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본 다시 올립니다.
면 기저귀와 삼베 이불
구애순
순산한 딸이 산후조리원을 거쳐서 우리 집에 왔다. 서른네 살로 초산(初産)을 치른 딸 모자(母子)가 무사해서 기뻤다. 애들이 오고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 아기 옷과 기저귀 등 많은 빨래를 거실에다 줄을 치고 말렸다. 열이레 만에 모자가 저네 집으로 돌아갔다. 갓난이 외손자가 남기고 간 기저귀 두 장이 거실 빨랫줄에 걸려있다.
사 년 전에 며느리가 첫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 아니어서 서운하지요?”라고 말하는 안사돈에게 “아니에요, 첫 딸이 더 좋지요.”라고 한 내 대답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딸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사돈네는 아들이 귀한 집안이라 며느리 본지 사 년 만에 얻은 손자가 대단히 반가웠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쁨은 그와 달랐다. 내 딸이 한 집안의 장손을 낳음으로써 획득할 ‘며느리 사랑’을 생각하여 마음이 뿌듯했다. 호주제도 폐지되고 남녀가 평등한 지금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떠랴? 며느리는 첫딸을 낳아서 좋고 딸은 첫아들을 낳아서 기쁘다니 이게 맞는 말인가? 자신의 이중성을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며느리가 첫아이 가졌을 때 가제(綿)를 두 필 샀다. 기저귀를 만들어 손녀에게 선물할 작정이었다. 아기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엄마 젖이고 그다음이 기저귀다. 나의 육아 경험으로 보아 한 필로 만든 기저귀 열다섯 장이 아기 하나 키우는데 부족했기 때문에 열 마를 더 해서 스무 장이면 적당하다 생각하고 아예 넉넉하게 두 필을 샀다.
며느리가 만삭이었을 때 고부(姑婦)간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기저귀를 만들었다. 천을 잘라서 끝이 풀리지 않게 바늘로 여몄다. 나머지 다섯 장은 천천히 만들기로 하고 열다섯 장을 뽀얗게 삶아 뽀송하게 말려서 반듯하게 개켰다. 순산한 며느리가 조리원에서 산후조리 마치고 우리 집을 거쳐서 저네 집으로 돌아갈 때 기저귀 보퉁이를 차에 실어 주었다. 요즘은 종이 기저귀를 주로 쓰는 줄 알지만 아기 피부와 환경오염을 생각하여 햇볕 좋은 날만이라도 써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시절에 맞지 않는 면(棉) 기저귀를 갖고 간 며느리가 시어미의 마음을 몰라서인지 결과는 실패였다.
“까짓거 요즘 세상에 편하게 살면 그만이지 시어머니의 성의가 뭔 대수냐? 종이 기저귀는 빨랫거리 없어서 편하고 물도 절약되는데 촌스럽게 면 기저귀를 왜 쓰냐? 피부발진은 파우더로 예방되고 하루에 기저귀 몇 십 개가 나와도 쓰레기봉투에 넣으면 재깍 버려주는데 뭐가 문제냐 말이다.” 내 며느리가 설마 이러지는 않았겠지만, 어찌 감히 구식이 신식을 이기랴? 고부간에 머리 맞대고 만든 기저귀의 행방이 궁금했지만, 그 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번에 외손자를 보고 장롱 속에 남아있던 면을 열 마 끊어서 또 기저귀 다섯 장을 만들었다. 딸에게 종이 기저귀보다 위생적이니 번갈아 써 보라고 권했다. 딸이 좋아하면 더 만들어 줄 작정이었으나 아기도 낳기 전에 종이 기저귀 몇 상자를 선물 받은 딸은 생뚱맞은 면 기저귀를 보고는 쓰다 달다 말이 없었다.
