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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성목요일의 고통의 시작이다.
사도들은 – 그들은 열 명이다 – 부지런히 만찬실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유다는 식탁 위에 올라가서 큰 샹들리에의 모든 조명 램프에 기름이 들어 있는지 살펴본다. 그 샹들리에는 겹 푸크샤의 꽃부리 같다. 왜냐하면 매다는 대에 꽃잎과 비슷한 것이 다섯 개 돌아가며 달려 있고, 좀 더 아래 쪽에는 진짜 작은 불꽃의 화관인 둘째 줄의 등이 둘러쳐져 있기 때문이다. 끝에는 작은 사슬에 매달린 세 개의 조명 램프가 있는데, 빛을 발하는 꽃의 암술과 같다.
그리고 유다는 방바닥으로 뛰어 내려 안드레아를 도와 매우 고운 식탁보를 깐 식탁 위에 식기들을 솜씨 있게 늘어놓는다. “굉장히 화려한 아마포구나!” 하고 말하는 안드레아의 말이 들린다.
그러니까 가리옷의 유다는 “라자로의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의 하나지. 마르타가 이걸 꼭 가져오겠다고 했다네.”
“그리고 이 잔들은? 이 항아리들은 어떻고?” 하며 포도주를 항아리에 다 넣은 토마가 지적하고, 그 정교한 불룩한 부분에 얼굴을 비추어보면서 감탄하여 그 항아리들을 보고, 끌로 세긴 손잡이를 권위자다운 눈으로 탐나는 듯이 들여다본다.
“얼마만한 값어치가 나가는지 누가 알겠어, 응”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묻는다.
“이것은 망치로 다듬은 거야. 우리 아버지가 보시면 미치실 거야. 얇은 은과 금은 열에 쉽게 오그라들어. 하지만 이렇게 가공하면… 일순간이 모든 것을 망칠 수가 있어. 손질을 한번 잘못하기만 해도 그만이야. 동시에 힘도 있어야 하고 경쾌하기도 해야 되는 것이지. 손잡이들을 보게나. 덩어리를 잡아당겨서 만든 것이지 땜질한 것이 아니야. 부자들이 쓰는 물건이지… 줄질한 자리 모두와 애벌깎기 한 자리가 없어져가네. 자네가 내 말을 알아듣는지 모르겠구먼.”
“뭐라고! 알아듣다 마다! 조각가가 하는 것과 같은 일이지.”
“바로 그거야.”
모두 감상을 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걸상을 배치하고, 어떤 사람은 찬장들을 준비한다.
베드로와 시몬이 함께 들어온다.
“오! 자네들 결국은 왔구먼! 어디를 또 갔었나? 선생님과 우리와 같이 왔다가 자네들은 다시 도망을 쳤었지.”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시간 되기전에 할 임무가 또 하나 있었어” 하고 시몬이 짤막하게 대답한다.
“자네 우울한가?”
“요사이 그것도 절대로 거짓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입술에서 들은 것으로 미루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어.”
“게다가 그 악취하고… 좋아! 베드로야, 입을 다물어라” 하고 베드로가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자네도 그래… 며칠 전부터 자넨 미친 것 같애. 자넨 꽁무니에 재칼이 쫓아오고 있는 산토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단 말이야!”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대답한다.
“그러는 자네는 교활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구먼. 자네도 며칠 전부터 얼굴이 그리 아름답지가 못해. 자네 눈길이 이상해… 자넨 곁눈질까지 하고 있어… 누구를 기다리는건가 아니면 누구를 보기를 바라는가? 자넨 자신만만한 것 같고 그렇게 보이기를 원하고 있어, 하지만 자넨 겁을 집어먹은 사람같이 보여”하고 베드로가 대꾸한다.
“오! 겁으로 말하면… 자네도 분명히 용사는 아닐세.”
“우리 중에 용사는 없네. 유다. 자네는 마카베오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자네도 용맹하지는 못해. 내 이름은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 하는 것이지만, 정말이지 내 마음 속으로는 불행을 초래할 줄 알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총애를 잃었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떨고 있네. ‘돌’(베드로)이라는 새 이름을 받은 요나의 시몬도 지금은 불 옆에 있는 초 모양으로 물렁물렁해. 그 사람이 이제는 그 의지로 단단히 버티고 있질 못해. 아무리 심한 폭풍우를 만나도 떠는 것을 본 일이 없는 그 사람이 말이야!
마태오와 바르톨로메오와 필립보는 몽유병자 같고, 내 형과 안드레아는 그저 한숨이나 푹푹 쉬며, 선생님께 대한 사랑의 고통과 친척관계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두 사촌을 보게. 그 사람들은 벌써 늙은이 같아. 토마도 활기를 잃었고, 시몬은 지금부터 3년 전처럼 기진맥진한 문둥이가 다시 된 것처럼 고통으로 눈이 쑥 들어갔어. 얼굴이 부식되고 납빛이 되고 천해졌다고 할 지경이야” 하고 요한이 대답한다.
“그래, 선생님의 우울함이 우리 모두에게 전염된 것이야”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지적한다.
“내 사촌이고 내 스승이고 주님이시며 자네의 스승이시고 주님이신 예수님은 우울하시기도 하고 우울하지 않으시기도 하네. 우리가 보는 바대로 이스라엘 전체가 그분에게 주고 있는 극도의 고통 때문에 슬퍼하신다는 뜻과 그리고 그분 혼자만이 보고 계시는 감추어져 있는 다른 고통을 가리키는 뜻으로 쓴다면 ‘자네 말이 옳으네.’ 그렇지만 이 말을 그분이 미쳤다는 뜻으로 쓴다면 내가 못하게 하겠어.”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래 우울하다는 개념이 정신착란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일반 공부도 해서 안단 말이야. 선생님은 당신 자신을 너무 많이 내어주셨어. 그래서 지금은 기진맥진하셨어.”
“달리 말해서 발광이란 말이지?” 하고 언뜻 보아서는 조용한 다른 사촌형제 유다가 묻는다.
“바로 그거야! 선생님은 정의와 지혜를 닮은 거룩하게 돌아가신 의인이신 자네 아버지를 보셨지! 너무 오래 되어서 정신적으로 노쇠해진 면문의 비참한 운명의 예수님은 항상 이 병의 경향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심하지 않던 것이 점점 더 공격적인 것이 되었어. 그분이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사두가이파 사람들, 헤로데당 사람들을 어떻게 공격하시는지를 보았지. 그 옆은 당신의 생명을 석영(石英) 조각이 좍 깔린 길과 같이 불가능하게 만드셨어. 그런데 그 석영 조각을 깐 사람이 그분이란 말일세. 우리는 말이야… 우리는 사람이 그것을 우리 눈에 띄지 않게 한 동안은 그분을 사랑했어. 그렇지만 그분을 우상처럼 숭배하지 않으면서 사랑한 사람들, 즉 자네 아버지, 자네 형 요셉, 처음에 시몬과 같은 사람도 바로 보았어…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눈을 떠야 했었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모두 병자인 그의 달콤한 매력에 끌려 들어갔던 거야. 그래서 지금은… 슬프게도!”
가리옷의 유다만큼이나 큰 유다 타대오는 바로 앞에 있으면서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맹렬히 분통을 터뜨려 힘있는 손등으로 밀어 유다를 한 의자 위에 주저앉힌다. 그러나 분노를 억제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몸을 굽히고 비겁자의 얼굴에 대고 씩씩거린다. 그런데 유다는 아마 타대오가 그의 죄악을 벌써 알고 있지 않나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게 네가 말하는 발광이라는 것이다. 이 뱀같은 놈아! 그리고 선생님이 옆방에 계시고 또 과월절 저녁이기 때문에 네 목을 조르지 않는 거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봐라. 잘 생각해 봐! 그분에게 무슨 불행한 일이 생겨서 세상에 계시지 않아 내 힘을 막아 주시지 않으면 너를 구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말이다. 이건 벌써 네 목에 밧줄을 걸고 있는 거나 다름없고, 갈릴래아의 장인이고 골리앗을 돌팔매로 이긴 분의 후손인 사람의 정직하고 기운센 손이 너를 벌줄 거다. 일어나라, 무기력하고 방종한 놈! 그리고 네 행동을 조심해라.”
유다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일어나며 조그만 반항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도 타대오의 새삼스러운 태도에 반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 모두가 찬성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겨우 분위기가 다시 평온해진 참인데 예수께서 들어오신다. 그분은 그 큰 키로 지나오기가 어려운 작은 문의 문지방에 나타나셔서 작은 층계참을 밟으시고 부드럽고 서글픈 미소를 지으시고 팔을 벌리시면서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하고 말씀하신다.
그분의 목소리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겪는 사람의 목소리같이 지쳐 있다.
예수께서는 내려 오시며 당신 곁으로 달려 온 요한의 금발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과 같이 사촌 유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시면서 다른 사촌형제에게 말씀하신다.
