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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산 우이령(牛耳嶺) 둘레길을 가다.
북한산 도선사 입구 - 우이령탐방지원센터 - 우이령정상까지
지난 5월 26일 금요일, 염화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인즉 오는 일요일에 우이령 둘레길을 가 보려고 하는데 여건이 되면 함께 갈 수 있느냐는 문의였습니다. 비니초님과 어디로 가나 궁리 중이었기에 잘 되었다 싶어 동참의 뜻을 밝히니 북한산국립공원에 사전 예약을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전예약은 500명 선착순에 한하여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우이령길이 예전에 개방되었다는 소식은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새롭 게 느껴졌습니다. 또, 우이령을 넘으면 석굴암이 있는데 그곳도 순례에 포함하면 좋을 것 이라 하시니 금상첨화일 듯 싶었습니다. 석굴암도 구파발에서 송추나 포천으로 갈 때 이정 표만 보았던 터라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석굴암에 대한 정보를 알 아보았습니다. 석굴암은 6.25 전쟁 때 폐허이던 절을 원력으로 기도하여 훌륭한 나한기도 도량으로 일으킨 절이더군요. 이번 산행 겸 순례는 갑자기 이루어진 터요 사전예약을 해야 하는 까닭에 넷이서 가기로 했습니다.
5월 28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오전 8시 20분 정도에 나서서 평창동 정류장에 8시 30분 쯤 도착하니 바로 염화님과 미소님이 막 도착하여 반가운 인사를 나눴습니다. 8시 40분 경에 도선사입구 버스종점으로 가는 153번을 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보니 어느새 도선사입구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25분이었습니다. 인근의 김밥집 에서 김밥을 세 줄 산 다음 둘레길로 향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탐방의 시작입니다.
이곳은 도선사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둘레길 시작점입니다. 오전 9시 35분, 본격적인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북한산 둘레길 21구간 우이령길로 향합니다.
우이령탐방지원센터로
탐방지원센터로 가는 길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 가벼운 발걸음
탐방로 입구는 영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직진 ↑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보이는 노란 바탕의 신검사(神劍寺)... 이름이 독특합니다. 심검당(心劍堂)이 연상되기도 하고... 이 신검사는 대한불교 법화선종(法華禪宗)계의 사찰입 니다. 9시 53분 이 지점을 통과합니다.
우이령길(사전예약제구간)로 가라 하네요.
우이령길은 탐방센터에서 반대편 양주 교현리까지는 사전예약으로 탐방이 가능합니다. 사전예약이 안 되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짙은 녹음 속으로
우이탐방지원센터가 0.6km 남았네요. →
10시 11분, 이 지점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부터는 차량이 통행할 수 없는 구간입니다.
가다보니 곡선이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어 담아 봅니다.
염화님~!
계곡 옆의 돌탑
무게 중심을 잘 잡은 돌. 서 있는 것이 신기하네요. 방금 세운 것도 아니고...
미소님, 무슨 향기를 맡으시나요?
때죽나무
「황해도 이남 산 중턱 이하의 양지에 나는 낙엽 소교목. 키 10m. 잎은 호생. 어렸을 때는 별 모양의 털이 밀포, 난형, 타원형, 끝이 뽀족하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으며, 윗면은 녹색, 뒷면은 연두색, 길이 4~8cm, 폭 2~4cm.
꽃은 잎겨드랑이에 대개 2~5송이씩 총상화서(總狀花序), 흰색, 5수성, 꽃자루는 길이 1~3cm 로 긺. 화관의 지름은 2~3cm. 열매는 핵과, 난형 또는 타원형, 회백색으로 익음.
개화(開花)는 5~6월. 결실기는 7~10월. 용도는 관상용. 열매는 약용. 열매 기름은 등유용. 목재는 세공재.」 -한국식물도감-
때죽나무꽃
때죽교
때죽나무가 있어 때죽교라 이름했네요.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안 찍을 수 없지요. ^^
때죽교에서
과객에게 부탁해서 찍은 때죽교 기념사진
우이령길구간 삼거리
우이령탐방지원센터로 가는 큰 길에 합류합니다. 10시 16분, 이 지점을 통과합니다.
