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나의 한가운데를뚫고 돌진하는 질문에 주저거리는 나는 ‘말의 도적들’의 시대에 난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을까? -장동훈

[쌩떽쥐베리]

나의 언어

[사람사는 이야기 - 장동훈]

2011년 04월 08일 (금) 14:42:05

장동훈 .

여느 농성장이던 다양한 사람들의 발언을 듣기마련이다. 하지만 늘 비슷한 언어, 닮은 깊이의 이야기들이다. 동일한 사건에 다양한 시선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이야기 역시 다양하다는 법은 없다. 안쓰럽지만 안쓰러운 마음보다 ‘당위’가 먼저 마음을 차지해버린다.

‘소셜미디어 시대’라는 말처럼 말이 범람하는 시절이지만 가슴에 자국을 남기거나 메아리치는 여운의 말은 정말 ‘간혹’이다. 그것이 우리가 말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형태이다. 어쩌면 너무나 많은 아우성 때문에 분철시켜 듣기 힘들고 순식간에 쏟아지는 말들의 뭉뚱그려진 엄청난 덩어리에 명료하게 분별하거나 혜안을 찾기도 전에 지레 질려버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시대 슬픔의 크기는 담을 수 없을 만큼 크다. 너무 슬퍼 비명은 있지만 ‘서사’가 없는 시대이다.

지난 겨울 고용승계와 처우 개선을 요구하던 홍대 청소용역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찾아가 유명세를 탔던 영화배우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 느꼈던 감정도 비슷했다. 공인으로써의 부담감에도 농성장을 찾아간 이야기는 분명 신선했지만 그뿐이었다. 정치꾼들 역시 치밀한 계산 후에 농성장을 찾아가 속빈강정 같은 말을 늘어놓기에 더욱 그렇다. 그의 진짜 속내는 알길 없었다.

최근 당사자가 직접 말문을 열었다. (한겨레신문 2011년 3월 5일자) 모두 다 행복할 것 같은 호화로운 성탄 트리 앞에 “손을 씻을 공간이 필요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노동자를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자신을 건드렸단다. 미안했단다. 그래서 찾아갔단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본인의 마음을 자신의 말투로 가감 없이 표현했는데 “가장 사적인 감정에 ‘나두, 나두...’”라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슴없이 맞장구쳐준 사실이란다. 화려한 무대 위 한껏 치장한 배우의 왜곡 없고 치장되지 않은 맨 얼굴 같은 ‘이야기’에 나 역시 공감했다.

훈련되지도 그렇다고 소위 ‘학습’을 거치지도 않은 맨살 같은 그의 이야기는 노상 듣던 ‘선수’들의 말보다 더 담백하고 애틋했다.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터득했던 옹알이와 같은 거칠고 사적인 언어가 지닌 위력이다. 그 역시 본연의 모습으로, 태초의 말로 이야기를 건넸고 세상 역시 가감 없이 대답해준 것이다. “난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잠시 살아본 느낌이다”라고 고백하는 배우의 말이 정말 ‘진심’으로 들린다.

‘진심’, 그건 무엇일까? 말을 쏟아내는 분량으로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제인 내 언어는 ‘진심’인가? “무슨 배짱으로 무얼 걸었기에 그리 거침없이 말하나”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난 ‘진심’이라고 말한다면 그게 진심일까? 그걸로 끝인가?

생각해보면 나의 언어는 포대기에 싸인 아이의 단순하고 간결한 울음을 닮기에는 너무 비장해졌고 가장 사적인 감정을 부끄럽게 꺼내들고 대로변을 나온 영화배우의 발랄한 말을 흉내 내기에는 피로감에 절어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라는 스승의 질문에 선뜻 대답할 줄은 알아도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나의 한가운데를 뚫고 돌진하는 질문에 주저거리는 나는 ‘진심’인가? 파괴를 ‘살리기’로 둔갑시키고 죽음 같은 정리해고를 ‘경영정상화’라는 말로 윤색하는 ‘말의 도적들’의 시대에 난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을까? 체온 없는 정보는 대답할 줄 알아도 나를 온전히 걸고 대답하길 주저하는 나. 도둑질과 분탕질을 일삼는 말의 도적들을 비판하는 나는 내게만은 어찌 이리 관대한가!

장동훈/ 신부, 빈첸시오, 인천교구 노동사목 전담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