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마님
님은 앞에서 님이 하신 질문에 대한 저의 답글을 보고 추가적인 질문을 다음과 같이 해주셨습니다.
"올려주신 답글을 여러 번 읽는 가운데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해가는 중 이라고 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제가 이해한 부분은 이렇습니다. 자연인 상태에서 나온 선이라든지 악이라든지 모든 것은 육에서 나온것 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나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부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벧전 4:11절 말씀에서와 같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이것을 약 4:17절에 선을 행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에 따라 우리가 마땅히 거듭난 신자로서 위의 말씀에 의거하여 선을 행한다면 그 동기가 나의 자랑이나 자연인의 성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한 것 같이 하여 영광 돌린다면 그것은 일반적으로 육에서 나온 선과는 다른 비록 육에서 나왔지만 인정받을 선행이라는 이원적인 구분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그렇게 구분이 가능할까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먼저, 일반적으로 육에서 나온 선/선행과 이것과는 다른 하나님 앞에 인정 받을 선/선행으로 굳이 구분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의를 덧입음에서 의롭다 하심이 있는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연적인 육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말해지는 것인데, 하나님의 의가 함께 하지 않는 것에서 육의 산물인 죄값의 사망에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육이란, 이 육에서 나오는 죄성은 자연적인 육에서 나오는 죄성과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만, 그에게 하나님의 의가 함께 하여 그의 죄 위에 의를 덧입히시므로 그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그에게 덧입혀져 있는 하나님의 의만 인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실 것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에 의하여 우리의 죄를 죄 없다 하십니다. 그렇게 우리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에게 덧입혀진 하나님의 의만을 보시고 이것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실 것으로 정하심에 따라서 우리에게 함께 하고 있는 그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시는 것에 의해서 우리를 의롭다고 규정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이는 우리의 의/우리에 의한 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의에 의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의 의로 입혀진 의만을 ‘믿음에 의한 의’로서 ‘구원의 의’, ‘천국의 의’로 인정하십니다. 하오니,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선, 곧 선행에서 의롭게, 선하게 보시는 것은 우리가 행한 선,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선을 행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이 선하게 보시는 데서 있습니다.
위의 선이해에 의해서 이제 예를 들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두 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1) A라는 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으나, 종교적 열심에 의한 행위로 의를 가져나가는 것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며 그 이름을 찬양합니다. 이 신자는 예수님을 하나님이시오 주님이신 그리스도라고 부르며 그 이름을 찬양하는 행위를 가져나가는 것에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열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는 열심을 갖고 열심히 그 일을 하는 행위를 합니다. 그리고 기대를 합니다. 이 모든 열심에 있는 선행을 하나님께서 의롭게 보시고 의로운 자가 받을 상을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2) 그런가 하면 B라는 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신자도 하나님께 열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신자는 예수님을 하나님이시오 주님이신 그리스도로 알고 있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흘리신 피를 통해서 생명에 이르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바라보는 믿음에 있습니다. 이 신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시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지닌 능력에서 하나님의 의를 바라보고 구속의 주님이시며 생명의 주님이심을 깊이 신뢰하여 그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이 둘 모두에서 주님을 찬양한다는 선행을 봅니다만, 그래서 일반적인 몸에서 나오는 선행과는 다른, 비록 육이란 몸에서 나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신자의 몸이란 것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에서 인정받을 선행이라고 하게 되는 ‘선’을 보게 되는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오는 하나님의 의를 입지 않고서는 주님을 찬양하는 행함이란 것이 ‘선’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그래서 ‘선행’으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A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의 경우에는 그가 행한 선행은 사람이 인정하는 것에 의한 ‘자기 의’로 규정되는 것에서일 뿐이지 ‘구원의 의’, ‘천국의 의’는 아닙니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믿음에 의한 ‘선’, 또는 ‘선행’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B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의 경우에는 그의 선과 그가 행한 선행은 그에게 있는 선한 마음과 그가 행한 선한 행동에서 근거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하나님의 의에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 있게 하시는 것에 그의 믿음이 있구요. B가 믿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에서 그의 착함을, 그래서 그의 선함을 보는 행동을 본다고 하면 이것이 어디에서 나오는가에서 말해져야 합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의, 그러니까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 홀로 한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그분의 의에서 나오는 선이며 선행인 것이지, 선 또는 선행이 우리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말이죠. 자랑하는 자는 다만 주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찬양에 있는 우리 몸의 자랑에 있지 않습니다. 님이 궁금해 하며 근거 구절로 제시한 사도 베드로가 그가 쓴 서신인 베드로전서 4장 11절 말씀에서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섬김 하는 선행에 있습니다. 이 선행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떻게 구원의 선한 일을 하셨는지, 그래서 구원에 자비로우신 분이셨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이 있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의 믿음이 서가는 일을 섬겨가는 것 그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여기에서 님이 질문하는 “일반적으로 육에서 나온 선과는 다른 비록 육에서 나왔지만 인정받을 선행이라는 이원적인 구분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며, “그렇게 구분이 가능할까요?” 라고 한 구분이 과연 가능하겠는지요.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 말해지지 않고서는,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함에 있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말해지지 않고서는, ‘선’이니 ‘선행’이니가 말해지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의 몸/육)에서 나온 착한 행동은 인정받을 선/선행으로 구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참으로 반론적으로 질문하고자 합니다. “과연 그렇게 구분이 가능한가요?” 왜냐하면 말입니다. 어린아이(모모)가 한 행동인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들어 어른이 칭찬하기를, “얘(모모)야, 주님을 찬양하는 넌 참 착하구나!”하며 그 아이의 머리를 대견해 하며 쓰다듬는데, 그를 사람들 앞에 말할 때 말하는 것이 “모모가 하는 찬양을 들어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온 세상에 행하신 일은 참으로 놀랍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은 참으로 놀랍다! 광활하며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이 편 손에는 의로움이 가득하니 악이 가까이 할 수 없을 것이다!” 인 것이지, 모모 그놈 참 아직 어린 것이 재능이 많아 찬양하는 노래도 잘하네! 나중에 커서 복음송가수로 훌륭히 잘해내겠어! 벌써 이놈의 성공을 예감하겠어! 하는 것이겠는지요. 대개 사람들이 그 아이를 보는 관점은 그 아이가 그 또래의 누구도 감히 쉽게 해내지 못하는 찬양을 훌륭히 잘해내고 있는 것에서 선 또는 선행이 말해지고 있습니다. 정작 그 아이는 찬양하는 것에서 그 아이가 찬양으로 말해내고 있는 선, 또는 선행이란 무엇인가가 있는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러는 한에는 선, 또는 선행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 갖는 일반적인 선행과는 구분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갖는 인정받을 선행의 기대에 있을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데 주 하나님을 찬양한 모모는 참 착하다거나, 주 하나님을 찬양한 모모는 아주 착한 일을 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의 관점은 뭘까요? 님이 잘 정리해서 적어 보시지요!
님이여.
이상으로 추가적인 질문에 대한 답글을 마칩니다.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한 주간을 바쁘게 살아가는 중에도 주님을 대하는 정신을 놓지 않고 살았을 님을 기대합니다. 이는 님을 대하는 저의 간절함이기도 합니다. 그 간절함이 님을 뵙는, 그리고 모든 주의 몸 된 지체인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들을 대하는 것에서 기쁨으로 극대화 될 것입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