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글과 인연. 141
[어머니를 회상하며]
나는 다음 주부터 어머니에 관한 시 15편을 연재하는 시간으로 쓰고자 한다. 그 동안 때때로 어머니가
기억날 때 한 편씩 써서 몇 편은 시집에 소개하기도 했고, 또 몇 편은 밴드와 단체 카톡에 소개하기도
했던 시들을 묶어서 연재로 소개하려는 것인데, 이렇게 어머니에 대한 시를 연재하려고 하는 것은
2023년 2월 23일이 어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10년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 다른 형제들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또 다른 기억으로 존재하겠지만, 내 어머니
는 참 대단하신 분이셨다. 물론 모든 자식들에게서의 어머니라는 존재 중 대단하지 않으신 어머니는
없으시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아버지와 나이가 많이 차이가 나셔서 이겠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께 그리 다정다감하신 분은 아니셨다.
아버지의 삶은 거의 유교적 사상으로 보내셨고, 성격이 단단하시기도 하셨는데, 아버지의 교훈 중 내가
지금까지 받들고 있는 것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으라.’는 말씀이셨고, 그래서 그런지 비록 부족하
고 못난 부분이 있지만 아직까지 당당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내 자신을 보면, 부모의 교훈이 참 중요
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나와 남을 가리지 않고 판단하시는 분이셨다. 즉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쪽까지는 아니더라도 늘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하시고
자식들이 그렇게 살아주기를 바라셨던 분이셨다. 물론 나도 그 성품을 물려받아서인지, 심지어 아내
에게 “당신 한 번만 내 편 되어주면 안 돼!”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으니.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의 입에서 “되었다.” 한 말씀 하시면 그것이 곧 어머니의 결정이셨고, 나는 그 결
정에 반대하거나 대꾸하지 않았다.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그래서인가? 내 두 아들은 지금까지 내 앞에
서 “아니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두 아들이 다 사십 대)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도 하고
늙어가는 부모를 생각해서 간섭하기도 하지만, 결코 내 뜻을 꺾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난하고 나이 많은 사람을 남편으로 만나 사남 일녀를 낳고 강원도 정선에서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진상리라는 수복지구(내 소설 진상리에서 소개 됨)로 이주하신 후 가게를 하시면서 농사를 지으셨으니,
결코 그 삶이 평탄할 수는 없는, 그런 생활을 하셨다.
더구나 매 년 지뢰 폭발로 죽는 사람들과 장애를 입는 마을 사람들, 임진강에서 명을 달리하는 주변 사
람들(어른 아이 할 것 없이)을 보고, 툭 하면 간첩, 공비 침투 같은 비상상태와 최전방 군인들의 고된 훈
련과 고생하는 모습을 대하며 생활하셨으니 어머니의 마음에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쉬 없어지지 않는 일
이었다.
그렇게 한 생을 사시고 84세의 일기로 임종하시는 어머니를 대하게 된 나. 이제 내가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어 그 어머니를 그리며 썼던 시를 여기 모아서 소개해 드리는 것이다. 부디 작가의 좁은 욕심으로 소
개하는 시들이 독자에게 마음의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해해 주시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