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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를 홀가분하게 떨칠 수 있는 날이 바로 금요일이다.
오후 3시쯤 업무를 접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감온도가 -15도를 넘는다고 하니 감히 밖에서 운동 할 엄두가 나질 않았고 오랜만에 농구도 하고 싶어서…….
환하게 밝혀진 농구 코트에서 혼자서 열심히 슛을 연습하고 있는데 MTB 동호회 회원 (거의 인간 네비게이션급) 한테서 전화가 왔다.
행님 오늘 서울 올라가십니꺼~,
아니요... 집사람에 온다고 해서 이번 주는 포항에 있을 겁니다.
그럼 오늘 뽐뿌질 한 번 할까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어벙벙해져서) 예? 뭐를요?
아... 오늘 야간 라이딩 한 딱거리할까 해서... 형수님 오늘 오십니꺼?
아... 내일 온답니다.
그럼 오늘 마... 오이소.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시까지 가면 되나요?
8시까지 오이소마...
알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8시에 야간 라이딩이 결정되었다.
물론 내게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저 자전거만 가지고 현장에 가기만 하면 그 나머지는 동호회원이 알아서 다 안내 해준다. 그래봤자 1시간에서 2시간 정도의 라이딩이 될 것이 뻔 하니 (과거의 경험으로 봐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슛과 드리블 연습을 하고 또 그것도 시원치 않아서 트레이드 밀을 최고 속도 8 Mile/h (약 13Km/h)까지 끌어 올리며 50분 정도를 뛰고 나서 운동을 마무리하고 저녁 식사 후 야간 라이딩에 임했다.
동호회원이 가끔 "행님... 회원중에 누구든지 마음에 안 들면 뭐 코스를 반쯤 쥑이는데로 데리고 가서 혼을 좀 내줄량교..." 라고 겁을 주곤 했는데 오늘은 내가 뭐를 잘못해서 미움을 샀는지 아님 뭔가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갑자기 경주로 가겠다고 오늘 컨디션 어떠냐고 묻는다.
원래 운동을 하고 나면 없던 힘도 생긴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컨디션 괜찮다고 했더니 "나는 행님이 가자고 해서 가는 겁니다"라고 말을 다잡아 놓고는 앞장 서기 시작한다. 조금 가다가 화장실까지 단단히 챙기는 것으로 보아 오늘 라이딩이 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야간에 산으로~ 산으로~ 올라 경주까지 가는 라이딩이라...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내겐 너무나 엉뚱한 생각이다. 더구나 내일 아내가 먼 길을 오는데 혹 다치거나 어디 잘못 되기라도 하면 당장 보따리 싸서 서울로 데려갈 텐데...ㅋㅋㅋ
처음에 가까운 오어사쪽으로 방향을 잡기에 속으로 '오늘 괜히 겁주고 사실은 오어사나 다녀 올 생각이었나 보다' 라고 내심 생각을 하였다. 더욱이 오어서를 거의 다가가는데도 다른 방향으로 틀지 않고 곧장 가는 것으로 보아 당연히 오어사가 종착지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인간 네비게이션이 갑자기 오른쪽 작은 샛길로 올라 가란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그곳은 자전거로 올라 갈 길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침없이 핸들을 틀더니 오르기 시작한다. 엉겁결에 뒤를 따랐다. 조금 따라 올라가는데 왼쪽이 심한 낭떠러지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내일 올 마누라 보기에 민망한 낭패를 볼 것같아 정신이 번쩍 났다.
일단 잔차에서 내려서 좌우를 살피고 위험한 지역을 미리 경계하고 혹 있을지도 모를 추락에 대비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그 사이 인간 네비는 벌써 저쪽 모퉁이를 돌아 잘도 도망가고 있다.
불교의 심우도(尋牛圖)에서 동자가 득도를 하기위해 소 꼬리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보일 듯 말듯 도망가는 저 얄미운 인간네비를 따라 잡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잔차로 득도하려면 저 앞서가는 얄미운 인간네비를 따라잡고 올라 타야 할 텐데... 휴... 나이도 나이고...
