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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신불공 발원이 대성취 되시기를 다시 축원드립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시작하시죠.
네 안녕하세요. 정안입니다.
지난번에 이어서 오늘은 <큰스님!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2편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까지 3편까지 하고 이제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사리불이 부처님 제자지 않습니까?
사리불이 있는데 어떤 백정이 사리불이 설법하는 것을 듣고 큰 신심을 냈대요. 큰 신심을 내고 그래서 그걸 듣고 이제 집에 가서 백정이니까 또 이제 칼을 이렇게 탁 드는 순간 아! 하고 깨달았답니다.
오늘도 저희가 스님의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순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중해서 공부하는 시간으로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큰스님의 깨달음, 큰스님이 깨달은 그 날, 그리고 그때 깨어나실 때의 그런 어떤 것들에 대해서 제가 집요하게 묻겠습니다.
그리고 묻는 과정에서 질문을 제가 드리지만, 그 과정에서 스님의 답변을 들으시고 의문이 나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바로바로 그때 손을 들어서 물으시면 됩니다. 지금은 공부하는 시간이니까요. 묻고 답하고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스님 깨어나신 그 이야기는 들으셨죠?
모르시는 분 혹시 계신가요? 없으시죠? 자원보살님 아시죠? 어떻게 됐습니까? 저희가 참 인상 깊은 그런 이야기라서 이렇게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만 저희가 들었지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궁금한 게 되게 많았어요.
묻고 싶었던 게 “스님 그래서 이건 어떻게 됐습니까? 저건 어떻게 됐습니까?” 그런 것을 물을 수도 없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대놓고. “스님 그렇게 깨어나셔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갔습니까? 버스를 타고 갈 때는 어떠셨습니까?” 이런 것도 사실 궁금하고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오늘 질문을 좀 정리하고 하는 과정에서 제가 오늘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제가 이 선원에 온 이유가 질문하러 왔구나. 그런데 그 수많은 질문이 있잖아요. 대비주, 뭐 여러 가지가 많이 있는데요. 오늘 제가 묻고자 하는 질문, 아주 근원적인 질문을 스님께 여쭙고자 제가 왔구나! 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제가 여기 왜 왔겠습니까?
스님 하나 보고 왔지 않습니까? 스님을 만나서 제가 뭐 하겠습니까? 배우려고 왔지 않습니까? 배움의 시작은 질문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질문은 오늘 너무 제가 요즘 들어서 많이 궁금했고 또 그런 질문들이니까 되게 관심 있으시고 또 그런 주제니까 질문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영상을 보니까 스님이 뒤에 많이 눌렀더라고요. 스님이 이렇게 쫙 쳐다보시니까 제가 아무 말도 못하고 ‘이거야’ 하면 예! 이렇게 했는데 오늘은 더 비장한 각오로 어차피 뭐 저희도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여기 살러 오셨잖아요. 그래서 해보겠습니다. 아주 설레입니다.
스님! 첫 번째 질문입니다.
깨어나시기 전 문을 걸어 잠그시고 이 세상과의 마지막 순간에서 사람들을 위한 진실한 축원을 시작하셨고 그 과정에서 지금 자성불 명상법의 근간이 된 일생 방하착이 시작되셨죠.
그때 어린 시절부터의 각각의 장면, 상들을 보시면서 어떤 방식으로 방하착을 하신 건지. 왜냐하면 전혀 의도하지 않게 자성불 명상이 시작됐을 것 같은데요.
스님께서는 그 순간 오직 그 상황에 집중되어 계셨던 건지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우리가 찾는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질문을 드리는 것인데요.
저희는 자성불 명상을 스님과 함께 했으니까 그렇게 진행도 하고 이렇게 하는데 스님은 전혀 그런 어떤 의도하고 상관없이 일생 방하착이 시작된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들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때 그 상황 자성불 수행을 어떻게 하시게 된 건지 어떻게 진행된 건지를 좀 듣고 싶습니다.
1999년 1월 10일 지금 이야기입니다.
제 나이가 서른아홉 살 됐을 땐데 그런데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나는 누구였고 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가는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 있어 왔었죠.
