자기보다 덜 성숙한 사람과의 교제를 통해서는 오히려 영적 은혜를 나눠주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을 통해서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실제적(real)으로 알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돌보심을 구체적으로 체험한다. 주는 것이 복이요 기쁨이다. 때로는 오히려 나의 영적 디모데를 통해서 도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 신선한 감격인가? 영적 바울이든 디모데이든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을 잊지 말자! 우리들의 생애에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사용하신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자! 그런 의미에서 형제,자매들이 자발적인 1:1의 영적 도움을 베푸는 양육이 있었으면 좋겠다. 같이 만나서 주간 중에 성경을 배우고 삶을 나누며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나눌 때 우리 사이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풍성히 맛볼 수 있다. 도움을 베푸는 사람은 한 영혼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며, 자기의 생애를 한 사람을 위한 영적 사역에 투자하게 된다. 반대로 도움을 받는 사람은 영적 바울을 통한 예수 사랑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자리에 이르러서 다른 사람을 또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영적 재생산을 통한 至上명령의 성취이다.
(3) 모임(집회)
은혜의 자급자족을 위한 세 번째 방법은 그리스도인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임에 임재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가족들이 한데 어울려 함께 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살펴보자.
3-1) 지역교회(Local Church)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장소가 아니며 본질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무리들을 일컫는 말이다. 교회는 고정적이거나 제한된 장소와 시간에만 모이고 형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은 모두 교회이다. 지역교회가 많은 약점과 부정적 측면을 소유했지만 이 사실 때문에 교회 자체가 부정되어져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교회사를 통해서 일하심을 보면, 교회에 문제가 있을 경우 개혁시키거나 그 교회를 일깨우는 다른 선교 단체나 사람을 사용하셨다. 최악의 경우 교회가 없어진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다른 교회를 반드시 대신 사용하셨다.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 자체가 불완전하고 땅위의 교회라는 한계를 우리는 겸허하게 사실로서 받아 드려야 한다.
“단 교회의 영광과 성결을 위한 改革에는 우리의 생명을 바쳐야 한다. 개혁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① 예배의 중요성
교회기능의 핵심이 몇 가지 있는데 예배, 교육, 선교, 봉사이다. 예배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발적 행위이다. 예배는 교회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배에 어떻게 참여하느냐에 따라 신앙생활의 상당 부분이 큰 영향을 받는다. 예배를 위한 지침을 간단히 몇 가지 소개한다.
a.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말고 늦어도 10분전에는 도착하라. 일찍 도착해서 잡념을 없애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그 날의 본문을 살펴보고 묵상하는 것은 꼭 필요한 준비이다. 아울러 예배 순서 담당자들을 위한 기도도 요청된다. 예배 전에 기쁨으로 공동찬송을 드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
님의 영광과 치유 사역을 믿음으로 기대하며 다른 지체를 위해서도 기도로 준비하라.
b. 주변의 산만하고 혼란한 상황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광 드리는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고 예배 시간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열심히 묵상하며 집중하라.
c. 행사를 구경하는 단순한 청중의 자리에 머무르지 말고,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도록 한다. 예를 들면 신앙고백, 성경봉독(교독), 헌금, 찬송, 공동기도 중의 시간에 마음 문을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② 기관참여
교회의 아름다운 성숙과 개인적 은사의 개발 및 활용을 위한 목적으로 많은 기관이 특성(연령, 직업, 지역 등)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주일예배 참석으로 교회생활을 대신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생활을 폭 넓고 다양하게 할 때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교회 안에도 세속적 사상이 스며들어 이기주의적 경향이 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각 기관에서 구체적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고 교제를 나누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초라하며 교제의 기쁨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③ 봉사
여기의 봉사는 좁은 의미로 자신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받은 은사와 재능으로 섬기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꼭 자발적이어야 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근거하지 않은 봉사는 자기과시나 자기만족에 그치고 말 것이다. 봉사를 하기 전에 기본적인 영적 성장이 되어 있고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정확히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떠맡기거나 일단 해 보자”라는 스타일의 봉사가 얼마나 많은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며 영혼들을 죽이는지 모른다.