“네 어머니가 너더러 요셉과 다정스럽게 지내라고 그러신다. 조금 전에 그 사람이 여자들에게 내 소식과 네 안부를 물었단다. 그에게 인사를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내일 인사하시지요.”
“내일? … 하지만 언제라도 그를 볼 시간이 있겠지… 오! 베드로! 우리는 마침내 좀 같이 있게 되었구나! 어제부터 네가 도깨비불 같다. 보이다가 안보이다가 하는구나. 오늘은 거의 너를 잃었다고 말할 수 있을 지경이다. 시몬 너도.”
“백발이 성성한 저희들은 육체의 욕망 때문에 어디에 갔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선생님께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시몬이 정색을 하고 말한다.
“하긴 … 아무 나이라도 이 욕구는 가질 수가 있지… 늙은이들! 젊은이들보다도 더 나쁘단 말이야…”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공격적으로 말한다.
시몬이 그를 건너다보며 대꾸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도 그를 바라다보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이가 아프냐? 오른쪽 뺨이 붓고 빨간데.”
“예 아픕니다. 그렇지만 상관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은 이렇게 끝난다.
“해야 할 것을 다 했느냐? 마태오, 안드레아? 또 너 유다는 성전에 제물 바칠 것을 생각했느냐?”
처음 두 사람도 가리옷의 유다도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오늘 하라고 하신 것은 다 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저는 라자로의 맏물을 아이들에게 주라고 쿠자의 요안나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그 사과들이 더 맛있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사과들은 시장기를 느낄 때의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생님이 보내신 사과였습니다.” 하고 요한이 웃으면서 꿈꾸듯이 말한다.
예수께서도 어떤 추억을 회상하시면서 미소지으신다…
“저는 니고데모와 요셉을 보았습니다.” 하고 토마가 말한다.
“그 사람들을 보았어? 말을 했나?” 하고 가리옷의 유다가 과장된 관심을 가지고 묻는다.
“그래. 이상할 게 뭐 있나? 요셉은 우리 아버지의 좋은 단골이었거든.”
“자넨 전에 그런 말을 안했었어… 그래서 내가 이상히 생각한 거야!…” 하고 유다는 처음에 그가 주었던 인상, 즉 요셉과 니고데모가 토마와 만난 데 대한 그의 불안한 인상을 빼버리려고 해본다.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려고 여기 오지 않은 것이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그 사람들도, 쿠자도, 마나엔도… 그들 중… 아무도…”
그러나 가리옷의 유다는 거짓 웃음을 지으며 바르톨로메오의 말을 막고 이렇게 말한다.
“악어는 필요할 때는 땅에 엎드려 있는 거야.”
“무슨 소릴 하려는 거야? 무슨 암시를 하냔 말이야?” 하고 시몬이 일찌기 없었던 공격적인 태도로 묻는다.
“조용히, 조용히! 아니 너희들 무슨 일이냐? 지금은 과월절 저녁이다! 어린 양을 먹는 데 이렇게 품위있는 호사를 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므로 만찬을 평화의 정신으로 먹자. 나는 요 며칠 저녁에 내가 가르친 것으로 인해서 너희가 몹시 당황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알겠느냐? 다 끝냈다! 이제는 너희를 당황하게 하지 않겠다. 내게 관계되는 것을 모두 말하지 못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만 말했을 뿐이다. 나머지는… 나중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너희에게 말해 줄 것이다… 그렇다. 그 말을 너희에게 해 줄 분이 오실 것이다! 요한아, 유다와 또 한 사람과 같이 가서 깨끗이 하는 데 쓰는 잔들을 가져오너라. 그리고 식탁 앞에 앉자.” 예수께서는 비통할 만큼 온화하시다.
요한과 안드레아, 유다 타대오와 야고보가 넓은 잔을 가져오고 거기에 물을 붓고 예수와 동료들에게 수건을 드리니 그들은 저들과 같은 일을 한다. 잔을 (사실은 금속으로 만든 대야이다) 한 옆으로 치운다.
“그러면 이제는 너희들의 자리로 가거라. 나는 여기 있고, 여기(오른쪽)에 요한, 다른 쪽에는 내 충실한 야고보, 최초의 두 제자이다. 요한 다음에 내 단단한 돌(베드로), 그리고 야고보 다음에는 공기 같은 사람, 아무도 주의하지 않지만, 항상 거기 있으면서 기운을 돋구어 주는 안드레아, 그 옆에는 내 사촌 야고보, 온순한 동생, 내가 지금 열거한 제자들에게 상좌를 준다고 불평은 안하겠지? 너는 의인의 조카이지. 그분의 정신이 오늘 저녁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내 위에서 감돌며 고동친다. 내 어려서 약할 때의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이 그 그늘에서 원기를 회복한 참나무, 평화를 누리세요! 평화를 누리세요!… 베드로 다음에는 시몬… 시몬, 잠깐 이리 오너라. 충성스러운 네 얼굴을 자세히 보아 두고 싶다. 다음에는 다른 얼굴들이 정직한 네 얼굴을 가리겠기 때문에 잘 보지 못할 것이다. 고맙다, 시몬아. 모든 것을 위해서” 그러면서 그를 껴안으신다.
예수께서 놓아주시자 시몬은 제 자리로 가면서 얼굴을 손으로 가려 비탄을 표시한다.
“시몬 맞은 편에는 내 바르톨로메오, 그러면 두 정직과 두 지혜가 서로 반영된다. 그들은 잘 어울린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내 동생 유다, 이렇게 하면 네가 보이고… 무슨 축제가 있어 우리가 모두 한 식탁에 모이던… 나자렛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또 가나에서도… 생각나니? 우리가 같이 있었지. 잔치… 혼인 잔치… 첫번 기적…물이 포도주로 변한…오늘도 잔치이고… 오늘도 기적이 있을 것이다… 포도주의 본질이 바뀌어서…”
예수께서는 머리를 숙이시고 당신의 비밀의 세계에 외따로 떨어져 계신 것처럼 생각에 잠기신다. 다른 사람들은 그분을 쳐다보고 말이 없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드시고 가리옷의 유다를 뚫어지게 보시면서 말씀하신다.
“너는 내 맞은 편에 앉아라.”
“선생님은 저를 이토록 사랑하십니까? 시몬보다도 더, 언제나 저를 선생님 맞은 편에 앉히시기를 원하시나요?”
“그토록, 네가 바로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선생님?”
“네가 이 시간을 위하여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다는 스승과 동료들에게 달라진 시선을 보낸다. 스승께 대하여는 연민의 태도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기양양한 태도의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네 옆에는 한 쪽에 마태오, 다른 한 쪽에는 토마가 앉도록.”
“선생님 원하시는 대로, 선생님 원하시는 대로요, 저는 제 바로 앞에 내 구세주를 모시는 것으로 넉넉합니다.” 하고 마태오가 말한다.
“마지막은 필립보이다. 자, 알겠느냐? 내 옆 명예스러운 자리에 앉지 못하는 사람은 내 앞에 앉는 영광을 누린다.”
예수께서는 당신 자리에서 일어서시어 당신 앞에 놓여 있는 큰 잔에(모두가 높은 잔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잔 이외에 훨씬 더 큰 잔을 가지고 계시다. 아마 예식용 잔일 것이다) 포도주를 부으신다. 포도주를 부으시고, 잔을 들어 바치시고, 다시 내려놓으신다.
그런 다음 모두가 함께 시편을 읊는 어조로 묻는다. “왜 이 예식을 행합니까?” 하고, 순전히 형식적인 의식을 위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가장으로서 거기에 대답하신다. “이 날은 에집트에서 우리가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포도의 열매를 창조하신 야훼는 찬미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바치셨던 그 포도주를 한 모금 드시고 잔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 주신다. 그리고나서 빵을 바치시고, 조각들을 만드시어 나누어 주시고, 그 다음에는 네 개의 소스 그릇에 담은 불그스름한 소스에 담근 야채도 나누어 주신다.
식사의 이 부분이 끝나자, 그들은 성시(聖詩)들을 합창한다.
구운 어린 양이 담긴 큰 쟁반을 찬장에서 식탁으로 옮겨다가 예수님 앞에 놓는다.
말하자면 합창단의 제1부의… 역할을 하는 베드로가 “왜 어린양을 이 모양으로 내옵니까?”
“이스라엘이 희생된 어린 양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을 때를 기념해서이다. 문설주와 상인방(上引枋)에 피가 빛나는 곳에서는 맏아들이 죽지 않았다. 그런 다음 에집트 사람들은 왕궁에서부터 누추한 집에 이르기까지 맏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여 우는데, 히브리 사람들은 모세의 지휘를 받으며 해방과 언약의 땅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옆구리에는 벌써 허리띠를 두르고, 발에는 샌들을 신고, 손에는 순례 지팡이를 들고, 아브라함의 백성은 기쁨의 찬가를 부르면서 서둘러 걷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일어서서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스라엘이 에집트에서 나오고, 야곱의 집이 야만 백성 가운데에서 나올 때 유다는 그의 피난처가 되었다.”
