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神島)에서 하의도(荷衣島)로 나왔다. 신도는 하의도에 딸린 작은 섬이었다. 섬은 이름처럼 쪽빛 바다와 작은 산이, 마치 신선이라도 노닐 듯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1980년대부터 이미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었다. 신도에는 내 소유의 펜션이 하나 있었다. 며칠 전, 펜션 관리인을 만나기 위해 신도로 갔다. 그에게 심부름을 시킨 게 있어서였다. 그러니까 일도 보고 휴식도 취할 생각이었다. 관리인이 떼어놓은 서류를 챙기고는, 유유자적하며 섬을 돌았다. 낚시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어제였다. 관리인과 낚시를 하여 잡은 활어를 회 쳐 놓고 술을 마셨다. 광어, 농어, 우럭 등이었다.
관리인이 젓가락으로 어떤 회를 가리켰다.
"들어보세요."
"무슨 생선이오?"
"황가오리라 합니다."
"우리가 잡은 게 아닌데……."
"어부에게 조금 얻었죠. 된장에 찍어 먹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요?"
나는 관리인이 시키는 대로 했다. 쫄깃하고 달착지근한 게 입에 착착 감겼다. 감칠맛이 있었다. 옥수수로 만든 농주도 달았다. 바야흐로 나의 입은 술잔과 황가오리가 회자되고 있었다. 입이 즐거웠다. 전신이 기분 좋게 몽롱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쓰러져 잤다. 아침이 되었다. 관리인이 무와 대화를 넣고 끓인 해장국으로 속을 풀었다. 과음을 했는데도 몸이 가뿐했다. 모두 바다와 해물 덕분이라 생각되었다. 아직도 향긋한 황가오리의 뒷맛이 입안에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종달새가 하늘과 땅을 수직으로 오르내리며 지저귀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발하고, 논과 밭이 초록으로 점령해 가고 있었다. 저들은 곧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몸을 바꿀 터였다. 비포장 도로에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대지는 봄의 전령들에 살아 꿈틀거렸다.
"좋은 시절이군. 내 삶처럼……."
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가 하는 일들이 술술 풀려 가고 있었다. 이번에 잘하면, 이 섬에 있는 대지와 전답도 한 5000평 가량, 또 내 소유로 될 거였다. 그리고 조금씩, 이 섬을 잠식해 들 거였다.
나는 자신을 향해 허부죽, 웃었다.
"그것은 얼마 후, 나에게 엄청난 이득을 안겨 줄 거야……."
휘파람을 날리며 선착장을 향해 걸었다. 얼마 후, 선착장에 닿았다. 시선의 닻을 들어 반원을 그렸다. 섬 군데군데 화전을 일궈 기계총을 앓은 아이의 머리통 같았다. 백사장엔 몽고 텐트 모양 세워 놓은 해태 양식용 말장이 임립해 있었다. 물빛은 청갈치 비늘을 풀어놓은 듯했다. 가볍게 부는 바람에 바다는 얕은 물고랑을 이루고 있었다. 비릿한 바닷바람이 코끝을 간질였다. 게거품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괭이 갈매기가 우웽, 우웽, 소리치며 날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일별하고 시계를 보았다. 목포로 나가는 배가 오려면 아직도 한참 있어야 했다. 다방으로 들어갔다. 70년대 식이었다. 다방 카운터에는 작부 퇴물인 듯 싶은 여자가 무표정하게 고목처럼 앉아 있었다. 이 섬이 개발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뜻이었다. 이럴 때, 길목을 잡아야 하는 거였다. 개발이 시작되고, 외지인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하면, 이미 늦은 거였다. 남는 게 별로 없었다.
나는 가래침을 땅에 탁, 뱉었다.
"오히려 상투 잡혀, 거품 빼기 일쑤지……."
한 달 전 룸싸롱에서, 목포 시청에 있는 친구에게, 이 섬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곧 신도와 묶어, 관광단지로 바뀐다는 거였다. 나는 귀가 솔깃했다. 그날 친구에게 룸싸롱의 여자까지 붙여 주었다. 돈봉투와 함께.
마담이 가까이 다가왔다.
"뭘 드시겠어요?"
"커피."
마담은 미소를 지으려고 했는데, 우는 상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울기에 적합한 얼굴이었다. 마담에게서 빨리 시선을 수습해 다른 곳으로 옮겼다. 구석이었다. 초췌한 한 사내가 담배를 뻑뻑, 빨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중늙은이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내 나이 또래였다. 섬에서 농업이나 어업 등으로, 고단한 삶을 살다 보니, 그리 된 것 같았다. 거쿨진 몸에 얼굴의 윤곽이 뚜렷했다. 마담이 가져온 시금털털한 커피를 몇 모금 마시다 그만두었다. 사내를 다시 보았다. 그에게 왠지 호감이 갔다. 이상하게 처음 보는 순간부터 끌리는 느낌이었다. 왜 저러고 있나, 알고 싶기도 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목포까지는 백 리가 넘는 물길이었다. 그와 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창 밖 저 멀리 배가 선수(船首)로 물살을 가르며 오고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방을 나가 옆에 있는 횟집에서 광어 한 마리 썰어 초장과 함께 포장했다. 그리고 잡화점에서 소주를 몇 병 샀다. 술은 주고받으며 함께 마시는 이가 있어야 제 맛이었다. 배가 부두 가까이 접근해 들었다. 다방에 있던 사내가 나오고 있었다. 선표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도열해 있었다. 나는 사내의 뒤에 붙어 선표를 끊었다. 사내는 나를 힐끔 돌아보고는 무심한 표정이었다.
