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외 1편
김명은
앰뷸런스에서 철제침대로 옮겨진 내 몸이 지하로 내려간다 바닥은 비스듬히 휘어 가파르다 사람들이 흰 시트로 덮인 몸과 제각각 움직이는 바퀴를 따라 걸음을 옮길 것이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을 누군가는 지하주차장에서 비명처럼 울리는 핸드폰소리에 놀라겠다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트렁크나 핸드백 따위는 없다 어느 날 누군가를 만날 것처럼 정갈하게 몸을 씻고 새 옷을 입어도, 어딜, 가냐고 몇 시까지, 들어올 거냐고, 다그칠 사람도 없을 것이다 뭉그적거릴 새 없이 시계에서 급히 빠져나온 시간이 시간 밖으로 날아갈 것이다 내 어깻죽지를 짓누르던 우울과 허무가 날아갈 것이다 오솔길과 메타세쿼이아 길의 산책은 나뭇잎으로 두껍게 덮이겠다 처녀들은 핸드폰을 들고 현관문 앞에서 내가 만든 비밀번호를 바꾸지도 않고 버튼을 누를라나 누군가 물끄러미 거울을 보다가 내 화장대 서랍을 가만히 밀. 어. 넣. 을. 것이다
둥근 뿌리
뒷베란다에서 야채를 꺼내려다가 깜짝 놀란다 구석에 처박아둔 비닐봉지 속의 감자가 기를 써 뿌리를 내민다 내 눈을 놓아주지 않는다
감자꽃이 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의식이 없는 외할머니의 반쯤 벌어진 입안이 온통 보랏빛이었다 내 손을 잡고 병원 문을 들어설 때마다 두렵다 무섭다 했던 할머니 두 귀가 꿈틀거렸다 누구누구의 목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링거호스를 뽑으면 세 딸과 껍질을 벗긴 감자처럼 말갛게 길렀던 외손자들과 시동생 가족들이 줄줄이 딸려 나올 것 같다 의사가 다녀갈 때마다 가족들 의견은 분분했고 주름 접힌 커튼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나보다 눈치와 걸음이 빨랐던 할머니는 벌써 병원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거친 호흡이 새까맣게 변한 할머니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꽃들이 창 밖 하늘을 보며 웃고 있었다 감자꽃은 떨어지고 코와 입으로 들어간 고무호스가 온몸으로 뻗어나가 푸른 씨감자의 몸을 감싼다
심다 남은 감자 상자를 쏟았다 꽃은커녕 잎사귀도 없이 물 한 모금 먹지 않은 감자가 옹글옹글 새끼감자를 키우고 있었다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3년 · 상반기 제8호
김명은
전남 해남 출생. 2008년 『시와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