이제는 예수께서 어린 양을 자르시고, 새 잔에 포도주를 따르시고, 조금드신 다음 넘겨 주신다. 그런 다음 그들은 또 노래한다. “아이들아, 주를 찬양하여라. 영원하신 분의 이름이 이제와 항상 무궁지세에 찬미받으실지어다.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그분은 찬미를 받으셔야 한다.”
예수께서 몫들을 나누어 주시며, 소중한 아들들 가운데 있는 가장과 같이 각자가 넉넉히 차례가 가도록 주의하신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실 때 예수님은 장엄하시고 약간 침울하시다.
“내가 이 과월절 음식을 너희와 함께 먹기를 얼마나 별러 왔는지 모른다. 이것이 내가 영원히 ‘구세주’ 였던 그 때부터 원한 소원 중의 소원이었다. 나는 이 시간이 저 다른 시간을 앞서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를 주는 기쁨이 내 수난에 이 위안을 미리 갖다 놓았다… 내가 이 과월절 음식을 너희와 같이 나누기를 열렬히 원한 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는 포도로 빚은 것을 결코 더는 맛보지 않겠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내가 다시 선택한 사람들과 더불어 산 사람과 같이, 산 사람들의 혼인잔치를 위하여 어린 양의 잔치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나처럼 겸손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만이 올 수 있다.”
“선생님, 방금 명예로운 자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선생님 맞은 편에 앉는 영광을 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저희들 중에 누가 첫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묻는다.
“모두가 첫째이고 또 아무도 첫째가 아니다. 한번은… 우리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원한에 대한 심한 불쾌감을 가지고… 피곤해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너희들은 누가 제일 위대한가 하는 것을 토론하지 않을 만큼 지쳐있지는 않았었다… 한 어린이가 내 곁으로 뛰어 왔다… 내 어린 친구 중의 하나가… 그리고 그의 순결이 그 많은 일에 대한 내 혐오감을 가라앉혔다. 너희들의 고집불통의 인간성은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온 지혜로운 대답을 하던 어린 베냐민아, 지금 어디에 있느냐? 왜냐하면 네가 천사였기 때문에 성령께서 네게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때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누가 첫째 되기를 원하면 말째가 되고 모든 사람의 하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혜로운 어린이를 예로 들었다. 지금은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이 세상의 왕들은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압제당하는 백성들은 왕들을 미워하면서 그들에게 환호하고, 왕들을 <은인들>, <조국의 아버지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증오가 거짓 존경 밑에서 부글거리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제일 높은 사람이 제일 낮은 사람 같아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이 섬기는 사람 같아야 한다. 사실 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사람이냐 심부름하는 사람이냐? 식탁에 앉은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들의 심부름을 하고, 조금 있으면 더욱 그렇게 할 것이다. 너희는 시련 중에 나와 같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 나라에 너희들을 위하여 자리 하나씩을 마련해 둔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기서 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왕이 되어, 너희가 영원한 내 식탁에서 먹고 마시게 할 것이고,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할 것이다. 너희는 나와 같이 시련을 겪어왔다… 아버지의 눈에 너희를 위대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
“그러면 나중에 올 사람들은? 나라에 그 사람들의 자리는 없겠습니까? 저희들만이 있을 것입니까?”
“오! 내 집에는 왕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생활의 시련 중에서 그리스도에게 충실한 사람은 모두가 내 나라에서 왕자가 될 것이다. 생활의 고통 중에 끝까지 항구한 사람들은 내가 시련을 당할 때에 나와 같이 있은 너희와 같겠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믿는 사람들과 일체가 된다. 내가 너희와 모든 사람을 위하여 택하는 고통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에게는 표장(標章)같이 될 것이다. 오 나의 사랑하는 벗들아, 고통 중에 충실한 사람은 너희와 같이 복된 사람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저희들은 끝까지 꾸준했습니다.”
“베드로야,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러나 나는 시련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겠다. 시몬아, 요나의 아들 시몬아, 사탄이 키로 밀을 까부르듯이 너희를 제멋대로 다루겠다고 청하였다. 그러나 나는 네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너를 위해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뉘우친 다음에는 네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라.”
“제가 죄인이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선생님께 충실하겠습니다. 저는 그 죄는 없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그런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내 베드로야, 교만하지 말아라. 이 시간은 무한한 일을 변경시켜, 지금까지 이러하던 것이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얼마나 달라질지 모른다! … 그것들은 새로운 필요를 가져오고 강요한다. 너희도 알고 있지. 내가 늘 이 말을 하였다. 산도둑이 우글거리는 외딴 길을 갈 때에도 그런 말을 하였다. ‘두려워 마라, 주의 천사들이 너희와 같이 있기 때문에 너희가 아무 해도 입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나느냐?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어야 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 이런 말도 했다. ‘사람은 참새보다 훨씬 낫고, 오늘은 피었다가 내일은 건초가 되는 꽃보다 낫다. 그런데도 아버지께서는 꽃과 작은 새도 돌보신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너희를 돌보실까 어떨까 의심할 수 있느냐?’ 또 이런 말도 했다. ‘청하는 사람에게 주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에게는 빰을 내대라.’ ‘절대로 지팡이도 가지지 말라’고도 말했었다. 그것은 너희에게 사랑과 신뢰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 이미 그런 때가 아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하겠다. ‘이제까지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모욕을 당한 적이 있었느냐?’ 하고.”
“선생님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만이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천사들이 모두 주께 불려서 돌아갔다. 지금은 마귀들의 시간이다… 주의 천사들은 금빛 나는 날개로 눈을 가리고 몸을 감싸며, 그들의 날개가 슬픔의 빛깔이 되지 않는 것을 괴로워한다. 지금은 슬픔의 시간, 쓰라린 슬픔, 하느님을 모독하는 데에서 오는 슬픔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는 이 세상에 천사들이 없다. 그들은 하느님을 죽이는 세상 사람들의 모독하는 말과 무죄한 이의 울음소리를 그들의 노래로 들리지 않게 하려고 하느님의 옥좌 곁에 가 있다. 그래서 우리들만이 홀로 있다… 너희와 나, 이렇게 홀로, 그리고 마귀들이 이 시간의 주인이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서로 의심하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같이 보이고 그런 조치를 취할 참이다. 이제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배낭까지 지니고, 검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검을 사야 한다.
내게 대해서 ‘그는 악인들 중의 하나로 몰렸다’고 성서에 씌여 있는데 그 말씀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 관한 것은 무엇이나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의 화려한 겉옷을 – 과연 오늘 저녁에는 모두가 제일 좋은 옷을 입었고, 따라서 금, 은, 구리를 박은, 그러나 매우 짧은 단도를 화려한 허리띠에 차고 있는데, 그것은 단도라기보다는 오히려 주머니칼 같은 것이다 – 넣어 두었던 큰 궤 쪽으로 가려고 일어난 시몬은 검 두 자루를, 약간 구부러진 긴 진짜 검 두 자루를 들고 예수께로 가져와서 말한다. “베드로와 저는 오늘 저녁 무장을 했습니다. 저희는 이 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은 단도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검을 드시고 살펴보시다가 한 자루를 뽑아서 날을 손톱에 시험해 보신다. 그것은 이상한 광경이고, 또 잔인한 무기가 예수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니 한층 더 이상한 느낌이 든다.
예수께서 말없이 살펴보시는데, 가리옷의 유다는 “이 검들을 누가 주었나?” 하고 묻는다. 유다는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
“누가 주었냐고? 우리 아버지가 귀족이고 권력이 있었다는 걸 자네에게 상기시키겠네.”
“하지만 베드로는…”
“그래서? 언제부터 내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선물에 대해서 자네한테 보고를 해야 하나?”
예수께서는 검을 다시 칼집에 꽂으신 후 머리를 드시고 열렬한 사람에게 돌려주신다.
“됐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네가 그것들을 가져오기를 잘했다. 그러나 세째 잔을 마시기 전에 잠깐 기다려라.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같이 되라고, 그리고 내가 이 식탁에서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고 너희들에게 더 그렇게 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너희에게 양식을 주어 육체를 위한 심부름을 했다. 이제는 정신을 위한 양식을 주고자 한다. 이것은 옛날 의식서의 음식이 아니고 새 의식서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선생’이 되기 전에 세례를 받으려고 했다. 말씀을 전파하는 데에도 그 세례로 충분하였다. 이제는 피가 흐를 것이다. 너희는 그 때에는 세례자에 의해 깨끗하게 되었고 오늘도 성전에서 깨끗하게 되었지만, 너희에게까지도 새 세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아직 넉넉하지 못하다. 내가 너희들을 깨끗하게 해 줄터이니 오너라. 식사를 중단해라. 과월절의 음식과 같이 거룩한 음식이라 할지라도 배를 채우기 위하여 먹는 음식보다 더 고귀하고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예수께서 일어나시고, 당신 자리에서 더 쉽게 나가시기 위하여 요한을 일어나게 하신다. 큰 궤 쪽으로 가시어 주홍빛 옷을 벗어 개켜서 벌써 개켜 놓으신 겉옷 위에 놓으시고는 허리에 커다란 수건을 차신 다음 아직 비어 있는 깨끗한 다른 대야 쪽으로 가신다. 대야에 물을 부으셔서 방 한가운데 식탁 근처로 가지고 오시어 등받이 없는 걸상에 놓으신다. 사도들은 놀라서 그분을 바라본다.