나는 목표물에 접근했다.
"여기 사시는 모양이군요."
"그렇소만…… 처음 보는 사람인데……."
"신도에 다녀옵니다."
"관광객이구먼."
"그런 셈이죠……."
사내는 인상을 팍 구겼다.
"팔자 한번 좋군요."
"예? 아, 예……."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 의도적으로 사람을 피하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게다가 사내의 얼굴은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 쉽게 접근할 인물이 아닌 성싶었다. 머쓱하여 입을 다물고 사내를 따라 승선했다. 배가 잠시 용트림 치며 몸살을 앓더니, 제 방향을 찾아, 선미(船尾)로 맥주 거품 같은 흰 포말을 일으키며 나가기 시작했다. 사내는 넓은 선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사내의 뒤를 따랐다. 사내는 한 구석으로 가 등을 돌리고 누웠다. 이 역시 나를 피하기 위한 몸짓으로 보였다. 내게서 무슨 비상 냄새라도 나나. 그건 아닐 터였다. 나는 사람과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또 사업상 그래야 했다. 나는 빨리 해장을 하고 싶은 열망에 불탔다. 사내의 옆에 앉아 술과 안주 등속을 펼쳐 놓았다.
사내의 어깨를 슬쩍 흔들었다.
"같이 한잔합시다."
"……."
사내는 아무 대꾸가 없었다. 나보고 옆에서 꺼지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오기가 발동하고 있었다. 질 내가 아니었다. 술을 자작으로 한잔 따라 단숨에 쭉 들이켰다. 그리고 광어의 살을 질겅질겅 씹었다. 어제 마신 술과 지금 들어간 술이 결탁하여 뱃속을 짜르르 흔들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사내를 다시 집적거렸다.
"광어 맛이 괜찮네요."
"……."
사내는, 한동안 꼼짝 않고 있더니,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한 잔 줘요. 빌어먹을, 속에서 열불이 나서."
"그래요. 다방에서부터 죽 지켜봤어요. 뭔가 속상한 일이 있는 것 같아서, 형 씨와 함께 하려고, 이렇게 술과 안주를 준비한 거요."
"신경 써 줘서 고맙소."
말투가 고마운 게 전혀 아니었다. 어쩐지 가시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괘념치 않고 사내의 술잔을 채웠다. 사내는 술을 입안에 탁, 털어 넣었다. 다시 나에게 잔을 내밀었다. 거푸 다섯 잔을 그렇게 했다. 사내는 입가를 손등으로 쓱 문지르고는 내 잔을 채웠다. 나도 술을 쭉 빨았다. 둘 사이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술잔만 계속 오갈 뿐이었다. 어느덧 소주 두 병이 비어 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참지를 못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어떤 말못할 사연이라도……."
"……."
사내는 한동안 계속 술만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젠장할, 조상 대대로 지켜 오던 집과 땅을 잃었소. 농사가 잘되어도 매년 1할씩은 자기 재산을 까먹는 게 농사인데, 해를 바꿔 가며 한해와 수해, 게다가 올 봄에는, 때아닌 우박까지. 예전에는 흉년이 들면 임금이 자신의 부덕 소치라 생각하여, 목욕 재계하고 하늘에 절하며, 기우제를 올렸다는데."
"지금은 수입하면 그만이죠."
"농사가 잘되면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서 그렇고, 농사가 안되면 더 어렵고, 우리 나라의 경제 성장은 농민과 노동자, 사실 그들도 이농을 한 농민인데, 아무튼 그들의 희생 위에 큰 거죠. 즉, 나 같은 사람들 말씀이오."
나는 좀 아는 체를 했다.
"자동차와 반도체를 팔아먹기 위해서죠."
사내는 나를 보며 냉소를 지었다.
"전국 평균 농가 부채 알죠. 빚이 빚을 키웠어요. 집과 전답 모두 경매 처분이 내려지고, 어제는 집달리가 와 어디 내놔도 누가 집어 가지 않을 물건들까지 붉은 도장이 꽉꽉 찍힌 종이짝을 붙이고 갔소. 넨장할……."
"가족은?"
"내자는 아이들 교육 문제로 일찍이 상계동 달동네에 가 있소. 포장마차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요. 나보고 벌써 정리하고 서울로 오라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지금까지 버티다 모두 잃었지요."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이 사내가 뺏긴 것들을 내가 챙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든 때문이었다. 지방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나는, 마땅히 취직할 자리가 없자, 중개사 시험에 매달렸다. 자격증을 3년만에 어렵게 딸 수 있었고, 부모에게 자금을 얻어, 부동산 중개업과 경매를 시작했다. 운이 좋았는지 잘되었다. 돈이 돈을 불려 가고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였다. 돈이면 안되는 일도 되게 만들 수 있었다. 돈으로 정보를 빼내고 물건을 맡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잔뜩 부풀려져 있었다. 펜션 지배인이 건낸 서류는 하의도 토지 경매 매입 관련 서류였다. 잔금을 치르고 등기를 마치면 내 것이 되는 거였다.