조금만 가면 우이령탐방지원센터가 나옵니다.
이 길로 우이령을 넘을 수 있으나 승용차나 자전거로 넘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가 우이령탐방지원센터입니다.
10시 21분, 드디어 우이령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이곳부터 우이령탐방구간 본격적 인 구간입니다. 여기부터 사전예약한 사람만 갈 수 있습니다. 사전예약한 대표자가 신분증 을 제시하고 동참인원을 보고하면 비로소 가게 됩니다.
이 구간을 통과하는 인원은 500명입니다. 우이령을 넘으면 경기도 양주 교현리 탐방센터 가 있는데 그곳에서도 500명이 넘어올 수 있습니다. 쌍방간에 각각 500명씩 선착순 사전 예약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멋모르고 길따라 왔다가 앙앙히 되돌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염화님께서 사전예약으로 무난하게 탐방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국립공원 안내도
문화해설사가 우이령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탐방의 행운인가? 마침 문화해설사의 우이령탐방로에 대한 해설타임이 있었습니다. 그냥 가려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해설을 듣자고 권유하여 꽤 많은 사람이 경청하였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 내 우이령길에 대한 전반적인 역사와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 니다.
국립공원이란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할만한 지역'으로서, 이를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이용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가 지정관리하는 곳입니다.
1967년 지리산을 최초로 현재 전 국토의 6.6%에 해당하는 22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되어 있 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의 자연공원이며,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자원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1983년에 15번째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열띤 해설에 귀기울여 듣는 탐방객들
우이령길은 원래 명칭이 우이령길은 아니고 편의상 붙인 이름으로 과거에는 북한산 너머 경 기도방면의 사람들이 서울 장안으로 넘어오는 최단거리 소로(小路)인데 현재는 자동차가 지 나갈 수 있는 길로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우이령길은 우이동탐방센터에서 양주 교현리탐방센터까지 약 4km 정도의 길입니다.
이 길이 출입통제된 것은 북한의 남파공작대원 김신조 등 31명이 일으킨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여 대통령과 정부요인을 암살하고자 청와대근처까지 왔던 1.21사태로 기인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김신조 일당이 이 길로 온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작전이 성공하 면 퇴로로 생각했던 곳이랍니다. 그때부터 정부에서는 이 길을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41년이 흐른 2009년에 개방하였는데 완전개방이 아니라 사전예약제 조건으로 하 루 쌍방 500명에 한해서 개방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벌거벗은 민둥산이 많았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부는 국 가정책으로 사방공사(砂防工事)를 했는데, 주요 나무로는 리기다소나무, 물오리나무, 아카시 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방공사기념비가 있으니 확인해 보라는 이야기, 작전도로 개통기념비, 전망대, 석굴암 등에 대해 다양한 해설이 있었습니다.
또한 도로를 내면서 국수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국수나무는 도로를 구분짓는 역할로 길가에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이 길이 41년 동안 출입통제를 하다 보니 숲이 우거지고 생태계가 보존되어 마치 비무장지대 처럼 자연의 보고가 되어 환경단체들이 개방을 반대하여 사전예약제 조건으로 부분 개방을 허용한 것인데 최근 강북구의회는 시민의 사전예약과 신분확인의 불편호소를 받아들여 자율 개방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
우이령길 안내도
해설낭(解說娘)의 자세하고도 전반적인 낭낭한 해설을 10여 분 동안 모두 귀담아 들은 다음 오전 10시 42분, 본격적인 우이령길 탐방에 나섰습니다.
우이령 길 안내
이 길 안내도 끝머리 부분은 유격장인데 거기는 곧 석굴암 가는 길 입구이기도 합니다.
맨발로 느끼는 우이령 숲(林)
길에 마사토가 있어 맨발로 걸으면 좋다고 해서 여기서부터 운동화를 벗어 보았습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가진 잠깐의 휴식
미소님께서 준비하신 오이도 먹고 또, 비니초님이 준비한 커피도 한 잔씩 나누었습니다.
