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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명공강(冥空 )-2
괴한은 요마나 취마, 강천리가 뒤를 쫓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
고 그들의 느긋한 행동보다 구멍이 뚫린 포위망을 구축한 점
이 더 큰 의문으로 다가왔다. 괴한의 두뇌는 맹렬하게 달리
는 다리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통 포위는 사면을 막지 삼면만 막지 않는다. 삼면을 막는
경우는 적과의 충돌로 인해 큰 피해가 생길 경우뿐이다. 퇴로
를 열어 주고 나중에 추적하면서 아군의 피해는 적게 내고
적의 피해를 많이 만드는 방법이다.'
괴한의 머리는 끊임없이 회전했다.
'적에게 완승할 정도의 수를 가지고 있다면 사면을 포위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저들은 삼면만 막고는 추적할 의지조
차 보이지 않는다. 나를 이곳에서 놓친다면 다시 잡을 수 없
는데...'
그는 간단하게 결론 내렸다.
'답은 하나군.'
포위망을 짜면서 일부로 한쪽을 비워 두었다면 두 부류의 사
람뿐이 없다. 하나는 삼척동자보다 어리석은 자이고, 두 번
째는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적의 도주를 역으로 이용할 계책
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이 앞에 매복이 있다.'
괴한은 요마 일행이 사면을 포위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런데 사면초가의 신세에 빠진 괴한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
가 절망하지 않은 것은 강호에서 요마나 취마, 강천리 정도의
고수급을 찾기가 힘들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요마나 취마
수준이 아니라면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드넓은 강호에서 요마나 취마 정도의 고수를 만나는 것
자체가 희박한 일이다. 게다가 한 지역에 정상급의 고수들이
모인다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경우다. 괴한이 희망을 가진
것은 좌측을 막은 인물이 능히 감당할 자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괴한의 착각이었다. 좌측방향에 매복한 인물
의 무위는 요마나 취마에 못지 않았다. 그들이 팔짱을 낀
채 괴한의 도주를 구경만 한 이유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
문이다. 그러나 괴한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괴한은 도망가는 방향보다 삼면을 포위한 요마와 취마, 강천
리의 움직임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갑자기 수풀이 흔들리더니 한 사나이가 나타나 승표(繩 )를
던졌다.
쐐에엑.
"헉!"
괴한은 경악했다. 아무리 후방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고 해
도 자신의 능력으로 전방에 나타난 적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
했기 때문이다.
휘리릭.
괴한은 오른 발로 땅바닥을 거세게 박차 허공으로 뛰어 올랐
다. 그리고 허공에서 연속으로 좌회전을 감행해 방향을 선회
했다. 기습을 피하는 괴한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방향을 바
꾸는데 달리던 힘을 모두 이용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괴한은 허공에서 몸을 틀어 승표를 피한 뒤 금도를 휘둘렀다.
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금도의 도첨(刀尖)에서 날카로운
도기가 쏟아져 나왔다. 도기는 승표의 줄을 향해 날아갔다.
승표는 유성추(流星錐)가 발전한 병기로 추 대신에 탈수표와
같은 표창이 달린 병기였다. 줄이 끊어진다면 병기로써의 가
치는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능력은 괴한의 예측을 뛰어 넘었다. 그는
금도에서 쏟아져 나온 도기를 간단하게 무력화시켰다. 줄을
잡아 당겨 승표를 회수해 도기를 피해 버렸다. 도기는 허공
을 가르고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괴한은 상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비록
상대가 20대의 젊은이였지만 실력만큼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평소 그는 이런 실력자를 만나면 무조건 회
피했다. 하지만 요마나 취마, 강천리가 뒤에 포진해 있는 상
황에선 피할 방법이 없었다.
"빌어먹을... 완벽하게 걸렸군."
괴한은 이를 갈며 독백했다. 그는 요마나 취마, 강천리가 공
격을 시작하면 탈출은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염두(念頭)에 두
고 있었다. 탈출을 하려면 앞을 가로막은 승표의 달인을 빠
른 시간 안에 해치워야 했다. 그 외 다른 방법은 없었다.