딸이 목욕시킨 아기에게 옷을 입혀서 부드러운 싸개로 돌돌 말아놓았다. 그것을 보니 아기가 멍석말이를 당한 양 답답해 보여서 싸개를 벗기고 허리에 면 기저귀를 둘러 배와 아랫도리를 싸 주었다. 다리 사이로 바람이 들어가서 싸개보다 시원해 보였다. 기저귀 두 장을 번갈아 싸개로 쓰고 남는 것을 머리에 받쳐서 베개로 쓰니 땀을 잘 흡수해서 좋았다. 면이 얇아서 빨래도 손쉽고 잘 말랐다. 조금 더 커서 아이가 머리를 가누면 그것으로 아기 업는 띠로 써도 좋을 것이다.
요즘의 아기 업는 띠는 아이의 팔과 다리를 각각 구멍에 끼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대로 어깨에 걸치고 허리에 두르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며느리는 그 요란한 띠로 혼자서도 잘 업는데 나는 며느리가 거들어서 겨우 업었다. 이것도 문화 지체현상인지 몰라도 나는 예전에 업던 띠가 훨씬 편하다. 젊은이에게는 촌스러워 보일지 모르나 세탁하기 쉽고 삶아 빨면 위생적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나는 현대인의 지나친 멋 내기와 까칠한 위생관념이 오히려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봉황동 유적공원 근처인 우리 집에는 밤마다 모기가 몇 마리씩 돌아다닌다. 안방에서 자던 아기가 모기에 물려서 볼에 빨간 점이 두 군데나 생겼다. 놀란 딸이 온 방을 뒤져서 모기 한 마리를 때려잡았는데 손바닥에 피가 빨갛게 터졌다. 그날부터 아기와 산모를 모기장 친 거실로 내보내고 내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 맞는 작은 모기장이 없는지라 그대로 자다가 앵앵거리는 모기 소리에 잠이 깨였다. 장롱에서 삼베 홑이불을 꺼내어 뒤집어쓰니 모기에 안 물리고 편하게 잘 수 있었다. 내가 덮은 삼베 이불은 년 전에 타계하신 어머니가 물려주신 유품이다. 재봉틀로 손수 만들어 사용한 지 수십 년 되었지만 세탁해서 풀을 먹이면 언제나 빳빳한 새 이불이다. 국산 삼베는 무한히 질겨서 내가 죽을 때까지 사용해도 헤지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삼베 이불을 물려받기 전에 중국산 삼베를 한 필 사서 홑이불을 만들었다. 시원하기 그저 그만인 삼베 이불을 며느리와 딸에게 하나씩 주고 나도 쓰려고 세 장을 만들었다. 연두색 고운 천으로 테두리를 돌린 삼베 홑이불을 며느리에게 주었더니 말없이 받아가서는 이듬해 그대로 가져와서 슬며시 놓고 갔다. 딸에게도 “삼베 이불 하나 줄까?”하고 물었더니 반응이 시큰둥해서 더 권하지 않았다.
공들여 만들었지만 값싼 중국제 삼베이불을 누구에게 선물할 수도 없고 이불장에 쌓아두자니 볼 때마다 심란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고민하지 말고 저 한 장 달라고 해서 옳다구나 하고 주었다. 내친김에 친한 선배에게도 한 장 주었다. 그 뒤에 친구와 선배가 차례로 전화해서 이불이 몸에 붙지 않고 시원하다고들 고마워했다. 내 며느리와 딸은 언제쯤 삼베의 효용가치를 알까?
우리 세대의 부모와 자식은 한 공간에서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딴생각들을 하고 산다. 이젠 부모가 자식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기는커녕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경험도 가슴속에 담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전하다.
첫댓글 선생님. 수정본을 올리실 때는 전면수정이 아니라면 수정부분에다 줄을 쳐주시거나 색깔을 달리하여 처리해주시면 교정보시는 분들이 수월합니다. 그렇지않으면 편집자들이 어느부분에 수정되었는지를 몰라 처음부터 하나하나 읽어가며 전편의 원고와 대조를 하여야해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