그래서 열여덟 살에 안평 옥련암이란 곳에 입산을 처음 하게 됐는데 신비한 것이 재밌는 것이죠. 그 노스님이 그때 당시에 여기 서울 보성고등학교 출신이신데 법명이 운자 학자 스님이에요. “운학스님” 그런데 제가 어린 시절에 이름이 운학이었거든요. 그 운학스님을 안평 옥련암에서 뵙고 거기에 몇 달간 있었죠.
그리고 결국은 이제 큰절에 입산을, 재출가를 해서 수행을 해야 되겠다 하는 결심을 했었는데 출가를 해서 출가 원서를 써요. 지금도 생생한데 그 원서에 출가의 목적을 쓰라고 하길래 ‘변하지 않는 진리를 깨달아서 일체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이렇게 썼어요.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도 그러한 원이 깊은 마음에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입산 원서를 그렇게 썼는데, 해인사로 맨 처음 들어갔었는데 해인사로 들어가기 위해서 그 시골에서 새벽 한 4시쯤 새벽차, 그때는 첫 차라기보다도 하루에 한두 대가 있었던 그런 시절인데 그 차를 타고 이제 만류하시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길을 떠나는데 잠을 거의 못 자다시피 했겠죠.
그런데 그 새벽차를 타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출발하기 전에 꿈을 꿨단 말이에요.
꿈을 꿨는데 그 마을에 큰 산이 국사봉이 있어요. 그 국사봉이 아주 험하고 높은 산이거든요.
그 정상보다도 훨씬 키가 큰 장군이 얼굴은 안 보여요. 내가 쳐다보니까 그분이 계시는 거예요. 그분의 발바닥 정도의 크기야. 내 크기가. 그분이 척 계시는 거야. 그때는 그게 뭐가 뭔지 몰랐죠. 그래서 이 출가하는 날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렇게 해서 이제 제 수행 구도의 여정이 시작이 됐었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우여곡절도 겪고 하면서도 언제나 수행 일념이 계속 있어 왔던 삶이었거든요.
심지어는 제가 해인사서 나와서 동화사 거치고 통도사를 거쳐서 80년 10월 27일 ‘10・27 법난’을 겪으면서 그때 신원조회를 하기 위해서 내려왔죠.
내려왔는데 그때는 다시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시대적인 상황이.
저도 그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입니다. 스무 살 때.
그래서 내려왔지만, 스님이 생활하고 스님이 수행하는 것처럼 내가 어디에 있든지 수행을 하리라 생각을 해서 결국은 제가 공직에 입문을 했었잖아요.
합격을 하고 임용자 교육을 두 달인가 받았어요.
서초동 어디 교육원이 있었는데 교육을 가서 점수를 많이 따야 되잖아요.
그래야 좋은 데 발령도 받고 그럴 텐데 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우면산인가 그래요.
산 위로 올라가서 금강경을 최소한 아무리 바빠도 3 독씩은 했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이 쌓인 거죠.
그래서 결국 광덕스님 뵙고 마하반야바라밀 염송경도 하루에 5천 독씩하고 또 금강경은 주말에는 21 독 하고 평소에는 바빠도 3 독씩 하고. 그때는 수계 받으면 무조건 해야 돼. 숙제야.
그리고 다시 우리 종단으로 들어와서는 계속해서 천 배를 21일간 하거나 아니면 또 뭔가 신심이 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3천 배를 일주일씩 하거나 이런 식으로 그냥 재촉을 해왔던 거죠.
그래서 그 세월을 보내오고 드디어 이제 정릉 천중사에서 새벽에 예불을 마치고 금강경 독송을 하고 가만히 앉은 거죠.
그런데 새벽 예불을 마치고 금강경 독송까지 해도 아직까지 어두운 상태예요.
그러니까 사방이 이제 고요하죠. 사방이 고요해요.
새벽 예불 마치고 촛불 후 불어 꺼버리면 금강경 읽고 나서 촛불 후 불어 꺼버리면 그냥 캄캄하잖아요. 새벽 동이 트기 전이니까.
