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간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 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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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나무가 강가에 서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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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방
헤어진 너의 등을 만지며 꼬이고 말린 가죽끈을 펴며 떨어진 장식을 맞춰도 본다 가을 서리 맞은 단풍이 가슴에다 불을 붙이면 나는 너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눈 위에 달빛이 밝다고 막차에너를 싣고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늙었다---너는 늙었다 나도 늙었으면 한다 늙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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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산길이 호젓다고 바래다 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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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눈보라 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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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제
너는 이제 무서워 하지 않아도 된다. 가난도 고독도 그 어떤 눈길도
너는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조그마한 안정을 얻기 위하여 견디어 온 모든 타협을.
고요히 누워서 네가 지금 가는 곳에는 너같이 순한 사람들과 이제는 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다 같이 잠들어 있다. |
금아 연가
길가에 수양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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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슬프게 아름다운 것
어젯밤 비바람에 지다
여울에 하얀 꽃잎들
아니 가고 머뭇거린다 |
가을
호수가 파랄 때는 아주 파랗다
어이 저리도 저리도 파랄 수가
하늘이, 저 하늘이 가을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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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정열 투쟁 클라이맥스 그런 말들이 멀어져 가고
풍경화 아베 마리아 스피노자 이런 말들이 가까이 오다
해탈 기다려지는 어느 날 오후 걸어가는 젊은 몸매를 바라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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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아빠는 유리창으로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뒷머리 모습을 더듬어 아빠는 너를 금방 찾아냈다
너는 선생님을 쳐다보고 웃고 있었다
아빠는 운동장에서 종 칠 때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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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油畵 |
기다림 1
밤마다 눈이 나려서 쌓이지요
바람이 지나고는 스친 분도 없지요
봄이면 봄눈 슬듯 슬고야 말 터이니
자욱을 내달라고 발자욱을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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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
마당에 꽃이 |
너는 아니다
너같이 영민하고 너보다 가여운 그런 여인이 있어 네가 나를 만나게 되듯이 그 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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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젓는 소리
달밤에 들려오는 노젓는 소리
만나러 가는 배인가 만나고 오는 배인가
느린 노젓는 소리 만나고 오는 배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