괴한은 유성추나 승표와 같은 암기의 단점을 생각했다. 장거
리에서 유리하지만 단거리에서 무력하다는 특성을 이용해 단
숨에 적을 파해할 계획을 세웠다. 괴한은 모든 내력을 끌어
올려 마환영(魔幻影)을 펼쳤다.
퍽.
괴한이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승표를 들고 있는 자의
면전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근접 전투를 펼치기로 생각한
것이다. 금도를 휘둘러 상대를 두 동강 내버리고 바로 탈출
을 하려고 했다. 탈출에 대한 강렬한 의지는 전력을 금도에
쏟아 붙도록 만들었다. 금도는 황금빛 찬란한 도기를 뿜어냈
다.
챙.
그러나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금도는 허공에서 멈춰 버렸
다. 승표를 휘두르던 젊은이가 갑자기 등뒤에 있던 검을 빠
른 속도로 뽑더니 금도를 막아 버린 것이다. 괴한은 젊은이
가 사용한 발검 형식을 보자마자 알아챘다.
"악가쾌검의 발검식!"
승표를 사용한 젊은이는 악중악이었다. 악중악은 괴한이 잠
시 멈칫하자 팔십일로 악가쾌검을 한꺼번에 쏟아 부었다.
챙. 챙. 챙...
산동악가의 양대 절학 중에 하나인 악가쾌검의 위력은 가공
했다. 괴한의 삿갓이 한순간에 두 동강나서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소름끼치는 쾌도를 자랑하던 괴한이 악중악의 쾌검
은 방어하기 힘든지 식은땀을 흘렸다. 한순간이라도 상대의
움직임을 놓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들이 느끼는 긴장감과 집중력은 엄청났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검과 도는 더욱 빨라져만 갔다. 두 사람이 사용하
는 병장기의 형체는 고사하고 움직임도 보이지도 않았다. 오
직 강력한 파공성과 병장기가 부딪치며 내는 금속성만 울렸
다.
"타!"
괴한이 기합소리를 내더니 마환영을 사용해 뒤로 물러났다.
도검이 맞부딪칠 때 발생한 탄력을 이용한 덕분이었다. 안
전권으로 물러나자 격투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괴한
의 마음은 충격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었다. 비록 상처를 입
지는 않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너, 너는 누구냐?"
"먼저 자기가 누군지 밝히는 것이 기본이오."
"무엇이... 빌어먹을... 좋다. 나는 환객이다."
"환객이라... 정말 이상하군."
악중악의 반응은 당연했다. 궁륭산 태을궁에서 만난 환객과
현재 자신을 환객이라고 주장하는 괴한이 다른 사람이기 때
문이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냐?"
"당신이 환객이라면 나를 알아야 하오."
"너를 알아야 한다고!"
"나는 궁륭산에서 환객을 만난 적이 있소. 당신은 자신을 환
객이라고 주장하지만 내가 만난 인물이 아니오."
악중악의 시선은 싸늘했다.
"궁륭산? 그렇다면 너는 본 방의 인물이냐?"
"본 방이라... 당신이 말하는 방파가 사해방이오?"
"그렇다."
"좋소. 당신은 환객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을 생각이오?"
악중악은 괴한에게 질문했다.
"나는 환객이다. 그리고 네가 사해방의 인물이라면 너와 나는
같은 밥을 먹는 형제이다."
"그러니 길을 열어 달라 이것이오?"
괴한은 뒤를 힐끗 처다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환객이라면 길을 열어 주겠소."
"내가 환객이라는 증거를 내보이라는 것이냐?"
"맞소."
"무엇을 내놓으면 내가 환객인 것을 인정하겠느냐?"
"집법금패!"
악중악은 싸늘한 어투로 집법금패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집
법금패는 집법원 소속의 집법사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
는 신분증이나 다름없었다. 악중악이 집법금패를 확인하면
환객으로 인정한다는 이유는 간단했다.
집법금패는 하나지만 환객은 다수로 나타났다. 그런데 악중
악이 아는 환객은 궁륭산 태을궁에 나타난 인물이었다. 그리
고 그 환객은 집법금패를 사용해 집법사자들을 움직였던 것
을 기억했다.