3-2) 선교단체
여기에서 선교단체라 함은 전혀 다른 문화권의 해외 선교단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문화권의 선교단체를 말한다. 전자는 전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면 후자는 같은 문화는 아니지만 문화적 유사성이 확보된 나라에 가서 이미 복음이 전파된 상황에서 자기 선교단체의 독특한 비전과 사역을 하는 단체를 말한다. 전자는 O.M.F, G.B.T 등이 그 대표적 단체라면 후자에는 C.C.C, 네비게이터, 성서유니온, I.V.F 등이 있다. 선교단체에 참여하는 것은 또 다른 영적 도움과 자극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선교단체의 강점인 동질성과 신앙의 순수성, 비전 지향성 등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지역교회의 참여와 봉사가 우선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성경이 명백히 말하고 있다. 지역교회는 우주적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때까지 하나님이 지상에 세우신 복음 전파를 위한 최우선적인 神的 기관이다. 선교단체는 이를 위한 도움을 베푸는 교회 병행단체들(Para Church Movements)이다. 교회의 기능을 보조할 수 있지만 대신할 수 없다.
서로 기능과 영역이 다르지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공동 목표를 위해 상보적 사역을 해야 한다. 선교단체를 선택할 때 지역교회에 대해 적대적이고 공격적이거나 폐쇄적 단체는 꼭 피해야 한다. 복음적이며 지역교회에 대해 협조적인 단체들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이단(사이비) 종파에 속한 단체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통일교계통, 성락침례교회C.B.A, 애천선교회, JMS 등). 이상적 선교단체는 I.V.F와 E.S.F, JOY 등을 적극적으로 권할 수 있다.
(4) 연장된 경건의 시간(Extended Quiet Time)
은혜의 자급자족을 위한 네 번째 방법은 연장된 경건의 시간(이하 E.Q.T로 줄임)을 갖는 것이다. E.Q.T는 문자 그대로 Q.T시간의 내용을 평소보다 대폭적으로 확대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말한다. 이것은 공휴일이나 개인적 여가를 이용해서 집에서 또는 야외(기도원, 수양관 등 집회시설)에서 찬송과 기도와 말씀공부 및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물론 이밖에도 다양한 순서를 가질 수 있다. 때로는 소그룹으로 어울려 이런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E.Q.T의 좋은 점은 일상생활에 쫓겨서 제대로 갖지 못했던 하나님과의 교제를 풍성히 가질 수 있으며, 자신을 정직하게 성찰하는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점이다. 사실 현대인들의 두드러진 맹점이 인간성의 상실과 정서의 메마름, 분주한 일에 쫓기는 것임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영적 여유를 갖는 것이 영적 건강에 좋을 것이다. E.Q.T를 마치게 되면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신선한 기쁨이 우리의 생활에 새로운 능력을 공급하게 된다. 과감히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단독으로 대면하는 한나절 또는 반나절의 시간을 마련해 보라.
Ⅵ. 자급자족의 결과
은혜의 자급자족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때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성숙을 위한 은혜의 자급자족을 잘 감당할 때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하나님 자녀다운 자녀의 삶과 인격, 신앙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완전의 의미가 아니라 완전을 향한 계속적 성숙과 변화를 말한다. 영적 유아들은 시대의 풍조(사상, 학문, 예술, 유행 등)에 쉽게 휩쓸리고 동화된다. 그들은 분별력을 상실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간다. 말씀의 권위보다는 개인적 욕망, 경험, 지식 등이 그의 삶을 다스린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향력을 숨기게 되고 전도도 불가능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지체들을 영적으로 도울 수 없다. 은혜의 자급자족을 토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때 삶과 인격, 신앙이 예수님처럼 바뀐다(엡4:15).
아울러 성령의 풍성한 열매(갈2:22-23)가 맺혀 성경이 약속한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삶(요10:10)을 자신의 생애에서 맛본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비전과 삶의 목표를 확신함으로 삶의 능력을 소유한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 개인의 성숙은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와 그가 살고 있는 모든 곳을 변화시킬 것이다. 세상을 변혁시키는 사람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들도 이젠 신앙의 타성적 정체 상태인 영적 유아의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은혜의 자급자족을 기어이 내 삶에서 훈련하고 성취함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녀로 성숙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은혜의 자급자족! 이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당위적 명령이다.
하나님 왕국의 백성들이여! 은혜의 자급자족을 향해 전진하지 않겠는가?
< 적 용 >
1. 영적 상태에 따른 당신의 실제 신분은 무엇인가?
2. 나는 분명히 성령님에 의해 거듭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가?
3.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성숙을 위해 자급자족을 이루고 있는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하겠는가 ?
4.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과 사역은 어느 정도 이뤄졌으며, 그 구체적 계획과 목표는 매년 정기적으로 세우고 점검하는가 ?
5. 자급자족 중에서 약한 부분을 말해보고 그 계획을 세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