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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명공강(冥空 )-3 괴한이 빈틈을 타서 도주해 버리자 악중악의 입에서 신음 소 리가 흘러나왔다. "헉!" 악중악은 고개를 돌려 괴한이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는 모습 을 바라보았다. 잠깐의 방심이 부른 사태에 자책하면서 도 주하는 괴한을 뒤쫓으려고 했다. 그런데 모용혜는 괴한이 도주할 것을 짐작이라도 한 듯 차분했다. 도주하는 괴한의 등을 싸늘하게 노려보더니 틀어 올린 머리카락에 박혀 있던 비녀를 뽑아 던져 버렸다. 쐐엑~. 비녀는 바람을 가르며 괴한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괴한은 등뒤로 암기가 날아오자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비 녀와 신체를 일직선으로 맞추더니 꽈배기처럼 꼬아버렸다. 비녀는 괴한이 몸을 비틀어 버리자 그 사이로 스쳐지나가 버 렸다. 퍽. 괴한을 맞추지 못한 비녀는 앞에 있는 암벽에 깊숙이 박혀버 렸다. 비녀에 실린 내력이 얼마나 가공했는지 모습은 보이지 도 않았다. 괴한은 암기로 날아온 비녀를 피한 순간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괴한은 비녀를 피하기 위해 몸을 비트는 바람에 상대에게 찰 나의 시간을 주고 말았다. 그 순간을 악중악은 놓치지 않았 다. 악중악은 괴한의 발을 향해 승표를 던졌다. 괴한은 승 표가 발을 노리고 날아오자 또 다시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녀가 아니었다. 줄이 달린 승표였던 것이 다. 악중악은 괴한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승표를 피하자 줄을 교묘하게 흔들었다. 승표는 뱀처럼 또아리를 틀더니 방향을 선회해 괴한의 오른 발을 감아 버렸다. "헉! 이런!" 괴한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다. 그러나 악중악의 안색은 싸 늘하게 굳어 버려 한 올의 감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악중악 은 다시는 실수하거나 방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적을 일단 무력화시킨 후에 다음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파박. 악중악은 결심한데로 움직였다. 승표를 사정없이 잡아 당겨 서 괴한의 발목을 절단해 버린 것이다. 승표의 칼날에 절단 된 발목은 허공으로 날아 올랐고 피는 분수처럼 터졌다. 그 러나 괴한의 입에선 단 한 점의 신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땅바닥에 떨어지자 몸을 굴러 또 다시 도주를 감행했다. 하 지만 멀쩡한 두 발로도 도망갈 수 없었는데 외다리로 탈출한 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어느새 요마 모용혜 가 차가운 미소를 던지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아 섰다. "타!" 괴한은 유일하게 남은 공격수단인 음시조로 요마 모용혜를 공격했다. 그런데 모용혜는 음시조가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데도 담담했다. 음시조가 석자 거리까지 도달하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을 머리끝까지 올리더니 수도(手刀)형태로 만 들어 내리쳤다. 수도는 허공을 갈라버렸다. 윙. 수도가 허공을 가르자 반달 모양의 기류가 나타났다. 반달 모양의 기류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더니 괴한의 음시조와 격 돌했다. 쩌억. 승부는 간단하게 났다. 반달 형상의 새하얀 기류는 괴한의 중지와 약지 사이로 파고들더니 팔목까지 두 조각으로 가르 고 나서야 사라졌다. 주르륵... 두 개로 갈라진 꼬리처럼 변한 괴한의 팔에서 엄청난 양의 푸른 피가 땅바닥으로 쏟아졌다. 파란 피가 묻은 땅바닥은 새카맣게 타올랐다. 푸른 피가 머금은 독기는 가공할 정도였 다. 그런데 보기에도 섬뜩한 장면을 모용혜는 평온해 안색으 로 보고 있었다. "기껏 2단계에 오른 음시조로 나를 공격하다니 당랑거철(螳螂 拒轍)이 따로 없구나." "이, 이 처 죽일 년!." 퍽. 괴한의 욕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모용혜가 수도를 날려 괴한의 오른 팔을 두 동강 내버리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잘 려진 팔이 기묘한 포물선을 그리더니 땅바닥에 떨어지자 한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으아악~." 갑자기 괴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 동안 어 떤 상처를 입어도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던 괴한이 겨우 팔 하나 떨어진 것까지고 비명을 지르자 다들 어리둥절했다. 요마 모용혜는 어리둥절해 하는 일행들을 향해 고혹적인 미 소를 지었다. "칠대금지무공은 3단계 경지까지는 그 무공을 익힌 부위를 절단하면 효력이 사라집니다. 