사내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난, 지이산이요. 형 씨는?"
"제갈 공입니다."
"제갈 공이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맞았다. 이 사내의 건물과 토지를 잡은 것이었다. 이름이 특이하여 기억하고 있던 참이었다. 경매란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하는 거였다. 어차피 누군가 사내의 것들을 챙기겠지만 왠지 양심에 켕겼다. 내 직업과 함께 사내의 물건들을 잡은 이야기는 함구해야 할 터였다. 괜히 이 사내와 술을 마시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업질러진 물이었다.
사내가 탄식과 함께 비벼 내뱉었다.
"그게 어떤 땅인데……."
"……?"
"이 섬엔 돼지밥통에 얽힌 이야기가 있지요."
"돼지밥통?"
"며칠 전 바다에 수장시켰죠."
"예?"
"……."
사내는 선창으로 눈길을 던졌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두텁게 내려앉았고,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파도가 점점 높아졌다. 비가 올 것 같았고, 폭풍도 염려되었다. 나는 술잔을 빨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꽤 준수한 얼굴이었다. 사내가 들던 술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연이 꽤 길 것 같았다. 나는 잠자코 경청하고 있었다.
아득한 옛날, 소위 상고 시대부터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았을 하의면은, 하의 본도, 그리고 상태도와 하태도가 하나로 묶여 있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유인도, 무인도가 얼마간 딸려 있었다. 삼한 시대 마한에 속했고, 삼국 시대에 백제 나주군,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나주목에 속했다가, 일제 때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하의도민은 상태도나 하태도와 마찬가지로 주로 농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어업은 몇 가구 안되었다. 모두 극도의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는 조선 시대 세도가의 탐욕과 농간으로부터 시작된 거였다. 선조 때, 왕실에서 공주를 출가시키며, 권문세가 홍씨에게 하의도 소유권을 주었다. 3대에 한해서였다. 일종의 사궁장토(司宮庄土)라 할 수 있었다. 이 토지는 국가에 면세가 되었다. 운영은, 왕실과 세도가에 의해 집행되었으므로, 강력한 지주권이 인정되었다. 바꿔 말해, 도민은 하루아침에 소작농으로 전락한 거였다. 조세보다 다소 소작료가 높았다. 그러나 국가에는 면세가 되었으므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3대를 넘어서 6대에 이르고 있었다. 홍가네서는 그때까지도 소작료를 받아 갔다. 그러니까 도민은 조세와 소작료를 함께 물게 된 거였다. 본시 양전(量田)이란 제도가 있어, 20년에 한 번씩 토지를 조사하여 호조, 도, 군에 보관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중앙 정치인과 지방 수령이 결탁하여, 이것이 잘 이행되지 않아, 개량전(改良田)을 하지 않고 방치된 땅이 많았다. 하의도 역시 목사가 약간의 떡고물을 챙기며, 홍가네의 협박조의 권유에 따라, 하의도 관계 서류를 감춘 거였다.
춘궁기였다. 도민들은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그래도 바다를 끼고 있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해초와 어패류, 그리고 작은 고기들을 잡아먹을 수 있었다. 산에 가서 칡뿌리와 소나무 껍질을 씹기도 했다. 지천으로 핀 진달래 꽃잎도 뜯어먹었다. 그럴수록 속은 더 헛헛거리기만 했다. 위장은 곡기를 구경한 지 오래였다. 도민들은 이대로 살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수군거렸다. 이것은 도민을 하나로 결속하게 만들었다. 제갈 명이 나섰다.
제갈 명은,
"한양에 올라가, 신문고를 울려,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합시다."
라고 외치고 다녔다.
"그럽시다. 그래야, 해요."
사람들이 제갈 명 곁으로 모여들었다. 어느덧 섬 주민은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도민은 제갈 명과 함께 두 사람을 대표로 더 선출했다. 우선 섬을 빠져나가야 했다. 배가 없었다. 도민들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었다. 황포로 된 돛을 달고, 노도 꽂았다. 그것을 서풍이 알맞게 불 때 바다에 띄웠다.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 넓은 바다에 뗏목이라니. 그러나 한양을 향해 떠나는 사람들의 의기는 충천했다. 그들은 도민의 전송을 받으며 보무도 당당하게 출항했다.
나침반도 없고, 항로도 모르는 대표들은, 며칠간 바다에 떠다녔다. 밤이었다. 폭풍이 불었다. 그것은 점점 거세어지고 있었다.
제갈 명은 잽싸게 돛의 줄을 잡았다.
"서둘러 돛을 내려."
"알았어요."
세 명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돛을 내렸다. 뗏목은 높은 파도에 휩쓸리며 부침을 거듭했다. 아침이 되었다. 모두 기진 해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바다는, 언제 그렇게 미쳐 날뛰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주위에는 갈매기가 활주하고 있었다. 육지가 가깝다는 증표였다. 제갈 명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제갈 명은 소리쳤다.
"육지가 보인다!"