마른 나무가지를 할퀴며 불어대는 매서운 산바람이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면서 몸을 파고든다. 어두운 밤 임에도 듬성듬성 히끗한 잔설이 그대로 산 고랑에 남아 동장군의 위엄을 잔뜩 뽐 내고 있다.
가파른 산길은 낮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길도 좁지만 한 번 내리면 다시 안장에 올라서 페달링하여 출발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길이 좁고 가파르다. 그래서 한번 내리면 한참을 끌고 올라가야만 한다. 용을 쓰며 따라갔다... 오후에 너무 많이 운동을 했다고 후회도 해 보았지만 떠나기 전에 미리 못 박듯이 물어 놓아서 뭐라고 불평 한 마디 할 입장이 못된다. 허이구~~
그래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다. 아니 아예 나를 포기하고 인간네비가 나를 인도하는대로 마냥 따라가기로 작정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니 참을 먹고 가잔다. 꾸엑~~~
새참은 늘 술과 과일이다. 뭐 한 두번 먹어 본 것도 아니고... 그런데 나는 늘 이 새참에 주눅이 들어있다. 원래 나는 운동을 하다가 멈추면 다시 위밍업하기가 쉽지 않은 체질이다. 몸의 상태가 처음 시작하는 것고 별반 다를데 없는 상태로 된다. 거기다 술까지 마시고 나면 나는 죽는다... 더욱이 산악 야간 라이딩은 맨 정신으로도 힘든 형편인데 이제 내게 술도 강권하니... 나는 술에 약하다. 보통 약한 것이 아니고 일단 술이 들어가면 숨이 가빠지고 전혀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런데 인간네비는 술이 에너지원이다. 일단 힘들면 소주를 한 병쯤 쭉 들이키고 힘차게 페달링을 시작하면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밤 하늘이 아름답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가깝게 다가와있다. "행님 저자리가 오리온 자린교?" 와 멋집니데... 밤 하늘이 오늘 쥑여주는구만. 이렇게 밤 산을 오르면 세상 만사가 다 시원해져 버리는 거라... 안그런교? ㅋㅋㅋ
술만 안 주면 살겠는데 독배를 들이밀며 이젠 아예 밤 하늘 별에게 빼앗겨버린 자신의 마음에까지 동조하란다.
정말 밤 하늘이 아름답다. 까만 어두운 밤 하늘에 보석처럼 반짝이며 잡힐 듯 가까이 다가 온 별들이 투박한 두 사내의 마음을 모두 빼앗아가 버렸다.
다시 봇짐을 등에 지고 라이딩을 시작하였다. 이제부터 조금만 더 올라가면 시루봉이란다. 시루봉 정상 503.4미터 -- 미쳤어... 정말 미쳤어라고 계속 누군가 내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그래 미쳤어!! 정말 미쳤어!!! 이 밤에 503.4미터를 잔차 가지고 올라와? 돈 주고 하라면 할까???
오늘따라 카메라도 가져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휴대폰 카메라를 쓸 수 밖에. 어줍지 않지만 그래도 그게 대안이라면... 잔차 불빛을 모아서 조도를 높이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니 대충 그런대로 나온 것 같았다. 다시 출발... 이제부터는 다운 힐 이란다. 이제 고생끝이라고... 그런데 어이없게도 평지에서 그냥 맥없이 넘어졌다. 그것도 콰다당하고... 나도 모른데 왜 넘어졌는지...헉... 힘이 다 빠졌겠지.
술도 한 몫을 했겠지...
신나게 달려서 경주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12시가 다 되어간다. 결국 4시간을 산속에서 헤맨것이다. 둘은 배가 고푸니 다짜고짜 24시 편의점에 들어가서 라면/소주/맥주/게란/안주를 사가지고 신나게 먹어치웠다. 무사히 야간 라이딩을 끝낸것이 기분 좋기도 하지만 이제 나는 코 골고 자는 인간네비의 엄청난 취침 훼방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술을 마시고 자야한다. 거나하게 불콰해질 즈음에 우리는 예정된 호텔로 갔다.
먼저 인간네비가 다짜고짜 잔차를 끌고 호텔로비로 들어선다. 리셉션에는 젊잖게 넥타이를 맨 사람이 우리를 힐끗 쳐다보고 있다. 인간네비가 쓱 다가가더니
'여기 회장님 좀 봐야 되겠는데'.... 나는 속으로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고명하신 회장님을 불러내라고 하나??? 걱정이 앞선다.