특히 금지무공을 익힌 부위가 절단될 때의 고통은 같은 아픔보다 몇 배나 된답니다." 괴한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땅바닥을 구르면서 비명을 지르 고 있었지만 모용혜는 무슨 일이 있냐는 듯이 방글거리고 있 었다. "다행이군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고문을 해도 아무 소용 이 없겠구나 생각해서 심문을 포기했는데, 이렇게 고통을 느 끼는 모습을 보니 조금만 노력해도 많은 소득이 있겠군요." 악중악은 모용혜보다 한술 더 떴다. "악 각주님의 말이 옳아요. 그런데 누가 고문을 하는 것이 효 과적일 까요?" "그건 등 사형이 적격일 것입니다." 악중악의 시선은 등곡을 향했다. 살업(殺業)을 주로 담당하 는 북혈각의 각주라면 고문에도 일가견이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등곡은 악중악을 향해 싸늘한 미소를 던지더니 고 개를 끄덕였다. 모용혜는 등곡을 보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괴한을 외면하더니 암기로 이용한 비녀가 박힌 바 위를 향해 걸어갔다. 비녀를 회수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 써 더 이상 괴한에 대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바위에 취마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취마는 비녀가 박혀 있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손가락은 바위를 두 부로 생각하는지 가볍게 뚫고 들어가 버렸다. 비녀를 회수 한 취마는 요마 모용혜에게 전해 주면서 말했다. "봉황금차(鳳凰金 )는 네게 소중한 물건이 아니냐. 그런 물 건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거라." 취마는 모용혜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마와요. 둘째 오라버니." "실없는 소리구나. 그런데..." "말씀하세요. 오라버니." "왜 저자를 등곡에게 넘겼느냐? 저 괴한은 분명 집법원 소속 이다." "후후후, 집법원은 북해방과 연계한 것이 확실한데 왜 등곡에 게 넘겼냐는 것이죠." 취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요마 모용혜가 무슨 의도를 가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팔 당주님. 저도 팔 당주님의 의도를 알 수가 없 습니다." "오호~, 연 방주는 알아챌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연 방주 를 너무 과대평가 한 건가요? 아니면 일부로 나에게 자신의 지혜를 숨기는 것인가요?" 의문의 중년인이 다가와 요마와 취마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저같이 천한 사람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팔 당주께서 저를 너무 과하게 평가한 것입니다." "호호호, 천하의 구류방주 연적심을 누가 천하다 할 수가 있 나요. 연 방주, 너무 그렇게 속마음을 숨기는 것도 좋은 것은 못돼요." 의문의 중년인은 구류방주 연적심이었다. "무슨 말씀인지 소인은 어리석어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 "계속 시치미를 떼는군요. 단순하게 겸손하거나 계륵(鷄肋)의 고사를 염두(念頭)에 두고 행동한 것이면 별 문제가 아니지 요. 하지만!" "소인은 그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 아닙니다. 팔 당주님." "흥! 사람 수에 관해서는 개방조차 능가한다는 구류방의 주인 이 뛰어나지 않다!" 모용혜의 눈빛은 싸늘했다. 그러나 구류방주 연적심은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능청을 부렸다. "호호호. 좋아요. 믿기로 하죠." "고맙습니다. 팔 당주님." "그러나 당신이 속내를 속였다면 다른 뜻을 품었다고 생각하 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팔 당주님께서 갑자기 저를 의심하는 이 유를 모르겠습니다." 연적심은 모용혜가 자신을 의심하는 원인을 모르겠다며 시치 미를 뗐다. "나 역시 연 방주의 말이 옳게 느껴지는구나. 팔 매야. 아무 래도 형제들 죽음 때문에 네가 날카로워진 것 같구나." "후우~. 알았어요. 오라버니. 제가 그만 실언을 한 것으로 치 죠." 모용혜는 취마가 구류방주의 역성을 들자 한숨을 쉬고 말았 다. 취마가 구류방주에게 가지고 있는 믿음이 생각보다 크 자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그러나 연적심의 작은 행동이 그 녀의 뇌리에 의심을 심어줬다. 그러나 구류방주에 대한 의심보다 더 큰 문제가 산재해 있다 는 현실 때문에 일단 나중에 처리하기로 생각했다. 악삼 일 행을 추적하는 문제와 북해방과 집법전의 관계, 이 장도를 이 용해 팔마당을 위험에 빠트리려는 음모를 해결하는 것이 먼 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보다 저자를 등곡에게 넘긴 이유나 말해다오." "그거야 당연하죠" "당연하다니?" "저놈은 집법원 소속이 확실해요. 