"어디?"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손을 말아 눈에 대었다. 그들의 입가에 모락모락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제갈 명은 서서히 돛을 올렸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저 육지에 내려 한양까지 쉼 없이 걸어야 할 일이었다. 그 다음의 일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하의도까지, 되돌아와야 할 것이었다. 뗏목은 바닷가에 닿았다. 그것을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잘 간수하였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대표들은 해남의 한 궁벽진 어촌을 벗어나 길을 물어 걸음을 재촉했다. 먹을 것이 없는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며 구걸을 하거나, 산짐승이며 들짐승을 마구 잡아먹었다.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씹기도 하였다. 남의 집 헛간에서 신세를 지거나, 노천에서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잤다. 그리고 행군을 계속했다. 참으로 형극의 길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한양에 당도했다.
제갈 명은 북채를 들어 신문고를 둥둥, 울렸다.
영조는 친히 섬 대표들을 알현했다.
"그대들은 무슨 억울한 일이 있어 신문고를 울렸는고?"
제갈 명이 나섰다.
"저희들은 하의도 주민들이온데……."
제갈 명은 자신들이 목숨 내놓고 어려움을 겪으며, 신문고를 두드리게 된 사연을, 소상히 아뢰었다. 영조는 문제의 홍계원을 들게 하였다. 왕은 제갈 명에게 다시 한 번 하의도 문제를 반복하여 말하게 했다. 홍계원은 안절부절을 못했다.
영조는 홍계원을 보며 목소리에 힘을 넣었다.
"어찌 된 일인가?"
홍계원은 읍을 했다.
"어리석은 신, 미처 몰랐나이다."
"하의도민은 국가에만 세를 내도록 조치해요."
"분부 받들어 거행하겠나이다."
제갈 명은 일행과 함께, 호조에서 만들어 준 문서를 품속에 간직하고, 다시 하의도를 향해 출발했다. 천하를 얻은 듯 가슴이 뿌듯했다. 그 고생을 하며 한양에 온 보람이 있었다. 발걸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제갈 명들은 한강의 한 나루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복면을 한 자객들이 나타나 그들을 결박했다. 그들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주로 산길을 택해서였다. 내를 건너고 강도 건넜다. 그들은 함경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백두산 산수갑산에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했다.
도민들은 2년이 다 되어도, 대표들이 돌아오지 않자, 다시 선출하여 한양에 보냈다. 영조는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노발대발이었다. 영조는 직접 호조에 지시하여, 전라도 관찰사 이호준(이완용의 증조부)에게, 문서를 새로 만들어 보내도록 하였다. 그러나 홍계원에겐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권문세가인 홍가네에, 무지렁이 도민들과의 사소한 갈등으로, 등을 지고 싶지 않았을 터였다. 이 대표들 역시 홍가네서 보낸 자객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홍계원은 협박 반, 호의 반인, 서찰을 준비하여 이호준에게 사람을 보냈다. 이호준은 홍가네의 권유를 받아들여 호조에서 온 문서를 없앴다. 그는 관리를 하의도에 내려보내, 지금까지 홍가네에 물던 소작료를 반만 내도록, 감언이설로 설득했다. 섬 주민들은 관찰사의 호의(?)를 일단 받아들였다. 그것만해도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수장을 당했는지, 객사를 했는지, 한양으로 떠났던 대표들은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한 어떻게 관찰사의 명을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도민들은 관찰사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로 했다.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기로 한 거였다. 하의도에 이호준의 공덕비도 세워 주었다.
구한말로 접어들었다. 세상이 맑아져 가고 있었다. 홍가네의 세력도 날개가 꺾여 있었다. 이호준이 왕명을 어기고 홍계원과 협잡하여, 자신은 얼마간의 미곡을 챙기며, 도민들의 권리를 박탈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도민들은 흥분하여 날뛰었다. 그들은 홍가네에 물던 소작료를 아예 물지 않았다. 한동안 여기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도민들의 생활은 조금씩 낳아지고 있었다. 하여튼 이호준의 손자 이완용도 나라를 팔아먹은 작자였다. 제갈 명의 종손 제갈 좌는, 이호준의 공덕비를 부수고, 받침돌을 돼지밥통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는 권력층에 대한 항거요, 냉소요, 앙갚음이기도 하였다.
파도가 높아 갔다. 배의 흔들림이 점점 강렬해졌다. 머리가 멍해지며 속이 메슥거렸다. 선창은 배의 진동으로 덜덜 떨었다. 창으로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뭔가 울컥 넘어오는 것이 있었다. 화장실로 달려가 마시고 씹은 것들을 얼마간 토해 내었다. 뱃속이 다소 진정되었다. 파도만 잠잠해진다면 더 마셔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나가는 비였다. 비가 그치고, 구름이 조금씩 걷혀 가더니, 해가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파도도 조금씩 죽어 가기 시작했다. 참으로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물빛은 청색 계통의 물감을 마구 풀은 듯했다.
