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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연탄을 때는 집이었다
사북, 1989년이었고 갓스물이 된 나는
여인숙 방에 누워 겨울 연못
얼음장 위로 비죽 솟아 있던 딱딱하고 검은
연밥을 생각하였다 오래 퇴적되어 석탄처럼 시커메진
연밥 한덩이, 땅 밑이 얼마나 추웠으면
그렇게 많은 구멍을 지니게 된 걸까
삼월에도 사북은 춥고
연밥이 지닌 숨구멍은 난사당한 과녁처럼 위태로웠지만
기이한 평화에 소리없이 문이 생기고
주인 할머니가 들어와
방바닥을 만져보고 나가는 것이었다
라면도 팔고 소주도 파는 간판 없는 여인숙
다리를 저는 할머니는 광주 사람이라 하였다
광주,라는 말이 누란이라는 말처럼 아득하였다
그날 밤 나는 달의 어두운 저편으로 누란을 떠올리고
보이지 않는 누란을 향해 타박타박
낙타를 타고 걷는 꿈을 꾸었다
낙타 발자국이 만드는 모래 구멍
사막은 전부가 길이어서
발자국은 금세 모래로 채워지고 금 간 유리창에
눈보라가 불꽃처럼 타닥타닥 부딪쳤다
얼음연못에 지펴진 모닥불꽃 타는 소리
사북도 광주도 얼음연못이었지
얼음장 위로 비죽 솟은 연밥 한점은
기이한 평화 속에 납골처럼 차가웠고
내가 던진 투석은 얼음을 지치며
모서리로만 날아갔지만,
연탄이 사위는 시간 할머니는 어느새
숯 지피는 처녀로 돌아가 있었다
사위는 연탄 구멍 속에 얼음연못이 따뜻하였다
1989년 나는 스물이었고
빈혈을 앓는 역사가 그 곁을 지나갔다
연밥 구멍 속으로 누군가 고요히
수혈하는 밤이었다
폐허의 시대에 수혈하는 역사 의식 / 정연수
김선우 시인의 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다. 김선우 시인의 시를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곤 했는데, 한 중국 조선족 문인이 <연밥 속의 불꽃>이라는 시가 마음에 든다면서 광주라는 지명이 한국인가 하고 물어왔다. 시 속에 중국의 누란이 등장하는데다 중국과 한국이 각각 지닌 광주라는 지명의 혼동 때문이다. 게다가 사북이라는 중국에서는 알 수 없는 작은 탄광촌이라는 지명까지 있어 그 시에 대한 해석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대한 답장을 위해서라도 또 평소에 관심을 두던 탄광시에 대한 평을 위해서라도 나름대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글을 시작했다.
시의 배경인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은 내가 살고 있는 태백시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바로 옆 마을이자 '1980년 사북의 봄'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사북은 대규모 탄광노동운동을 겪으면서 탄광노동자의 인권과 삶의 문제를 전국적인 관심사로 등장시켰다. 그래서 사북은 탄광촌이자 탄광노동운동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현재의 사북은 연탄을 때지 않는 경제발전상의 뒤안길로 물러나면서, 폐광으로 신음하고 있는 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카지노 도시로 새롭게 각인되고 있기도 하지만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하다.
시 <연밥 속의 불꽃>에서는 사북과 광주의 지명이 함께 등장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두 지역의 공통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1980년 4월의 사북항쟁과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 등 비슷한 시기의 역사적 사건들이 그것이다.
사북을 유명하게 만든 1980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년의 군사독재정권으로 통치하다가 1979년 10월26일 부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박정희 독재 대통령의 종말로 민주화 열망이 꽃피던 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박정희 종말을 다룬 영화 2005년 초 개봉작 <그때 그사람들>이란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국민들은 인권을 되찾기를 희망하고 민주화를 열망했지만 군부 정치 세력에 의한 계엄령의 공포가 전국을 강타하고 말았다.
하지만 계엄령 상태 속에서도 1980년 4월 사북의 탄광노동자들은 어용 경찰, 어용 회사간부 등과 대항하면서 사북이란 도시를 노동자들의 세상으로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탄광노동자들이 인권탄압에 대한 투쟁과 어용노조에 대한 투쟁의 불길이 광부들뿐만 아니라 사북 전체 주민들의 연대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계엄정권에서는 강경 진압에 나섰고, 군사정부에 통제된 언론은 사북항쟁을 광부들의 폭도란 이름으로 왜곡하여 알렸다. 이 사건은 사북이란 작은 탄광촌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사북 항쟁 발발 1달 만인 5월에는 광주(당시 전라북도의 도청 소재지)에서 민주화를 바라는 전국의 대학생, 시민들이 동참하여 대규모 반정부 투쟁이 일어났다. 당시 전두환이 실세이던 군사정권에서는 광주를 포위하여 수만명의 대학생과 시민을 무참히 학살했다. 폭도라고 몰면서 말이다. 사북 항쟁과 같은 양상을 보여주었다.
