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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훔 2:8~13 불의한 자를 대적하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요약
파괴하는 자가 니느웨를 치러 오니 니느웨는 힘을 다해 지킵니다.
그러나 적들이 병거를 타고 번개처럼 빨리 달리며 침략하니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무너지며
왕후가 벗은 몸으로 끌려갑니다. 니느웨에 많았던 사람들이 모두 도망하고, 풍부했던 은금은 노략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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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함과 영원함의 갈림길 나훔 2장 8~10절,
8 옛적부터 니느웨는 마치 물이 가득 찬 연못처럼 백성이 많았던 성이지만 이제 그들은 도망치고 있다. “서라! 서라!” 외치지만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9 너희는 은을 약탈하라! 너희는 금을 약탈하라! 온갖 값진 것들과 한없이 많은 보물이 있다.
10 텅텅 비어 있고 아무것도 없으며 폐허가 됐다. 마음이 녹아내리고 무릎이 비틀거린다. 고통이 몸 전체에 퍼지고 그들의 얼굴이 모두 창백해졌다.
- 니느웨는 물이 가득한 못처럼 사람과 재물이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자 사람들은 도망하고, 풍성했던 재물은 모두 약탈당하며, 화려했던 도성은 공허함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 번영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쌓은 성공은 결국 무너지며, 세상이 자랑하는 안전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을 허락하시지만, 그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참된 부요함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큰 안전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맡기신 물질과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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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굴에 임한 종말 나훔 2장 11~13절
11 사자 굴이 어디에 있느냐? 어린 사자들을 키웠던 곳이 어디에 있느냐? 수사자와 암사자와 젖먹이 사자들이 두려울 것 없이 다녔던 곳이 어디에 있느냐?
12 사자가 자기 새끼를 위해 충분한 먹이를 찢고 암사자를 위해 먹이를 잡아다 주며 자기 굴을 먹이로 채우고 그 죽인 것으로 가득 채워 놓았던 사자 굴이 어디 있느냐?
13 “보아라. 내가 너를 치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내가 네 전차들을 불태워 연기가 되게 하고 칼이 네 새끼 사자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내가 이 땅에 네 먹이를 남겨 놓지 않겠다. 네가 보낸 사람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이다.”
- 니느웨는 자신을 사자의 굴처럼 여겼습니다. 주변 나라를 약탈하며 부를 쌓았고, 누구도 자신들을 대적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네 대적이 되리라"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는 순간, 가장 강한 제국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미워하시며 약한 자를 억압하는 교만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반대로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으로 높아지려 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겸손한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내 삶에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힘이나 자랑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아야 할 교만과 욕심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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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나는 그것을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라고 불렀다
기이한 까닭은 아무도 그 은혜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상실과 고통 한 가운데서, 우리 자신의 내적인 세계에서 솟아오르는 이 기이한 은혜의 방식과 때와 장소를 누가 예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거룩한 까닭은, 이런 은혜의 순간들이 궁극적으로 오즈보다 더 먼 곳에서, 그리고 운명보다 더 깊은 곳에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를 치유하고 깨끗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았거나, 기억되거나 잊혔거나 주님이 베푸신 모든 복에 대해 주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고 하는 옛날 기도문처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과 거의 잊힌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인생의 여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이유는, 그들의 존재 덕분에 우리 각 사람의 인생이 거룩한 여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처럼 복을 주고 복 받은 순간들을 나는 선물로 보기로 작정 했지만 그렇게 보기는 쉽지 않다. 소망을 베푸는 손길을 내밀기는 더 힘들다. 그러나 선물 일부는 적어도 때로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보이지 않아도 확신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방식이자 본질일 뿐 아니라 믿음은 언제나 더 멀리, 더 깊이 보게 하기 때문이다.
♧ 한 절 묵상
2장 9절 | 하나님 니느웨에 먹을 것이 넘치고 세상 모든 힘과 부가 모여들던 영광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가 하나님 없이 오직 자신들의 능력인 줄 착각했고, 끝없는 탐욕을 부리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 앞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니느웨는 수사자처럼 군림하며 하나님이 주신 권력과 물질을 제 배를 불리는 도구로 삼아 약한 자들을 괴롭혔습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의 끝은 결국 철저한 파멸이었습니다.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를 향해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다(나 2:9)"며 그들이 자랑하던 풍성한 보물이 순식간에 약탈당할 것을 선포합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세상의 보물과 움켜쥔 손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구원의 힘이 되지 못합니다. 탐욕에 사로잡혀 세상 물질을 의지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 삶의 진정한 풍요는 쌓아둔 은과 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임을 기억하며 겸손히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기도
국내
불경기가 장기화되며 임시직·일용직 취업 여건이 악화되고, 소득 및 자산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민생이 회복되고 실효성 있는 복지 정책이 시행되길 기도합시다.