“너희들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묻지 않느냐?”
“저희들은 선생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은 이미 깨끗해졌거든요” 하고 베드로가 대답한다.
“되풀이 하여 말하지만 그것은 상관이 없다. 내가 깨끗하게 하는 것은 이미 깨끗한 사람이 더 깨끗하게 되는 데 소용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무릎을 꿇으시고 가리옷 사람 유다의 샌들 끈을 끌르시고 발을 하나씩 씻으신다. 침대 모양으로 생긴 의자가 발이 바깥 쪽으로 향하여 있도록 돌려 놓여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발을 씻기가 쉽다. 유다는 어리둥절해서 아무말도 못한다. 다만 예수께서 왼발에 신발을 신기시고 일어나시기 전에 이미 신발을 신긴 오른발에 입맞추려는 몸짓을 하시자 유다가 제 발을 홱 잡아빼다가 신성한 입을 샌들 바닥으로 찬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한 것이고, 심한 타격은 아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몹시 아프다.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아프셨습니까?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사도에게 “아니다, 벗아. 너는 악의를 가지고 그렇게 하지 않았고 나는 아프지도 않다” 하고 말씀하신다. 유다는 예수님을 본다. 남의 눈을 피하려고 하는 탁한 시선이다.
예수께서는 토마에게로 가셨다가 필립보에게로 가시고… 식탁의 좁은 쪽을 따라서 사촌 형제 야고보에게 가신다. 그의 발을 씻기시고 일어나시면서 그의 이마에 입맞추신다. 안드레아에게로 가시니, 안드레아는 얼굴을 붉히며 울지 않으려 애를 쓴다. 예수께서는 그의 발을 씻으시고 어린아이처럼 쓰다듬어 주신다. 그런 다음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의 차례인데, 그는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숭고하신 선생님, 선생님이 굽히시다니!”
요한을 벌써 샌들 끈을 끌렀다. 그리고 그의 발을 닦으려고 예수께서 몸을 구부리시자 머리를 숙여 예수님의 이마에 입맞춘다. 그러나 베드로는! … 이 의식에 응하도록 그를 설득시키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생님이 제 발을 씻으신다구요?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그렇게 하시게 허락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벌레같은 사람이고 선생님은 하느님이십니다. 각기 제 자리가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네가 지금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다음에는 이해할 것이다.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무엇이든지 하십시오. 제 목을 베기를 원하시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지만 제 발을 씻으시는 것만은 못하십니다.”
“오! 나의 시몬아! 만일 내가 네 발을 씻어 주지 않으면 내 나라가 네게 차례가 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는 모르느냐? 시몬아, 시몬아! 네 영혼과 네가 가야 할 그 먼 길을 위해서는 네게 이 물이 필요하다. 나하고 같이 가고 싶지 않느냐? 내가 너를 씻어 주지않으면 너는 내 나라에 가지 못한다.”
“오! 찬미하올 주님! 하지만 그러면 제 온 몸을 씻어 주십시오! 발도 손도 머리도!”
“너희들 같이 목욕을 한 사람들은 몸 전체가 깨끗하니까 발만 씻으면 된다 발은… 사람은 발로 더러운 곳에 간다. 그런데 이것은 그래도 별것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말했지만 음식과 함께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것이 더럽히는 것이 아니고, 길에서 발에 걸리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은밀히 꾸며지고 무르익어서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의 행동과 지체를 더럽히는 것이다. 그리고 더럽혀진 영혼을 가진 사람의 발은 주색과 부정한 관계와 죄악에로 간다… 그러므로 발은 사람의 지체 중에서 눈과 입과 더불어… 깨끗해야 할 많은 부분을 가지고 있는 지체이다… 오! 인간아! 인간아! 언젠가는 완전한 피조물이고 첫째였었는데! 유혹자에 의하여 말할 수 없이 타락하였다! 사람아 너에게는 악의가 없고 죄가 없었다! … 그런데 지금은? 온통 악의와 죄 투성이고, 네 몸 중에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없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발을 씻으시고 입맞추신다. 베드로는 울면서 그 투박한 두 손으로 예수의 손을 잡고 자기 눈에까지 갖다 댔다가 입을 맞춘다.
시몬도 샌들을 벗고 발을 씻으시게 한다. 그러나 그 다음 예수께서 바르톨로메오에게로 건너가려고 하시자 시몬은 무릎을 꿇고 예수님의 발에 입맞추며 말한다. “제 몸의 나병을 깨끗하게 해 주신 것처럼 제 죄의 나병을 깨끗하게 하셔서 심판 때에 당황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내 구세주!”
“시몬아 두려워 말아라. 너는 하늘 나라 도성에 눈같이 흰 몸으로 가게 될 것이다.”
“주님, 저는요? 이 늙은 바르톨로메오에게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선생님은 제가 무화과나무 그늘에 있는 것을 보시고 제 마음 속을 읽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보입니까? 제가 어디 있는 것이 보입니까? 선생님이 가 있으라고 하시는 곳에 다다를 힘과 시간이 없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 가엾은 늙은이를 안심시켜 주십시오.” 바르톨로메오는 매우 흥분하여 있다.
“너도 걱정 말아라.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 속임수를 품지 않은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 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겠다. ‘여기 그리스도에 어울리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네가 어디있는 것이 보이느냐고? 진홍색 옷을 입고 영원한 옥좌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내가 항상 너와 같이 있겠다.”
이제 유다 타대오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제 발 앞에 예수께서 오신 것을 보자 자제하지 못하고 식탁에 올려 놓은 팔에 머리를 숙이고 운다.
“다정스러운 형제야, 울지 말아라. 지금 너는 누가 힘줄을 하나 잘라 내는 것을 참아 받아야 하는 사람 같고, 네게는 그것을 견디어내지 못할 것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짧은 고통일 것이다. 그리고… 오! 너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네 이름은 유다이다. 너는 우리의 위대한 유다, 거인과 같다. 너는 보호하는 사람이다. 네 행동은 사자와 으르렁거리는 사자 새끼의 행동과 같다. 너는 불경건한 자들을 찾아낼 것이며, 그들은 네 앞에서 뒷걸음질할 것이고, 부정한 자들은 무서워 떨 것이다. 나는 안다. 용맹하여라. 영원한 결합이 하늘에서 우리의 친족관계를 더 긴밀하게 하고 완전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촌형제처럼 그에게도 입맞춤을 하신다.
“선생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게는 안됩니다…”
“마태오야, 네가 전에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도이다. 너는 내 ‘목소리들’의 하나이다. 나는 네게 강복한다. 이 발들이 항상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하여 길을 얼마나 많이 걸었더냐! … 영혼이 이 발들을 격려하니 이 발들은 내 길이 아니던 일체의 길을 버렸다. 앞으로 나아가거라. 길이 어디에 가서 끝나는지 아느냐? 내 아버지도 되시고 네 아버지도 되시는 아버지의 품에 가서 끝난다.”
예수께서는 다 끝내셨다. 수건을 치워버리시고, 깨끗한 물로 손을 씻으시고, 옷을 다시 입으신 후 당신 자리로 돌아가셔서 앉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너희는 깨끗해졌다. 그러나 모두 깨끗해지지는 않았다. 깨끗해지려는 뜻을 가졌던 사람들만 깨끗해졌다.”
예수께서 가리옷의 유다를 뚫어지게 바라보시는데, 유다는 못들은 체하며 곁에 있는 마태오에게 그의 아버지가 어떻게 그를 예루살렘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는지를 설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 대화는 비록 대담하지만 마음이 거북할 것이 틀림없는 유다를 침착하게 하는 목적 외에는 쓸데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 번째로 공동의 잔에 포도주를 부으신다. 그것을 드시고 마시게 하신다. 그런 다음 노래를 시작하시고 다른 사람들이 합창을 한다.
“주께서 내 기도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내게 귀를 기울이시기 때문에 나는 사랑한다. 나는 일평생 하느님께 기도드리겠다. 나는 죽음의 고통에 둘러싸여 있었다.”
잠깐 쉬셨다가 다시 노래를 시작하신다.
“나는 믿음을 가졌었다. 그러므로 말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심한 모욕을 당하였다. 그래서 나는 불안 속에서 말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쟁이’ 라고.”
예수께서는 유다를 뚫어지게 건너다보신다. 오늘 저녁에는 피곤한 내 예수님의 목소리가 “거룩한 이들의 죽음은 하느님 앞에 값진 것이다.” 라는 말과 “당신은 내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찬미의 제물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말을 외치실 때는 다시 힘있게 된다. 다시 한번 잠깐 노래를 끊으셨다가 다시 시작하신다.