사방이 뚝~~ 끊어져요.
생각도 푹 쉬고 고요~~하죠.
바깥세상도 텅 비고 금강경 독송 후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도 고요~~하고 나도 없어요. 아무 생각이 끊어져 버렸으니까. 눈만 꿈뻑 꿈뻑 이런 상태죠.
그런데 그때는 이게 뭐가 뭔지 몰랐어요.
그리고 3천 배를 할 때도 시작을 하면 처음에는 땀이 흐르고 무릎이 아프고 괜히 시작했네 이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계속합니다.
계속하면 부처님이 보이고 또 바닥에 이마를 닫고 일어나고 몸이 아프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몸도 사라져 버리고 앞에 계신 부처님도 사라져 버리고 절만 꾸뻑 꾸뻑 하는 거예요. 몸도 다 잊어버리고. 또렷하게 절만 일어났다 머리를 닿았다. 이게 뭐가 뭔지 몰랐단 말이에요.
그리고 가장 오래된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한 초등학교 6학년인가 중학교 1학년인가 그때 한여름, 여름 방학 때 시골에서 소를 먹이러 갑니다.
소를 먹이러 가면 소는 자기가 알아서 풀을 잘 뜯어요. 워낙 익숙한 일이기 때문에 소들도. 또 다른 친구들도 다른 소들을 몰고 가서 풀을 뜯게 하고 나는 친구들하고 내려와서 금곡지라는 저수지가 있어요.
금곡지에 내려와서 여름이니까 미역을 감습니다. 옷을 완전히 다 벗어 던지고 시원하게 깊은 곳도 있지만, 가장자리에는 얕아요.
그런데 그날은 어찌 된 셈인지 다른 친구들 없이 나 혼자 금곡지에 들어가서 목욕을 했거든요. 한여름에 시원하고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이 물 표면이 어느 정도 달구어져 있기 때문에 뜨뜻해서 거의 체온하고 같은 온도예요. 그래서 훌러덩 벗어버리고 그 물속에 들어가서 헤엄도 쳤다가 놀잖아요.
노는데 어릴 때부터 그렇게 놀았기 때문에 수영이 익숙해요. 물 위에 떠서 가만히 있어도 안 가라앉아. 뭐 발만 까딱까딱 이렇게 하면 전혀 안 가라앉아요. 아주 편안하고 좋죠.
그러니까 그 물 위에 떠 있습니다.
몸의 대부분은 물에 잠기고 코하고 눈만 나와 있죠.
간간히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물거품 소리.
물거품 소리가 뻐꿈뻐꿈 이렇게 들리죠. 꼬록꼬록 이렇게 들려.
아무런 생각도 없고 그때 어떤 상태였는가 하면요.
내가 물속에 잠겨 있잖아요. 눈만 나와 있잖아요.
이 물은 어디로 연결돼 있습니까?
물은 이 온 지구하고 그대로 연결 돼 있는 거예요. 그죠.
물은 빈틈 없이 저수지 끝까지 그리고 둑 그리고 산 아래 동네, 대구, 서울, 바다 건너 일본, 이 지구에 그대로 전부 다 연결돼 있잖아요. 그죠.
그 상태에서는 내가 지구가 돼 있는 상태예요. 지구만 그렇습니까?
공기로 치면 그대로 우주가 내 몸이야.
지금도 마찬가지야. 지금도.
지금 이 순간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공기로 다 연결돼 있잖아요.
에너지로 다 연결돼 있잖아요. 각자가 다 그래요. 눈만 꿈뻑꿈뻑 이렇게 하잖아요. 전부 다 자기의 우주야.
그런데 이게 뭐가 뭔지 몰랐단 말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답답해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찾아서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
그러면서 자기 문제 하나 해결 못 하고 밥만 축내고 답답하기만 하고 기도를 해도 기도가 되는지도 모르고 참선을 해도 이렇게 하면 되나 저렇게 해야되나 애만 썼지 답답하단 말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이제 98년 여름이 됐는데 너무 답답해서 한여름 7~8월이 아마 됐을 거예요.