국외
유럽 내에서 기독교인을 겨냥한 증오 범죄가 일어나는데, 교회 방화와 같은 심각한 형태의 테러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적대 행위가 멈추길 기도합시다.
나훔 2장에서 니느웨는 당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대국이었다고 기록합니다. 풍성한 재물과 견고한 성,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했지만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가득했던 도시는 텅 비었고, 자랑하던 재물은 약탈당했으며, 두려움의 대상이던 사자의 굴도 흔적 없이 사라질 운명에 놓였습니다. 불의하게 쌓은 번영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탐욕을 심판하시고 공의를 세우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도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소유와 성공은 영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참된 안전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내가 네 대적이 되리라" 나훔 2장 13절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환경이 나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시는 것입니다. 니느웨는 수많은 적과 싸워 이겼지만, 결국 하나님이 대적이 되시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면 어떤 상황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재산이나 능력, 사람의 인정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며 가장 견고한 성입니다. 혹시 오늘 내 마음에 교만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경고하시는 분이 아니라, 돌이켜 생명의 길을 걷게 하시기 위해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그분을 경외하는 삶이 가장 안전한 삶이며,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나훔 2:13)
한때 앗수르는 세상을 두렵게 만들던 강대국이었습니다.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재물을 약탈하며 누구도 자신들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속 니느웨는 약탈하던 자에서 약탈당하는 자로, 두려움의 대상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세상은 힘과 권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며, 자신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니훔 말씀을 통해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임을 선포합니다. 니느웨의 몰락은 바벨론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대적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저는 앗수르처럼 노골적인 악을 행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계획을 세우면서도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성공과 성취를 당연하게 여기며, 어느새 하나님의 은혜보다 제 경험과 능력을 더 의지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신앙의 가장 큰 위험은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인지 모릅니다. 교만은 내가 대단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저에게 “너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라고 묻는 듯 합니다. 세상의 안목과 이생의 자랑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면 내 삶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6월27일 전도
2026년 6월 28일 오늘의 말씀 명언 나훔 2장 8~13절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번영은 가장 위험한 재앙이다. - 찰스 스펄전
교만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세워진 가장 높은 장벽이다. - A. W. 토저
인간의 모든 자랑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먼지와 같다. - 존 칼빈
사람이 하나님을 잊는 순간, 자신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 마틴 로이드 존스
우리의 안전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 - 조지 뮬러
겸손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자리이다. - 엔드류 머리
참된 부요함은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잃지 않는 것이다. - 삶을 노래하다
사람의 편에 서면 잠시 세상을 얻을 수 있지만, 하나님 편에 서면 영원을 얻게 된다. - 삶을 노래하다
6월27일 전도
1
하나님은 나훔을 통해 앗시리아의 멸망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선포합니다.
용맹한 사자 같은 앗수르
앗수르를 상징하는 동물이 사자인데 앗수르 왕들이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해 사자에 빗대어 말했고, 앗수르의 많은 건물과 장식품에 사자상을 세우거나
사자 문양을 새겨넣기도 했습니다.
본문에 사자굴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을 전제로 하여 젊은 사자는 앗수르를,
사자굴은 니느웨를 상징합니다.
한 때 젊은 사자같은 앗수르가 강한 군사력으로 많은 나라를 점령하고 헤아릴
수 없는 전리품과 조공을 받아 사자굴에 채웠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재물을 약탈당해서 니느웨가 텅텅 비게 된다는 것입니다.
텅 비어버린 사자굴
앗수르가 용맹한 사자였을 때 그들이 기거하던 사자 굴은 부족한 것이 없었고
수사자는 사냥감을 굴로 가져와서 암사자와 새끼들을 풍족하게 먹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자는 끌려가고 모든 것이 비어 공허하고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사자가 살지 않는 사자굴은 더 이상 사자굴이 아니듯이
하나님 없는 인생도 공허한 인생입니다.
채우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말라
앗수르가 멸망하고 니느웨가 텅텅 비게 되는 이유를 하나님이 그들의
대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앗수르도 피땀 흘리며 수많은 나라들과 전쟁을 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을
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힘만 믿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무기를 꺾으시고 파괴자들을 보내 그들이
철석같이 의지하던 군대를 무너뜨리고 병거를 불사르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그 분의 대적하심에
최선의 대책은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계시고 탄원을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약탈하는 자들의 대적이 되시며 신속히 심판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시기를 소망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