그리고 북해방과 집법원은 한 배를 탄 것도 사실이에요." 취마는 모용혜가 하는 말의 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 "북해방은 오랜 세월동안 남해방과 형제처럼 지내왔어요. 그 런데 어느 기간이 지나자 남해방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나 봐 요." "그렇다면 집법원과 손잡고 남해방을 공격한다는 것인데, 그 건 불가능하다. 북해방과 집법원의 전력으론 남해방을 칠 수 는 있다. 하지만 동해방과 서해방이 있는데 전력이 거덜날 위 험을 감수하며 일을 꾸미겠느냐!" "그러니까 이 장도를 죽이고 그 죄를 우리에게 넘기는 음모 를 사용한 것이죠. 팔마당을 소림사와 격돌시키면 쌍방이 엄 청난 손실을 얻지요. 그야말로 단 한 번의 음모로 어부지리를 얻는데 누군들 꾸미지 않겠어요." 취마는 머리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세상의 인심이 이익을 따 라 움직이는 법이지만 근 10년 이상을 형제처럼 지내던 북해 방의 배신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럼 북해방은 확실히 적이 된 것이냐?" "그래요. 오라버니. 하지만 북해방은 확신이 설 때까지는 적 의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것이에요." "확신! 승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이빨을 숨긴다는 것 이구나." "맞아요. 그리고 내가 저자를 등곡에게 넘긴 것은 북해방주의 생각을 파악하려고 한 것이에요." 모용혜는 등곡의 손에 끌려가는 괴한을 싸늘한 눈빛으로 노 려보았다. "북해방주의 생각이라고?" "네, 북해방주의 생각을 어느 선까지 알고 집행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지요. 이곳엔 북해방주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호법과 제자가 있잖아요. 과연 제자나 호법까지 모르게 일을 진행하는지 아니면 저들도 알고 있는지 명확히 아는 것이 중 요하지요." 취마는 모용혜가 꾸미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 감탄했다. 겉보기엔 요염한 여인에 불과한 모용혜가 가공할 무위를 가 지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전혀 예상 밖의 두뇌마저 가지고 있는 점이 취마가 감탄하는 부분이었다. "네 머리는 심마 아우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보니 네가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드는구 나." "어머! 고마워요. 오라버니. 하지만 여섯 째 오라버니는 저보 다 더 뛰어난 분이세요." "허허허, 겸손까지 갖추고 있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부끄럽잖아요." 모용혜는 얼굴을 붉히며 취마에게 아양을 떨었다. 그런데 취 마와 요마, 구류방주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만 있던 강 천리가 움직였다. 모용혜를 향해 걸어간 것이다. 강천리는 모용혜에 대해 어떤 궁금증이 생겼던 것이다. 취마와 요마, 연적심은 강천리가 도착하자입을 다물었다. "팔 당주님." 강천리는 모용혜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불렀다. "무슨 일인가요. 강 호법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 질문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것이면 상세히 설명을 드리 지요."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저 괴한의 음시조를 파괴한 무공의 명 칭이 무엇입니까?" 강천리는 모용혜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음명장(陰冥掌)입니다. 그런데 내 무공이 무슨 문제라도 있 나요?" "정말 음명장입니까? 다른 명칭이 아니고요?" "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런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하지만 대답해 드리지요. 내가 사용한 무공의 이름은 음명장이에요." 모용혜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강천리는 모용혜의 대답을 듣 고 난 후 안색이 찌푸려졌다. 모용혜의 음성이 떨리지도 않 았으며 표정도 변화가 없어 한 치의 거짓도 찾을 수가 없었 다. 음색과 표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구하지 못한 강천 리 모용혜의 눈동자를 노려보았다, 눈만큼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용혜의 눈동자에서도 강천리가 찾는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고혹적인 눈빛을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림이나 불 안해 보이는 기색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아니면 요마의 연기력이 뛰어난 것인가? 