창을 열었다. 선체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엔진 소리가 다소 시끄러웠다. 바람도 차가웠다. 창을 닫고 밖을 보았다. 다도해의 여기 저기 널린 섬들은 비가 그치자 해무(海霧)에 쌓여 있었다. 그 위로 산봉우리가 유방처럼 불끈 솟은 곳도 눈에 띄었다. 모두 신비스러운 풍광이었다. 헌데 저런 섬들이, 그 아픈 역사를 안고 있었다니. 사내의 표정이나 말투로 보아, 하의도의 비극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 같았다. 뭔가 더 있을 것이었다. 하의도 뿐만이 아닐 터였다. 우리 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땅이 외세나 세력가에 의해 착취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사내를 향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침묵을 깼다.
"공덕비가 돼지밥통이 되었다는 이야기군요."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목포에 입항하려면 아직 멀었지요."
"그렇군요."
"지형은 무엇을 하나요?"
"예?"
"직업 말이오."
"아, 예…… 그냥, 이거 저거……."
나는 말을 얼더듬었다. 부동산 중개업과 경매를 한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사내의 물건들을 잡았다는 이야기는 더욱. 사람들은 이렇게, 속을 툭 털어놓고 대화를 하다가, 어느 부분에 가서는 가면을 써야 하는 거였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신문고란 그런 거였군요."
"암행어사도 그래요."
"지방 수령과 결탁하여 토략질에 앞장섰죠."
"그저 뭐든, 가진 놈들이, 하는 짓이란……."
나는 움찔했다. 심장에 뭐라도 꽂히는 기분이었다. 꼭이 나를 두고 하는 소리로만 들렸다. 나는 입을 다물고 창 너머를 보았다. 구름이 많이 벗겨져 있었다. 섬들이 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물빛도 밝게 빛났다. 사내의 술잔을 채웠다. 사내는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사내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일제는 을사 보호조약에 의해, 통감부를 설치하고 토지조사 사업에 착수하여,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것은 과거의 지주권을 일제법상의 것으로 다시 묶어 식민성 봉건 체제를 정착하기 위한 거였다. 토지조사 사업이 끝나자, 여기에 따라 대부분의 농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갔다. 종래에는 소작권이 자손에까지 계승되던 것을, 법적으로 차단하여, 가난에서나마 안정할 수 있었던 길마저 봉쇄시켰다. 일제는 자국의 농업 이민자에게 여비, 주택, 영농 자금을 지급하며 불러들였다. 이들은 부근의 문전옥답을 계속 매입하며, 고리대금업 등을 통해, 대지주로 성장해 갔다. 소작인들은 고율 지대, 현물 지대, 마름세, 수리세 등 과대한 공과금으로, 8할이 넘는 소작료를, 지주의 창고에 바쳐야만 했다. 주인이 없는 땅은 일제가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넘어 갔다. 문서에 대한 관념이 희박한 한국 농민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토지를 잠식해 들기 위해서였다. 땅을 빼앗기거나 버린 농민들은 유랑을 하며, 기아와 질병에 죽어 가는 사람이, 매년 늘어나고 있었다. 하의도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섬은 본시 도민들의 땅이었다. 그런데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소작농이 된 거였다. 그것도 계속 주인이 바뀌면서.
홍가네는 희대의 사기꾼 정봉조를 끌어들였다. 정봉조는 사기를 쳐 유달산을 팔아먹은 사람이기도 했다. 하의도에 대해 아무 권리도 없는 홍가네는 정봉조에게 하의도를 헐값에 처분했다. 이번에는 사기꾼들끼리의 협잡이었다. 정봉조는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하기 위해 하의도를 재등총독에게 바쳤다. 더 많은 사기를 위하여. 재등의 측근에서 소작료를 물라고 왔다. 도민들은 강력하게 항거하였다.
제갈 좌는 말했다.
"이 땅은 본시 우리들의 것이오."
"우리가 매입한 거야."
재등이 보낸 사람은 등기권리증을 내밀었다. 어찌 된 일인지 하의도는 재등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도민들은 제갈 좌의 주도하에 즉각 소요를 일으켰다. 총독이며 정치적 야망이 있는 재등은, 문제가 발생하자, 우근에게 거저 주다시피 싼 가격에 매도했다. 하의도는 주민들 모르게 우근에 넘어간 거였다.
우근은 헌병을 끌어들여 소작료를 강제로 징수해 갔다. 도민들은 이 억울한 사연을 일본 사회주의 계열의 무산당에 호소하기로 했다. 제갈 좌와 함께 두 사람이 도일했다. 당시 사회주의 물결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가던 시기였다. 무산당을 뒤에 엎은 제갈 좌들은 승소했다. 그들은 판결문을 가지고 귀국했다. 우근의 마름들이 왔다. 도민들은 판결문을 내밀며 이를 근거로 소작료 징수에 불복했다. 문제가 이렇게 되자, 우근은 덕전에게 원금만 받고 팔았다.
덕전은 모든 것을 알고 산 거였다. 그는 목포 경찰서장이 사위였고, 친지로 판사와 검사도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소작료를 강제로 징수할 수 있다고 믿은 때문이었다. 덕전은 조카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판결문을 회수해 오라고 했다. 판결문은 도일 대표 중의 한사람인 이전문이 가지고 있었다. 덕정의 조카는 이전문에게 판결문을 확인하기 위해 목포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전문은 도일을 했던 대표들과 목포로 나갔다. 덕정의 조카 일행은 요정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덕전의 조카가 말했다.
"판결문을 봅시다."