괴한은 집법금패를 내보이라는 말을 듣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가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품속에 집법금패가 있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손에 들린 것은 집법금패가 아니었
다. 두 치 정도의 두께를 가진 검은 쇠 구슬이었다.
"죽어라!"
고오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쇠 구슬은 악중악의 이마를 향했다.
귀청이 떨어지는 파공성과 엄청난 속도를 봤을 때 쇠 구슬에
담긴 내력이 얼마나 가공한지 알 수 있었다. 괴한은 단숨에
악중악을 죽이겠다는 강한 의지를 쇠 구슬에 담은 것이다.
그런데 악중악은 상대가 품속에 손을 넣는 순간부터 더욱 긴
장했다.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는 행동은 자연스럽게 나올 때
가 무서우며 한순간의 방심은 죽음으로 가는 길인 것을 한시
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악중악은 괴한이 펼칠 암수를 미리 기다렸다는 듯 평온했다.
자기 이마를 향해 날아오는 쇠 구슬을 바라보는 담담한 시
선은 오히려 괴한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쇠 구슬이 두 자 정
도 거리까지 도달하자 악중악은 검을 휘둘렀다. 검속(劍速)
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꽝.
쇠 구슬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터져 나온 폭음은 강력했다.
검과 쇠 구슬 양쪽에 내재된 막대한 내공과 가공할 속도는
엄청난 충격파는 만들었다. 폭음과 함께 검은 두 동강나버
렸고 쇠 구슬은 제 궤도를 잃어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퍽.
쇠 구슬은 악중악의 좌측 사선 방향에 있는 고목에 박혔고,
두 동강 나버린 검 조각은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가 땅바닥
에 박혀 버렸다. 검과 쇠 구슬은 둘 다 비슷한 내력과 속도
를 가졌지만 가속도의 차이로 일어난 변화였다. 먼 거리를
날아온 쇠 구슬에 더 많은 가속도가 붙었던 것이다.
생사를 가르는 승부에선 사소한 차이라도 중요한 법이다. 악
중악의 검이 부셔지는 순간 괴한은 승부를 내야겠다고 결심
했는지 무서운 속도로 돌격을 감행했다. 허깨비처럼 사라졌
다가 악중악의 면전에 유령처럼 나타났다. 일체의 파공성도
없는 괴한의 신법은 경이로웠다.
게다가 악중악의 머리를 향해 내려치는 금도에서도 바람 소
리조차 나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느낌을 들게 하는 움직임이
었다. 그런데 자기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바라보는
악중악의 눈동자는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묘한
눈웃음이 그려져 있었다.
"합!"
악중악은 양손을 올려 합장자세를 만들었다. 그런데 합장한
양 손바닥 사이에 금도가 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악
중악은 자기 손바닥에 잡혀 꼼짝도 못하는 금도를 보며 싸늘
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열양공과 한음공, 이합진결을 융합
해 완성한 독문 내공인 한빙열화공(寒氷熱火功)을 양 손바닥
에 퍼붓기 시작했다.
웅. 웅. 웅.
금도는 뜨겁고 차가운 두 종류의 기가 쏟아져 들어오자 울음
을 토해 내며 진동했다. 그리고 강력한 내력의 대결은 금도
를 마주 잡은 두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시켰다. 상대가 움직
이지 못하자 악중악은 칼을 잡은 합장을 옆으로 비틀기 시작
했다.
끼이익~.
금도의 직립자세를 유지하려는 괴한의 의지와 옆으로 비틀어
버리려는 악중악의 의지는 한치의 물러서지 않고 격돌했다.
두 사람의 강렬한 의지를 금도는 버틸 재간이 없었는지 꽈배
기처럼 휘고 말았다. 낙양금도와 금도대협이라는 명성을 만
든 금도는 주인이 저승에 간지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그 수
명을 다하고 말았다.