정말 모르겠다.' 강천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용혜가 사용한 무공이 자신이 알고 있던 사악한 무학이라고 생각한 강천리는 그 정체를 밝 히려다 실패해 찹찹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게다가 모용혜 를 믿어야 한다면 자기 안목을 불신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마 음은 더욱 씁쓸했다. "강 호법, 내가 사용한 무공이 궁금한 이유를 말해 주시겠어 요?" "아! 아닙니다. 내가 그만 과민했습니다." 모용혜가 끈적끈적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하자 강천리는 뒤로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호오~, 과묵한 강 호법께서 무엇이 궁금한." "허억!" "크아악!" 모용혜는 갑자기 들려온 두 사람의 비명소리 때문에 중간에 말을 끊고 시선을 돌렸다. 강천리와 취마도 비명소리가 난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두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악 각주님. 어떻게 된 일인가요?" 모용혜는 쓰러진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악중악의 등을 향 해 질문을 던졌다. "괴한이 등 사형에게 암습을 가했습니다. 등 사형은 공격을 받아 쓰러지면서 역습을 가했고요." 악중악은 고개를 잠시 돌려 모용혜에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쓰러진 채 의식을 잃은 등곡에게 다가갔다. 등곡의 오른쪽 흉부에 작은 비수가 박혀 있었다. "중태입니다. 치료를 빨리 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악중악은 등곡의 상처를 보며 말했다. "으흠... 중태라..." "그렇습니다. 칼이 폐에 박힌 치명상입니다." "그 정도로 중상인가요! 일단 칼을 뽑아 버리고 출혈을 막아 야겠군요." "칼을 뽑았다간 과다출혈과 호흡곤란으로 죽음을 면치 못합 니다." 악중악이 등곡의 상태를 설명하자 모용혜는 혼란에 빠졌다. 갑자기 발생한 사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던 방향으로 진행됐 기 때문이다. "일단 북경에 가야겠습니다." 악중악은 등곡을 양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북경을 향해 달리 기 시작했다. 모용혜는 곤혹한 표정으로 달려가는 악중악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쓰러진 괴한의 요모조모를 살펴보 던 강천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 당주. 이 자는 즉사했소. 노부는 악 각주의 뒤를 따르겠 소." "우리도 악 각주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알았소이다. 그럼 먼저 갈 것이니 뒤를 부탁하겠소." 강천리는 악중악의 뒤를 따랐다. 모용혜는 강천리가 사라지 자 괴한의 시신을 향해 걸어갔다. 괴한의 안면(顔面)은 무 참하게 박살나 있었다. 등곡이 역습으로 날린 일 장에 맞아 즉사를 면치 못한 것 같았다. 취마와 구류방주는 모용혜가 괴한의 시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다가갔다. "무얼 그리 생각하느냐?" "이해할 수 없어요." "뭐가 말이냐?" "나는 등곡이 괴한을 죽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어떤 빌미를 만들어서 말이죠." 모용혜의 시선은 괴한의 시신에 고정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등곡의 상처가 너무 중하다. 연극치고는 너무 중상을 입은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냐?" "네. 그래요. 그래서 더 이상한 것이에요. 아까 강천리와 대화 를 하는 도중에도 나는 등곡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어요." "이상한 행동이 있었느냐?" "네. 아주 약간이지만..." 모용혜는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예측했던 일이 중간에 갑자기 엉클어져 버리자 진가를 파악 할 수가 없어진 것이다. "등곡과 괴한이 눈짓을 나눈 것을 말하신다면 팔 당주님께서 정확하게 보신 것입니다." "연 방주도 봤나요?" "네. 명확하게 보았습니다." "그럼 정말로 이상한 일이구나. 괴한의 생명을 끊는 것이 목 숨을 걸고 연극할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닐텐데... 등곡은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취마는 손으로 턱을 괴고 고민했다. "그거야 오직 등곡만 알겠죠. 어차피 이렇게 된 일이니 북경 으로 가지요." "그러자꾸나. 우리 목표는 악삼이지 이 너저분한 놈이 아니 다." 