"자, 보시오."
이전문은 당당하게 판결문을 덕정의 코앞에 내밀었다. 덕정의 조카는 판결문을 자세히 살피는 척했다. 기생들이 이전문 일행에게 계속 술잔을 안겼다. 술을 좋아하는 그들은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그들은 곧 취중의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어쩌면 술에 무슨 약을 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깨어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판결문을 찾았다. 그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표들은 목포 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그러다 경찰서에서 나오는 덕전의 조카를 상면할 수 있었다. 대표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상의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판결문을 회수했다. 엎치락뒤치락 한동안 실강이가 있었다. 순사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모두 연행했다. 덕전의 사위인 서장실로 불려 갔다. 모두 짜 놓은 각본이었다.
경찰 서장이 말했다.
"당신들 이것으로 싸우니, 내가 보관하겠다."
제갈 좌였다.
"우리들의 권리서입니다."
서장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내가 관리할 테니, 그만 들 가 봐."
"알았습니다."
제갈 좌는 일행에게 눈짓을 했다. 돌려 생각하니, 판결문이야 다시 사본을 뜨면 될 일이었다. 이 지역에서 무소불위의 서장과 더 이상 대거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대표들은 경찰서를 나가 하의도로 돌아갔다. 덕전은 다시 마름을 보내 소작료를 징수하려고 했다. 도민들은 목포로 나가 덕전의 집에 방화를 하고 돌아왔다. 전주에서 헌병 200여명이 하의도에 진입하여 관련자들을 모두 압송했다. 제갈 좌들은 다시 도일을 했다. 무산당이 또 나섰다. 무산당 대표들이 목포에 와 시정을 요구했다. 이쯤에 이르자, 덕전도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방화의 주모자 몇만 징역을 살게 하고 나머지는 방면했다. 하의도 토지는 일제의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넘어 갔고, 영소작권을 인정받았다. 해방 전까지 별 분쟁이 없었으며, 하의도 소작회가 결성되며 사소한 분쟁이 다소 있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식민지의 소작농들이었다. 살기가 팍팍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낙도에 사는, 힘없는 사람들의 땅이라 해서, 그래도 되는가 싶었다. 조선 시대부터 일제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무슨 장난 같았다. 하지만 농간을 당하는 쪽에서는 가족 전체의 목숨줄이 걸린 문제였다. 더구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님에 분명했다. 해방이 되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는 미군정청 신한공사로 넘어갔다. 점령군인 미군과의 갈등도 있었을 터였다. 나는 다음이 더욱 궁금했다. 하의도는 또 어떤 과정을 겪고, 주민들의 소유가 되었을까. 사내에게 이를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기왕 시작한 이야기였다. 내가 채근하지 않아도, 사내는 목포에 도착하기 전까지, 모두 털어놓을 거였다.
선창으로 스쳐 가는 섬들이 다시 보였다. 지나가는 객이 보기에는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저들에겐 참으로 피와 눈물이 어린 섬이었다. 왠지 눈앞이 희뿌옇게 보였다. 배가 한 섬으로 접근해 들고 있었다. 쾌 큰 섬이었다. 안좌도였다. 부두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목포로 나가는 승객들이었다. 배가 속력을 줄이며 부두에 접안했다. 승객들은 머리와 손에 소라, 해삼 등속을 이고 들고 승선했다. 남도의 낙지발처럼 끈끈하면서도 질척한 사투리와 함께.
비릿한 해물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싫지 않았다. 배는 곧 선수를 돌려 목포로 향했다. 술이 다 떨어졌다. 나는 배의 한편에 있는 매점으로 가 소주를 두 병 더 사 왔다. 사내는 계면쩍은 듯 두 손을 모아 비볐다.
사내가 말했다.
"이거 얻어 마시기만 해서…… 내 목포에 내리면……."
나는 손을 훼훼, 내저었다.
"몇 푼이나 된다고."
"수입이 꽤 좋은 모양이군요."
"아, 뭘요……."
나는 더 이상의 대화로 진전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내 직업과 하의도에 간 목적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기로 작정한 나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사내와 나는 표준어를 쓰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한때 서울에서 서적 외판원을 한 적이 있었다. 사내도 하의도를 떠나 외지 생활을 해보았을까.
나는 사내에게 술잔을 권했다.
"말투를 보니, 섬에서만 죽 살아 온 게……."
"목포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가 싫어 부모 몰래 서울로 내뺐죠. 노점상을 했어요. 깡패에게 뜯기고, 단속반에 뺏기고, 경찰에 걷어차이고…… 그런, 어느 날이었죠. 술을 잔뜩 퍼마시고 노상에서 쓰러져 잤지요. 꿈에 파도가 웅얼거리며, 나를 부르는 거예요…… 아버지와 함께……."
"그랬군요."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있지요?"
"모든 일의 근본은 농사라는."
"그것이 설사 집권자들이, 농민을 농토에 붙들어 매어 착취하기 위해서 만든 말이라 할지라도, 맞다고 생각해요. 누구든 우선 먹어야 무슨 일이든 할 거 아닌가요. 정치든, 사기든, 계집질이든. 우리는 농업국이었죠. 정치가이든, 그 무엇이든, 그들의 조상은 대개가 농민이었어요. 자신의 조상들이 해 온 일을 우습게 아는 인간들은 모두 저 바다에 수장시켜야 합니다. 돼지밥통처럼."