직원이 '지금 회장님 안계시는데요'라고 점잖게 말을 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물러날 인간네비가 아니다...
'뭐야 밖에 회장님 차가 있는 것을 보고 들어왔는데~~~'
'어떤 회장님을 찾으시는 것인가요?'
'아... 여기 회장님이 몇 되나? 저기 XXX 회장님 말입니다...
내가 신년 인사차 왔다고 인사드리려고 이렇게 잔차타고 왔는데...'
"" 켘..."""
정초 밤 한시가 넘는 야밤에 잔차 타고 와서 호텔 회장님께 신년인사 드린다???
우~ 하~~~~하~~~~~ 하~~~~
인간네비가 아니면 누가 이런말을 할 수 있으리요!!!
그러더니 결국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낸다...
'내가 잔차 좀 이곳에 놓고 갔다가 내일 찾아가도 되지요?'
우하하하~~ 그래서 우리는 잔차 두대를 경주 모 특급호텔 로비에 세워놓고 기세등등하게 24시 사우나로 가서 씯고 지지고 자고 아침에 뻔뻔스럽게 잘 지켜줘서 고맙다는 인사말 까지 하고는 잔차를 끌고 나왔다...끙!!!
어디 그뿐인가? 밤새 찜질방을 전세내서 쉴 새없이 트럼펫을 불어대는 바람에 뭇 사람들이 모두 귀퉁이로 내쫒겨야만 했고 인간네비가 누워있는 방에는 어느 누구도 함께 잘 수 없다는 기념비적 기록을 다시 세워놓았다.
이른 아침 다시 포항으로 향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손과 발을 굳혀 갈 무렵... 갑자기 앞서가던 네비가 좌표를 우측으로 잡더니 식당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보기도 엄청 잘 본다. 나는 함께 잔차를 타고 갔지만 그곳에 음식점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마치 동네입구에 있는 구멍가게 처럼 생겼기에 미쳐 음식점이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역시 네비에는 음식점이 위치하는 곳을 서비스 하는 기능까지 있었던 모양이다.
음식점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른 아침 식사를 막 마치고 있었다. 밖에서 뭐를 하는지 안들어와서 밖을 슬며시 내다보니 어디서 났는지 쇠줄로 된 잠물통으로 잔차 두 대를 꽁꽁 묶어놓고 있다. 나는 추운 발과 손을 불가에 대고 있는데... 들어와서 식사를 시키더니 그 새를 못 참고 이 입담좋은 친구가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슬슬 낚시질 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꼭두 새벽부터...ㅋㅋㅋ
얼마나 잘 주물러 놓았는지... 다음에 가더라도 절대 우리를 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다음에 가면 아마 그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닭 잡아주지 않을까????
다시 잔차에 올라 포항으로 향했다... 어제 너무 무리해서 다리에서 쥐가 날 때 쯤되니 포항 인근까지 올 수 있었다. 마침 그때 여성 동호회원 한테서 전화 한 통 내게 걸려왔다.
"오라버니 오늘 라이딩 하는거지???"
"엥? 아이구 우리 지금 어제밤에 경주갔다가 지금 막 오고 있는 중인데?"
"뭐야... 나는 다른 산행 약속도 안가고 기다리고 있는데... 에이그"
옆에있던 인간네비께서 말을 거둔다...
"헹님... 뭐 잠깐 한번 더 다녀오소, 그래도 이쁜 미시가 전화했는디 그럼되나?"
허이구~~~ 나 죽네... 못가~~~ 나 능력 안되니 당신이 내 대신 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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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허허~~ 야간 라이딩에 같이 달리는 기분으로 이글을 읽었네...
남혁이 일상을 체험하는 듯,, 밤 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달리는 기분,,
그래,, 삶은 누리는 자의 몫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장년이 되면 술추렴만하며 사는게 보통인데,,
부지런히 운동하며 인간네비의 너스레와 유모어 넘치는 재치,,
포항의 객지생활이 외롭진 않겠구만~
자주 자주 잼난 소식 올려주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