“만민들아, 모두 주를 찬미하여라. 모든 백성들아, 주를 찬양하여라. 우리 위에 그분의 자비가 확고하여졌고 주의 진리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이다.” 또 잠깐 쉰 다음 긴 찬가가 시작된다. “주는 선하시고 그분의 자비는 영원히 지속되니 주를 찬양하여라… ”
가리옷의 유다가 어떻게나 음정이 틀리게 노래하는지 두 번이나 토마가 그 힘있는 바리톤 음성으로 음정을 다시 잡아주려고 뚫어지게 그를 바라다 볼 지경이다. 다른 사도들도 그를 바라다본다. 왜냐하면 보통은 그의 목소리가 음정이 바르고, 다른 것도 그렇지만 그것을 뽐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나 오늘 저녁은! 그가 음정이 틀리게 노래할 정도로 어떤 귀절들이 그를 불안하게 하고, 또 어떤 귀절들을 강조하시는 예수의 시선도 마찬가지로 그를 당황하게 한다. 그 귀절들 중의 하나는 이렇다.
“사람을 믿는 것보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 낫다.” 또 하나는 “떠밀려서 비틀거리고 넘어지려고 하였으나 주께서 나를 붙들어 주셨다”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주께서 하신 일을 이야기하리라.” 그리고 끝으로 내가 말하는 이 두 귀절은 배반자의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한다.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 하는 귀절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하는 귀절이다.
성시를 노래하는 것을 끝마친 다음 예수께서 어린 양을 자르시는 동안 마태오가 가리옷의 유다에게 “자네 몸이 불편한가?” 하고 묻는다.
“아니, 가만 놔둬. 내 걱정하지 말고.”
마태오는 어깨를 들썩한다.
말을 들은 요한이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도 몸이 좋지 않으셔. 예수님 무슨 일이십니까? 선생님의 목소리를 병든 사람이나 많이 운 사람의 목소리같이 약하네요.” 그러면서 예수님의 가슴에 기댄 채 예수님을 꼭 껴안는다.
“선생님은 말씀을 많이 하신 것 뿐이야, 내가 걸음을 많이 걷고 감기가 들린 것처럼 말이야” 하고 유다가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요한에게 말씀하신다. “이제 너는 나를 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내가 피곤한지도 알고 있다…”
어린 양고기는 거의 다 먹었다. 각 잔에서 포도주를 한 모금씩만 마시시고, 반대로 열이 있는 사람처럼 물을 많이 마시며 아주 조금밖에 드시지 않으신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을 시작하신다.
“내가 방금 한 일을 너희들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나는 제일 높은 사람이 제일 낮은 사람과 같다고 말했고, 또 육체의 음식이 아닌 음식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 정신을 위하여 준 음식은 겸손의 음식이다. 너희는 나를 스승과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종이 주인보다 더 나을 수 없고 파견된 사람이 파견한 사람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이 일들을 알아듣도록 힘써라. 이것들을 알아듣고 그대로 실천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너희 모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너희를 안다. 내가 누구를 뽑았는지를 안다. 나는 모두에 대해서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진리이다. 한편 나에 대하여 쓰인 것은 이루어져야 한다. ‘나와 빵을 먹은 자가 나를 배반하였다.’ 내가 미리 이 일을 일러 주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 너희로 하여금 내게 대하여 의심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것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너희가 내가 나라는 것을 한층 더 믿게 될 것이다.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 즉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내가 보낼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아버지와 같이 있고 너희가 나와 같이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는 의식을 끝마치자.”
예수께서는 다시 공동의 잔에 포도주를 부으신 다음 일어나신다. 당신도 드시고 또 사도들에게도 마시게 하시기 전에 일어나시니 모두가 같이 일어난다. 그리고 아까 불렀던 성시 하나를 다시 부르신다. “나는 믿음을 가졌었고, 그래서 말을 하였다… ”
그리고 또 하나를 부르시는데 그것은 끝이 없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 끝이 없다! 그 시작과 길이로 보아 나는 그 노래가 시편 제118편에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부른다. 한 단장(斷章)을 모두가 부른 다음 돌아가며 각자가 한 귀절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한 단장을 노래하고, 이렇게 끝까지 계속한다. 끝에 가서는 그들이 목이 마른 것 같으니 지당하다.
예수께서 앉으신다. 눕지 않으시고 우리처럼 앉은 채로 계시면서 말씀하신다.
“이제 옛날 의식이 끝났으니 새 의식을 거행하겠다. 나는 너희들에게 사랑의 기적을 약속했다. 지금은 그 기적을 행할 시간이다. 이 때문에 내가 이 과월절을 원하였다. 이제부터는 이것이 영속적인 사랑의 의식으로 먹게 될 제물일 것이다. 사랑하는 내 벗들아, 나는 세상에서 산 내 일생 동안 너희를 사랑하였다. 내 아들들아, 나는 너희를 영원히 계속하려고 사랑하였다. 그리고 끝까지 너희를 사랑하기를 원한다. 이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나는 간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지금 행하는 기적 덕택으로 영원히 결합하여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직 온전한 빵 하나를 드시고 그것을 포도주가 가득한 잔 위에 놓으신다.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바치시고 나서 빵을 쪼개어 열 세 몫으로 만드시고 각 사도에게 주시며 말씀하신다.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나의 몸이다. 떠나는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여라.”
예수께서는 잔을 주시며 말씀하신다.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너희 죄의 사함을 위하여, 또한 너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흘릴 내 피 속에서 내 피로써 이루어질 새로운 계약의 피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여라.”
예수께서는 매우 침울하시다. 일체의 미소, 빛과 빛깔의 흔적이 일체 그분에게서 가시었다. 그분은 벌써 임종하는 이의 얼굴이다. 사도들은 가슴 아파하며 예수를 쳐다본다.
예수께서는 “가만히들 있어라. 곧 돌아오마” 하고 말씀하시면서 일어나신다. 예수께서는 열 세째 빵조각과 잔을 드시고 만찬실에서 나가신다.
“어머니를 찾아 가시는 거야” 하고 요한이 속삭인다.
그러자 유다 타대오가 “가엾은 여인!” 하고 탄식한다.
베드로가 가만히 묻는다. “어머니가 알고 계실까?”
“어머니는 다 아셔. 언제나 다 아셨어.”
그들은 모두가 죽은 사람 앞에서처럼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한다.
“그렇지만 자네들은 정말 믿는가? …” 하고 아직 믿기는 원치 않는 토마가 묻는다.
“그래 자넨 의심하나? 선생님의 시간이 되었어”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대답한다.
“오! 나는…” 하고 베드로가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엿듣고 있던 요한이 “쉬! 선생님이야”하고 말한다.
예수께서 돌아오신다. 손에는 빈 잔을 들고 계시다. 잔 밑에는 겨우 포도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샨데리아의 불빛을 받아 정말 피 같다.
앞에 잔이 놓여 있는 가리옷의 유다는 그 잔을 홀린 듯이 들여다보다가 눈길을 딴 데로 돌린다. 예수께서 그를 살펴보시는데 몸을 떠신다. 예수의 가슴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요한이 그것을 느낀다.
“아니! 선생님 떠시네요.” 하고 요한이 부르짖는다.
“아니다. 나는 열로 인해서 떠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말하였고 모든 것을 주었다. 그 이상 더 줄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을 너희에게 주었다.”
예수께서는 부드러운 손짓을 하신다. 손이 처음에는 합장이 되어 있다가 지금은 떨어져서 벌어지며 그 동안 예수께서는 ‘이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해다오. 이렇게 되었다’ 하고 말씀하시려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신다.
“너희에게 모든 것을 말했고 모든 것을 주었다. 그리고 되풀이 말한다. 새로운 의식이 행하여졌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여라. 내가 너희 발을 씻은 것은 너희 스승처럼 너희도 겸손하고 순결하기를 배우라고 그렇게 하였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제자들은 스승과 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여라. 너희가 높이 올라갔을 때에도 이것을 기억하여라. 제자가 스승보다 나을 수 없다.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준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그렇게 하여라. 즉 서로 돕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모범이 되면서 형제같이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고 깨끗하여라.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을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미워할 원수인 세상에서 이 빵으로 내 제자로 있을 힘을 너희 안에 가지기 위하여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 중 한 사람은 깨끗하지 못하다. 너희 중의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 그것으로 내 정신이 매우 어지럽다… 나를 넘겨 줄 사람의 손이 나와 함께 이 식탁 위에 있는데, 내 사랑도 내 몸도 내 피도 내 말도 그를 되돌아오게 하지 못하고, 뉘우치게도 하지 못한다. 나는 그를 위하여도 죽으러 가면서 그를 용서할 것이다.”
