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 썼어요
류서연
언젠가 화장실에 갔다가 반 학생들이 무심결에 하는 말을 듣고 세찬 충격을 받았다.
“우리 반주임쌤은 왜 그리 칭찬을 할줄 모르지? 다른 반 반주임들은 칭찬을 영 잘하던데 우리 반주임은 맨날 잔소리만 하고 칭찬에 너무 린색해,”
“그러게, 잘하면 칭찬도 해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아니야 왜 그런지 알어? 우리 반주임선생님은 나이 많고 로파심이 많아서 그런거야, 생각해바 선생님이50이 넘으셨으니 갱년기가 올 때가 됐잖아? 그러니 우리가 리해해주어야지 안 그래?”
“그래도 그 나이에 반주임을 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조련치 않니? 난 그래도 항상 자신심 넘치고 씩씩하고 당당한 쌤이 좋아.”
본의 아니게 화장실에서 학생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을 듣고있노라니 나는 얼굴이 뜨끔거려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후 도망치듯 화장실에서 나오면서도 우리 반주임선생님은 칭찬에 린색하다던 학생들의 말이 계속 귀가에서 쟁쟁이 울리고 내 정곡을 콕콕 찌르는것 같아 견딜수 없었다. 사무실에 돌아왔어도 마음은 그냥 진정되지 않았다.
토닥토닥 뛰는 가슴을 억제하고 않아있노라니 문득 아득한 그 옛날 초중시절 어느 작문시간에 어문선생님께서 해주신 한마디 말씀이 머나먼 기억의 저편에서 내 어깨너머로 아스라하니 들려오는것 같았다.
“서연학생, 이번 작문 참 잘 썼어요, 반 학생들앞에서 큰소리로 읽으세요.”
어문선생님의 말씀에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기는 했으나 너무도 부끄러워 얼굴이 홍당무우가 된채 나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선생님은 부드러운 눈매로 나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용기와 힘을 보내주셨다.
“괜찮아요, 높은 소리로 읽어보세요.”
그날 나는 쿵쾅쿵쾅 뛰는 가슴을 겨우 억누르며 무슨 정신에 반학생들앞에서 작문을 읽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날의 일은 평생을 내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놓았다. 그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참 잘 썼어요,” 라는 말 한마디와 부드러운 눈매를 나는 30여년이 지난 오늘도 잊을수가 없다. 우리말 속담에 “말 한마디 천냥 빚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그 한마디 말씀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크나큰 역할을 놀았던것 같았다.
그러면서 새삼스레 초중시절의 나를 돌아본다.
초중시절에 나는 못난 새끼오리였다. 학생들앞에 나서기 꺼려하고 말하기 싫어하고 장춘, 길림, 구태 등지로 병치료를 다니느라 늘쌍 결석하고 그러다보니 반학생들과 어울릴새도 없었다. 병이 좀 호전되여 어쩌다 학교에 가면 나는 늘 얌전하게 한쪽 구석만 지키다가 오군 하였다. 그래서 나는 거의 학습에 대해 포기상태에 있었고 어린 나이에도 내 앞길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나는 점점 주눅이 들어가고 모든 일에서 자신심이 없었고 뒤걸음만 쳤다. 다만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란 바로 책읽기였다. 책만 손에 들면 시간이 가는줄 몰랐고 책속에 푹 빠져들었다.
책읽기를 좋아하다보니 나는 작문시간이면 제일 신이 나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 작문시간에 작문을 쓰게 되였는데 작문제목은 “잊을수 없는 일” 이였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나는 그때 정말 작문을 잘 썼던것으로 기억된다. 하여 선생님은 빨간 원주필로 95점을 매겨주셨고 작문 맨 아래에다 “작문을 참 잘 썼습니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으니 열심히 노력하세요.” 라는 평어를 적어주셨다.
아, 선생님, 선생님의 그 평어와 선생님의 말씀은 그때 생활의 용기를 잃고 인생의 십자로에서 방황하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용기와 힘을 주셨는지 선생님은 알고나계셨나요?
지금 어른이 된 다음 지난 날을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선생님께서 써주신 그 평어와 학생들앞에서 해주신 칭찬의 말 한마디가 완전히 나의 인생을 개변시킨 계기가 되지 않았나싶다.