광주에 대한 무참한 학살은 이 땅의 지식인들로부터 분노를 샀고, 지금까지도 1980년 광주와 1980년 5월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은 "친구야, 우리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미안하다"면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살아있어 미안하다’는 그 말을 들으면 아직도 콧등이 시큰거린다. 1980년 대학생이던 시절 대학에 탱크가 들어오고, 총을 든 군인이 짐승처럼 취급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인권이 없는 세상을 살았으니 누구보다 그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했던 것이다. 투쟁하다 죽은 그들이 있기에,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죽어간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의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그래서 아직도 그 5월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광주라는 이름을 사랑한다. 그것도 모자랄 땐 태백에서 기차로 7시간 거리에 있는 광주 망월동묘역을 찾아 희생자들의 얼굴을 보다가 돌아오곤 한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나와 동세대의 사람들이 갖는 공통의 심정일 것이다. 그만큼 1980년이란 시간과 광주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어떤 서러움으로 다가온다.
탄광지역 주민들에게는 1980년 4월에 있었던 사북의 봄 또한 1980년 5월의 광주만큼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노동운동에 종사하거나, 탄광노동자, 탄광촌사람들에게는 탄광노동자가 인권을 찾고자 했던 큰 의미를 지닌 사건이기 때문이다.
김선우의 시 <연밥 속의 불꽃>에 등장하는 1989년은 시인의 개인적 이력에서 출발하고 있다. 강원대학교 89학번에다가, 그리고 “갓스물이 된”나이로 사회로 눈을 돌리는 시기로써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는 시인 개인에게 특별한 연도이자, 탄광사회가 겪는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시작되는 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989년의 석탄합리화 정책은 전국의 탄광을 강제로 폐광시키는 정책, 정부에서는 탄광 합리화라고 부르는 이 사업이 시작되면서 탄광촌을 폐허로 만들었다. 탄광촌 주민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악몽의 해인 셈이다.
1989년 이전의 탄광촌 사북을 생각하면 “낙타를 타고 걷는 꿈”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중국 옛적의 신비한 나라 누란이다. 실크로드 서역 남로(南路)의 중요한 중계거점으로 번영한 오아시스 누란의 모습은 석탄산업의 호황으로 국가 에너지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희망을 잃던 사람들이 찾아와 탄광에서 새 삶을 살게된 탄광촌의 모습과 다름 아니다. 누란왕국은 계속되는 여러 세력의 침입과 자연의 변화로 6세기 이후 멸망했는데 탄광촌은 석탄산업의 사양화와 합리화 정책으로 순식간에 몰락했으니 그 운명이 닮아있다.
시 속에 등장하는 사막의 이미지는 대단위 폐광으로 폐허가 된 사북 탄광촌의 위태로운 도시를 잘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막화된 폐광촌은 사라진 누란왕국과 쉽게 연결된다. 누란은 탄광촌이 호황이던 아득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폐광으로 생존권마저 위태로운 폐광의 도시와 위태롭게 살아가는 민중의 삶을 드러낸다.
여기서 시인이 의식했던 하지 않았던 '누란(累卵)', 즉 포개 놓은 알이란 뜻의 몹시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상태의 도시라는 의미도 함께 전달하고 있다. 누란에 대한 오해도 시를 퍽이나 재미있게 읽는 힘이 된다.
중국인 독자는 이 시를 읽으면서 중국의 누란왕국을 쉽게 떠올리는 순간, 역시 중국에 있는 도시 광주를 먼저 떠올렸다. 그렇게 되면서 시의 많은 부분에 대한 해석이 엉키기 시작했다. 세상을 읽는데 있어 개인의 삶 혹은 배경지식이 그토록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세상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처럼 결국 세상은 자기가 생각하는 데로만 세상이 흘러가고 있었다. 관심의 영역을 넓히면 세상은 한없이 넓어지지만, 탄광만 생각하면 세상은 온통 탄광과 연관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쁜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중국에 친구를 만드는 순간 중국이란 단어를 우연히 뉴스나 책 속에서 발견하게 되면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게 된다. 바로 그런 것이다. 산에는 도라지와 인삼과 산삼이 널려있다. 하지만 그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산삼이 의미 있고, 또 산삼의 주인도 될 수 있다.
나는 봄꽃이란 단어를 좋아했는데, 미국 친구 루이스를 만나면서 두려운 단어가 되었다. 그 친구가 봄꽃이란 의미를 묻기에 겨울을 이기고 맞는 봄, 그 봄의 화사한 꽃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싱겁다는 것이다. 봄꽃이 뭐냐고 또 물어오기에 진달래 철쭉 개나리 벚꽃 목련 등의 꽃들에 대한 소개와 봄기운까지 넣어서 말해줬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기가 살던 마이애미에는 1년 내내 그런 꽃이 천지에 피어있다고 중얼거렸다.
그 순간 난 머리 속이 환하고도 차갑게 열리는 어떤 느낌을 받았다. 내게는 아주 익숙한 세상이지만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상하지 못한 이 세계가 얼마나 많은 가를. 그 이후 나는 새롭게 만나는 모든 세계가 경이로워지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내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을까를 반성해보는 기회가 많아졌다.