제자들은 무서워 떨며 서로 쳐다본다. 그들은 서로 의심하면서 유심히 살핀다. 베드로는 그의 의심이 모두 되살아나는 가운데 가리옷의 유다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유다 타대오도 갑자기 일어나 마태오 너머로 가리옷의 유다를 본다.
그러나 가리옷의 유다는 자신만만하다! 그도 타대오를 의심하는 듯이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예수를 똑바로 쳐다보고 웃으면서 묻는다.
“혹 제가 그 사람입니까?”
그는 자기의 정직에 가장 자신만만한 것같이 보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러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몸짓을 되풀이하시며 말씀하신다.
“시몬의 유다야, 네가 그 말을 하는구나. 그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너다. 나는 네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왜 너 자신을 네가 스스로 책하느냐? 네 안에 있는 훈계자, 네 인간 양심, 하느님 아버지께서 네가 인간답게 행동하라고 주신 양심에게 물어보고, 그 양심이 너를 비난하는지를 알아차려라. 모든 사람보다 네가 먼저 그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양심이 너를 안심시키면, 농담으로라도 그 말을 하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저주가 되는 그런 말을, 그런 생각을 하느냐?”
예수께서는 침착하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어떤 학자가 그의 교실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제출된 논문을 증명하듯이 말씀하신다. 마음의 동요가 대단하다. 그러나 예수의 침착으로 그것이 가라앉는다.
그러나 유다를 가장 의심하는 베드로가 – 아마 타대오도 의심을 하는 모양이지만 가리옷의 유다의 뻔뻔스러운 태도로 마음이 풀어진 만큼 그것이 덜 나타난다 – 요한의 소매를 잡아당긴다. 배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예수께 꼭 붙어 있던 요한이 고개를 돌리자, 베드로는 “그게 누군지 여쭈어보게” 하고 속삭인다.
요한은 다시 이런 자세로 돌아가서 예수께 입맞춤하기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머리만을 들고 예수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선생님, 그게 누굽니까?”
그러니까 예수께서도 매우 조용히 그의 머리에 입맞춤하시면서 말씀하신다. “내가 국물에 담근 빵조각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시면서 아직 온전하게 남아 있는 빵을 – 성체를 세우시는 데 쓰신 그 빵 나머지 말고 – 집으시어 커다란 한 입거리를 떼어서 큰 접시에 있는 어린 양고기 소스에 담가서 식탁 위로 팔을 뻗으시며 말씀하신다.
“유다야, 받아라. 네가 이것을 좋아하지.”
“선생님 고맙습니다. 예, 이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한 입거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먹는다. 그 동안 요한은 몹시 놀라서 가리옷의 유다가 고소하는 빵을 아귀아귀 먹는 동안 그의 소름끼치는 웃음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게 될 지경이다.
“됐다! 이제 내가 너를 즐겁게 했으니 가거라” 하고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신다.
“여기서는 (이 말은 많은 것을 나타낸다) 모든 것이 끝났으니, 시몬의 유다야, 다른 데 가서 해야 할 일을 빨리 하여라.”
“선생님께 즉시 복종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게쎄마니로 선생님을 찾아 가겠습니다. 늘 그러신 것처럼 그리로 가시지요?”
“늘 그러는 것처럼… 그리로 간다… 그래.”
“저 사람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저 사람 혼자 갑니까?”
“나는 어린애가 아닐세.” 하고 유다는 겉옷을 입으며 농담조로 말한다.
“가게 내버려 두어라. 저 사람과 나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안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예, 선생님.” 베드로는 입을 다문다. 어쩌면 동료를 의심하여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곰곰히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요한을 가슴에 꼭 껴안으시고 그에게로 얼굴을 돌리시어 머리에다 속삭이신다.
“지금 당장은 베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쓸데없는 소란이나 벌어질 것이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친구들, 잘 있게” 하고 유다가 인사한다.
“잘 가거라”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 사람 잘 가게” 하고 말한다.
요한은 머리를 거의 예수의 가슴에 파묻고 속삭인다. “사탄!” 예수만이 그 말을 들으시고 한숨지으신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를 불쌍히 여겨서 중단한다. 만찬의 끝장면은 다른 때에 보여 주겠다.”
(장면이 계속된다)
몇 분 동안 절대적인 침묵이 흐른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금발머리를 기계적으로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갸우뚱하고 계시다.
그러다가 몸을 흔드시며 머리를 드시고는 미소를 지으신다. 그 미소로 제자들은 기운이 다시 살아난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식탁에서 나가서 아버지 둘레에 앉은 아들들처럼 모두 나란히 앉자.”
그들은 식탁 뒷편에 있던 침대 모양의 자리를 (예수, 요한, 야고보, 베드로, 시몬, 안드레아, 사촌형제 야고보의 자리) 들어 다른 쪽으로 옮겨간다.
예수께서는 여전히 야고보와 요한 사이의 당신 자리에 앉으신다. 그러나 안드레아가 가리옷의 유다가 남기고 간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는 “아니다, 거기엔 안된다” 하고 외치신다. 그분의 극도의 조심성도 억제하지 못하는 충동적인 외침이다. 그런 다음 침착해지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렇게 많은 자리가 필요치 않다. 앉아 있으면서 여기 있는 자리만 가지고도 족하다. 나는 너희들이 아주 가까이 있기를 원한다.”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베드로를 부른다.
“여기 앉게. 나는 예수님 발 앞에 이 조그만 걸상에 앉겠네.”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야고보! 난 그 자리를 몹시 원했었네”하고 베드로가 말하며 스승에게로 꼭 기댄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요한과 베드로 사이에 꼭 끼여 계시고, 그 발 앞에는 야고보가 있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신다. “이전에 한 말이 행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겠구나. 착한 형제들은 서로 사랑한다. 야고보야, 나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라’하고 말하겠다. 이 행동도 영원하신 분이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그래서 너는 하늘 나라에서 그것을 얻어 만날 것이다.
나는 내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너희들도 그것을 보았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자기를 사람의 양식으로 주도록 해 주시는 데에는 내 소원 하나로 충분하였다. 방금 일어난 일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다. 하느님의 벗들에게만 가능한 기적을 그가 행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기적이 크면 클수록 하느님의 이 우정도 더 확실하고 깊다. 이것은 그 형태로나 그 지속과 성질로나 그것이 미치는 범위와 한계로나 있을 수 있는 가장 힘있는 기적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이 기적은 너무도 강력하고 초자연적이고, 교만한 사람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을 이해해야 마땅한 것처럼,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업신여길 것이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할 것 같으냐? 그들을 단죄하는 말을 할 것 같으냐? 아니다. 나는 ‘딱하다!’하고 말하겠다.
그러나 기적이 크면 클수록 그로 인하여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영광이 더 크다. 하느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아라, 내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이 이것을 원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받았다. 그가 내 눈에 큰 총애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가 행한 기적이 무한한 것과 같이 그는 무한한 총애를 받고 있다.’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영광이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영광이 있다. 일체의 영적인 영광은 하느님에게서 와서 그 근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은 무한하지만 그 성인들의 영광으로 점점 더 증가되고 빛난다. 그렇게 때문에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에 의하여 영광스럽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광도 사람의 아들에 의하여 나타난다고 내가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으로 당신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곧 당신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기뻐하여라. 네 자리로 돌아오는 너, 제2위의 신령한 본질! 기뻐하여라, 진흙 속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귀양살이 하다가 다시 올라갈 육체! 그런데 그것은 아담의 낙원이 아니라 네가 집으로 받게 될 아버지의 고귀한 낙원이다. 사람의 입으로 내려진 하느님의 명령에 놀라 태양이 걸음을 멈추었으니 천체들이 사람의 육체의 기적이 올라가 영광스럽게 된 그의 완전한 물질로 아버지 오른편에 자리잡는 것을 보면 그것들 가운데 어떤 일인들 일어나지 않겠느냐? 내 어린 아들들아, 내가 아직 잠깐 동안 너희와 같이 있다. 그런 다음에는 너희가 마치 고아들이 죽은 아버지를 찾듯이 나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울면서 그의 이야기를 하며 가서 말없는 그의 무덤을 헛되이 두드릴 것이고, 또 사랑으로 애타게 찾아 나선 너희 마음으로 파란 하늘의 문도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예수님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원합니다. 예수님이 안계시면 이제 세상에는 빛도 없고 기쁨도 사랑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돌려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들어가게 내버려 두십시오. 우리는 예수님 계신 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갈 수 없다. 나는 유다인들에게도 그 말을 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찾을 것이오. 그러나 내가 가는 곳에 당신들은 가지 못합니다.’ 그 말을 너희에게도 하는 것이다.