그때부터는 밤에 제가 있던 곳이 인왕산 자락에 조그마한 공간을 얻어서 거기서 법회를 보고 있었거든요.
낮에 법회를 보고 답답하니까 계속 걷습니다. 고양시를 계속, 계속 밤새 걸어요. 밤새 걸으면서 염불하고 또 앉아서 참선하고 또 걷고 또 화두 참선, 화두 참구도 했다가 걷고 계속 그러면서 답이 안 나오니까, 깨닫지 못하니까 ‘이제 나는 안 되구나!’ ‘이번 생애에서는 안 되구나!’ 좌절감에 심하게 시달렸죠.
그래서 그때 작정하기를 이번 연말까지 내가 한 소식을 못하면 나는 이제 이번 생애에서 안 되니까 나는 죽겠다. 절박하게 그렇게 다가온 거예요.
그래서 여름 지나가고 가을이 되고 겨울이 이제 됐잖아요. 그러니까 12월 31일이 됐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 안 터져.
법회 보고 경전 베껴 쓰고 이렇게만 해왔는데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문자로만 사전 의미만 공부하고 경전 공부를 해도 그렇게 해왔었죠.
그래서 말일까지 아무 소식이 없어서 나 큰일 났다.
정말로 이제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그 심정이 어떻겠어요.
말일이 됐는데 죽지도 못하고 8일 9일이 지나간 거죠.
그때는 거의 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9일 날 점심시간쯤 돼서 내 신세를 생각하니까 참 처량해요.
변하지 않는 진리를 깨달아서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은 말뿐이고 그것은커녕, 부모 형제자매들 가족들한테 신세만 지고 그러니까 가족들한테도 조상님들한테도 빚만 잔뜩 지고
또 출가를 해서 이 옷을 입고 수행자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깨닫지도 못하고 밥만 축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처량하고 너무 좌절감에 시달려서 그냥 허탈하게 법당에 턱 앉아 있는데 이 앞에 축원문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와요. 물론 좀 전에도 사시불공 하면서 축원을 했어.
그러면서 이제 드는 생각이, 내가 매일 기도할 때마다 이름을 부르고 축원하고 했는데 정말로 이 축원하는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정말로 그분을 위해서 진실로 축원을 했는지 의문이 들어요.
정말로 그분들은 여러분들처럼 절에 오셔서 같이 경전 공부도 하고 같이 기도도 하고 하는데 내가 이분들한테 정말로 제대로 축원이라도 진실로 한 적이 있는가~~ 싶어요.
그래서 이제 하여튼 뭐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기를 이제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는데 죽겠다고 결정을 해놨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이라도 진짜로 진짜로 내가 인연 있는 분들을, 나하고 인연이 있었던 분들 축원을 하고 내가 죽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내 방석으로 딱 가서 축원을 시작했죠.
축원을 시작했는데 카드가 필요 없어.
앉아서 합장을 하고 축원을 하는데 그게 정말 축원이 그렇게 되는데 피눈물이 나는 축원이에요.
막 눈물이 나오고 콧물이 나오고 이 피부에서 끈끈한 액체가 나오는데 피가 나오는 느낌이에요.
그러면서 앉아서 축원을 시작하는데 카드도 필요 없고 이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장면으로 가는 거예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상황까지, 부모님이 결혼하시고 또 어머님이 나를 가지시고 태어나시고 했던 그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쫙~~~~ 지나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모든 인연들이 다 등장하죠. 이게 업경대(業鏡臺)예요. “업경대”
제일 먼저 등장하는 분이 부모님, 그다음에 조부모님 이런 식으로, 그래서 등장하면서 이분들을 위해서 축원을 시작하는데, 있었던 일들이 낱낱이 낱낱이 개미 한 마리 본 것까지 다 나와.
집에 무슨 보리밥 쌀밥 하는 보리밥 쌀밥 풀(?보리 벼)도 있죠.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자전거 타고 쭉 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 돌멩이가 있고 그것을 피해서 가고, 그리고 어느 동네 지나갈 때는 뭐가 무서웠고 이런 것까지 싹 다 나와요.