악중악이 암수를 막았을 뿐 아니라 금도마저 망가트리자 괴
한은 분노했다. 금도를 놓아 버리고 육공도를 사용해 악중악
을 쳐죽기고 싶었다. 그러나 내력 대결에 들어간 이상 함부로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금도가 비록 꽈배기처럼 휘어졌지만 아직 두 동강나지 않은
이상 내력 대결은 계속되는 것이다. 포기하거나 지는 순간
두 사람의 내력이 합쳐진 힘이 쏟아져 들어와 내부를 박살낼
것이다. 두 사람의 대결은 팽팽하게 유지됐다. 악중악이 도
첨 부위를 양손으로 잡아 도병을 잡은 괴한의 유리함을 상쇄
시켰기 때문이다.
끼리릭...
금도는 두 사람이 쏟아 붙는 내공이 많아질수록 그 형체를
잃어버렸다. 특히 도신(刀身)의 중간 부분은 변형이 심각해
언제 두 동강날지 몰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내공 대결을
멈출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마리
염소와 같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내력 대결이 계속되자 악중악은 이상한 점
을 찾았다. 자기는 양손으로 금도를 잡고 있는데 괴한은 두
손을 쓰지 않고 한 손만 사용하는 점이었다. 악중악은 괴한
이 또 다른 암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예측했다.
내공대결을 하다가 단 한순간 허점을 보인다면 상대는 암수
를 날릴 것이라고 악중악은 생각했다. 그것도 치명적인 암수
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악중악은 지루한 내공대결을 끝내
버리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의 내력대결은 승부를 떠나 심각
한 후유증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 네가 숨기고 있는 수를 써라. 그 순간을 나는 이용하마.'
악중악은 괴한이 암수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하
기로 했다. 괴한의 빈손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행동
하면서 내력에 집중하는 척 했다. 악중악이 자기 오른 손에
신경쓰지 않고 내공대결에 집중하자 괴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때를 기다린 것이다. 손바닥을 가볍게 돌려 손톱이
보이지 않게 한 후에 음시조의 공력을 끌어 올렸다. 내공과
정신이 두 개로 분산되면서 일시적으로 불리하겠지만 승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리석은 놈. 나이에 맞지 않게 높은 무공을 가졌지만 역시
경험이 부족한 애송이야.'
괴한의 손은 회백색을 띄기 시작했고 손톱은 검게 물들었다.
음시조를 2단계의 경지까지 터득했다는 증거였다. 그는 음
시조로 악중악을 격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악중악의 머리는 괴한의 생각보다 앞서 있었다. 괴
한이 암수를 사용하는 순간 금도를 잡고 있는 왼손의 내력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악중악의 예측은 정확했다. 괴
한이 음시조의 공력을 운용하자 금도에 가해지는 내력이 3할
이나 감소했다.
괴한은 내력이 딸리자 도병을 잡은 손을 뒤로 뺐다. 자연스
럽게 길게 뻗은 팔이 접히자 괴한의 몸은 앞으로 나섰다.
악중악과 괴한의 거리는 금도의 길이보다 가까워졌다. 괴한
은 거리를 확보했다는 생각이 들자 승리를 예감해 입가에 미
소가 떠올랐다.
그는 오른 손을 뻗어 악중악의 심장을 꿰뚫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괴한의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이 나타났다. 악중악
의 안색이 순식간에 붉은 색과 푸른색으로 교차하더니 두 배
가 넘는 내력을 생성된 것이다.
극강한 내력이 금도를 통해 괴한의 팔에 쏟아졌다. 음양이
교차하는 순간 내력이 증폭하는 한빙열화공의 진정한 위력이
나타난 것이다. 괴한은 갑자기 터져 나온 악중악의 강력한
내력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다.
"헉!"
강력한 반진력에 의해 뒤로 날아간 괴한의 입에선 신음소리
가 터져 나왔다. 음시조를 사용해 악중악을 격살하려던 괴
한의 계획은 실패했다. 무려 삼십여 보나 밀려났지만 괴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괴한은 육공도로 섭혼도법을 사용하면서
음시조로 악중악의 심장을 뽑는 공격을 짜냈다.
"아니! 이런..."