어머니를 생각하여라… 어머니도 내가 가는 곳에 못 가실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떠나 어머니께로 와서 흠 없는 그분의 태에서 예수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침범되지 않은 여인에게서 내 탄생의 빛나는 황홀 속에 세상에 왔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젖이 된 어머니의 사랑으로 길러졌다. 마리아가 하늘에 사시는 완전한 사랑으로 수태한 그의 동정으로써 나를 기르셨기 때문에 나는 순결과 사랑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어머니에 의하여, 어머니께 많은 피로를 겪고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컸는데도 말이다… 내가 어머니에게 일찌기 행해진 일이 없는 그런 영웅적인 행위를, 그것에 비하면 유딧과 야헬의 영웅적 행위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그들의 경쟁자와 다투는 보잘 것 없는 여자들의 영웅적 행위 같은 것에 불과하다. 또한 나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머니를 버려두고, 어머니가 오래 뒤에나 오시게 될 곳으로 간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명령, ‘너희들의 시간이 되었을 때 내게 올 수 있도록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거룩하게 되어라’하는 명령은 어머니를 위한 것은 아니다. 어머니에게 모든 은총과 모든 성덕이 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받으시고 모든 것을 주신 피조물이다. 보탤 것이나 떼어낼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에 대한 지극히 거룩한 증언이시다.
그러나 너희가 나 있는 곳으로 올 수 있고 너희 예수와 이별하는 슬픔의 고통을 잊을 능력이 너희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하여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그것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들은 이것으로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 것이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많이 두었을 때, 무엇을 보고 사람들이 그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겠느냐? 육체의 외양으로보다는 – 왜냐하면 혈족이나 동족의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른 사람과 닮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 오히려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는 공통적인 사랑으로 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훌륭한 가족은 해체되지 않는다. 그것은 같은 피가 있는데, 그 피는 항상 아버지의 씨에서 오는 피이기 때문이며,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그 피는 죽음조차도 풀지 못하는 끈을 맺어준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떠난 뒤에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아들이고, 따라서 내 제자이며. 오직 한 아버지만을 모신 형제 사이라고 알아볼 것이다.”
“주 예수님,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지금 당장은 네가 따라오지 못할 곳으로 간다. 그러나 이 다음에는 네가 나를 따라올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은 못따라갑니까? 저는 선생님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때부터 항상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저는 미련없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생님을 위해 얼마 안되는 제 재산을 버렸는데, 선생님은 제 전부이신 선생님 없이 저만 남겨 놓으시고 가엾은 시몬을 안데리고 가시면. 그것은 선생님 편으로 보아 옳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죽음을 향해 가십니까? 좋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갑니다. 같이 저 세상으로 가십시다. 그렇지만 그 전에 저는 선생님을 지킬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고? 지금? 지금은 안된다. 정말 내 말을 잘 들어라.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지금은 아직 초경이다. 이 다음에는 이경이 올 것이고… 다음에는 삼경이 올 것이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네 주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선생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선생님 말씀은 다 믿습니다만, 이것만은 믿지 않습니다. 저는 자신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네가 자신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직 너와 같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강생하신 하느님이 붙잡힐 것이고 너희는 하느님을 모시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탄이 이미 너희를 둔하게 한 다음 – 네 자신 자체가 사탄의 술책이고 너를 무겁게 하기 위한 짐이다 – 너희를 겁나게 할 것이다. 사탄은 ‘하느님은 없고, 나는 존재한다’ 하는 암시를 줄 것이다. 그렇지만, 비록 너희 정신이 공포로 인하여 무분별하게 되기는 하겠지만 너희는 그대로 이치를 따질 것이고, 그래서 사탄이 순간의 주인이 되면 선은 죽고 악이 행동하며 정신은 쓰러지고 인간적인 것이 승리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 때에는 너희들이 적에게 쫓기는 지휘관 없는 병사같이 되어 있어서, 패배자로서의 너희 공포 속에서 승리자 앞에 허리를 굽힐 것이고, 죽지 않기 위하여 쓰러진 영웅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제발 너희 마음이 불안해지지 않기 바란다. 하느님을 믿고 나를 믿어라.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과 반대로 나를 믿어라. 남아 있는 사람이나 도망치는 사람이나 모두 내 자비와 아버지의 자비를 믿어라.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도, 입을 벌려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믿어라.
내 용서도 믿어라. 그리고 장차 선과 내 가르침에 있어서, 따라서 내 교회 안에서의 너희 행동들이 어떠하던간에 너희에게 하늘에서 같은 자리를 주리라는 것을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에게 그 말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려고 먼저 가기 때문이다. 착한 아버지들이 그들의 작은 가족을 딴 데로 데리고 가야할 때에 이렇게 하지 않느냐? 그들은 먼저 가서 집과 세간과 식량을 마련하고는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을 데리러 온다. 그들은 어린것들이 새 마을에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고통을 당하지 말라고 사랑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도 그와 같이 하고 같은 동기로 그렇게 한다.
이제 나는 간다. 그리고 하늘의 예루살렘에 각자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해 놓고 다시 와서 너희를 데리고 가서 내가 있는 곳에, 죽음도 슬픔도 눈물도 부르짖음도 굶주림도 고통도 암흑도 불도 없고 다만 빛과 평화와 지복(至福)과 노래 만이 있는 곳에 나와 같이 있게 할 것이다. 오! 뽑힌 열두 명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열두 족장(族長)과 같이 옥좌에 앉을 때, 그리고 지복의 바다 위에 서서 영적인 사랑의 불의 열기 속에서 천사의 무리의 알렐루야가 영원한 화음의 반복이 될 영원한 찬가를 노래할 때에 지극히 높은 하늘에 울려 퍼질 노래 … 나는 너희들이 나 있는 곳에 있기를 원한다. 그런데 너희들은 내가 어디를 가는지를 알고 그 길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주님! 저희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를 말씀하지 않으시는데, 저희가 주님께로 가고 기다리는 시간을 짧게 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토마가 말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너희들은 내가 이 말을 하고 설명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그리고 참말이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던 어떤 사람들이 길로, 내 길로 나아가서 벌써 너희들보다 앞섰다. 오! 길을 잃었다가 내가 양의 우리로 다시 데려온 하느님의 양, 지금 어디 있느냐? 영혼이 다시 살아난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누구 말씀입니까? 누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라자로의 마리아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마리아는 곁에 선생님의 어머니와 함께 있습니다. 마리아를 원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요안나를 원하십니까? 요안나는 분명히 저택에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원하시면 저희가 부르러 가겠습니다…”
“아니다. 그 여자들이 아니다. 나는 천국에서나 드러날 그 여자와 … 포띠나이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여자들은 나를 발견하였고 내 길을 떠나지 않았다. 한 여자에게는 아버지를 참 하느님으로, 성령을 저 개인적인 예배를 하는 레위지파 사람으로 보여 주었다. 자기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던 또 한 여자에게는 내가 이렇게 말하였다. ‘내 이름은 구세주이다. 나는 자기를 구원할 착한 뜻을 가진 사람을 구원한다. 나는 타락한 사람들에게 생명과 진리와 순결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찾는 사람이다. 나를 찾는 사람은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두 여자가 다 하느님을 찾아냈다… 나는 너희들에게 강복한다. 유딧보다 더 강하게 된 약하던 하와들… 나는 간다.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내가 간다… 너희가 나를 위로하는구나… 축복을 받아라!…”
“주님, 저희들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그 여자들과 같이 되겠습니다.” 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아직 모른단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게 되지 못한단 말이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내가 하는 일을 몸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느냐? 너희들을 믿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그러나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적어도 내가 하는 일들을 보고 믿어라.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제 아버지께 가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가 이루어 주겠다. 내 이름을 실제 그대로 아는 분은 나와 나를 낳으신 아버지와 우리의 사랑에서 나오신 성령 뿐이다. 그리고 이 이름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랑을 가지고 내 이름을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청하는 것을 얻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참된 사랑을 가지기 위하여는 내 계명을 지켜야 한다. 행동이야말로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의 이름으로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또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항상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할 것이다. 그분은 사탄과 세상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분이시고, 세상이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도 없는 진리의 성령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너무도 높이 계셔서 업신여김이 그분에게까지 미치지 못할 것이지만, 그분은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시어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난하고 약하더라도 항상 그와 같이 계실 것이다. 그분이 이미 너희와 함께 계시고 멀지 않아 너희 안에 계시겠기 때문에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들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내가 이미 너희에게 말했듯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그러나 내 나라에 가기 위하여 너희들을 데리러 올 시간이 되기 전에 오겠다. 내가 너희들에게로 돌아오겠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들도 살아 있기 때문에 나를 보고 있고, 또 내가 살아 있고 너희들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장차 너희가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과연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고 하느님을 차지할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안에서 하느님을 뵙겠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여, 내 사랑과 내 지혜와 내 강생한 천주성의 비밀 속에서 나를 알게 하겠다. 비록 약하고 적개심을 가지기까지 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들에게로 나는 이렇게 돌아오겠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약하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강하게 하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일어나거라’ 하고, ‘밖으로 오너라’ 하고 말하겠다. ‘나를 따라라’ 하고 말하겠다. ‘내 말을 들어라’ 하고 말하겠다. ‘써라’ 하고 말하겠다… 그런데 너희는 이 사람들 가운데 있을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는 왜 세상에는 나타내 보이시지 않으시고 저희에게만 나타내 보이시려고 하십니까?” 하고 유다 타대오가 묻는다.