찔레꽃 향이 향기롭습니다.
맨발로 걸어보는 우이령길
다소 발바닥을 자극하지만 참을만 합니다.
호젓히 산길을 걷는 기분입니다.
비니초님도 신발을 벗었습니다.
미소님께서 달아 주신 신발의 모습 ^^
신발 달린 모습이 우습다는 미소님... ^^ 염화님 촬영 사진입니다.
경행하는 마음으로... -염화님 촬영 사진입니다-
이곳은 우이령정상이자 대전차 장애물
오전 11시 25분, 우이령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우이령탐방지원세터에서 1km지점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대전차 장애물이 있는 곳입니다. 만약 전쟁이 발발하여 적군의 전차가 우 이령을 넘어온다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시설입니다.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한 우이령길 '대전차 장애물'
이 대전차 장애물 바로 너머에 기념비가 하나 있어 찾아보았습니다.
대전차 장애물을 건너자마자 만나는 조그마한 우이령 길 작전도로 개통 기념비
작전도로 개통 기념비가 있다기에 그럴 듯하게 조성된 줄 알았는데 진행방향으로 도로를 접 한 왼쪽 산기슭에 초라한 모습으로 존재를 드러내네요.
염화님께서 기념비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이령 길 작전도로 개통 기념비 모습
우이령 길 작전도로 개통 기념비 안내문
안내문을 옮겨 봅니다.
「일명 소귀고개로 알려진 우이령 길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와 서울의 우이동 일대를 연결하는 소로였으나, 한국전쟁 후 미군 제36공병단에 배속된 109공 병대대, 102공병대대가 작전도로를 개설, 차량통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원문내용 해석내용
36ENGRGP C 36공병단의 ENGINEER PASS 공병 도로로 CONSTRUCTED IN 1964-65 109공병대대와 BY 102공병대대에 의해 109ENGR BN 102ENGR BN 1964-65에 건설되었다.
이 도로는 36공병단에서 이 도로는 36공병단에서 1965. 4. 24 개통하였다. 1965. 4. 24 개통하였다.」
「이 도로는 36공병단에서 1965. 4. 24 개통하였다.」는 명문.
우이령길이 양주 장흥방면의 사람들이 서울로 넘나들었던 소로였는데 미군 공병대가 작전 도로를 개설하여 차량이 통과할 수 있는 길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군들이 한국땅 에 와서 큰 고생을 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길은 차량의 통행이 가능하지만 일반인 차량통행은 통행불가입니다. 그래서 우이동쪽에서 석굴암을 가려면 구파발쪽으로 가야 합 니다. 이 우이령길은 자연보호를 목적으로 차량출입은 불가피하게 제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만 줄이고 제2탄에서 계속 이어보겠습니다. 2탄에서는 오봉전망대와 사방공사비 등 자연경관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_(())_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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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발을 벗고 걸으니 느낌은 좋은데, 길바닥에 벌레가 많아 밟을까바 노심초사했습니다. _()_
조고각하(照顧脚下) 발 밑을 잘 살펴보라는 선가의 말씀을 빌어 봅니다.
비하니... _()_ _(())_
이 뜻은 먼 데, 즉 밖에서 구하지 말고 본성을 잘 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여기서의 조고각하는... 여름에 길을 갈 때는 발 밑을 잘 보아야 합니다.
개미나 벌레들이 많이 기어다니니 잘 살필 일입니다. 비명횡사하는 벌레들이
자비심에 합장합니다. 감사합니다.
발바닥 아프지 않으셨나요?
신발 벗을 용기가 나지않았답니다._()_
언제 발벗고 다니던 것도 아니어서 한번 벗어보았네요. 감사합니다. _()_ _(())_
조금은 자극적이었지만 참을만 했습니다.
걸으면서 문득 든 생각...
왜 아프리카나 기타 인도를 비롯한 각지의 원주민들은 신발 신을 생각을 안 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짚신을 만들 생각을 했는데...
백우님, 비니초님, 미소님과 함께한 우이령길 탐방거운 시간이였습니다. _()_
이런 좋은 길을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비경을 걸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_()_ _(())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