모용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벌 써 악중악은 고사하고 강천리마저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어서 가자. 이렇다간 저들을 놓치겠다." "네. 알았어요. 오라버니..." 취마가 앞장서 몸을 날리자 연적심이 그 뒤를 따랐고 모용혜 가 마지막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모용혜는 두 걸음 을 채 내밀기도 전에 멈췄다. 그리고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 니 괴한의 시신을 향해 달려갔다. 퍽. 모용혜의 발은 괴한의 시신을 가차없이 후려쳤다. 괴한의 시신은 무려 삼 장이나 날아가더니 땅바닥에 사정없이 나동 그라졌다. 특히 머리 부분이 먼저 떨어지는 바람에 수박이 터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두개골이 박살나 버렸다. 괴한 의 뇌수가 땅바닥에 쏟아지자 모용혜는 미소를 짓더니 몸을 돌렸다. "확인할 것은 해야겠지." 모용혜는 독백한 뒤 취마의 뒤를 따르기 위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왕씨 삼 형제와 괴한의 처참한 시신이 뒹굴고 있는 현장은 모두 떠나버려 황량했다. 땅바닥에 흘러내린 피와 장기(臟 器)는 차가운 북풍(北風)을 맞아 싸늘하게 얼어 버렸다. 그 들이 떠난 지 두 시진 정도 지나자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시신들 사이에 있는 땅바닥에 갑자기 미묘한 균열이 생기더 니 복면을 한 괴한이 나타났다. 그는 요마의 그림자인 비영 이었다. 비영은 주변을 훑어보더니 북경을 향했다. 그리 고 반 시진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파공성이 울리더니 비영이 다시 현장에 날아왔다. "아무도 없는 건가..." 남녀 구별을 하기 힘든 탁한 음성이었다. 게다가 비영의 음 성은 차갑고 음울했다. 비영은 다시 한번 주변을 훑어보더니 시신이 엎어진 곳을 돌면서 꼼꼼히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팔 당주님이 너무 깊게 생각하셨군." 비영은 북경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불게 노을졌던 서쪽 하늘이 검붉게 변하며 어두워지고 동쪽 땅 끝에서 땅거 미가 몰려오는 것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빨리 가야겠군. 벌써 밤이 찾아왔어." 비영은 북경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북경에 도착한 요마 를 한시라도 빨리 만나기 위해 비영은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비영이 사라진 살육의 현장에 뜬 달은 동녘이 붉게 물들기 전에 조용히 사라졌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몰아쳤지만 시신들이 굴러다니는 현장은 상쾌하기는 고사하고 불쾌하기만 했다. 그런데 차가운 새벽 공기와 함께 한 사람의 발걸음소리가 현장에 퍼지기 시작했 다. 얼마 후 한 남자가 살육의 현장에 도착했다. "요마의 그림자는 인내심이 부족하군. 뼈다귀가 얼음이 될 각 오를 하고 하룻밤은 버텨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말이야. 아무 리 생각해도 밀정(密偵)의 자질이 의심되는군." 남자의 독백은 묘한 비아냥이 깔려 있었다. 참혹한 살육의 현장에서도 그 남자는 눈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 은 주위를 훑어보더니 왕씨 삼 형제의 시신에서 멈췄다. "흥, 척 대인 앞에서 개처럼 굴더니... 확실하게 개죽음을 당 했군." 왕씨 삼 형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그의 이름은 석 진이었다. 석진은 평소부터 왕씨 삼 형제를 좋게 보지 않았 다. 왕씨 삼 형제를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척신명이 키 우는 개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개와 같은 반열에 서 놀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개는 아무리 노력해도 개에 불과하다는 것이 석진의 생각이었다. "흐음~, 춥기는 춥군. 빨리 이 자의 시신에서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야겠군." 석진은 괴한의 시신에 난 상처를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 다. "이건 승표에 난 상처니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이 부 분이 문제로군." 석진의 시선이 멈춘 곳은 두 군데였다. 하나는 음시조에 박 살난 어깨와 요마의 손에 잘려진 팔 부위였다. "적의 공격을 역이용해 거꾸로 치는 방법이라면 보타산의 차 경미기가 유명하지. 하지만 이건 확실히 도음접양이군.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어." 악중악이 괴한이 격투를 벌인 것뿐 아니라 대화를 나눈 것조 차 석진은 엿듣고 있었다. 그런데 사용한 무공이 무엇이냐는 괴한의 질문에 악중악이 도음접양이라고 말하자 석진은 경악 했다. 