괴한은 육공도를 뽑을 수 없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손등은 심한 화상(火傷)으로 습포가 가득했고
손바닥은 심한 동상(凍傷)으로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심
한 화상과 동상으로 인해 손가락이 마비된 것이다. 게다가
손등과 손바닥이 동상과 화상이라는 전혀 다른 상처를 입는
희한안 일을 당해 어리둥절했다.
악중악의 한빙열화공은 냉기와 열기가 동시에 공존하는 희대
의 기학이었다. 특히 이합진결을 사용해 내력을 나누었다가
합치면 순간적으로 두 배가 넘는 내력을 만들 수 있었다. 괴
한은 망가진 손을 보며 심한 분노에 휩싸였다.
악중악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몸을 날렸다. 괴한의 움직임은
유령조차 감탄할 만큼 빨랐다. 단숨에 악중악 면전에 도착한
괴한은 음시조의 내력을 극한까지 뽑아냈다. 그러나 악중악
은 구경만 하지 않았다.
웅. 웅. 웅~
망가진 금도를 던져 버리고 승표의 줄 중간을 잡고는 풍차처
럼 돌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파바박.
괴한의 전신은 승표의 칼날에 난자됐다. 승표의 칼날이 스
치고 지나간 곳은 피가 터져 오르고 깊은 자상(刺傷)이 생겼
지만 괴한의 입에선 비명소리는 고사하고 신음소리조차 나오
지 않았다. 괴한은 팔과 몸통, 얼굴과 다리에 수십 개가
넘는 상처가 생겼음에도 오직 악중악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
에 신경을 집중했다.
악중악은 괴한이 고통조차 느끼지 않고 불사의 괴물처럼 돌
격해 오자 등골이 서늘했다. 승표를 이용한 공격이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른 수단을 사용하기로 작정했다. 손
목을 비틀어 승표를 당겨 공간을 확보한 악중악은 자기 심장
을 향해 거세게 날아오는 괴한의 음시조를 바라보며 비웃음
을 던졌다.
윙~.
강렬한 파공성을 내며 날아가는 음시조의 위력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흥분해 이성을 잃고 공격하는 것은 어
리석은 행동이었다. 악중악은 날아온 승표의 칼날을 입에
물고 음시조를 기다렸다.
음시조가 흉부에 한 자 정도까지 도달하자 악중악은 오른 손
바닥이 땅을 향하도록 펴고는 목 부위에 올리다. 그리고 왼
손바닥은 하늘을 향한 채 배꼽 부근에 내려놓아 마치 보이지
않는 큰공을 안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게다가 오른 손
바닥은 붉게 변해 있었고 왼 손바닥은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
다.
음시조는 양 손바닥 사이를 지나가다 무형의 힘에 걸린 듯
멈추어 버렸다. 괴한은 갑작스런 현상을 당하자 정수리에
찬물이 쏟아진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괴한은 신중하지 못
한 자신을 자책했다.
그러나 후회는 너무 늦었다. 악중악이 양팔의 위치를 정반
대로 돌리는 순간 음시조는 괴한의 의지에서 벗어나 버렸다.
음시조는 무형의 힘의 이끌려 괴한의 왼쪽 어깨 부분을 강
타했다.
와드득.
"크윽! 이런..."
괴한의 왼쪽 어깨는 자신의 오른 손이 깊게 박혀 버렸다. 어
깨뼈는 일격에 박살이 나버린 데다가 음시조의 독기마저 흘
러 들어오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독기의 강렬함은
흘리는 피가 순식간에 검게 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괴한은 자기 손톱에 묻어 있는 시독에 중독돼 버렸다.
뚝. 뚝. 뚝...
검게 변해버린 피가 땅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괴한의 검은
피가 닫은 풀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지독한 독기였다.
"이, 이건 무슨 무공이냐?"
