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강제이주의 절망보다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 과거 슬픈 기억보다는 고려인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는 꿈꿨다. 광주에서 그림을 통해 고려인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광주는 그와같은 처지의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고려인 4세 화가 문 빅토르(67)다.
그가 광주에서 꿈에 그리던 전시회를 갖는다.
6월1일부터 9일까지 우제길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픈 기억 꿈꾸는 희망'전이다. 사단법인 문예교류진흥협회가 80년전 강제이주를 당해야 했던 고려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기획한 자리다.
문 빅토르는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을 대표하는 화가다.
그는 자신의 화폭에 음악성과 회화성, 냉철한 역사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지의 세계', '1937년 강제이주', '붉은 안개' 등을 통해 그는 동시대의 아픔을 겪어온 고려인의 정신과 기억의 감정을 고스란히 화폭에 표현했다.
그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작업 중 1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문 빅토르 작품의 특징은 '큐비즘'이다. 20세기 초 피카소와 세잔 같은 작가들에 의해 시작된 이 미술회화 운동은, 물체의 면이나 선을 자유롭게 이용해 그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미를 태동시켰다.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큐비즘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과 청각, 지각을 함께 일깨우게 하는 감성의 언어가 스며들어있다. 그가 속한 사회공동체에서 유행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어법을 구사하고, 새로운 미적영역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그의 그림속에 등장하는 소재 또한 지극히 평범하다. 인물들, 바퀴, 새, 우산, 기차, 모자, 악기 등이다. 새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새가 아니다.
문 빅토르 화백에게 새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평화와 희망을 뜻하는 상징적 의미의 존재가 아니다. 새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하는 철새의 모습, 바로 고려인의 자화상이다.
그의 작품 속 기차와 바퀴 또한 1937년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연상장치다.
문 빅토르 그림의 제목에도 고려인의 아픔이 담겨있다. '생각의 불', '붉은 광장', '1937년 강제이주열'…. 한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느낄 수 있는 애잔하고, 아련하기도 한 단어들의 조합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한민족의 역사를 그대로 투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어둡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꿈과 희망이다.
어렸을 적 "사람을 놀래거나, 슬프게 하거나, 분쟁을 일으키거나, 절망하는 그림을 그려선 안된다"는 어머니의 말이 그의 그림에 녹아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서민의 바람같은 소박한 꿈과 평화롭고 행복한 삶에 대한 희망이 붉은 기타의 선율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사랑, 치유, 행복'을 위해 붓을 들고 있다.
우제길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아픈 역사를 되새겨 기억하고 고려인과 함께 미래의 희망을 꿈꿔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문예교류진흥협회는 "전시는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정주 80주년을 맞아 문 화백이 듣고 겪어온 고려인의 역사를 그만의 방식으로 형상화한 작품들로 이뤄졌다"며 "강제이주 80주년을 맞는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는 더 크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은 1일 오후 6시 우제길미술관에서 열린다.
[전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