중국문인으로부터 중국의 광주와 한국의 광주라는 지명의 혼동을 듣고 나서 중국인과 한국인이 받을 느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의 광주가 갖는 상징성을 모르고 시를 읽었을 때 이 시 전체의 의미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가 궁금해졌다. 더구나 사북의 의미도 모르는 상태에서 과연 이 시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몹시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탄광에 대한 생각만으로 골몰한 내가 지나치게 1989년을 석탄산업합리화의 연도에 연결시켰으며, 또 1980년대의 경험을 가진 내가 사북의 1980년과 광주의 1980년을 작위적으로 연결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도 해보았다.
하지만 1989년은 석탄산업합리화라는 분명한 정책의 연대기 말고도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경제성장을 가져오면서 주탄종유(主炭從油)에서 주유종탄(主油從炭)으로 변하는 한국의 경제적 발전의 변화 시점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는 분명해진다는데 위안을 얻었다. 또 시인은 “모닥불꽃 타는 소리”들리는 사북과 광주를 떠올리면서 “사북도 광주도 얼음연못”이라고 그 연관성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연밥을 통해 자연스레 그 음이 연상시키는 연탄과 동일시하는 것은 읽는 재미가 있다. 연밥의 실제 모습에서 연상되었을 <연밥 속의 불꽃>은 서민들이 일상에서 흔히 바라보는 ‘연탄 속의 불꽃’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밥이 연탄에 연결되면서 광주와 사북의 도시 이미지가 함께 연결되는 것이다. 연꽃이 갖는 정화의 이미지, 그리고 진흙탕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승화의 이미지 등의 연꽃(연밥)을 탄광(연탄)에 연결시킨 것이라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연꽃의 열매인 연밥은 약으로 쓰이기도 하므로 상처를 입은 시대에 대한 처방전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연탄이 자기를 희생하여 여인숙을 찾은 나그네의 방을, 추운 시대의 겨울을 데워주는 것처럼 말이다.
광주할머니를 통해 광주와 사북의 연계성은 더 선명해진다. 이 땅의 희생양이 된 광주, 그리고 언제부턴가 폐광이 된 사북에서 허름한 인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소시민적 삶, 삶에 희생당해 다리까지 저는 광주 할머니는 하나로 연결된다. 할머니의 다리 부상 원인이 어쩌면 광주민주화 운동의 희생자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도 주고 있다.
몰락하고 있는 탄광지역의 현실을 “삼월에도 사북은 춥고”라고 표현하듯 삼월의 봄이 오면 따뜻해져야 하지만 사북은 여전히 춥다. “연밥이 지닌 숨구멍은 난사당한 과녁처럼 위태로웠지만”에서는 죽음으로 내몰리는 위태로운 생명의 상황을 보여주면서 사북의 폐광촌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이한 평화”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변변히 내세울 간판조차 없는 여인숙이지만 낯선 나그네가 추울까 봐 “주인 할머니가 들어와/방바닥을 만져보고 나가는” 인정이 있다. 폐광의 길을 걷는 사북이지만 연탄의 불꽃보다 더 따뜻하게 전달되는 인정이 남아 구들장을 데우고 있다. 할머니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 땅의 연꽃이다. 험한 세상을 이기고 나온 한 송이 아름다운 꽃, 진흙탕에서도 피어 나오는 연꽃인 것이다.
봄이 쉽게 오지 않는 탄광촌, 추운 거리의 폐광촌에서 시인은 아득한 인정을 떠올린다. 그리고 함께 아파한다. “내가 던진 투석은 얼음을 지치며/모서리로 날아갔지만”에서 보여지듯 모순된 사회를 향해 던지는 돌멩이가 정면을 맞추지 못하고 모서리를 맞추는 것을 목격한다. 현실을 직시한 시인의 서러움과 폐광촌이 직면한 참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뒤이어지는 “연탄이 사위는 시간 할머니는 어느새/숯 지피는 처녀로 돌아가 있었다”는 구절을 통해 우리 소시민의 삶이 결코 좌절하지 만은 않는다는 힘을 보여준다. 다리를 저는 광주 할머니를 처녀로 만들고, 희망의 숯을 지피는 건강한 처녀로 살려내는 힘이 담겨있다. 그리하여 연탄이 연밥이 되는 상관성, 즉 할머니가 건강한 처녀로 부활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빈혈을 앓는 역사가 그 곁을 지나갔다”는 확신에 찬 어조는 깨어있는 역사의식을 통해 더 이상의 아픈 시대는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대변한다. “연밥 구멍 속으로 누군가 고요히/수혈하는 밤이었다”는 시인의 고백은 김선우 시인의 다른 시 전반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건강성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수혈이란 바로 1980년 4월의 사북항쟁, 5월의 광주항쟁, 1989년의 폐광정책 등으로 신음하고 고통받는 이 땅의 모든 서러운 약자를 위해 바치는 시인의 피일 것이다.
첫댓글 태백님, 해설을 곁들인 뭉클한 시 잘 읽었어요.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