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鮮明先生말씀選集 3권
5) 버렸던 예수님의 것을 찾아 세우는 신부가 되자 1957년 10월 4일(金), 이남 출감 기념예배, 전 본부교회.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버렸던 예수의 것을 찾아 세우는 신부가 되자’라는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1. 이 땅에서 버림받은 예수
인간들이 지금까지 믿고 나온 예수님, 또는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 뭇 인간들이 환영하여 그리스도라고 부르며 주라고 부르는 예수님은 그때 당시에 땅 위에 오셔서 그러한 영광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믿고 있는 우리 자신은 물론이지만 당시의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이 남기고 가신 그 말씀을 하늘의 말씀으로 믿은 사람이 없었고, 그 말씀을 자기의 생명을 대신한 말씀으로 믿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땅을 위하여 오신 예수님이었지만 땅 위의 사람들 앞에 환영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대신하여 그를 진정으로 환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가정을 대신하여 그를 환영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30년 세월을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살았지만, 그 가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품고 있는 그 마음, 예수님이 바라시는 소망, 예수님의 생활과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무지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깊은 뜻을 이해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맞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불신하고 버리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 예수님의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찾아 세워야 할 섭리적 사명이 있었고, 개인을 대하여 찾아 세워야 할 사명이 있었고, 또는 생활을 통하여, 일을 통하여 찾아 세워야 할 사명이 예수님에게 있었는데, 그 당시 유대민족 중에는 그러한 예수님의 사명을 자신의 사명으로 느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고, 듣고, 말하고, 행하고, 일하는 모든 생활이 무지한 땅 위에 있었다 할지라도, 그 삶은 땅 위의 인간들을 위해서 사는 것만이 아니었고, 인간들이 모르는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사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새로운 천륜의 뜻을 위하여 사신 예수님에게는 그야말로 남모르는 배후의 슬픔이 말과 이념과 행동과 생활에 나타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가정에서 자신의 뜻을 세울 수 없게 됨에 따라 사회를 통하여 혹은 교단을 통해 자신의 뜻이 알려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교 앞에 또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일신이 배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배척을 받았고, 예수님의 생활과 예수님이 하고자 하신 그 일이 모두 배척을 받았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와 같이 버림을 받았던 예수님의 심정, 버림을 당할 때의 그 외로움, 마음에 새겨진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예수님의 고통을 모르는 자가 된다면, 여러분은 4000년 역사를 책임지셨던 예수님의 생애, 그의 이념, 그의 생활, 그의 일과 그의 말씀을 아는 자로서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그러한 사정이 나타나 있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조금은 알고 있는데, 그것도 그저 머리로 알고 있습니다. 또 귀로 들어서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유대 백성을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셨을 때에도 그저 귀로 듣고 머리로 알기만 하였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실생활에서 피부로 체휼하지 못하고 귀로 듣고 머리로 알기만 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머리로 알고 귀로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되느냐? 들은 말씀을 머리로 아는 동시에 마음으로 알고 행동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거쳐 나갈 때까지 이와 같이 말씀을 머리로 아는 동시에 마음으로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유대교, 나아가 예수님께서 3년 동안이나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있는 성심을 다 기울여 가르쳤던 제자들 중에서도 그러한 사람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다 불신하는 입장에 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있는 정성을 기울여 가르치고,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정을 알게 했고, 또한 하나님의 섭리에 무지한 그들에게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간곡히 깨우쳐 주셨는데, 당시의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배후의 사정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들려지는 말로, 또는 보는 눈으로, 아는 머리로서가 아니라, 그 말씀을 머리로 깨닫고 마음으로 느끼고 몸으로 행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