나는 엉겁결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렸다.
"맞는 말입니다."
"이제는 농가가 비어 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스스로 집을 버리고 떠났거나, 나처럼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이렇게 떠나거나……."
사내의 음성이 높아졌다.
"거기에 모텔과 펜션 등이 들어서고, 언젠가 우리 나라에 농토는 하나도 남지 않고, 급기야 곡물 공황이 일어날 지도 모르지요.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나는 다시 찔끔했다.
"……."
"우습죠?"
"뭐가요?"
"영문도 모르고 흘러 다닌 땅 말예요."
"화가 나는군요."
"헌데, 내 대에 와서 아주 날려보냈군요, 허허……."
나는 사내의 말들을 잠시 반추하다 물었다.
"……그러니까 제갈 명이나, 제갈 좌는?"
"명 자는 조상 중의 한 분이고, 좌 자는 조부님이지요."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럴 줄 알았어요."
사내는 다시 탄식조로 뇌까렸다.
"그게 어떤 땅인데……."
"……."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내는 목이 잠기어 드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이든 더했다가는 으앙,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한동안 침묵 속에 술만 오갔다. 내 신분을 밝히며, 당신의 떠도는 땅을 잡은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실토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취해도, 그 말은 감춰야 했다.
나는 잽싸게 대화의 향방을 틀었다.
"해방 후에는 어떻게 됐나요?"
"예?"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넘어간 땅 말예요."
사내는, 갑자기 생각난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본이 미국에 패망하자……."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넘어 갔던 하의도는 미군정청 신한공사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신한공사에서는 과거 일본 지주의 출현, 소작쟁의의 격증, 부재지주의 증가, 자작농의 몰락, 소작농의 증가, 이농현상 등을 시정키 위해 지주와 소작인의 비율을 5:5에서 3:7로 바꾸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의도는 도민들의 땅이었다. 경작하는 토지가 얼마 되지 않아 상황이 별반 나아지지도 않았다. 도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환언하여 소작료 납부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었다.
1946년 7월 7일이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후텁지근하고 끈적한 바람이 불었다. 하늘은 한바탕 소나기라도 퍼부을 심산인 모양이었다. 신한공사에서는 하의도에, 경찰을 동원하여 배를 타고, 강제로 소작료를 받으러 왔다. 신한공사 한국인 직원은 마을 대표들을, 덕전의 마름이, 머물던 집에 모았다.
직원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왜 소작료를 안 내는 거요."
백발이 성성한 재갈 좌의 무겁게 닫쳤던 입이 열렸다.
"당신 소속이 어디요?"
"신한공사요."
"신한공사라면 동척의 후신이 아니오?"
"그렇소!"
"동척에서 관리하는 토지는 일본인의 귀성농지가 아니오?"
"그렇소만……."
"하의도는 본시 하의도민들의 땅이오."
"덕전의 소유로, 동척에 넘어 온 것이므로, 일본인의 것입죠."
"모두 농간이었을 분이오."
"문서가 있어요."
"조작된 것일 뿐이오."
"어쨌든 소작료는 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줄 수 없소!"
"뭐라고?"
새파랗게 젊은 직원은 제갈 좌에게 달려들어 뺨을 때렸다. 노구의 제갈 좌는 옆으로 픽 쓰러졌다.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직원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공포를 쐈다. 마을 사람들이 낫이나 괭이를 들고 경찰과 대치했다. 마을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여기에는 주동자가 따로 없었다. 자신들의 땅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세력에 의해 계속 농간만 당하는 섬에 대한, 일종의 자연발생적 분노인 것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진전되자 신한공사와 경찰은 일단 철수했다. 대표들은 자주 회합을 갖고 숙의를 계속했다.
제갈 좌가 말했다.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소."
좌중에서 한 사람이 받았다.
"우리가 언제 저런 사람들에게 이긴 적이 있습니까."
"그래요. 어차피 질 것이라면 몇 가지 조건을 내놓읍시다. 우리에게 무이자로 영농자금을 융자해 줄 것, 하의 3도 연락 도선을 만들 것, 초등학교를 세울 것, 소작료는 앞으로 선출될 소작회장 입회 하에 생산고를 조사할 것, 도로를 만들어 줄 것 등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다섯 가지 조항입니다. 이것을 문서로 만들어 신한공사에 보냅시다. 어떻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었다.
"별 도리가 없는 것 같소이다."
제갈 좌는 손수 탄원서를 작성하여, 도민들의 도장을 받아, 신한공사에 보냈다. 신한공사에서는 다른 직원에게, 더 많은 경찰을 대동시켜, 하의도에 보냈다. 오히려 경찰은 지난 번 소요를 일으킨 주모자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직원은 도민들이 내건 조건을 완전히 묵살하고 소작료만 챙기려 들었다. 하의도 사람들은 다시 봉기했다. 하태도와 상태도에서도 건너왔다. 섬 주민들은 엄청난 숫자로 불어나 있었다. 손에는 무기가 될 만한 농기구를 하나씩 잡은 채였다.