“너희는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을 지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그의 안에서 살 것이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고 육체와 세속에 따라서 행동한다. 이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이 나자렛의 예수의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라. 나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와 같이 이렇게 말하면서 이 말들을 한 것은 너희가 진리와 지혜를 완전히 차지하도록 나 자신이 준비시켜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아직 알아듣고 기억하고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위로자이신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그 때에는 너희가 알아들을 것이고, 그분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되새기게 하실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내 평화를 남겨둔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평화를 세상이 주는 것처럼 주지 않고 내가 지금까지 너희에게 준 것 같이도 주지 않는다.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주는 축복받은 사람의 축복받은 인사이다. 지금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더 심오한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내 몸과 내 피를 전해 준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작별인사에서 나 자신과 내 평화의 정신을 너희에게 전하여 주는 것은 임박한 싸움에서 너희에게 힘이 남아 있으라고 그러는 것이다. 사탄과 세상이 너희 예수에게 대하여 싸움을 폭발시킬 참이다. 지금은 그들의 시간이다. 나는 평화의 왕이니 너희 안에 평화를, 평화의 정신인 내 정신을 가져라. 너무 버림을 받지 않게 평화를 가져라. 자기 안에 하느님의 평화를 가지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고통을 당하기는 하지만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당한다.
울지들 말아라. 너희들은 내가 ‘아버지께로 갔다가 다시 오겠다’하고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만일 너희가 육체에 의한 것 이상으로 나를 사랑하면, 내가 이렇게도 오랫동안 귀양살이를 한 후에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기뻐할 것이다. 나는 나보다 더 위대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에게로 간다. 그것을 당하러 가기 전에 구속자의 모든 고통을 너희에게 말한 것과 같이 이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지금 말한 것은,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너희가 나를 점점 더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불안해 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 마음에는 평형이 필요하다… 너희에게 말할 시간이 얼마 없다. 그런데 할 말이 대단히 많다! 내 복음 전파의 종말에 왔는데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고,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은 것 같다. 너희들의 상태로 이 느낌이 더해진다.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느냐! 내가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고 하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의 마음이 하도 둔해서 아무 소용도 없었다고 하겠느냐! 내가 의심을 하게 되겠느냐! 아니다. 나는 하느님을 믿고, 내 지극히 사랑하는 벗들인 너희를 그분께 맡긴다.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의 사업을 완성하실 것이다. 나는 인간적인 빛 말고 다른 빛을 가지지 못한 채 죽는 아버지와 같지 않다. 나는 하느님께 바란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을 아는 모든 권고가 내 안에 밀려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안심하고 내 운명을 향하여 나아간다. 나는 너희 안에 떨어진 씨앗에 이슬이 내려 모두 싹트게 할 것이며, 그 다음에는 위로자의 태양이 와서 튼튼한 나무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이 세상의 왕이 올 터이지만 나는 그와 아무 상관도 없다. 그리고 구속의 목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더라면 그가 내게 대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내가 죽음을 당하도록 순종할 만큼 아버지를 사랑하고 내가 아버지께서 명하신 일을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일어나거라. 그리고 마지막 말을 들어라.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전지(剪枝)하신다. 너희는 이미 내 말로 깨끗하게 되었다. 포도나무와 가지로 계속 있도록 나에게 머물러 있어라. 나도 너희에게 머물러 있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게 결합하여 있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누가 내게서 떨어져 나가면 마른 가지가 되어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나와 결합하여 있지 않으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고 내 말을 간직해 두어라. 그러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청하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더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항상 그만큼 더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너희는 구원하는 사랑 속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순종하는 것이 될 것이고, 순종은 서로간의 사랑을 자라게 한다. 내가 한 말을 되풀이해 말한다고 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약함을 안다. 그리고 너희가 구원받기를 원한다. 내가 이 말들을 한 것은 내가 너희에게 주기를 원한 기쁨이 너희들에게 있고 또 완전하기 위해서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내 새 계명이다. 너희 각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서로 사랑하여라. 벗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람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너희는 내 벗들이며, 나는 너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고 명하는 것을 행하여라. 내가 이제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너희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게 대하여 무엇이든지 안다. 나는 나 자신만을 너희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고 아버지와 위로자도 드러내보였고, 하느님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 주었다. 너희들이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였다. 내가 너희를 선택한 것은 너희가 백성들한테 가서 너희들 안에, 그리고 복음을 들을 사람들의 마음에 언제까지나 썩지 않는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또 아버지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다 들어 주시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우리를 택하셨으면 왜 배반자를 택하셨습니까? 선생님이 모든 것을 아시면 왜 이런 일을 하셨습니까?’ 하고 말하지 말아라. 또 배반자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해보지도 말아라.
그는 사람이 아니고 사탄이다. 나는 이 말을 충실한 벗에게 했고 사랑하는 아들이 그 말을 하게 내버려두었다. 만일 하느님을 영원히 흉내내는 자인 사탄이 죽을 몸을 취하여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마귀들린 자가 예수의 내 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귀들린 자’ 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더 심하다. 그는 사탄 안에 사라져버렸다.”
“마귀들을 쫓아내신 선생님이 왜 그를 구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묻는다.
“너는 네가 그가 아닌가 하고 염려해서 너를 위한 사랑으로 그렇게 물어보느냐? 그런 염려는 하지 말아라.”
“그럼 저는요?”
“저는요?”
“저는요?”
“입들 다물어라. 나는 그 이름은 대지 않겠다. 내가 자비를 행하니,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
“그렇지만 선생님은 왜 그를 이기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게 하실 수가 없었습니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탄이 나를 죽이기 위하여 사람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구속 전에 인류를 전멸시켜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엇을 구속했겠느냐?”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 말씀해 주세요!” 하고 베드로가 어느새 무릎을 꿇고 마치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열광적으로 예수를 흔들면서 말한다.
“접니까? 저요?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제가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이 떨립니다… 오! 만일 제가 그 사람이라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
“아니다. 요나의 시몬아, 너는 아니다!”
“왜 ‘베드로’라는 저 이름을 없애셨습니까? 그러면 제가 다시 시몬이 되었단 말씀입니까? 선생님은 그것을 아십니까? 그것을 말씀하시니! …저로군요! 그렇지만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자네들 말해 보게… 자네들이 말해 보라구… 내가 언제 배반자가 될 수 있었느냐 말이야! … 시몬… 요한… 말 좀 하라구! …”
“베드로야, 베드로야, 베드로야! 내가 너를 시몬이라고 부르는 것은 네가 시몬이었을 때 우리가 처음 만난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네가 처음 순간부터 항상 신의있었는지를 생각한다. 너는 아니다. 진리인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럼 누구입니까?”
“그야 가리옷의 유다이지! 자넨 아직 그걸 깨닫지 못했나?” 하고 타대오가 더 참을 수 없어서 외친다.
“왜 그 말을 진작 안해 줬나? 왜?” 하고 베드로도 외친다.
“조용히 해라. 그 사람은 사탄이다. 다른 이름이 없다. 어디 가느냐 베드로야?”
“그 자를 찾으러 갑니다.”
“즉시 그 겉옷과 그 무기를 내려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내쫓고 저주해야 한다.”
“안됩니다, 안돼요! 오! 주님! 그렇지만 저는… 그렇지만 저는… 제가 혹 정신착란이라도 일으켰습니까? 오! 오!”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서 방바닥에 엎디어 운다.
“나는 너희에게 서로 사랑하고 또 용서하라는 계명을 준다. 알아 들었느냐? 세상에는 미움도 있지만, 너희 사이에 사랑만이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너희가 가는 길에서 얼마나 많은 배반자를 만날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는 미워해서 안되고 악을 악으로 갚아서도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너희를 미워하실 것이다. 너희들보다 내가 먼저 미움을 받았고 배반당하였다. 그렇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미워하지 않는다. 세상은 저와 같지 않은 것은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세상은 너희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면 세상이 너희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냈기 때문에 너희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미움을 받는 것이다.
종이 주인보다 더 나을 수가 없다고 너희에게 말하였다. 그들이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들었으면 너희 말도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고 알기를 원치도 않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내 이름 때문에 할 것이다. 내가 와서 그들에게 일러 주지 않았던들 그들에게는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자기 죄를 변명할 길이 없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한 일들을 보고 내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미워했고, 나와 함께 아버지도 미워하였다. 아버지와 나는 사랑과 더불어 일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까닭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하는 말이 씌어 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발하는 진리의 성령이신 위로자가 오시면, 그분이 내게 대하여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내게 대하여 증언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낙담하지 말고 분개하지 말라고 그러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쫓아내고, 너희를 죽이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면서 오히려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변명이다. 내가 전에는 이런 말을 지금처럼 부연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희가 갓난아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어머니가 너희를 떠난다. 내가 가는 것이다. 너희는 다른 음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는 너희가 그 음식을 알기를 원한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