괴한은 악중악이 사용한 무공이 궁금했다. 희한한 자세와
기괴한 위력은 말할 것 없고 손바닥의 위치가 바뀌면서 달라
진 색깔은 궁금함을 증폭시켰다. 악중악의 왼 손바닥은 오
른 손과 위치를 바꾸면서 푸른색에서 붉은 색으로 변하더니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팔이 위치를 바꾸면서 음양의 두 종류 내공이 흐름마저 바꾼
것이다. 열기가 흐르던 팔에 갑자기 냉기가 흘렀다간 큰 충
격을 받는 법이다. 그러나 악중악의 안색은 평온했다. 그
런데 악중악은 자신의 내공에 대한 괴한의 궁금증보다 고통
을 표현하지 않는 상대의 인내력이 궁금했다.
괴한은 어깨에 박힌 손을 뺀 뒤 악중악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손을 뽑으면 과다 출혈이 발생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
다. 그러나 탈출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그에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깨에 손을 박은 자세로는 도망갈 수 없었기 때문
이다.
악중악은 입에 물고 있던 승표의 칼날을 잡았다. 오른 손으
로 칼날을 잡고 왼 손으로 줄을 잡은 뒤 괴한을 노려보았다.
그리는 승표에 묻은 피로 인해 더러워진 입가를 소매로 딱은
후 침을 뱉었다. 입안에 칼날에 묻어 있던 피가 들어 왔기
때문이다.
"퇴!"
땅바닥에 떨어진 침 속에는 피가 고여 있었다.
"자네가 사용한 무공의 이름은 무엇인가?"
괴한은 다시 한번 질문했다.
"도음접양(導陰接陽)."
악중악의 음성은 싸늘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놀라웠다.
도음접양은 북해방주와 괴의 공손찬이 평생을 추구했던 음양
팔반장의 다섯 번째 초식이었다.
"도음접양이라... 전설로 듣던 보타산의 차경미기와 비슷하
군."
괴한은 악중악의 무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좌우와 뒤에
신경을 썼다. 요마와 취마, 강천리의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것으로 괴한이 아직도 도주할 생각을 포기하지 않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요마나 취마가 포위망을 구축한 채 움직
이지 않자 생각보다 탈출이 용이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악의 상황은 오히려 괴한에게 평정심을 되찾게 해주었다.
악중악을 노려보는 괴한의 눈매는 차갑게 변해 버렸다. 저
승사자에게 끌려가도 정신만 온전하면 되살아날 방법이 있다
고 생각하는지 그의 안색은 평온했다. 악중악은 괴한의 안
색이 평온해지자 감탄했다.
"놀랍군. 그 정도 상처면 고통이 심할 건데 신음소리조차 내
지 않는군."
악중악은 괴한의 인내심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괴한의 왼
손은 화상과 동상이 동시에 걸려 있고 어깨는 음시조로 인해
구멍이 뚫려 있었다. 게다가 뼈마저 부셔진 상태에 한빙열화
공의 내력으로 인해 심한 내상을 입었는데도 괴한은 고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감탄할 필요는 없어요. 악 각주님. 저자는 결코 관운
장이 아니오."
"무슨 말씀입니까? 팔 당주님."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요마는 괴한의 인내심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악중악은 요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의아
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이 자가 익힌 음시조는 강호칠대금지무학 중에 하나입니다.
강호칠대금지무공이 뛰어난 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금지무
공이 된 것은 심각한 폐해 때문이지요."
"폐해?"
"그래요. 총 다섯 단계로 나누어진 강호칠대금지무공은 2단계
만 올라가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문제라고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악중악은 요마 모용혜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간단히 이자가 익힌 음시조만 설명하지요. 음시조를 2단계까
지 익히면 촉각이 사라져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신체가 됩니
다."
"촉각이 사라진다면 그만큼 감각이 둔해진다는 이야기 아닙
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무공이 둔화될 건데 왜 그런 무공을
익히는 것인가?"
악중악은 음시조의 폐해를 듣고 의아했다. 무공에 있어서
감각은 생명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촉각을 없애는 무공을 일
부로 배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간단해요. 강호칠대금지무공 중에 어느 것이라도 3단계의 경
지에 도달하면 적수를 찾기가 힘들게 되지요. 물론 3단계에
이르면 사람이 가진 일곱 가지 감정 중에 하나가 사라지는
폐해가 기다리고 있지요."