그 당시 은밀한 곳에서 숨도 쉬지 않고 인기척을 드 러내지 않았던 석진이 놀라서 흔적을 드러낼 뻔했으니 경악 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음양팔반장이 또다시 강호에 나타나다니..." 석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음양팔반장이 얼마나 가공 할 무공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쌍면군자 기일로 이후로는 익히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 고 있었는데... 악중악이란 놈은 간단하게 불가능을 깨버렸 군." 석진은 악중악이 괴한을 몰아 부치던 광경을 생각하다가 한 숨을 쉬고 말았다. "악삼 한 사람만 해도 놀라운데, 악중악이라... 아무래도 산동 악가에 대한 판단을 전면 수정해야겠군." 석진은 자기가 알고 있던 산동악가에 대한 정보를 모두 무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와 자료를 수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 문뜩 놀라운 사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 가자 깜짝 놀랐다. "악삼과 악중악은 모두 태을궁에서 수련을 했지. 그런데 분명 히 끝까지 남은 인원은 8명이었어. 그렇다면 설마 다른 놈들 도 악삼이나 악중악 정도의 수준이라면..." 석진은 전신을 부르르 떨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악삼이나 악중악 정도의 인물들이 그렇게 많이 나올 수는 없다. 쓸데없는 고민이야." 석진은 악중악이나 악삼에 대한 생각을 일단 접기로 했다. 당면한 문제는 악삼이나 악중악이 아니라 괴한의 시신이 증 언하는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석진은 두 번째 로 신경을 쓰게 만드는 상처에 신경을 집중했다. 요마의 손에 의해 팔이 잘려진 상처에 시선을 모았다. 그런 데 상처에 시선이 간 순간 잡념은 깨끗이 날아가 버렸다. 일부로 시선을 집중할 필요도 없었고 산동악가에 대해 생각 할 필요도 없었다. 이상한 부자연스러움을 상처는 말하고 있 었다. 상처는 자연스럽게 석진의 시선과 신경을 집중시켰 다. "아무리 2단계의 경지라 해도 음시조를 이렇게 쉽게 파해하 다니, 모두가 요마의 무위를 잘못 알고 있었군. 그런데 무슨 무공이기에 이리도 간단하게... 이, 이건 설마!" 석진은 괴한의 팔이 잘려진 부분을 뚫어지게 처다 보다가 고 개를 돌렸다. 땅바닥에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던 괴한의 팔 에 석진의 시선이 멈춰졌다. 석진은 잘려진 팔을 향해 걸어 갔다. 잘려진 팔은 두 갈래로 갈라진 채 새하얀 성에가 뒤 덮여 있었다. "아무래도 확인을 해야겠어." 석진은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괴한의 시신을 바로 눕혔다. 그리고는 괴한의 심장 부근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파박. 손바닥을 뚫고 나온 칼날 같은 경기는 괴한의 왼쪽 흉부를 갈라버렸다. 석진이 사용한 무공은 도자장(刀刺掌)이었다. 그것도 진주언가의 도자장이었다. "빌어먹을... 아니길 빌었건만..." 석진은 갈라진 흉부 사이에 보이는 괴한의 심장을 처다 보며 한탄했다. 심장이 하얗게 얼어 있었고 석진이 아니길 빌었던 증거였다. 석진은 괴한의 흉부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푹. 새하얗게 얼어버린 심장은 석진에 손에 딸려 세상 밖으로 나 와 버렸다. 석진은 얼어버린 심장을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손바닥에 내력을 주입시켰다. 파박. 손바닥에서 또 한 번 날카로운 경기가 쏟아져 나왔다. 도자 장을 운용한 것이다. 칼날 같은 경기는 얼어버린 심장을 두 쪽으로 갈라버렸다. 심장 내부도 차갑게 얼어 있었고 피는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확실하군. 이건 명공강(冥空 )의 흔적이야. 그렇다면 모용혜 의 정체는..." 석진이 넋이라도 나간 듯 멍하니 잘려진 심장을 바라보며 모 용혜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요마 모용혜의 성명삼자는 강호에 알려져 있었지만 누구도 출신이 어딘지 사용하는 무공의 근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모용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처럼 갑자기 강호에 등장 한 인물이었다. 또한 단 한번도 자신에 대해서는 밝힌 적이 없어 의남매를 맺은 팔마당의 일곱 마인들 조차 모용혜의 정 체를 몰랐다. "그렇군. 모용혜. 모용혜. 바로 그 가문 출신이었어." 석진의 머릿속엔 강호를 활보하는 수많은 고수들과 문파, 가 문의 정보가 가득 실려 있었다. 괴한의 몸에서 발견한 정보 와 모용혜에 대한 정보가 석진의 뇌리에서 이합집산을 하더 니 하나의 사실을 추려냈다. 바로 모용혜의 진실한 정체였 다. 사실 석진이 모용혜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괴한의 몸에 남아 있는 명공강의 흔적 덕분이다. 