낱낱이 그 모든 등장하는 인물 한 명 한 명들 하고 있었던 일이 다 떠오르는 거죠.
그러면서 그때의 내가 느꼈던 것, 그리고 그 사람의 입장, 나의 입장, 이런 것들이 싹 지나가요. 지나가면서 생생하게 경험을 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그 현장에 있어. 얼마 전에 설명하셨죠.
내가 다시 그 현장에서 그분하고 같이 삶을 살아오는 그 과정이 재경험되는 거예요.
지나가면서 축원으로 시작했는데 방하착이, 한 번 지나가면 방하착이 싹 돼버려.
보고 듣고 느끼기 재경험이에요.
다시 경험하는 거니까 제가 이 이름을 ‘재’ 자를 써서 재경험이라고, 했어요.
재경험을 해서 보고 듣고 느끼기를 해서 지나가면서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가 다 알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낮에 시작해서 그다음 날 아침 새벽까지 그렇게 한 바퀴가 다 돌아갔어.
싹 돌아갔단 말이에요. 시간 가는 줄도 몰랐죠. 한자리에 앉아서 그대로. 눈 떠보니까 그렇게 됐어. 하루가 지나가 있어.
그래서 이제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고 밖에 나와서 보니까 뭐 죽을 내가 본래 없었어.
나고 죽고 하는 나는 본래 없었어. 내가 없어 처음부터.
나는 그럼 어디 있는가?
그러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나고 또 바람이 나고 굳이 나를 설명하자면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순간에 이제 알아지는 것이 많았죠.
나도 없고 바깥도 없고, 본래 짐도 없었고 짐진 나도 본래 없었고 지게조차도 없었고 그렇게 해서 내가 이제 진짜로 죽은 거죠.
죽어야 할 나, 나고 죽는 나는 그날 죽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죽고 나니까 본래로 우뚝해.
죽을 나도 없고 나는 나도 없고.
설명이 잘 안 되네. 좀 실감 나게 하여튼 너무 감격스러워서 좀 실감 나게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오늘 이야기가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깨달음 중에 여러 번 말씀드린 내용 중의 하나는 뭔가 하면 그 39살 때까지 내가 정말로 열심히 살아왔잖아요. 잘 살아왔잖아요. 남한테 좋은 일도 많이 했잖아요.
NO, NO, NO
남한테 뭐 해주고 도와주고 100% 뭔가 하면 내 좋을라고 한 거야.
나밖에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 이것이 깨달음 중의 하나예요. 나밖에 모르고 살아왔어.
뭔가 좀 남한테 이렇게 해준 것도 내 좋을라고, 내 편할라고, 내가 덕 볼라고.
지금까지 축원한 것도 축원하는 모습 보여서 신도 한 명 늘려보려고 예를 들자면 그런 식으로 살아왔더란 말입니다.
그리고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출가를 해?
열여덟 열아홉에 입산을 해? 일체중생?
그때까지요, 그때까지 농사지으셔서 쌀독에 거득하게 담아둔 그 쌀을 퍼서 부모님한테 밥 한 끼 해드린 적이 없어. 한 번도 남을 진실로 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그래놓고 거~~창하게 무슨 뭐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그따위로 살아왔다 하는 것이 다른 어떤 깨달음보다도, 그게 가장 부끄러우면서도 실감 나는 깨달음이에요.
제가 그러면 다시 좀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님 말씀 듣다 보니까 저도 지금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요.
일생 방하착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창밖을 바라보니 ‘내가 없더라’ 방금 말씀하신
이 대목입니다. 저의 질문은 그 순간 무엇을 알게 되셨고 무엇이 사라졌고 그 상태, 그 세상은 어떤 겁니까? 이게 질문이거든요. 좀 디테일한 부분인데요,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이 무엇인지를 저희는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것을 그때 그렇게 하고 나서 일어난 일 중의 하나가 이제 시가 계속 나와요. 게송이 계속 나와.