경찰과 도민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이었다. 섬 주민 하나가 쇠스랑을 높이 치켜들고 한 경찰에게 서서히 접근해 들었다. 경찰은 놀라서 엉겁결에 총을 난사했다. 제갈 좌가 다리에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도민들은 일제히 경찰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도민들의 수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경찰은 공포를 쏘면서 직원과 함께 배를 타고 도망쳤다. 제갈 좌는 가벼운 관통상이었다. 도민들은 제갈 좌를 응급조치 해 목포 병원으로 이송했다.
다음 날이었다. 신한공사 직원은 무장한 미군들과 다시 왔다. 도민들은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장 격인 소터버그 중위가 뭐라고 씨부렸다.
그것을 직원이 통역했다.
"저간의 소요는 참 유감스러운 일이오. 우리는 하의도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조사를 해봤오. 당신네들의 요구가 옳다는 것도 알았소. 당신네들이 제시한 다섯 가지 조건을 모두 들어주고 소작료도 안 받기로 결정했소. 앞으로 일정한 상환을 통해 토지 소유도 당신네들로 해 줄 것이오. 그러니, 일체의 소요가 없기를 바랄 뿐이오. 우리는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니까 말이오."
"만세!"
도민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환성을 질렀다. 비로소 그 오랜 세월 떠돌던 땅이 자신들에 정착하는 거였다. 미군정청에서는 이런 소요들로 인하여, 해방군이라 자처하는 자신들이, 한국민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도민들 쪽으로 선회한 것이었다. 아무튼 하의도는 주민들이, 조선 시대부터 목숨을 내놓고 피를 흘리며, 싸워 찾은 땅이었다. 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의도는, 1964년에 상환을 모두 끝내고, 주민들의 땅이 되었다.
배가 목포항으로 접근해 들고 있었다. 사내는 입항하는 시간에 맞춰 이야기를 적절히 조정한 것 같았다. 중요한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것을. 둘은 배에서 소주 다섯 병을 마셨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검붉었다. 필시 나도 그럴 거였다. 평소 같으면 술에 곤죽이 되어 나자빠졌을 텐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실감나는 이야기에 몰입해 있었던 까닭이다. 그것은 사내나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터였다.
사내가 울먹였다.
"땅을 지키기 위해 조상 중의 한 분은 목숨을 잃었고, 조부님은 다리에 관통상까지 입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사내는 급기야,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 쪽을 힐끔거렸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다소 민망해졌다.
나는 사내를 달래기로 했다.
"법원에 이의 신청을 하고 돈을 마련해 보세요."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죠."
"꼭 다시 찾기를 빌겠습니다."
사내는 웅얼거렸다.
"그게 어느 땅인데…… 그놈에 자본주의가……."
"용기를 내세요. 좋은 일이 있겠지요."
나는 사내의 손을 꽉 쥐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두 위로의 말일뿐이었다. 삶이 송두리째 뿌리 뽑힌 자가 어디 가서 거금을 마련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이미 낙찰이 되어 내 손에 넘어와 있지 않은가.
배가 육지에 닿았다. 나는 선실 바닥에 널려 있는 먹다 남은 회와 빈 병을 챙겨 휴지통에 버렸다. 배가 덜컥 둔중한 소리를 내며 멎었다. 사내와 나는 하선하는 사람들을 따라 여객 터미널 밖으로 나갔다. 항구는 언제나처럼 활기에 넘쳐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횟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함께 걸었다.
사내가 나의 손을 잡았다.
"이거 얻어 마시기만 해서. 내 한 잔 사겠소."
"서울로 올라가야 하지 않습니까?"
"밤차를 타면 되지요."
"내 주량을 넘은 것 같아요."
"조금만 더……."
"그만 합시다."
나는 단호히 자르고 사내로부터 등을 돌렸다. 사내는 꼭이 술을 마시고 싶은 게 아닐 터였다. 자신의 넋두리를 더 털어놓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는 하의도 근처를 떠날 수 없는 것 같았다. 사내와 더 이상 자리를 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사내의 땅을 잡은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때문이다. 나는 결론 지었다. 경매 입찰금을 날리고 유찰시켜 버리기로. 그러면 다음 번에 누군가 입찰에 응해 낙찰 받을 것이었다. 하지만 사내의 땅을 내가 가로 챌 수는 없었다. 경매 물건이란 대다수가 이렇게 한과 독이 묻은 거였다. 그런 것을 취득하여 나의 전정에 이로울 것이 없을 터였다. 어쩌면 땅에 깃들인 제갈의 조상들이 나에게 해코지를 할 것도 같았다. 차제에 경매에서 아주 손을 떼고 싶었다.
조금 걷다가 몸을 돌려 사내를 보았다. 구부정하게 등이 굽은 사내는 어디론가 비척거리며 가고 있었다. 달려가 사내를 얼싸안고, 어느 술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애써 잠재우고 있었다. 그런다고 달라질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피차에 마음만 아플 뿐이었다. 사내의 땅을 찾아 줄 여력이 없었다. 그런 감상에 젖어 엉뚱한 일을 벌이고 나중에 후회할 나도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다시 등을 돌려, 택시를 잡았다. 어디선가 뱃고동이 길게 몇 번 울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