명공강은 혈염공과 함께 나부파의 양대절학이었다. 이 양대 절학은 나부파의 시 조인 포박자 갈홍이 남긴 전인(全人)에 관한 이론을 수십 대 에 걸쳐 연구해 완성한 무공이었다. 포박자 갈홍은 인간이 불안전한 존재이므로 온전한 인간, 즉 전인을 향해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남자는 양에 치우쳐 음이 부족하고 여자는 음에 치우쳐 양이 부족해 불안 전한 존재라고 역설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전인이 되어 불노불사를 이루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도(道)의 한 길이라고 말했다. 나부파의 후손들은 전인의 이론을 기초로 삼아 명공강과 혈 염공을 만들었다. 명공강은 남자가 수련하는 것으로 음기를 생성시키는 무학이었고 혈염공은 여자가 수련해 양기를 추구 하는 무학이었다. 그런데 이 양대절학은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그것은 남자 가 명공강을 수련하면 육체에 여성화 현상이 나타나고 여자 는 혈염공을 익히게 되면 남성화가 진행되는 것이었다. 특히 수련도가 진척될수록 그 현상은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부파는 명공강과 혈염공을 이단사학으로 결론 내리고 수련 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수십 대에 걸쳐 연구한 무공을 사장 시킬 수는 없었던 나부파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력을 다했 다. 나부파는 삼대에 걸쳐 연구한 결과 한가지 방법을 찾아 내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명공강을 익혀 여성이 되면 다시 혈염공을 익혀 본래 의 성을 회복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가 발견 됐다. 첫째는 명공강과 혈염공은 최상의 무학으로 완성을 본 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는 둘 중에 하나를 익히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두 번째 수련에 들어가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전신에 명공강의 음기가 가득한데 혈염공을 수련해 양기 를 쌓게 되면 몸 안에서 음양이기가 격렬한 충돌을 일으켜 폭사를 당하는 것이다. 나부파는 다시 한번 연구에 몰두했 지만 해답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무려 팔대가 지나서야 분 합공(分合功)이라는 해결책을 만들어 냈다. 분합공은 두 종류의 이종진기를 나누거나 합칠 수 있는 내력 을 운용하는 요결이었다. 게다가 이종진기의 상충을 막아주 는 안전지대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부파는 분합 공을 완성하자 전인의 꿈과 천하제일인을 동시에 꿈꿀 수 있 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 재앙이 닥쳤다. 원 제국의 노 재상 야율초재의 명령을 받은 대군이 나부산을 들이닥친 것이다. 그들은 분합공의 비 급을 가져갔을 뿐 아니라 천년동안 내려왔던 수많은 기서들 을 불태워 버렸다. 특히 치명적인 것은 갈홍이 남긴 전인의 이론과 명공강과 혈 염공, 분합공을 연구하는 동안 찾아내거나 만들어낸 서책들이 모조리 잿더미가 된 것이다. 또한 삼국시대의 선인(仙人) 좌 자(左慈)가 남긴 구단금액선경(九丹金液仙經)이라는 연단술 책자가 사라진 것은 나부파를 절망케 했다. 다행히 명공강과 혈염공만은 빼앗기지 않았지만 폐해를 막기 위해 천년동안 연구했던 모든 자료가 사라졌기에 아무 소용 이 없었다. 오히려 명공강과 혈염공의 문제가 알려진다면 나 부파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고 생각한 나부파의 장문인은 중대한 결심을 했다. 그것은 양대절학을 봉인시키는 것이었다. 그 후 백오십년 동 안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아 나부의 문인들조차 혈염공과 명공강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50년 전에 나부파는 봉인한 양대절학을 도둑맞고 말았다. 명공강과 혈염공의 폐해 때문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나 부파는 아직도 양대절학의 비급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런 데 소문은 무서운 법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비사가 강호의 소식통들을 통해 은밀히 유포되었다. 특히 석진은 도둑으로 예상되는 세력이나 인물을 십여 군데 나 알고 있었다. 물론 이 정보는 양대절학을 탐내다 빼앗긴 공령문이 치를 떨며 추적한 결과물이었다. 석진은 공령문의 비고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와 자료, 비사를 읽은 적이 있었기 에 모용혜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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