그래서 그것을 설명한 게송이 『다라니의 힘』에 방하착이라고 내가 써놨어요. “방하착”
몸도 마음도 놓아버리니 없는 곳이 없구나! 라고 했던가 뭐 하여튼.
제가 조금 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없더라’ 우리 이 대목부터 짚어보시자고요. 저희는 지금 내가 있잖아요. 내가 여기 있고 인수보살님이 있잖아요. 스님이 말씀하시는‘ 내가 없더라.’ 그거는 참 죄송스러운 얘기인데 ‘어! 내가 없네’ 이렇게 찾아보셨어요. 그런 상황입니까?
내라고 여겼던 내가 원래 없었던 거예요. 내가 만들어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걸 아셨다는 겁니까?
그렇지! 저절로 드러나.
그러면 그 순간에 이 몸이 보이기는 하나 이것이 내가 아니라는 자각이 확실하게 드는 겁니까?
그러니까 조금 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나 따로 너 따로 그 따로인 줄 알았는데 그런 내가 없더라 본래 없었다. 이 말입니다.
전체가 정말...
내가 그냥 따지지 말고 바깥도 나도 원래 없어. 원래 공이야.
그래도 보이는 건 보이는 것 맞죠?
그렇지! 다 보이는데 색안경을 벗고 보는 거죠.
조금 뭔가 느낌이 조금 오십니까? 여기에 대해서 조금 더 궁금하신 분 오늘 이 시간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질문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이거 지금 8년 만에 얻은 시간이에요. 좋습니다. 말로는 정말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기로는 스님께서는 이것이 뭔가? 이걸 확인, 좀 더 계속 그 상태에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속리산 쪽으로 가셨죠? 거기에 오래 머무르신 걸로 아는데 그 며칠 동안 계속 그 상태가 유지된 겁니까?
그렇죠. 계속 앉아서 이게 뭔가? 이게 뭔가? 이걸 이제 살핀 거죠. 이게 뭔가?
너무 날아갈 것 같이 심신이 아주 쾌활하고 가볍고 그런데 이게 뭔가?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아서 딱 바로 끊어져요.
생각이 푹 쉬고 그냥 고요하죠. 심심하잖아요. 또 한 2 3일 지나면 심심해.
그런데 심심할 차에 딱 앉아서 집중을 하는데 여기(이마)에서 어떤 까만 점 같은 것, 그냥 볼펜으로 탁 찍은 것 같은 아주 작은 점이 탁 이렇게 이미지가 생겨요.
이게 뭔가 하고 딱 집중했더니 연꽃 봉우리로 싹 변해요.
연꽃이 활짝 펴서 싹 지나가. 그리고 또 이제 그래요. 계속 여기에서 연꽃이 연꽃 봉우리 연꽃이 계속 피어나. 계속.
죄송합니다. 제가 여기서 잠깐 말을 끊고 연꽃이 이렇게 피어나가는 게 시각적으로 나가는 것이 보이는 겁니까? 아니면 내 어떤 마음속 그런 장면 속에서 연꽃이 나가는 겁니까?
그렇죠. 꿈결처럼 그리고 집중하면 뭔가 알아저요.
이게 이거, 이거 이야기하면 이제 사이비 교주의 출발이 돼요. 사이비의 출발이 된다고.
그러면 그 말 하지 말까요?
그래서 그런 현상이 있고 그 속리산에서 체험한 내용이 바로 단군 할아버지로 보이는 분을 만났다는 거잖아요.
내 방에 걸어놓은 사진에 있는 분보다 더 수염이 짙어. 우리 국사 교과서에 사진이 나오잖아요. 그것보다 훨씬 수염이 짙고 아주 씩씩해요. 내가 나중에 그것을 찾아서 알아봤는데 제일 가까운 사진이 북한에서 내려온 사진이에요.
그 단군 할아버지가 척 나타나셔서 책을 한 권 나한테 주셨잖아요.
그 책 내용이 바로 자성불 수행 내용이에요.
내가 체험했던 내용이 그대로 거기 다 있어.