"그렇군요. 그 정도 손해와 적수를 찾기 힘든 무위를 바꾸는
것이면 누구든 유혹에 넘어가겠군요."
"그래서 칠대금지무공을 배척하면서도 배우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모용혜는 중간에 말을 끊었다. 잠시 괴한을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3단계에 도달하면 천 일 안에 4단계의 경지에 올라야 하지
요. 만약에 천 일 안에 오르지 못한다면 내공이 혈맥을 역류
시켜 전신을 터트리죠."
"참혹한 죽음이군요"
악중악은 칠대금지무공의 위험성에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괴한이 받은 충격보단 놀라움의 강도는 크지 않았다.
괴한은 그 사실을 몰랐는지 전신을 미비하게 떨었다.
"설령 4단계에 오른다 해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에요. 4
단계에 오른 순간부터 5단계의 경지를 천 일 안에 이루어야
해요. 이루지 못하면 바로 죽음이지요."
"가히 사악한 무공의 대명사라 할 수 있군요. 그런데 4, 5단
계에 또 다른 폐해는 없습니까?"
악중악은 칠대금지무공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있어요. 그 폐해가 일곱 가지 무공을 강호에서 금지무공으로
선포하게 만들었지요. 4단계에 오르면 인성이 마비되면서 반
정도 미쳐버리지요. 한번 생각해 봐요. 미치광이 고수들이 강
호를 활보한다면 벌어질 사건들을 말이에요."
"재앙이겠군요."
"맞아요. 하지만 거의 모든 인물이 5단계의 벽을 뚫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 그나마 다행이지요."
"천 일 후에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군요."
악중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죽음을 피하지 못한 인물들을 상
상했다.
"그런데 문제는 5단계에 오르는 괴물이 나타나는 것이죠. 5단
계에 오르는 순간 인성은 사라지고 오직 살육에 미쳐버린 야
수로 탄생하지요."
"5단계에 이른 인물이 강호에 나타난 적이 있습니까?"
"세 번이나 있었지요. 그때마다 강호는 풍비박산이 났지요.
그래서 7대금지무공을 익히는 자를 발견하면 흑백양도를 가
리지 않고 무조건 죽이기로 정했고 비급은 발견 즉시 파기하
기로 약속했어요. 덕분에 강호에서 칠대금지무공은 자취를 감
췄지요."
"하지만 아직도 칠대금지무공을 익히는 자가 나오지 않습니
까?"
악중악은 칠대금지무공의 유래를 듣다가 비연자 목추영이 혈
지도를 사용해 팽가섭을 공격했던 순간을 생각했다. 강호를
활보한지 일 년밖에 되지 않은 자신이 벌써 혈지도와 음시조
라는 두 종류의 무공을 목격했기 때문에 나온 반문이었다.
"그만큼 매력이 있으니 숨기는 자가 생기죠. 자신이 익히던
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익히게 만들어 이익을 챙기는 사람
이 없다고 말할 순 없죠."
"그렇겠군요. 어차피 인간은 약속을 하면서 파기할 생각을 저
변에 깔고 하니까. 일방적으로 파기한 쪽이 그만큼 이익을 챙
길 수 있으니 어기는 것이 인지상정이군요."
"당연한 말이에요."
모용혜는 악중악의 생각에 찬성했다. 그리고 악중악은 목추
영이 혈지도를 펼치자 갑자기 다른 사람들이 차가운 시선으
로 노려보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악중악과 요마
모용혜가 칠대금지무공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신경이 분산
되자 괴한의 눈동자는 틈을 찾기 시작했다.
괴한의 눈동자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번뜩였다. 악중악이
비연자 목추영을 생각하는 순간 틈이 생긴 것이다. 괴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남은 내력을 모두 끌어 모아 두 다
리에 폭발시켰다.
팍.
괴한의 그림자는 악중악의 사각을 가로질렀다. 하늘에서 떨
어지는 벼락이라도 괴한의 빠름을 따를 수는 없는 것처럼 보
였다. 괴한은 순식간에 악중악을 제치고 도주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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