그때부터 나는 병치료를 하면서 이악스레 학습에 달라붙었다. 선생님한테 인정받고 싶었고 친구들한테 인정받고 싶었고 더우기는 앞으로 힘든 육체적 일을 할수 없는 내 병약한 신체때문에 당시 내가 할수 있는 일이란 공부밖에 없었다. 하여 나는 학습에 노력하기 시작하였고 성적도 차츰 제고를 가져왔으며 모든 일에서 자신심도 생겼다. 그러노라니 어느덧 내 마음속에도 몽롱하게 나마 아름다운 꿈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후 나는 내 꿈과는 거리가 많이 떨어진 직업인 교원사업에 종사하게 되였다. 교원사업에 종사하면서 20여년을 반주임직책을 맡아온 나는 늘 내가 반주임사업을 아주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하긴 20여년동안 내가 맡은 학급은 늘 학년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초중승학시험에서도 승학률이 늘 촤고였으니 나 자신을 성찰하고 관조하고 반성해볼사이도 없이 줄기차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헌데 오늘 너무나 뜻밖에 반학생들한테서 그런 소리를 들을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반주임을 하면서 반 학생들을 크게 칭찬을 해본것 같지를 않았다. 아니 어쩌면 여태껏 칭찬을 모르고 살아왔던것 같았다.
왜 그랬을가? 초중시절 못난 새끼오리였던 나 자신은 어문선생님의 칭찬의 말씀 한마디에 힘을 얻고 내 인생을 개변시켰건만 나는 왜 그렇게 오랜 세월 칭찬과 담을 쌓고 살아왔던가? 그것도 인간을 육성하는 성스러운 교육자로서 말이다. 아이들앞에서 사도존엄을 지키려고 그랬을가? 아니면 엄한 스승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는 사상의 지배를 받아서일가? 아니면 학생들은 항상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낡은 사상관념이 나를 강박하여서일가? 그것도 아니면 내 교육리념이 고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의 수요를 따르지 못해 그랬을가?
고니도 칭찬해주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식물도 칭찬해주면 우썩우썩 잘도 자란다는데 하물며 만물의 령장인 사람한테 칭찬의 힘이란 얼마나 큰데? 아니 이 세상에서 칭찬의 힘은 스러져가는 생명도 구할수 있었고 기적도 창조할수 있지 않았던가?
뒤늦게나마 자신을 반성하노라니 스스로도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20여년을 반주임을 하면서 칭찬에 너무 린색하여서 어떤 제자들은 자신심을 제대로 키워왔을가? 어떤 제자들은 살아가면서 좌절앞에서 삶의 용기를 잃지는 않았을가? 생각하니 제자들한테 미안해서 견딜수 없었고 많은 잘못을 저지른것만 같아 이 시각 나 자신을 용서할수가 없었다.
“참 잘 썼어요!”
30여년전에 나에게 해주셨던 어문선생님의 말씀이 지금 내 가슴을 세차게 때린다. 20여년을 반주임을 해오면서 너무 뒤늦게 깨달은 하나의 철같은 진리 그 진리앞에서 나는 끝없는 자책과 회한에 몸부림친다.
그제날 선생님의 칭찬으로 스스로 힘을 얻고 자극과 격려를 받고 인생에 큰 지침을 얻었음에도 나는 왜 다른 사람한테 그것을 실천하는데 그렇게 린색했을가? 내 자식한테도, 반 학생들한테도, 한 직장 동료들한테도 후덕하게 대하지 못했고 사업을 하면서 선뜻 칭찬의 말이 나가지 않았었다…
그래 이제부터 스스로 나 자신을 개변시켜야겠다. 나부터 시작하여 인심이 점점 각박해져가는 현대생활의 빠른 절주속에서 서로서로 칭찬을 해가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겠다. 내 칭찬의 말 한마디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인생길에서 방향을 잃고 갈팡잘팡하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감로수로 되여 준다면 오늘부터라도 아이들에게 찬란한 아침해살같은 칭찬을 듬뿍 안겨주자.
그래 그렇게 해야지. 오늘도 그제날 자애로운 어문선생님을 떠올린다.
2012.5.8
중학생잡지.
첫댓글 저도 주위에 무관심 했나 봅니다........ 좋은글 감사 해요.
한결같은 영희님의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고마워용
지도 반성 좀 해야겠네요... 감사
ㅋㅋㅋ. 그래요. 살아가면서 반성도 해야 하는가바요.감사
칭찬속에서 자란애들은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자란다고 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노을님, 항상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구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한 하루님! 오랜만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시구요! 사회복지사 근무에 요즈음 카페에 들어와서 글 보기도 쉽ㅈ; 않네요!
넵 안녕하세요? 7365님 반가워요. 정말 오랜만이얘요. 잘 지내셨죠? 행복하세요.
칭찬은 사람을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자신을 반성할수 있는 선생님이 돋보입니다.
그래요,감사합니다. 사람이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단히 자기 자신을 관조하고 성찰해야지요. 자취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