예 요 단락은 하나만 더 여쭤보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면 계속 며칠을 보내시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 상태에서 빠져나왔다는 것도 느끼실 수 있는 겁니까?
이제는 빠져나오고 들어가고 하는 게 아니고 그냥 그게 일상이죠.
그 깨어 있는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는 말입니까?
그럼 알았으면 됐지 뭐. 이제 알았으면 됐는데 이게 정말로 그런가 하는 것은 의문이 있으면 의문을 풀어주는 일이 자꾸 생겨요.
예를 들어서 영가 천도가 되나~~ 이렇게 천도재 지낸다고 해서 영가 천도가 되나~~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러면 그것을 딱 실제로 똑똑히 경험하도록 그런 일이 생겨.
그리고 화엄성중님한테 우리가 축원을 하는데 우리가 한 분 한 분들한테 화엄성중님들이 옹호를 해주시나?
경전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그것을 빌미로 또 기도도 우리가 많이 하는데, 정말 그런가~~ 의문을 가지잖아요. 그러면 그게 딱 보여져.
의문이 없어져 버려.
그때부터 계속 지금 그런 어떤 것이 연속된다는 말씀이신가요?
필요가 없지. 그런 것은 이제 확인했으면 된 거잖아요.
시간이 너무 없어서 제가 오늘 또 그래도 한 단락을 좀 끊어야 되기 때문에 이 질문 하나만 마지막으로 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 그날 깨어나셨는데 그게 이제 보통 저희가, 제가 예측하기로는 견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그렇게 표현하면 아상에 떨어지는 거예요.
나는 깨달았다라고 하면 나는 깨달았고 깨달았지 않은 사람이 생기기 때문에 인상이 또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깨어나실 수 있었던 그 날, 지나고 난 다음에 저 같으면 생각을 해볼 것 같아요. 내가 왜 그때 그렇게 깨어났을까? 원인이 뭐였을까? 이렇게 생각해볼 것 같거든요.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깨어나실 수 있었던 핵심적인 원인, 이유를 무엇이라고 판단하시는지.
그러니까 원이 계속 심어져 있었고 원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때 발심을 한 때로부터 계산해 보니까 21년 만이더라고. 수행이 쌓였던 것이 터진 거죠.
그러면 결론적으로 원과 오랜 수행의 결론이 그날 일어난 것이지.
그리고 진짜로 해야지. 진실로 해야지. 정말로 자기를 방하착 해야 되는데 자기 좋을라고 자기는 남겨 놓고 방하착하고 자기는 남겨 놓으면 계속 이 내가 있는 거야. 아상이 계속 남아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정말 죽겠다라는 결심을 했으니까.
그 나를 마져 방하착을 해야 되는데 내 좋을라고 방하착을 하니까 내가 계속 더 딴딴하게 굳어지는 거라고. 아상이 점점 굳어져.
요 부분이 중요하죠.
방금 이 부분을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정말로 아무 목적 없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겠다.
이것을 내려놔서 내가 좋아지려고 자꾸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정말 자기를 내려놓겠다. 이렇게 저는 이해가 되거든요. 그게 스님이 생각하시는 방하착의 비결인 것 같습니다.
그게 비결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솔루션할 때도 마저 마저 방하책을 꼭 하잖아요.
이게 체험이 없으면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어려운 점이 있지만 자성불 대학에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한번 체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항상 들었던 말씀이기는 하나, 스님의 경험과 바로 붙여서 또 제 질문과 그 답변 속에서 들으니 저는 오늘 뭔가 좀 더 그래도 일산 법상 스님을 조금 더 아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뭔가 하나를 더 얻어간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정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스님께서 목숨까지 내놓으시고 얻은 귀한 법을 이렇게 너무 편하게 여쭈니 참 송구스럽고 감사하다 이런 말씀이니깐요. 다음 주에 3편 기대해 주시고 우리 스님께 감사의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실시간으로 함께해 주신 여러분들도 감사합니다.
자세히 보고 축원드리겠습니다._()()()_
첫댓글 감사합니다._()_
큰스님 공경하시는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앞으로 저도 본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